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건강에 관한 생애사 연구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장애의 유형에 따라, 우리가 장애를 얻은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우리 중 누군가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 모두는 존중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공동체의 의미 있는 구성원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우리 대부분은 지역 사회 안에서 장애가 있는 혹은 없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점점 더 강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 세계를 모두에게 더 나은 장소로 만들기 위해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어떻게 배웠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모든 나라와 지역의 독자들이 차별은, 그것이 누가 맞닥뜨린 차별이든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함께 목소리를 높여 말해야 한다. 우리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저는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의 사랑과 지지가 항상 제 귓가에 속삭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장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부모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부모님에게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했더라도 부모님은 나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우리 삶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란 식의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나의 장애를 수용했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부모였다.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는 가정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큰 잘못을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사회의 유전적, 재정적 짐으로 여겼다.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 여겼다.

나의 부모님은 딸이 장애인이든 아니든 함께 살기로 했다.

그들은 증오와 비인간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라 전체가 어떤 것을 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은 어떤 것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어떤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반드시 그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권위 있는 사람의 지시이든,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한 말이든 말이다. 부모님은 과거 혹은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했던 일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거라고 단정하는 남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말들을 기꺼이 뒤엎을 의지가 있었다.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항상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이야기다.

1953년에 나는 여섯 살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박스 오피스 스타였으며, 재키 로빈슨이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이제 막 8년이 지난 해였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기 3년 전이며, 다저스는 여전히 브루클린에 있었고,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평화와 번영을 축하하며 700만 명의 베이비부머를 한창 만들어내던 시기였다.

어린이는 해결사다.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 배웠다.

매일매일 싸워야 할 일들이 어머니 앞에 떨어졌다. 나는 그 일들이 내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정말로 내가 학교에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일제 휴먼을 내 어머니로 만들었을 리 없다. 일제 휴먼에게 불가능을 말하는 것 자체가 큰 실수였다.

어머니는 부정적인 대답을 들어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단서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집에서 어떤 것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방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우리는 논쟁하고, 토론하고, 정말 많이 웃어서 이웃들은 창밖에서 분명히 우리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나는 그들이 선호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으로 먹고 싶을까? 얼마나 빨리 씹고 나서 다음 한 입을 먹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을까? 언제 감자칩을 먹고 싶을까? 샌드위치를 먹기 전? 먹는 동안? 먹고 난 후? 구석에 앉아 있던 포니테일 머리의 키 큰 여자아이 조니 라파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나이가 많았는데, 책을 잘 읽지 못했다. 역시나 나이가 많은 질 키르슈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두 사람이 좀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내 새로운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만큼 또박또박 말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친구 사이니까 기꺼이 시간을 들여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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