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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김훈 지음 / 학고재
"김훈 새 역사소설, 섬으로 간 사람의 이야기"
거기, 그렇게 있을 수 없는, 물과 하늘 사이에 흑산은 있었다.(55쪽) 서학을 믿었기에 삼형제는 나란히 먼 곳으로 밀려났다. 정약전이 유배된 곳은 죽음보다 먼 곳, 흑산도. 검푸른 숲은 윤기를 내뿜고, 여인들은 끝없이 남편을 떠나 보내고 또 아이를 배는 섬에서 약전은 아주 오래도록 물고기를 들여다보았다. 2011년, 김훈이 내놓은 또 하나의 역사소설 <흑산>은 정약전의 시대, 피 흘리며 떠나간 자들에 대한 두려움의 기록이다.
김훈 스스로가 말했듯 이 이야기는 소설이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약전 삼형제가 매를 맞는 장면을 몸서리치며 읽을 수도, 물에 빠져 죽은 거지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뒷목이 서늘해질 수도 없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익히 보였던 김훈의 장기가 빛을 발한다. 수십 명의 인물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밀도 높게 전달되고, 섬 안과 섬 밖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교차한다.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생을 마친 정약전의 배반의 삶과, 배론 토굴에서 순교한 조카사위 황사영의 삶. 그리고 마노리, 육손이, 사공, 섬 여자들, 유곽의 여인들 그 모두의 삶까지, 삶과 삶이 충돌하고 굴욕과 좌절이 교차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다. 소설이 아니라면 사람의 삶을 이토록 치열하게 그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두려워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 천주교에 매혹된 조선 지식인들이 살았던 19세기, 믿음이 없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들의 삶과 꿈, 좌절과 절멸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 한국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기도문을 외우니까 어떠하더냐?
육손이가 말을 더듬거렸다.
-부르니까...... 좋았고, 부르니까 올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어미도 그랬습니다.
-금방 올 것이다. 오래지 않는다.
황사영은 육손이를 데리고 올 때 조안나루에서 장인 정약현이 한 말을 떠올렸다.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그때, 황사영은 그 말의 단순성에 놀랐으나 이제는 그 말의 깊이에 놀라고 있었다. (…)
-나가거라. 육손아. 자매하지 마라.
-무슨 말씀이시온지?
-너를 스스로 팔아서 종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나리마님.....
-나가거라. 가서 처음부터 다시 살아라. 올 것은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달려나가서 맞아라. 한 달 뒤에 나가거라. 그때까지 말미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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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를 죽인 부처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박노자가 찾아낸 해방불교의 혁명적 사유"
한국 불교의 모습은 기복과 호국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적 차원에서, 후자는 사회적 차원에서 그러하다. 둘 다 붓다가 설파한 불교의 초기 모습과는 전연 다르다. 스스로 불자라 말하는 박노자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기획했다면 붓다는 근대철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궁극적 해방을 설파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초기 불교에 대한 ‘해방적’ 해석이자,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참 역할에 대한 ‘실천적’ 제안이다.
1부 붓다와 나의 시간에서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혀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나의 필요로만 판단하고 외부의 조건으로만 나를 규정하는 거짓 나에서 벗어나, 나를 지킴으로써 나와 남이 하나임을 깨닫는 주체적 삶에 대해 정리하고, 2부 붓다와 국가의 시간에서는 불교가 어떤 역사의 과정을 겪으며 국가와 자본에 사로잡혔는지 따져가며, 초기 불교의 탈국가적 정신과 민주주의 실천을 기억하고, 종국에는 전본적, 반란적 해방불교를 꿈꾼다.
거칠게 정리했지만, 박노자는 예의 명징한 논리와 예민한 감각으로 타성에 젖은 한국불교에 일침을 가하고 균형을 잃은 한국사회에 혁명의 불쏘시개를 던진다. 종교의 틀에 갇힌 불교를 우리가 사는 세상 속으로 끌어와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내 시야에만 갇힌 나의 문제를 너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유하도록 만드는, 역사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고 사상으로 문제의 해결을 이끌어내는, 이 책에는 그런 힘이 가득하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해방 불교'에는 사찰도 불상도 기도도 필요 없거나 이차적이다. 해방 불교는 부처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되는 것이다. 고통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에 임하고, 고통의 원인을 파헤치며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치유한다. 고통의 원인을 식별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우리가 현대를 사는 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에 의존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러나 이 작업의 근저에 흐르는 정신은 지난 2,500년 동안 바뀐 게 없다. 자아의 경계선을 넘는 자비의 정신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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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외로움은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가능성을 발효시키는 기회"
<배려>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한상복의 새 책. 저자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외로움이라는 '비공식적 동기(motive)'가 명분이나 성공, 체면, 사랑 같은 공식적인 동기들에 가려져 있지만 때로 삶에 그보다 더욱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혼자 있는 고통(loneliness)과 혼자 있는 즐거움(solitude)이라는 외로움의 두 가지 갈래를 먼저 제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해 결국 더 외로워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러나 저자는 외로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야 비로소 도약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엄마에게 거부 당한 딸, 암에 걸린 아내의 병상을 지키는 남편, 과시 경쟁에 빠진 스타 블로거, 설 자리를 잃은 중년 가장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로 인물을 설정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탄탄한 구성과 입체적 인물 묘사로 풀어내는 깊은 통찰과 흡인력이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들에 치여 '나'를 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외로움과 만나고 친구가 되어 마침내 일상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담아냈다. - 경영 MD 채선욱
책속에서: 넘어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요령을 깨달을 수 있었다. 휘청하는 순간을 포착해 핸들을 트는 것이다.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왼쪽으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쏠리면 오른쪽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휘청휘청, 아슬아슬하게 여러 번 성공했다. ...자전거 균형의 핵심은 기우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 위험해 보이는 쪽을 선택해 오히려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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