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했다, 투자를 좀 한 게 있는데 그게 2월이면 만기가 된다. 투자 건에 관해서는 비밀스럽게 굴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는 텔레비전 이야기를 하더니, 허리가 망가진 이야기를 했다, 내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돌이 있는 게 아니라면 거기에 낚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예상할 수 있는 일과 요구되는 일을 모두가 확실히 알아두게 하려고 몇 시간 동안 편지를 썼다.

"걱정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걱정이 돼. 아들들 걱정을 하다가 이제는 내 걱정을 하고 있어. 내 아들이 이런 꼴이 되는 걸 보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저 네 아빠가 살아서 이 꼴을 안 보는 게 다행이다 싶을 뿐이다."

쓰렸다, 맞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동생이 가여웠고 곤경이 그의 문을 두드린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 나 자신의 등이 막다른 벽에 닿아 있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생겨도 동생이 돈을 더 얻으려고 나를 다시 찾지는 않을 것이다?현재 나에게 빚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아무도 그러지는 않을 거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줄 뿐이었다.

동생의 곤경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도 나 나름으로 곤경에 빠져 있었다. 어머니 외에도 나는 다른 몇 명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 매달 돈을 보내는 전 아내가 있었다. 그것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법원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벨링햄에는 자식이 둘인 딸이 있었고 그 아이한테도 매달 얼마를 보내야 했다. 그애 자식들도 먹어야 했다, 안 그런가? 그 아이는 일을찾으려고 하지도 않는 돼지, 누가 일을 주어도 계속 잡고 있지를 못하는 자와 살고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 정말로 괜찮은 일을 찾기는 했으나 늦잠을 자거나 출근하러 가는 길에 차가 고장나거나 그냥 아무런 설명 없이 그만둬버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전에, 오래전에, 이런 문제에 관해 사나이처럼 생각하던 때에 나는 그 자식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 시절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쨌든 그 새끼는 여전히 붙어 있다.

아이는 어느 날 밤 전화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자식 둘이 있고 또 함께 사는 부랑자 개자식이 있는 젊은 여자일 뿐이야. 다른 많은 여자와 다를 게 없어. 나는 힘든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냥 기회만 줘. 그게 내가 세상에 부탁하는 거야." 아이는 혼자라면 그냥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파구가 생길 때까지,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딸이 걱정하는 건 자식들이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버틸 수 있다. "아빠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아빠." 그게 딸이 한 말이다. 심장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물론 나는 딸을 도와야 했다. 아이를 도와줄 능력이 반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나에게는 일자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딸이나 내 가족의 다른 모두와 비교하면 나는 버텨낸 셈이다. 나머지 가족과 비교할 때 나는 잘살아왔다.

나는 딸이 부탁하는 돈을 보냈다. 부탁할 때마다 보냈다. 그러다 매달 초에 일정액의 돈, 목돈은 아니라도 어쨌든 돈을 보내는 게 더 간단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건 딸이 의지할 수 있는 돈이 될 거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딸의 돈이 될 거다?딸의 돈이자 아이들의 돈. 어쨌든 그게 내가 바란 거였다. 딸과 함께 사는 새끼가 내 돈으로 사는 오렌지나 빵 한 조각도 입에 넣지 못한다는 걸 확인할 방법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그냥 그대로 돈을 보내고 그 자식이 내 달걀과 비스킷이 담긴 접시에 곧바로 입을 들이대든 말든 걱정하지 말아야 했다.

아들이 빌릴 수 있는 모든 돈, 눈에 보이는 모든 돈을 빌린 뒤에는, 독일에서 이학년을 다니기에 충분한 비용까지 빌린 뒤에는, 그뒤에는 내가 돈을, 그것도 많은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더는 보낼 수 없다고 하자 아들은 답장을 보내 만일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자신은 마약을 팔거나 은행을 털 거라고, 살아갈 돈을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다 총에 맞거나 감옥에 가지 않으면 나는 운이 좋은 거다.

