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온이 경신될 때마다 뉴스는 94년의 자료화면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 앉아 저마다의 94년 여름을 공유했습니다. 낡은 선풍기 한대에 의존해야 했던 답답한 교실 공기를, 뙤약볕 아래를 걸어가며 느꼈던 어지럼증을,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만큼 달려야 했던 뜨거운 연병장을 용케 기억했습니다.

버스는 한번도 제시간에 오는 법이 없었고 그늘 한조각 없는 정류장에 서서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으면 티셔츠는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잔뜩 찌푸린 이마를 타고 진득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무더위의 ‘무’가 ‘물’을 뜻한다는 것도 그 계절에 처음 배웠습니다. 피부에 습기가 가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학원에 가기 전에 식탁에 내놓은 소금을 조금 집어 먹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기사 아저씨가 혼잣말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허허, 김일성이도 사람이었구먼? 세상에, 김일성이가 죽었어! 아저씨는 어쩐지 조금 신이 난 것 같았고, 조금 놀란 것도 같았습니다. 순전히 기쁘거나 후련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중학생이었지만 그 정도의 감정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도 94년 못지않게 더웠지만, 아슬아슬하게 94년의 기록을 깨지는 못해서 사람들은 약이 오르는 듯 기를 쓰고 94년을 소환했습니다.

그해 여름 저는 아파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게 제가 맡은 일이었으니까요. 직장인처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병실을 지켰습니다.

그 여름에는 몇개월 전 삽입한 스텐트가 막히는 바람에 온몸의 염증 수치가 위험한 수준으로 치솟아 막힌 관을 뚫고 새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과 염증 치료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옆구리에 뚫은 구멍으로 안쪽에 고인 물을 빼내고 엑스레이 촬영으로 시술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 매일 채혈로 염증 수치를 살폈습니다

세진의 연인이 되고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시아버지는 "봄꽃보다 반가운 사람이 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들었어도 낯간지러웠을 말을 직접 들은 게 하도 인상적이라 지금껏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참 사랑이 많은 분 같아." 언젠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세진은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긍정했습니다. "너도 아버님 닮아서 사랑이 많은가봐." 어느새 저도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해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무작정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결혼 첫해 초여름은 활짝 열어놓은 창을 통해 커튼을 부풀리며 들어오는 바람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 그리고 자꾸만 표 밖으로 도망쳐서 시아버지를 쩔쩔매게 했던 화살표 모양의 커서로 기억됩니다.

그때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아 그중 한 사람이 암 환자가 되어 병상에 누울 것이며 나머지 두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지쳐갈 것을 티끌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던 오만한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은 병상의 환자를 향하는 게 옳았지만, 솔직히 연민과 사랑은 정확히 비례하지 않던가요.

실제로 세진이나 저나 환자의 곁을 지키면서 딱히 몸을 써야 하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할 일은 하루에 몇번 찾아오는 간호사와 담당 의사를 만나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엑스레이나 CT 촬영을 위해 다른 층으로 이동할 때 동행하는 것, 식사 때 식판을 가져와 침대에 놓아주고 다 먹으면 다시 복도에 내다 놓는 것 등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란 정말로 옆에 있어주는 것, 곁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어요.

모든 것이 수굿해지는 오후, 환자가 잠시 낮잠에 빠지면 그제야 저는 기억의 결계에서 풀려나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때로는 창밖의 맹렬한 무더위로부터 차단된 유리벽 안에서 안온하게 잠든 환자와 저만이 세상이 모르는 깊은 바닷속을 잠영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통증도 죽음의 공포도 닿지 않는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이었습니다. 아직 원망도 미움도 당도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끼리 순진하고 평온했습니다. 적어도 그 풍경에 금이 가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렇게 자식들의 애간장을 다 녹이다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노인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다리에 힘을 잃었습니다. 혼자서는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본인도 놀라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 망연자실한 눈빛을 마주하고 세진이 울었습니다.

