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은 그것 하나만 들고도 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무게였습니다. 10킬로그램쯤 된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지만 과장이려니 했는데, 막상 직접 들어보니 그 갑절이 넘는 것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힘에 부치는 짐에다 그런 걸 더하였으니 정말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는 탔으나, 돌아와서 한 이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지요.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괴테 아카데미 행사에 갔는데, 대체로 연로하신 분들이 고전을 다시 읽어보겠다면서 모여, 최고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어가며 여러 날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도 놀라웠고, 낯선 분들이 제가 거기 있다고 또 한국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부러 청해 듣는 것도 놀랐습니다. 사실 이런 분들이야말로 문화와 예술, 학문을 키워가는 장본인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이 제가 독일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바입니다. 괴테, 쉴러, 베토벤, 모차르트도 다 저런 분들이 있었기에 활동할 수 있었고 또 우리 곁에까지 와 있는 것이지요. 이들을 위해 괴테 쉴러 아카이브가 육필 원고를 공개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도 달려가서 손을 떨며 보았습니다.

60년 동안 쓴 괴테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그렇듯 소중히 여기는 후대도 참으로 대단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 어디서나 책의 지위가 많이 위축된 시대인데 말입니다.

보통 곁에는 제가 읽어 온 보통 『파우스트』 판본도 놓여 있지요. 그 책은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두었습니다. 45년을 두고 읽은 탓입니다.

"첫 번역처럼, 운문처럼"이라고 해설의 제목을 달았습니다. "운율의 보고"라 불리는 그 정교함을 다 살릴 수야 없지만, 초심으로, 평생을 걸고 옮겨 제대로 전하고 싶은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속도뿐만 아니라, 천천히 공들이는 일들의 가치에도 조금씩 눈이 가야 할 때인 것 같고, 그래야 사회도 견고해질 것 같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히- 히- 공부해야지……"

손에 든 책을 놓지 못해서 화장실을 못 가고 있다가 읽을 책장이 몇 장 안 남자 문득, 다 읽어버리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잽싸게 화장실을 다녀오던 참이었다. 얼마나 한심하던지.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이던가.

그런 천치 같은, 쉰여덟 아낙의 손에서 아주 잠깐 놓여났던 작은 책은 이제야 손에 잡힌 푸코의 『담론의 질서』였다.

그의 전형적인 지식론, 담론론이 무르익은데다 어눌함을 가장한 듯한 재치와 인간적 매력까지 더해진 강연문인 터라 매료되었던 것 같다.

글의 힘. 아직도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기도 하는 글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는 지난 몇 년간 골똘히 생각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런 글들은 쓰이는 걸까. 제대로 공부를 했더라면 이제쯤은 가끔은 어쩌면 그런 글을 스스로 쓸 수도 있어야 할 때이건만, 이제야 가까스로 그런 글들을 찾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삶과의 괴리가 역력합니다. 예컨대 경제관념이 없습니다. 사실 돈을 쓸 시간도 별로 없었지요. 더 벌어들일 시간이야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졌습니다. 남 보기에 제법 잘 살아졌습니다. 계발하지 않는 능력은 위축되게 마련이라, 웃지 못할 이야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다 해도, 돌아보면 글을 배워 좋은 글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만나고,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또 같은 글을 읽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도 되고…… 얼마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제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습니다.

?가까운 창가, 한 그루쯤 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곳에 내 자리가 있다.

세계는 내게 도서관 내 자리의 망網이다. 세상 어딘가에, 곳곳에,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리로 나를 찾아 올 만큼, 때로는 우편물이 그리로 올 만큼의 내 자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부유함인지. 그런데 도서관에서야 어딜 가든지 그냥 앉아만 있으면 내 자리가 되니 쉬웠다. 달리 지상 어디에 그리 쉽게 한 자리가 생기겠는가. 세상사 서툰 사람이 세상에서 야무지게 해낸 일도 한 가지는 있는 것이다.

여백서원. 책이 가득한데, 이름은 여백이라 지었습니다. 책도 읽지만 숨 한번 돌리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을 담았는데, 실은 여백餘白이 아니라 여백如白입니다. 흰빛 같이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인 것입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책들을 그냥 읽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으로 독일어 원서인 횔덜린의 『휘페리온』을 샀는데, 그게 너무도 귀해서 내내 안고 다녔습니다. 읽기보다는 들고 다녀서 낡았지요. 한 번도 쉰 적 없는 아르바이트 월급날이면 그때부터는, 충무로에 있던 나라에 하나뿐인 독일 책 전문 서점 ‘소피아’에 갔습니다.

볼 책은 자꾸 늘어나는데 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구한 책들은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야 일어나 읽었습니다.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집중해서 읽는다는 건 저에게는 늘 동시에 번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의 버릇은 평생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천천히, 번역까지 해가며 읽은 책 한 권 한 권과 더불어, 매번 하나의 세계가 열려 오곤 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끝에서 끝으로 내 두 발로 달려간 것도 같습니다. 나중에는 실제로 달려가기도 해보았지요.

