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의 마지막 집으로 옮겨앉는 각별한 일을, 이 여름에 했다.

나는 겁이 많아서 토끼띠가 그냥 토끼띠가 아니고 겁토끼띠라고 하는데 우리 선생님은 나보고 늘 이러신다. "덜덜 떨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다하지."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꼭 해야겠다는 일은 하는데 그 대신 다른 일은 전혀 못한다. 아마도 해야겠다 싶은 일이, 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일은 대체로 아니었기 때문에 덜덜 떨면서도 해낸 것 같다.

이번에도 해내기를 바랄 뿐이다. 또 고단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는 바에야, 하나를 얻으면 또 버려야 할 것도 하나 있기 마련 아니겠나 생각하며 즐겁게 오갈 생각이다.

여러 사람을 위한 집을 짓는 것은 오래 생각한 일이다. 아끼는 제자들이 많아서, 그 품은 뜻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그들이 너무 생활에만 부대껴 마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가끔은 책도 읽고 쉬기도 하며 자신을 추스르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뜻도 새롭게 할 작은 터를 일구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로 오래 해왔다. 그래서 일을 벌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받은 것이 참 많아서, 나도 세상을 위해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해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이제 아주 빈손이 되어버린 나 자신도 아주 불안하지 않을 수는 없고, 무엇보다 내 아이들한테 미안하다. 남들은 자녀 뒷바라지며 혼사 등등에다 많은 힘을 쏟는데······.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제 힘으로 살아가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덜컥 무슨 일인가를 저질러 그 애들을 괴롭히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제아무리 좋은 생각과 뜻이라 하여도 결국은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어미를 그래도 이해하고 격려와 지원을 보내는 내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마지막 거처에는 무얼 가지고 가야 하나. 무얼 버리지를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특히 선물을 받은 것이거나 하면 더더욱 못 버려서 얼마 안 되는 짐 모두에 추억이 잔뜩 묻어 있다.

아이들 생각만 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그래도 생각해 본다. 그 미안함과 간절함이 아이들과 나를 묶어주지 않았나, 그 마음이 말없이 전해져 아이들이 일찍 철들지 않았나 싶다.

그 옅은 노란빛 꽃은 아주 작은 등불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 켜져 있었다. 큰 별들이 길섶에 쏟아져내린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동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둠 속에서 자그마한 꽃등을 켜고 이리 향기롭기까지 하다니.

젊은 날, 늘 눈앞이 캄캄했다. 세상이 온통 어둠이었다.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다림으로 괴로웠다. 그저 괴로웠을 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내가 저 아득한 어둠을 헤쳐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이 소박한 꽃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젊은 날 그렇듯 세상이 캄캄했던 것은 내가 그 어둠을 헤쳐서 갈 곳이,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만큼 힘껏 살아온 것 아닐까.

하는 일이 다 반듯하게 되기야 했으랴마는, 그나마를 위해서 그야말로 죽을 듯 살아왔다는 느낌이다.

가만가만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내게 나직이 묻고 있는 것 같다.
"형설의 공 ? 쌓았는가?"

어둠 속에는 저렇듯 어느 하룻밤 동안 달빛 속에 향기로운 꽃이 될 것을 위해 제 몸에 향기를 담아가는 것도 있고, 또 그 꽃에 의지하여 언젠가 하늘로 날아갈 제 몸을 키우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고요히 어울려 있는 삶의 이치들을 이 어두운 들길에서 이제야 내가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본다. 어둠이 사람에게는 울고 몸부림치라고만 있으랴. 긴 기다림으로, 견딤으로 내 삶에도 조금 향기가 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향기롭기까지 할 리야 없지만, 내 자신에게 혹시 어떤 양질良質의 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스려온 긴 기다림, 견뎌온 어둠의 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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