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배려해주었던 친구 에리카. 그녀는 아름다운 글라디올러스 밭을 내게 보여주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온 힘을 다해 걸었다. 그리고 꽃을 지고 가는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선물로 보내주었다. 그 자신은 골수암 말기 환자로 며칠을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무엇일까, 마지막 문턱 앞에서 사람에게 그런 초인적인 배려와 아름다움을 부여한 힘은.

삶 자체로 기쁨이고 선물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전하고 싶은 욕심,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딸에게 마라톤을 시킨 어머니. 하나 뿐인 자식이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시류에 따른 고액의 음악 사교육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을 병 깊은 어머니는 딸에게 세상을 헤쳐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마라톤을 시켰다. 세상을 떠날 어머니가 딸에게 길러주고 싶었던 것이 마라톤 기술일 리 없다. 머지않아 자기처럼 엄마 없이 살아야 할 딸에게,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두 발로 서서 삶을 헤쳐가 달라는 간곡한 당부였고, 아무런 힘도 없는 엄마가 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 딸은 마라톤 하던 힘으로 빛나는 음악인이 되어 지금 전 세계에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다.

물론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이 있을 리 없고, 해서 살인적으로 살았다.

무슨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젊은 시절 나는 내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무얼 좀 배우고 싶었고, 그냥 무슨 수 쓰지 않고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이 무법천지 같아 살아가기 막막하고, 무슨 수든 쓰지 않고는 못 살 듯하지만, 살아보니 바르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진다.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며 살면, 조금 더 잘 살아진다. 쓸데없는 계산하느라, 남들과 비교하느라 힘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기도 하다. 내가 거쳐 온 시간이, 내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했다.

책만 보면 일일이 한지에다 필사를 하여 그것이 낱장이 되어 흩어지도록 읽어 다 외우셨던 어머니의 그 간절한 필사본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책이 그토록 귀하게 읽혔던 전통을 알려주고 싶다.

언젠가 몸져누운 내게 열한 살 딸이 쓴 편지("저는 어머니께서 어려운 일도 맡은 일이라면 건강도 잊고 열심히 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어머니 마음속의 시, 바로 좋은 착한 마음 때문이에요.").

"맑은 사람들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詩를 위하여"
그것이 맑은 사람들의 집, 여백서원의 모토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인간의 고독과 불안을 자신만의 문체에 담아낸 작가이다.

카프카는 수많은 편지와 일기를 남겼다.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그의 문학작품 못지않은 밀도를 지닌 글들이다.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과 진가가 있다. 하지만 찾아질 리 없는 그 인형 편지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그런 ‘한순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카프카가 도라와 함께 지내던 시절, 그는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 하나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다. 아끼던 인형을 잃은 것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프카가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라 쳐다보는 소녀에게 카프카가 덧붙였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렇게 말하던걸."
"잘 있대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를 마침 집에 두고 왔구나. 내일 다시 여기로 오면 내가 가져다주마."

그날 밤 카프카는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 날 같은 자리로 가서 아직 글을 못 읽는 소녀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이 넘게 이 만남은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꾸리고, 마침내 소녀에게 다시 만나기가 어렵게 된 데에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

인간의 고통에 눈 밝기에 거짓말인 그런 글을 쓰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또 그런 글과 그런 인간이 소중한 줄 알기에 몇 장의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이 삭막한 세상에 빛을 밝힌다.

허구로써 현실을 감내해 보려는 것, 그것이 문학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또 그런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인문학의 진면목일 것이다.

물론 문학시장이라는 난장亂場 너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이득 없는 일에 연구비까지 대는 한 사회의 정신적 여유 속에서 빛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세상은 이런 미친 짓으로 잠시 빛나는 게 아닐까.

매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은 커갔고 그러다 보니 나도 확실한 직장까지 갖게 되었다. 그것도 남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한 직장을 말이다.

뒤늦게 취직을 하여 내 연구실까지 생겼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치러야 할 ‘방값’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내 공부도 절대로 대충 할 수 없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니 그 어떤 경우에도 힘과 마음을 모두 다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한 스무 해가 그렇게 가고 났을 때, 나는 몹시 피폐해 있었다. 무엇보다 내 글을 쓸 수 없어서,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어서 황폐해 있었다

어쩌다 기회가 있을 때면 탄식 겸 소망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글을 쓸 수 있는 오두막이 하나 있었으면, 개집만 한 것이라도, 드러누울 수는 없더라도 소반 놓고 쪼그리고 앉아 오로지 나를 위한 글만 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토록 나만을 위한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땅도 집도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글 쓸 곳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도 기쁘고 감사해서 이 작은 마을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과 동네 스피커에서 나오는 유행가 말고도 세상에는 훨씬 더 고운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 시를 읽고 책을 읽는 모임이 되었으면 했다. 마을에 아이들은 적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했다.

