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그 의미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이 무자비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의미를 세워 자연을 해석해야만 한다.

자연을 닮아 인생의 나날로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와 눈과 바람 같은 일들이 느닷없이 벌어지곤 했다.

"제가 여러분 나이였을 때만 해도 21세기가 되면 세끼 식사 대신에 알약처럼 생긴 캡슐을 먹고, 귀찮은 집안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해결해주는 세상에서 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바뀌지 않네요. 아직도 꼬박꼬박 세끼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그러자면 돈을 벌어야 하고, 게다가 이제는 이렇게 마스크까지 쓰고 다녀야만 하니까요. 여러분이 살아갈 미래는 좀더 나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오늘이 생각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해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그해 겨울, 섬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서울에서 온 소설가가 이런 시를 읽어주었었지, 하고 기억해준다면 제가 무척 기쁠 겁니다."

자기는 동아리 사람들처럼 까탈스럽지 않아 순문학은 어렵겠고 추리소설은 꼭 한번 쓰고 싶다고 말한 일도 생각났다.

정현이 기억하는 은정은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친구였다. 은정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는 그저 은정이 이야기를 재밌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섬에서는 가을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 두툼하고 기름진 삼치회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삼치회는 양념장에 푹 찍어 파김치와 함께 김에 싸서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섬에서 맛볼 수 있는 신선한 해산물들, 예컨대 보말이나 한치 등으로 만든 음식 이야기로 이어진 대화는 이윽고 이 섬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로 옮겨갔다. 에그타르트, 평양냉면, 치아바타 등등. 당연하겠지만 정현 앞에서 두 사람이 토로하는 섬 생활의 불편함은 음식에 국한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계획 같은 게 있잖아. 거창하게 꿈이라거나 소원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하자면 새해가 밝았을 때 수첩에다가 끼적이는 것들. 살을 빼겠다거나 달리기를 하겠다거나 가족들을 친절하게 대하겠다거나 하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하거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맹세 같은 게 전혀 불필요한, 말 그대로 평범한 계획.

‘은정아, 인생 별거 아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지금은 그거 연습하는 중이야. 얼른 소주나 줘’라고 대답하더라니까요.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동양 챔피언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내서 젠체하는 거였는데, 나중에 그 ‘두번째 바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지요."

세컨드 윈드
요약: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제2차 정상상태라고도 한다. 운동 초반에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 두통 등 고통으로 인해 운동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死點, 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사점이 지나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우며 운동을 계속할 의욕이 생기는데, 이 상태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숨막힘이 없어지고, 호흡이 깊어지며, 심장박동수도 안정되고, 부정맥도 없어지게 되어 힘차게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속도가 빠를수록 일찍 나타난다. 이는 환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누구나 운동하는 중에 경험하는 것이다.
대개 운동 초기의 호흡곤란으로부터 환기가 적응되고, 운동 초기에 산소 부족으로 생성된 락트산이 혈액의 흐름 증가 등으로 인해 산화되고 땀과 소변을 통해 제거되며 호흡근이 적응하여 운동 초기의 피로에서 회복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또 한 가지는 초조·공포 등이 증가했다가 운동이 지속되는 동안 이런 현상들이 해소되므로 세컨드 윈드가 촉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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