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까지 제가 존재했던 공간에 저만 쏙 빠져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제가 없는 제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다시 보는 풍경은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빠져나온 공간과 시간은 어떤 기도를 동원해도 고스란히 복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없이 웅변했습니다.

프랑스의 번역가 발레리 라르보는 번역을 두 말에 담긴 정신의 무게를 다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작업이 유난히 어려웠던 건 저자가 쓴 단어와 문장이 어렵고 현학적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주장을 펼치기 위해 왜 그 단어와 문장을 선택했을지 헤아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한국어를 고르기 전에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만, 작업 내내 저는 이해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애초에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프라이데이, 사랑하는 나의 프라이데이는 홍역에 걸려 죽었다. 17년 전 3월이 온다.

다음 해면 이십년이 되네요
당신은 죽은 채 세월을 낭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얘기하곤 했었던,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늦은,
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난 지금 살고 있어요
그런 도약은 아니라도,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 말예요

각각의 움직임은 다음 것을 약속해주거든요

리치는 군중의 돌을 맞는 와중에도 의연하고 꿋꿋합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지금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지요. 살아남기 위해 짧고 강렬한 움직임을 계속합니다.

더는 두 시인의 일화를 검색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왜 가시처럼 콕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치와 비숍이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았던 그 몇시간이 미치도록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몰이해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지만 끝내 실패했던 어느 여름의 이야기입니다. 처절하게 오해받았던 어느 겨울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진술하는 일은 리치가 말한 ‘짧고 강렬한 움직임’에 해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