선생님의 작은 집 근처의 그 작은 시골 카페에서 멋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고(······) 혼자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 연주자들이 독일어를 배우는 의대생들인 것을 알고 더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전문 연주자도 아닌 사람들이 그토록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진짜로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떤 피아노 연주자가 정말로 멋지고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위대한 피아노 연주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가볍고 쉽게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 대단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한 줌 보잘것없는 청중을 위해서 그토록 혼신의 힘을 쏟던 모습이 어떻게 잊히겠는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의 모습 중 하나이다.

블로그에 글을 썼던 사람도 바로 그것이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업무 자세라면서, 지금 자기를 쳐다보고 배우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강대강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물음으로 글을 맺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이 부부는 아들을 데리고 다시 내 시골집을 찾아왔었다. 엄마 아빠를 빼닮은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영특하던지. 견실하고 견고한 사랑으로 쌓은 한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들이 다녀가고 나서도 오래도록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이야말로 빛나는 별이다. 별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도 빛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별들을 하나씩이라도 기억에 품은 우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조금씩 빛나고 있는 것 아닐까.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아이들 키우는 일 말고도 참 많은 일을 함께 해야 해서 늘 내 몸이 여러 개였으면 했다. 그래도 내가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틈이 나는 대로 함께 책을 읽었고, 아이들이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주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시간이 나에게도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아이들이 좋아했던 이야기들은 지금껏 나에게조차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도 무슨 일인가가 죄다 틀어져 주저앉고만 싶을 때는 그 옛날 아이들 책에서 보았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힘껏 지어놓은 둥지가 부서져 울고 있는 엄마새를 아빠새가 위로하며 했던 말, "괜찮아, 부서진 둥지는 다시 지으면 되잖아." 세상의 그 많고 많은 책 가운데서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은 아직 글을 못 읽는 어린 아들이 아빠새를 흉내 내며 한껏 의젓한 억양으로 "괜찮아, 부서진 둥지는 다시 지으면 되잖아" 하던 목소리가 고스란히 함께 들리기 때문이다.

샘터출판사에서 나왔던 《장화 신은 고양이》가 그런 책인데, 그 동화집을 엮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세상을 헤쳐가는 용기와 슬기였다.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옮긴 이야기들에 〈세 가지 소원〉을 넣은 것은 헤벨이라는 작가가 매우 현명하게 이야기 끝에다 정답을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정답이어서 누구든 이 글을 읽는 이는 잠시 멈추고 스스로 정답을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얼른 세 가지 소원을 말하기가 쉽질 않아서 노부부의 고충도 좀 이해가 되고, 자신이 겨우 찾은 답을 정답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경우 답해야 할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마지막으로 빌어야 할 세 번째 소원이 중요한데, 바로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천사가 내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일은 현실에서는 없다. 내가 천사노릇까지 해야 할밖에 없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아는 지혜를 누가 내게 주겠는가. 결국 내 스스로 얻은 인식과 경험과 삶에 대한 통찰이 그 지혜이다. 또 빌어야 할 소원을 비는 것이란 온갖 수렁에 빠져가면서도 스스로 이루어야 하는 것, 인생 자체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후회란 얼마나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인가. 마지막 소원이야말로 삶의 지혜 중 지혜인 것 같다.

헤벨의 정답에다 한 가지쯤 사족을 달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인지라 때로 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후회가 아주 없을 수야 없다. 그래도 온 지혜를 모아서 어렵사리 한 선택, 혹은 한때 좋아했던 추억이 묻어 있는 선택, 혹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저 어려웠던 선택을 기억하며 견뎌가야 한다고.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또 그래야 사람이 단단해지고 사회도 단단해진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고등연구원에서 제안한 초빙수석연구원직은 꿈조차 꾸어본 적 없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좋은 예우에다 넓은 연구실, 깔끔한 숙소, 조교를 제공하면서 강의를 하려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꿈같은 그러나 무서운 조건이었다. 절대로 대충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는 오랫동안 전체 연구원을 통틀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왜 저런 깍두기를 끼워주었는가 하는 소리를 안 듣자면 논문 몇 편 쓰고 말 일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살인적으로 일을 했다.

