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다시, 프루스트를 읽을 시간" 발췌된 몇몇 부분의 아름다움과 엄청난 명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고개를 저으며 중간에 덮을 수 밖에 없었던 공포의 고전 걸작. 확실히 쉬운 작품은 아니다. 작품이 시작하고부터 수십 페이지가 지날 때까지도 잠자리에 누운 한 남자의 맥락 없는(정확히는 일견 그렇게 보이는) 회상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일반적인 ‘이야기’의 서사를 조각낸다. 동시대의 인상파 미술이나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의 역사적 의의는 검색해 보시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감상으로 대신하겠다.
나 역시 10여 년 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중도 포기한 독자다. 그런데 며칠 전 아무 기대 없이 잠자리에 누워 펼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예전에 억지로 읽던 그 작품이 아니었다.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밤의 침묵 속에서 조심스럽게 꿈틀거리는 맥락을 따라 떠오른 인상과 기억들을 통해 한 인물이 서서히 빚어지는 도입부만으로도 이 작품이 걸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얼핏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화자의 윤곽을 따라 천천히 선을 그리는 몽상들, 또한 그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연결점과 섬세한 묘사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책 뒷면에 쓰여진 버지니아 울프의 탄식을 곧바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가 ‘의식의 흐름’을 이토록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소설이 단단한 구조를 거부하고 추억의 조각과 감각의 기억들로 재구성되는 순간, 다른 소설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삶의 단면들이 입체파 그림에서처럼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면서 한데 만발한다.
지금이 아니어도 좋으니 언젠가 꼭 한 번 도전해 보시기 바란다. 눈부신 소설이다. - 소설 MD 최원호
*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다시 도전해도 좋을까? 자가 테스트: -드뷔시나 라벨을 위시한 인상파 음악을 이제는 좋아한다. 또는 이해한다. -후기 인상파 또는 그 이후의 근대 미술을 이제는 좋아한다. 또는 이해한다. -어느새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게 되었다. 또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소설을 읽었다. -영화 <영원과 하루>, <러시아 방주> 같은 영화를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 -위 사항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문학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며, 남부럽지 않은 근성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