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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산업혁명
제레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제러미 리프킨 미래 전망의 결정판"
생명공학 혁명이 가져올 변화를 그린 <바이오테크 시대>, 기계 등장과 인류의 노동 해방을 전망한 <노동의 종말>,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이동을 예견한 <접속의 시대>, 석유 시대 종말을 경고한 <수소 혁명>,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유러피언 드림>, 무한경쟁을 넘어 협력의 시대를 바라는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은 이처럼 미래 사회의 패러다임을 꾸준하게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전망해왔다. 신작 <3차 산업혁명>은 이 긴 노정의 결론이자 미래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는 2008년 유가폭등과 금융시장 붕괴를 세계화의 정점이라 말한다. 이는 석유에 기반한 2차 산업혁명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 보여준 사건으로, 서둘러 새로운 에너지 체제와 산업 모델로 옮겨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커뮤니케이션과 경제 구조의 연동이다. 현재의 인터넷 기반 커뮤니케이션은 과거의 수직적이고 중앙집권화된 틀에서 벗어났는데 경제 구조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3차 산업혁명은 재생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경제 개혁으로,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위에서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 인터넷'이란 장에서는 전에 볼 수 없던 사회적 교류와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망이 생겨나며 이 과정에서 수천 개의 비즈니스와 수백 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거란 전망이다. 간단히 말해 무한 경쟁의 산업 시대를 마치고 상생 공존의 협업 시대로 진입하는 이야기다.
 
앞선 설명을 보면 꿈 같은 이야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에 정리한 그간의 미래 전망을 보면, 그의 전망과 제언에 귀 기울일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유럽 연합은 이미 이런 이해 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 한국을 방문하는 제러미 리프킨의 메시지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2차 산업혁명의 극단을 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논의되고 이어질지 기대해본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3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금세기 중반에 다다르기 전에 비극적인 기후변화를 피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탄소 후 시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준다.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과학과 기술, 전략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너무 늦기 전에 저 앞에 놓인 경제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곳에 도달할 의지를 끌어모을 수 있느냐 여부일 뿐이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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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입니다
정철 글, 장철영 사진 / 바다출판사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에세이집"
2012년 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주기다. 노무현재단은 서거 3주기를 맞이하여 미공개 사진을 엮은 사진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사진과 함께 실린 짤막한 글은 <내 머리 사용법>, <나는 개새끼입니다>의 저자 정철이 썼고, 사진과 사진에 관한 간단한 설명구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의 청와대 전속 사진기사 장철영이 작업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책에 실린 117장의 사진 중 100장이 넘는 사진이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된다는 것이다. 고향 봉하마을을 방문하여 산책하는 모습, 맨땅에 앉아 숲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 생일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타고 청와대를 둘러보는 모습, 장난스럽게 촛불을 끄는 모습… 일상의 진솔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사람 노무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MD 송진경

함께 보면 좋은 책 : 
 
<운명이다>
<문재인의 운명>
<성공과 좌절>
<진보의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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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죽음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자의 자리>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추억과 회한에 뒤얽힌 가족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소설 전체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채워졌다면 <남자의 자리>는 기억과 회한에 대한 투쟁, 그리고 과거를 진술한다는 행위의 필연적인 허구성(대체 누가 흘러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고백은 어느 정도는 소설이라는 흥미로운 명제, 사실과 상상 사이의 평화. 아니 에르노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남자의 자리>는 마지막 순간에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작가는 결말 부분에서 불현듯 자신의 늙음을 체감하고, 소설은 그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대해 일말의 해설도 없이 끝나 버린다. 인상적인 결말이다.
 
<남자의 자리>의 출판사 책 소개에는 제목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소개돼 있다. 원제가 ‘La Place’인 이 소설이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자리>였는데, 이번 개정 과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제목에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작품 이해, 특히 결말 부분에 갑자기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이해하는 데 힌트를 준다. 저 ‘장소 혹은 자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반대로 장소가 인간들을 소유한다. ‘La Place’가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했던 자리’다. ‘La Place’는 인생의 어떤 단계를 점유하는 지배적인 시공간으로, 마치 떠돌아다니는 승객들을 잠시 품었다가 목적지를 향해 내보내는 정류장과 같다. 늙어가는 자들이 죽음을 체감하는 순간 그 정류장을 향하고, 정류장을 떠나며 죽는다.
 
아니 에르노가 마지막에 맞딱드린 에피소드는 바로 그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살피면서 발견한 ‘La Place’다. 타인의 늙어감에 대해 공들여 문장을 쌓아 온 작가는 정작 자기 자신이 그 장소에 다다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많은 고백과 회상으로 이루어진 <남자의 자리>의 최후의 고백은 마지막 문장 뒤에 차마 쓰여지지 못한 경악이다. 차라리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을 연상케 하는 순수한 두려움, 균형 잡힌 문장으로는 써낼 수 없는 공포. 죽음은 그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소설 전체를 단번에 뒤집어 버린다.
 
정말이지 죽음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래의 추천사도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 소설 MD 최원호

추천의 글 : 이 소설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발표를 하던 학생이 말했다. ‘저는 그저 좋은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제 책을 빼앗아 읽으시던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깊이 이해되는 이 슬픔은 핏줄의 정서가 불러오는 원시적 슬픔이 아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들에게 헌정하는 슬픔도 아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과 문화를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과 몸담았던 문화를 하나씩 하나씩 부정해야 했던, 자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없애버린 사람들의 운명이 거기 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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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백지연 지음 / 알마

"세계의 문제가 바로 당신의 문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세계 3대 기구(UN, 세계은행, IMF) 수장의 자리에 오른 한국인. "세계의 문제를 보다 감동적으로, 포괄적으로, 세계 그 어느 기관보다 더 효과적으로 다루고 처리하는 기관을 맡아서 이끌어 달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한 세계은행 김용 총재를 인터뷰어 백지연이 만났다. 총재 지명이 확정 된 후 그가 진행한 단 세 번의 인터뷰(BBC, CNN, '피플 인사이드') 중 하나였기에 더 주목할만 하다.
 
세계은행 총재 이전의 그는 금융가도 정치가도 아닌 의사에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학자이자 다트머스대학 총장을 지낸, 빈곤 퇴치와 질병 퇴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쏟은 사람이다. 책은 그의 어린 시절과 걸었던 길, 고민과 가치관을 함께 보여준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성공'의 정의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시대. 전환기를 맞이한 21세기에 주목해야 할 가장 탁월한 인재상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경영 MD 채선욱

책속에서 :
결코 세계은행 총재가 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제가 총재직에 동의한 이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우리는 가난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빌딩을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제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구석으로 밀려난 사람들, 피난민, 이곳에서 저곳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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