이야기 끝에 자신이나 자기 주변 사람들은 일을 해서 돈은 벌지만 배움이 없다면서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조그만 나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그 후로 내가 밤을 새우고 아직 연구실에 있는 것 같으면 내 방은 살짝 지나가고, 내가 없는 날은 연구실 청소를 말끔하게 해놓고 가셨다.

내 일, meine Arbeit 혹은 my job. 사실 내가 독일에서 가장 자주 듣고 감탄하는 말이다.
세상의 일은 다 어렵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면서, 이를테면 내가 죽지 못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일인걸요" 하면서 성실히 임하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일의 성과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삶의 질이 다를 것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지금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그분들에게서 나는 삶의 지혜 한 가지를 배웠다. "제 일인걸요." 그 말을 배워서 그렇게 생각하고 또 말해보니까 무슨 일이든 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어느 아침에 겪은 일이다. 아이에게 온갖 것 다 가르치고 예의까지 가르치려 분주하던 그 젊은 엄마의 허겁지겁하던 모습이며 그 아이의 지쳐빠진 얼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잊히지 않는다. 교육 문제란 남이 이런저런 말을 하기는 쉬워도 부모가 되면 정신이 없다. 누구든 나름으로야 최선을 다한다. 남 하는 대로 하려고 애쓰느냐 힘들지만, 실은 남 하는 대로 안 하고 기다려주기가 제일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게 부모가 할 일인 것 같다.

벌써 저렇게 지쳐빠진 아이가 과연 엄마가 바라는 대로 가줄까. 어린 시절을 저렇게 보내고 어디서 스스로 의욕이 나서 공부할 힘이 나겠는가.

놀아야 할 때 놀지 못했으니 공부할 때 공부하고 싶겠는가. 일할 때 일인들 하고 싶겠는가. 저렇게 하는 공부에 무슨 재미가 나겠으며, 친구인들 생겨나겠는가. 남을 배려할 틈이 있어야 친구도 있고, 세상도 돌아간다.

내가 걱정스럽게 그 소년 이야기를 했더니 제자 중 한 학생이 그랬다. 교보문고 원서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데, 어떤 엄마가 만화책을 고르려는 아이를 비난하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골라주는 걸 보고 놀랐다고. 사실이 아니기만 바란다. 엄마 자신이 그 책을 단 한 장이라도 열어보았다면 그런 일은 세상에 없었을 테니까.

어릴 때, 이제 어느 언어로든 책을 좀 읽어야 할 시기에, 들들 볶아 가르치는 짧은 외국어는 자라야 할 생각을 다시 퇴행시키는 폐해도 있다. 그렇게 몇 년을 배운 영어는 사실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본인이 필요를 느끼면 빠른 시일에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는 양이다. 그거 몇 마디 가르치겠다고 아이들에게서 하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을 빼앗아버리면 그 마음은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또 한 번 씁쓸한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해 문이 열리고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유모차에 앉은 아이를 보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두 엄지로 화면을 밀어대는 손놀림이 너무나도 능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에도, 타고 나서도 일말의 흔들림 없이 폰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화면만 들여다본 아이들이 자란 세상은 생각만 해도 조금 무섭다. 그 아이는, 화면이 아닌 현실 속에서 또 얼마나 허약할까. 무엇이든 자신의 시선을 끄는 것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만져보고, 먹어보고, 움직여보며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갈 시기의 아이였다. 내 아들이 그만할 때 뭐든 먹어보는 통에 나는 약을 감추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언젠가 가위를 보고 어린 아들의 눈이 반짝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사태를 간파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종이를 잘라가며 가위 쓰는 법을 가르쳤다. 가위 쓰는 법을 배운 뒤 슬며시 방으로 들어간 아들은 나중에 보니 커튼이며 이불을 다 거덜내놓았다. 아이는 다치지 않았다. 나중에 유치원에 갔을 때 아들은 가위로 오리기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였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때 놀아야 한다. 놀아야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고 주위를 살피며 세상 이치도 깨닫고, 무엇보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가운데 진정한 창의력이, 생각이 자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아이 때 아이노릇 잘 해야 학생 때 학생노릇 잘 하고 어른 때 어른 노릇 잘 하는 건 자명한 이치이다. 아이 때는 공부하고, 어른 되어서는 남의 눈치나 보며 그저 놀고 싶어 하고,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차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좀 더 늙어서 회사원 아저씨 같은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 만지는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를 보내줄 부모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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