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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비상시대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석유 없는 삶, 비극일까 희극일까"
37년 후 세계는 어떻게 변할까? 인터넷이 일상이 되고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닌 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음을 떠올려보면, 아마 SF영화에서 보던 꿈 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장기 비상시대>가 보여주는 풍경은 당신의 상상 밖이다, 물론 반대 방향으로.
이 책은 석유 없는 삶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그리고 그 상황이 왜 필연인지를 조목조목 밝혀낸다. 우선 현대인의 삶이 석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한정된 자원 석유가 고갈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낙관론자라면 이쯤에서 대체에너지를 끄집어낼 텐데, 저자는 예상했다는 듯 수소, 태양열, 바이오매스 등의 한계, 다시 말해 그 역시 석유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며 피해갈 곳이 없음을 확증한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의 삶이 어떨지를 주거, 음식, 교통 등 생활 전반의 생생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곳에는 월마트도, 해외여행도, 스테이크도 없다. 산업혁명 이전, 중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아마 아직은, 우리 대부분은 이런 ‘비인간’적인 삶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듯싶다.
수많은 환경실태 보고와 미래 전망 가운데 이 책이 단연 돋보이는 까닭은 반성과 절제의 강요가 아니라 과연 ‘인간’적인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적 삶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이 기준이 왜 유효하지 않은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데 있다. 유례 없는 200년의 끄트머리에 선 우리에겐 비극으로 느껴지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장기 비상시대’는 어쩌면 인간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 인문 MD 박태근
책속에서: 장기 비상시대의 상황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포만감 대신에 배고픔이, 따뜻함 대신에 추위가, 여가 대신에 고역이, 건강 대신에 아픔이, 평화 대신에 폭력이 주를 이룰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의 태도와 가치와 사상을 변모시켜야 할 것이다. 얼마 뒤 우리가 변한 모습을 우리 자신이 못 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생존 자체가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압도하는 세상에서는, 삶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이 강해지기 쉽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인간 본성 자체의 한계를,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결국 죽기 마련이라는 것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삶은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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