세진의 눈물을 본 저도 울었습니다. 쩍 금이 간 풍경은 이제 산산이 깨져버렸고 우리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치울 새도 없이 걸음마다 발을 베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환자가 악화할수록 세진의 감정이 크게 휘청였고, 그걸 지켜보며 제 감정도 혹독한 담금질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한껏 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층마다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는 의료진을 봤습니다. 계단을 두칸씩 뛰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의료진을 보고 있으면 괜히 저까지 덩달아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눈앞에서 생사가 엇갈리는 병원이라는 자각이 새삼스레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저와 세진과 시아버지에게 새로운 국면이 찾아왔지만 우리는 그 국면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허청거렸습니다.

"사람한테 충이 뭐예요, 충이? 농담이라도 사람을 벌레라고 부르는 사람이 무슨 의사가 되겠다고 그래요? 사람이 웃겨요? 목숨이 우스워요?"

시럽충 운운했던 그 젊은이는 재수 없게 별 이상한 진지충을 만났다고 아마 그날 내내 떠들고 다녔을 겁니다.

그동안 여자는 이 모든 풍경의 그림자처럼 뒤로 한발짝 물러서서 침대 쪽으로는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로소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아버지도 커피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들렀을 때 집 앞 단골 카페에 모시고 가서 따뜻한 카페라테에 시럽을 많이 넣어 드렸더니 달달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입맛에 딱 맞는다고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후 시아버지는 카페라테가 먹고 싶을 때면 ‘그 달달하고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찾았습니다. 영어를 잘 모르는 시아버지의 어휘 영역에 어쩌다가 카페라테가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각인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가장 많이 들어본 커피의 종류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발음이 더 쉬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시아버지의 오해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했으니까요. 저만 오역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순우 아재 딸 여읠 때 제일모직 원단으로 맞춘 감색 양복 있지 않니? 만지면 보들보들하지만 걸어놓으면 차르르 떨어지는 그 감색 양복 말이다. 내가 분명히 여기 입고 와서 저 옷장에 걸어놓지 않았니?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없어."

타인이 불쑥 내비친 날것의 감정을 마주쳤을 때만큼 당혹스러운 순간이 또 있을까요

"병원 본관에 있으면 장례식장이 전혀 보이지 않아. 본관은 죽음을 피하려고 오는 곳이잖아. 그러니 죽음을 떠올리는 장례식장을 보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이쪽 본관이 잘 보여. 가장 낮은 자리니까 고개만 들면 높은 곳이 전부 보이는 거지. 죽음의 쪽에서 삶의 쪽을 바라보는 건 얼마든지 허락된다는 듯이 말이야. 어머니 장례식 때 한밤중에 이곳 본관의 빛을 쳐다보며 참 외롭다고 생각했어."

숙이? 숙이는 죽었는데? 숙이는 우리 세진이 대학 들어가는 것도 못 보고 죽었다. 불쌍한 여자. 우리 세진이가 얼마나 좋은 대학에 붙었는지,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학원에도 가고 그 높은 박사님까지 된 것을 복 없는 숙이는 못 보고 갔다. 우리 세진이 졸업식 날 박사모도 못 써봤다. 나는 그 박사모를 세번이나 썼다. 대학교 졸업할 때, 대학원 졸업할 때, 진짜 박사님이 되었을 때. 세번 다 세진이가 전부 아버지 덕분이라며 네모난 그 모자를 내 머리에 씌우고 사진을 찍었다. 액자 세개를 나란히 거실 벽에 걸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다 부러워한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내가 그 좋은 대학의 박사님 아들을 두었다고 다들 부러워한다. 우리 세진이가 공부만 잘하는 줄 아냐? 그 아이가 말을 얼마나 곱게 하고 마음도 얼마나 곱게 쓰는지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 우리 세진이는 빛이 나는 아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보고 있으면 얼굴에서 윤기가 반들반들 난다. 눈부시게 빛을 뿜는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나온다. 세진이는 태양 같은 아이다. 아니, 태양이다. 배운 거 없이 맨손으로 상경해 산전수전 겪으며 겨우 집 한칸 장만하고 폭삭 늙어버린 이 안병일이에게 우리 세진이는 빛이고 태양이다. 안세진 박사님은 안병일이의 태양이다

죄도 없이 맨날 용서받는 내 심정은 누가 이해해주니?