함께 책을 읽던 추억은 사람들을 참 오래 묶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달리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사치까지 누렸습니다. 글을 읽다보면, 좋은 글을 찾아 읽게 되고, 그런 글을 쓴 큰 사람을, 시공과 무관하게 만나게 됩니다. 잠깐 차 한 잔을 나누어도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쏟아, 때로는 인생을 다 바쳐 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같은 글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모릅니다.

함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눈 멀고 가까운 곳의 참 많은 얼굴들이 끝없이 눈앞을 지나갑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내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서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캄캄한 후원을 걸어 작은 단칸방 집의 불을 켤 때입니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인 것입니다. 노동하고, 읽고, 쓰고. 아마도 그게 마지막 날까지의 저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긴 노역의 삶 끝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성취의 어느 지점쯤에서 이런 말은 나올 수 있을까.

60여 년을 썼다는 『파우스트』 한 편의 이름만으로도 괴테는 버거운 존재입니다. 편수도 잘 헤아릴 수 없는 시들, 사연도 많고 때로 한 장르의 전범이 되기도 하는 소설들, 수많은 드라마…… 40년을 매달린 『색채론』은 또 어떻고요. 식물학, 광물학, 기상학, 동물학에 대한 논문도 많고, 프랑스 왕립 학술원에서 발표된 자연과학 논문도 있다는데 정말 한 사람이 한 일이 맞는가 싶습니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2부도 기획했다고 하고, 남은 그림 스케치만 2500여 점에, 사는 동안 쓴 편지의 양도 어마어마하다는데…… 그의 바이마르 판 전집은 본문만 143권입니다. 뮌헨 판 전집이나 프랑크푸르트 판 전집은 33권, 46권에 불과하지만, 한 권이 1500쪽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지요.

문인 괴테는 인간 괴테의 한 면모에 불과합니다.

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도 신기한데, 그런 막중한 사람이 하는 말이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내가 살아 있는 것, 알게 되었네"라니요.
그런데 이 소박함 역시 진정성이 묻어납니다.

씀으로써, 이룸으로써, 자기 자신의 당면 문제를 넘어서고 나아가 자신의 민족의 문학사, 문화사, 세계의 지성사를 써내려갔습니다.

인간이 그 고통 속에서 말을 잃어도
신 하나가 나에게 말하게 했다. 어째서 내가 괴로워하는지

그랬습니다. 그래서 썼습니다. 그 나이에도 그토록 사랑하고 괴로워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괴테는, 그 어느 연령에서든, 자연과 세상과 사람을 놀라워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했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소박함이 아마도 그의 위대함의 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세상 무엇이든 더이상 놀랍지 않을 때, 그 무감각은, 생물학적 연령이 어떻든 이미 실질적인 삶의 종말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그 가장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물음과 결코 무뎌지지 않고 결코 무감각해지지 않는 감각, 열림이었을 것입니다.

팔을 책상 위의 쿠션에 올려야 할 만큼 지칠 때까지 읽고, 쓰고, 실험하고 또 구술한 사람. 그러나 일어서면 또 흔쾌히 정답게, 적절히 손님을 맞이하던 괴테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놀라울 정도로 다방면의 활동을 하며 방대한 작품을 쓰는 와중에도 괴테가 보낸 편지는 2만여 통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남아 있는 것이 1만 5000통가량입니다. 그 많은 편지를 쓴 사람도 대단하지만, 200여 년 전에 여기저기로 보낸 편지를 그만큼이나 회수해 보관하고 있는 후손들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지요. 그 힘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닷새 앞둔 시인이 자기수양의 절박함을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을 피력합니다. 또 60년 공을 들인 대작을 "진지한 농담"이라고 부를 여유와 더불어, 마지막 공을 들이고도 그 어떤 이해도 기대할 수 없어 봉인을 해버리는 절망이 함께 거기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지막 힘까지 쏟아부어 한 작품을 완성한 힘 역시 같은 절망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닦는 것이, 거짓 가르침이 횡행하는 시대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저항으로 읽힙니다.

남을 아껴주고 키워줌으로써 미미했을 수도 있는 그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찬란히 빛났는지, 빛나는지를 꼭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 하느라 여념이 없고, 자기보다 조금만 더 커 보이면 미워하느라 공연히 스스로를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고 공기까지 오염시키는 일, 그런 좀스러운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아야 우선 각자 저 살기가 좀 나아질 것 같고 사회가 건강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제가 밝힌 저의 노후 직업은 ‘박수 부대’입니다. 바른 걸음으로 큰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바른 걸음으로 가는 길은, 나중에 돌아보면 다 ‘큰 길’이 되지요. 제가 박수 하나는 참 크게 칠 자신이 있지만, 그만큼 다양하게도 칩니다. 이 글에서도 그런 박수 소리가 조금 배어나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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