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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끝나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거는 까닭은"
워커홀릭 박씨는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선잠에서 깬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묻는다. “아빠, 일은 언제 끝나?” 박씨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한다. 일찍(?) 퇴근해 아이와 놀아주겠다는 약속을 몇 주째 지키지 못해서다. 토라진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왜 끝도 없는 일을 매일 해?”
 
작년 <피로사회>로 한국을 찾아온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신작 <시간의 향기>를 읽으며 떠올린 장면이다. 모든 시간이 일에 수렴되어 ‘남는 시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을 잠시라도 돌아본다면(물론 이걸 돌아볼 시간조차 없을 테지만)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 아닐까.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도대체 일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시간은 왜 늘 모자란 걸까, 그렇게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도 왜 돌아보면 남는 게 없는 걸까.
 
한병철은 이런 현상을 시간의 위기, 시간의 질병이라 진단한다. ‘빠름 빠름 빠름’을 외치는 가속화, 이를 비판하는 느리게 살기는 잘못된 진단과 해법이라 말하며, 흐름이 소멸되어 리듬과 질을 상실한 탈시간화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꼬집는다. 인간은 시간 위에 존재한다. 탈시간 위에서는 의미도 삶도 구성할 수 없다. 당연히 일은 끝나지 않고, 일에 목숨을 걸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간 아끼고 쪼개 쓴 아까운 시간은 잊어도 좋다. 그런 시간은 애초에 시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시간의 향기>에서 한병철이 제안하는 ‘다른 시간’을 찾아보기 바란다. 물론 ‘피로사회’를 극복하는 해답도 바로 이 책에 있다.
 
- 인문 MD 박태근

책 속에서 : 인생은 더 이상 단계, 완결, 문턱, 과도기 등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의 현재에서 또 다른 현재로 바삐 달려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지만 늙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불시에 끝나버리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죽는 것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어려워진 것이다.(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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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나카노 교코 지음 / 이봄

"슬픈 인생도 딱 한 번"
옛 왕족들은 행복했을까.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들도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마치 거래하듯 결혼을 주고받는 문화 속에서는 정서적인 행복을 찾기 힘든 게 되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특히 여성들은 거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다. 남성 위주의 지배체제 하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위치에 갇혀버리곤 했던 것이다.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에는 수없이 이루어진 이 슬픈 ‘계약’ 관계 중에서 서양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섯 가지의 사례를 들어 보인다. 그 중에는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르가리타 공주도 있다. 집안의 영광을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그 결혼 생활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가정이 주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불행한 운명이 그녀 앞에 드리워져 있다. 권력은 사랑을 꽃봉오리째 앗아갔고, 단 한 번인 인생은 그렇게 피우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특히 이 책 속에는 비운의 여성들이 아직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전의 모습부터 비극에 집어삼켜진 뒤까지 다수의 초상화가 수록되어 애잔함을 더한다. 그녀들의 얼굴과 옷차림에 묻어난 삶의 흔적들을 보노라면 운명은 때로 이토록 가혹한데도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맺힌다. 서둘러 꽃 피우고 떠나갈 봄자락에 읽기 좋은 책이다.
 
- 소설 MD 최원호

책 속에서 :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에서 몸에 익힌 품위는 비정한 술수러 점철된 정치의 영역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국면을 맞았을 때 메리는 자신의 처형 장면을 프랑스풍의 장엄한 의식처럼 연출하려 했다. 정통의 왕녀로서, 또 우아함의 본보기로서, 자기 쪽이 엘리자베스보다 훨씬 뛰어남을 온 세상에 보여주고 죽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평정을 유지하며 위엄 있게 단두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 임종의 의식에 걸맞은 차림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했다… 메리는 참으로 맵시 있는 차림새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터였다.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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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
프랭크 모스 지음 / 박미용 옮김 / RHK

"'기술이 충분히 진보하면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추천받은 수재들이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해 인류의 난제를 풀어내고 숙원을 실현해내는 곳이 있다. 학문의 융합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어느 집단이나 롤모델로 삼으며 벤치마킹하는 곳, 바로 MIT 미디어랩이다. 지금도 이 세계 최고의 연구소에서는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는 구호를 바탕으로 미디어.예술.의료 등 전 산업에 IT를 접목시켜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획기적이고 창의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차 중에 충전이 이루어지는 자동차부터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ATM(은행자동입출금기)까지, 모두 MIT 미디어랩의 작품이다.

이 책은 이 연구소에서 5년간 소장으로 재임하면서 MIT 미디어랩을 세계 최고로 성장시킨 프랭크 모스의 현장 이야기를 다룬다. 미디어랩의 교수진과 연구생들을 '마법사와 제자들'로 애칭하며 동고동락한 경험과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혁신적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현장에서 길어 올린 통찰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담겨 있다. 
 - 경제경영 MD 채선욱

추천사 : 우리가 일하고, 즐기고, 생활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환상적인 발명이 MIT 미디어랩의 창의적인 무질서에서 비롯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대담한 발견과 무한한 도전의 주역인 디지털 마법사들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주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 CEO)

과학기술 분야나 사업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특별한 통섭의 접근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혁신에 달려 있다. 이 책에는 매 페이지마다 세상을 변화시킬 깜짝 놀랄 아이디어가 넘쳐흐르며, 독자들을 혁신으로 이끌 힌트가 숨어 있다. - 채드 헐리 (유튜브 공동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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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철학
조경란 지음 / 창비

"술 한 잔, 소설 한 문장, 조경란"
조경란이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 여덟 편의 단편 속, 대부분 ‘그녀’인 주인공들의 일상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재현된다. 도쿄의 이자까야에서,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낯설고 새로운 도시에서 걷고 먹고 마시고 우는 동안, 외로운 사람들은 더 외로워진다. 밥 한 술, 술 한 잔을 먹고 넘기듯, 잘 정돈된 문장을 소화시키는 동안 소설 속의 산책하는 이들의 일상과 공명한다.
 
단절과 고독에 처한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 묘사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타인과 만나는 차분한 시선과 어우러져 더없이 짙은 정서적 파문을 낳는다. “그동안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이 세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있었던 것일까요”(파종 中) 같은 의문이 드는 일요일, 집어들기 좋은 아름다운 소설.
 
- 소설 MD 김효선

 
책 속에서 : 나는 보지 않고서도 쇠공을 던지고 줍고 다시 던지는 아이를 본다. 그 공이 날아가는 궤적도. 그것은 마치 내 힘의 크기 같아 보인다. 내가 보는 것이 현재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또 무순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 위대한 투포환 선수가 되고 싶다면 너는 지금의 그 원처럼, 그 보호된 고독 속에서 네 삶을 살아야 할 거라고. 그건 무순이 나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정원 등을 켜야 할 텐데, 막무가내로 잠이 쏟아진다. 쇠공이 쿵, 떨어지는 간격이 점차 길어졌다. 그 속에 한 사람은 동작 하나하나마다 실전의 순간을 염두에 둔 자세로 공을 밀어내고 떨어진 공을 반복적으로 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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