나는 너랑 아버지를 저울질하지 않아. 둘 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왜 꼭 편을 갈라야 해? 너야말로 늘 편을 가르려고 들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둘이 될 수 있니? 너는 언제나 뒤로 밀리는 내 마음을 절대로 이해 못해. 싸움은 계절성 기후처럼 반복되었습니다.

원망이 삐죽 고개를 내밀 때마다 저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이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말들이 향 연기처럼 제멋대로 피어올라 허공을 떠다니는 곳임을 이때 배웠습니다. 그중 어떤 말들은 옷과 머리칼에 깊이 배어 쉽게 빠지지 않는 향냄새처럼 뇌리에 진득하게 들러붙어버린다는 것도요.

저들은 왜 나의 애도를 방해하는가. 왜 내 마음을 슬픔 대신 분노로 채우는가. 무슨 의도인가. 저 멀리 어둠 속에 우람한 본관 건물이 보였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 이 자리에서 본관 건물을 보고 외로웠다는 세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질질 울면서 엉뚱한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사이 세진은 저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눈물이 나왔습니다. 눈물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아버님, 잘 가요. 다정했던 기억만 간직할게요.

장례식을 마치고 몇달 후 봄에 세진과 헤어졌습니다. 별 잡음 없던 조용한 이별이었습니다.

내가 돌아와서 치운다고 말해도 어머니는 기어이 밥상을 들고 부엌에 들어가 그릇을 담가놓아요.

연필 끝을 빨아가며 산수 숙제를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사과를 곱게 깎아 와서 "이거 먹고 해라" 다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도 이를 악문 턱의 힘이 빠지지 않아 옥상을 몇바퀴 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노려보다 충동적으로 북해도행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왠지 눈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청주를 석잔째 마셨을 때는 취기가 꽤 올라 주인 여자에게 뷰티풀! 뷰티풀! 하고 주정을 부렸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존나 행복하냐! 하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나는데, 그곳이 초밥집이 아니라 호텔로 돌아가는 빈 거리였기를 바랍니다.

문구점에 가서 달밤이라는 이름의 잉크도 한병 샀습니다

일단 영옥씨,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또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문장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한 문장을 쓰고 밖으로 나와 우체통에 엽서를 집어넣었습니다.

프롤로그가 예고하는 작품의 주제는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 실패하는가와 같은 고전적 범주에 속해 있다

소설 『자두』가 겨냥하고 있는 소문자 가부장제란 바로 그런 ‘버전업’의 산물인 것이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는 더러운 기분"(91면)이란 화자의 ‘열외상태’가 처음엔 스스로 원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비자발적인 것으로 수렴되고 마는 현실의 구조를 요약적으로 드러낸다. 결혼제도 안에서 여성의 자기실현이 가부장의 ‘선의’ 여부에 달린 것인 한, 여성은 영원히 타자다.

예의 타협은 가부장적 남성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여성 자신의 자기기만을 통한 의식/무의식적 공모를 일정하게 강제하고 또 필요로 하거니와 그러지 않고서는 그러한 타협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의 오해"를 바로잡는 대신 자신이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고" "오역하지 않으면" 된다고 믿는 순간 타인과 자신에 대한 기만이 이미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그에 대해 자각적이면서도 순진한 반성과 비판에 안주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관용할 만한 무엇으로 만드는 편에 다가간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오역에 대한 공포"(13면) 또한 삶의 총체적 진실을 납작하게 억누르는 온갖 ‘섬망’들에 대한 전면적 거부이자 그러한 작가윤리의 간접적 표명인 것이다.

나뭇잎만 보고도 무슨 나무인지 척척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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