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군데군데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길을 따라 푸릇한 빛이 갑자기 일렁인다.
p.8

나는 땋은 머리를 풀고 뒷좌석에 누워 뒤창을 통해서 하늘을바라본다. 군데군데 푸른 하늘이 드러나 있고 분필을 칠한 듯한 구름이 떠 있다.
p.9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는 걸 보고 나는 50펜스 동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손수건일 거다.
p.9

나는 캄캄한 침실에서 다른 여자애들이랑 같이 누워 아침이오면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p.10 - P9

p.11
두 사람은 가만히 서서 잠시 마당을 바라보더니 비 이야기를한다. 비가 너무 적게 왔다, 밭에 비가 좀 내려야 한다, 킬머크리지 신부님이 오늘 아침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이런 여름은 처음이다.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에 아빠가침을 뱉고, 대화는 다시 소의 가격, 유럽경제공동체, 남아도는 버터, 소독액과 석회 가격으로 흘러간다. 나에게도 익숙한모습이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장화 뒤꿈치로 잔디를 뜯고, 차를 몰고 가기 전에지붕을 철썩 때리고, 침을 뱉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기를 좋아한다.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p.12
아주머니가 내 옷을 보자 나도 아주머니의 눈을 통해서 내 얇은 면 원피스와 먼지투성이 샌들을 본다. 우리 둘 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흐른다. 묘하게 무르익은 산들바람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p.13
웅티아주머니가 오븐에서 루바브 타르트를 꺼내 식힘 망에 얹는다. - P13

2.13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오지만 부엌은 뜨겁고 고요하고 깨끗하다. 길쭉한 물잔에 꽂힌 길쭉한 프랑스국화는물잔만큼이나 고요하다. 어디에도 아이의 흔적은 없다.

p.15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2p.16
"아, 우리도 한창 클 때는 많이 먹었지." 아주머니는 아빠가꼭 알아야 한다는 듯이 말한다.

p.17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들,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씻기고 깨워서 성당이나 학교에 갈 채비시키기,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맞추기.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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