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자그마하셨다. 산소줄을 코에 꽂고, 가슴에는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붙인 채 고르릉거리며 힘없이 누워 계셨다. 산소줄, 소변줄과 사타구니에 꽂혀 있는 중심정맥관.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관리해야 할 것들이구나. 나는 할머니를 진찰한 후 보호자인 며느님께 앞으로 어떤 주기로 방문할지, 어떤 서류가 더 필요한지, 암성 통증 관리를 어떻게 할지, 영양 관리는 어떻게 할지 등을 의논했다.

사실 몸의 모든 기능들이 너무 쇠약해져 있어 투석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던 터였다. 그로부터 2주 정도를 2~3일에 한 번씩 왕진을 갔다. 혈뇨와 방광염으로 인해 이수자 님은 계속 "소변 마렵다"며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불편해하셨고, 주치의들과 간호사는 최대한 불편을 줄여드리기 위해 소변줄을 꽂고 방광세척을 했다. 살림의원의 막내 간호사인 민정 선생님이 출근길 아침마다 그 집으로 가서 방광세척을 하고 의원으로 출근하곤 했다. 혈뇨도 많이 줄고, 어머니의 표정도 편안해지셨던 며칠 후, 열여섯 시간을 편안한 숨소리로 깨지도 않고 주무신 후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장례를 치른 후 아드님이 따로 의원을 방문하여 감사 인사와 함께 들려주신 이야기이다.(어머니 이름으로 기부를 해주셔서, 다른 건강약자를 지원하는 의료비로 사용하기로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증손주를 위해 성냥개비에 찔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옛날 햇살이 잘 드는 방 금침 위에서 죽음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고 있으면서도, 증손주의 병원놀이에 기꺼이 한몫 참여하셨던 내 증조할머니가, 연분홍색 꽃반지 위에 겹쳐 보였다.

"정신과 선생님들은 남자들이네요. 어쩌다 보니 염증을 째고, 용종을 떼어내고, 치아를 뽑는 등 외과적인 시술을 하는 의사들은 모두 여자들이고, 피를 전혀 보지 않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정신과 선생님들만 남자들이군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얘기하면서 보니 뭔가 재미있네요."

수술장에서 남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높아진다고 한다. 인턴-전공의-전임의-교수 순으로 나이가 많아지면서 지위가 올라간다. 반면 여자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지위가 낮아진다고 했다. 인턴이나 전공의(즉 의사)-간호사-청소 노동자 순이었다.

그 인턴은 ‘나이 든 여자 외과 의사’의 존재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교수님을 청소 노동자로 오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무슨 중요한 인계 사항처럼, ‘청소 여사님처럼 보이는 분이 바로 교수님’이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냥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면 되는 것을, 그것을 인계까지 하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며 나는 수술장에 들어갔다.

수술하는 과에도 여자 의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인턴 시절 마취과를 돌고 있을 때였다. 조용한 수술방 분위기에 돌연 깨달았다. 내가 들어온 수술방에 여자들만 모여서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변하려고 하면 최소한의 임계점이 필요하다. 일대일 대면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보건의료산업의 서비스 특성상, 그 임계점은 일정한 정도의 숫자로 형성된 여성 보건의료인들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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