어떤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 양심은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나는 내 상황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것이 또 매달 나가야 할 돈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외식을 중단해야 했다. 나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밖에서 먹는 것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영화를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조심해야 했다. 옷을 살 수도 치과에 갈 수도 없었다. 차는 망가지고 있었다. 새 신발도 필요했지만 포기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그들 누구도 사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에 갈 거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꽉 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알았다. 내가 필사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안타까워했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달 첫날 내가 앉아서 수표를 써야 할 때가 오면 그 모든 것은 지난 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한 번 하자 어머니는 답장을 보내 이제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리의 부기만 빠지면, 어머니는 말했다, 그 즉시 일을 찾아 나서겠다. 나이가 일흔다섯이지만 어쩌면 웨이트리스 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답장을 보내 어리석은 짓 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도울 수 있어 기뻤다. 그저 복권이 당첨될 필요가 있을 뿐이었다.

딸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내가 모두에게 이제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휴식과 기운을 북돋울 뭔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계절이 바뀌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통조림 공장 일을 하러 가겠다고 썼다. 하루 열두 시간에서 열네 시간, 일주일에 이레 일을 할 수 있을 거다, 문제없다. 그냥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만 하면 몸이 말을 들을 거다. 적당한 보모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특별한 보모가 필요하다. 애들을 봐야 할 시간이 길고 애초에 애들이 지나치게 흥분하는 쪽이다. 그건 애들이 매일 먹어치우는 팝시클이며 투시롤이며 M&M 같은 것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애들이 먹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계속 찾으면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일하러 가려면 신발과 옷을 사야 하고, 그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들은 이 상황에 자기가 관련되어 있다는 게 미안하며 당장 모든 걸 끝내는 게 자신에게나 나에게나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편지를 보냈다.

전 아내는 그 문제에 관해서 아무런 할말이 없었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저멀리 시드니에서 온다 해도 어쨌든 매달 첫날 자기 돈을 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못 받을 때는 전화로 변호사와 이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동생은 형편이 어떠냐고 묻고 나는 매달 돈이 나가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오트밀이며 코카인이며 통조림 공장이며 자살이며 은행털이 이야기까지 했고 이제 영화관도 못 가고 외식도 못한다고 말했다. 신발에 구멍이 났다고 말했다. 전 아내에게 계속 나가는 돈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물론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생은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동생이 건 전화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말을 하는 동안,이 전화요금은 어떻게 낼 거냐, 빌리?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요금을 낼 사람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 사이에 다 결정이 났다.

"누가 내 공간을 침해했어. 강간당한 기분이야."

오랫동안 아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때든 깨어 있을 때든 아빠는 이제 내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가족에게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겠다고 을러댔을 때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심지어 약간 겁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를 알기 때문에, 아마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이 웃는 걸 생각하자 이제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하, 하, 하. 마치 어딘가에서 웃는 방법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거기 식탁에서 딱 그런 소리를 냈다?하, 하, 하.

진실은 팀북투에도 달에도 북극에도 가지 않을 것이듯 오스트레일리아에도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젠장,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것을 이해하고 나자, 내가 거기에, 또는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다른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고 나자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커피를 더 따랐다. 커피에 넣을 우유가 없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루쯤 커피에 우유 넣는 것을 건너뛸 수 있고 그래도 죽지 않는다. 곧 점심을 싸고 보온병을 채우고 병을 도시락통에 넣었다. 그런 뒤에 밖으로 나섰다.

집안에는 없다고 해서 살지 못할 물건은 없었다. 텔레비전이 있었지만 그걸 보는 데 신물이 났다. 누가 침입해서 그걸 내 손에서 빼앗아가준다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게 될 거였다.

사실 여름이었고 오래지 않아 여름은 끝날 거였다. 전에 여름은,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의 운이 바뀌어가는 때였다.

물론 지금의 형편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운이 따르지 않은 것뿐이다. 상황은 곧 바뀔 수밖에 없다. 아마 가을이면 다시 좋아질 거다. 기대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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