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도 같이 보지 못했지만
모든 마감을 곁에서 지켜준
나의 개 수지, 타티 그리고 아로하에게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

10년 넘도록 잡지 일에 종사해도 개선되지 않는 글의 속도와 질에 괴로웠던 당시 나에게, 몸집에 비해 턱없이 가늘고 짧은 공룡의 팔은 마치 자판 앞에 매주 무력한 내 손가락처럼 보였다. 전문기자겠거니 믿어주는 독자들의 짐작과 달리 나는 짤막한 팔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의 공룡에게 난데없이 동병상련을 느낀 이후에도 나의 글쓰기는 쉬워지거나 빨라지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인간이 영화산업과 영화제의 주기에 발맞추는 주간지 마감을 어쨌거나 20년 넘게 해낸 것은 기적 아니면 뭔가 구린 데가 있어서일 텐데 진실은 후자다.

내가 중과부적이라고 나자빠지면 편집장과 동료들은 마감 주기를 늘려가며 독려해주었고 다시 마감은 가늘고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물론, 언제나 영화가 있었다. 어제까지 그만 써야 할 100가지 이유를 만지작거렸던 자신을 까맣게 잊고 흥분해서 키보드 앞에 앉게 부추겼던 영화들이.

적진 가운데에서 마구잡이로 혈로血路를 뚫는 조자룡마냥 ‘일단 살고 보자’는 심정으로 두리번대다 비상구가 되어줄 문장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내처 말을 달려 가는 것이 대략 나의 목요일 풍경이었다.

우리는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사진 찍기 원하고 귀에 감기는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려 한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 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아니라,
양질의 시간을 찾아서 영화관에 간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봉인된 시간』에 쓴 대로다.
"인간은 보통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

"나는 내 캐릭터를 연민하지 않고 이해만 하려고 한다.
동정은 이상화로 이어진다."

여신을 여성성의 총화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경력은 여신의 그것이다. 그는 엠마 보바리였고 마리 퀴리였고 앤 브론테였으며 무대에서는 블랑시 뒤부아, 메데이아, 올란도였다. 자포자기한 가출 소녀부터 권태에 찌든 상류층 사모님까지, 강간 피해자부터 사색하는 팜파탈까지 ‘여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적 속성의 편람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옥상에서 지하까지 섭렵했다. 그 와중에 위페르의 여자들은 그야말로 ‘온갖 짓’을 저지른다. 쓰레기통에서 정액 묻은 휴지를 주워 냄새 맡고, 일가족을 몰살시키고(때로는 본인의 가족도), 자위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본인 가슴팍에 식칼을 꽂는다.

위페르의 연기적 풍부함은 어제는 A를, 내일은 Z를 연기할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한 캐릭터 안에서 동시에 A나 Z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A인지 Z인지 모호한 연기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두 가지가 공존하는 표현을 보여준다는 뜻이고 통합된 퍼스낼리티를 유지하면서 모순을 설득한다는 말이다.

일일이 꼽기 힘든 영화에서 위페르는 분노인지 상처인지 가리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분별할 수 없는 인간을 구현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지 않다. 그는 냉정이자 열정이다.

게이냐 스트레이트냐를 떠나 일단 컴버배치의 셜록 홈스는 섹스에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생각거리가 많고 바쁜 무성애자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프로모션 투어를 맞이하는 공항의 여성 팬들은 비틀즈라도 본 듯 자지러지고 <더 선>지는 독자 투표를 통해 2년째 컴버배치를 영국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선정했다.

컴버배치의 인기는 "똑똑함이 새로운 섹시함이다(Brainy is the new sexy)"라는 슬로건의 증거인 셈이다.

한편 그는 여전히 수줍은 팬으로서 동료 배우들을 대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존 허트,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토비 존스와 공연한 컴버배치는 촬영 일정표를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가장 기쁘게 만드는 찬사도 동업자들의 인정이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레드카펫에서 공연 배우들의 칭찬을 들은 그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이 원만한 노력파 배우가 카메라 앞에 서면 섬광을 낸다. 컴버배치의 연기는 정확하되, 힘을 가하지 않아도 칼날 자체의 무게로 살을 절개하는 메스처럼 수월해 보인다. 뭐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남자가 있을까? 사실 이 갭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저력이다. 작품 선택에서나, 스크린 안에서 그는 다음 순간 어떤 행동을 취할지 넘겨짚기 어려운 배우다. 한번 눈이 맞으면 시선을 떼기 힘든 이유다.2013. 6.

"그는 배우가 직접 감행하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객석에 가져다주는 쾌감의 차이를 믿고 실천한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하 <폴아웃>)의 경우, 런던 질주 시퀀스 중 톰 크루즈의 발목이 부러지는 메이킹필름이 공개됐고 클라이맥스 액션을 위해 크루즈가 2년 동안 헬기 조종 면허를 획득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물론 이른바 리얼 액션에는 CG로 지운 와이어와 안전장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아마도 스태프들 역시 내부 기밀 유지 계약에 서명했을 것이므로 실제로 우리가 보는 액션의 얼마가 ‘진짜’인지 확인할 도리는 없다.

빼어난 전문 스턴트맨이 즐비하고 뭐든 디지털 기술로 그려낼 수 있는 시대에 톰 크루즈는 배우가 직접 감행하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와 그것이 객석에 가져다주는 쾌감의 차이를 믿고 실천한다는 점이다.

<폴아웃>에는 왜 좀 더 간단한 방법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에단 헌트가 "그렇지만 나는 더 나은 방법으로 하고 싶다"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자못 자기 반영적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미션 임파서블> 1편(1996)의 랭리 침투 신에서 바닥에 똑 떨어지는 땀 한 방울의 숏은 시리즈 전체의 정수다.

<폴아웃>의 많은 관객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톰 크루즈의 애크러배틱, 달리 말하면 대중의 오락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백만장자 스타를 보기 위해 멀티플렉스를 찾는다.

톰 크루즈의 액션 연기는 놀라운 몸 관리로 남보다 빨리 달리고 절벽을 잘 타는 예외적 운동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톰 크루즈가 세계에서, 아니 영화계에서도 제일 빨리 오래 뛰는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카메라와 호흡을 맞춰 가능한 한 최고의 속도로 꾸준히 달리는 인물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모래 폭풍과 대형 폭발을 등지고 제일 폼 나게 점프할 수 있는 배우다.

2000년 이후의 톰 크루즈 커리어는, 몇몇 저널리스트들이 이미 말한 대로 개인의 나르시시즘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희귀한 예다.

톰 크루즈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영화배우이면서도, 데뷔 후 40여 년째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인 이상한 인간이다.

인터뷰에서 톰 크루즈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성취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방해물이 아주 많다고 여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요컨대 이 스타는 극복의 아이콘이다. 현재 그가 대놓고 극복 중인 대상은 세월이다. 톰 크루즈는 내가 아는 한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본인의 나이를 절대 먼저 거론하지 않는 배우다.

22년 전 에단 헌트는 자신의 유능함에 취한 경솔한 엘리트였고 본부에 카푸치노 머신을 놓아달라고 조르는 청년이었다. <폴아웃> 도입부의 에단 헌트가 읽고 있는 책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다.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길 위에서 영원처럼 긴 모험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중년이다.

남의 얼굴을 감쪽같이 뒤집어쓸 수 있는 가면 트릭은 그새 테러리스트들에게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22년째 잘 통한다.

대개 하나의 스위치를 내리면 해결되지 않고 두세 곳에서 동시에 해체에 성공해야 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에단 헌트가 이끄는 끈끈한 팀워크가 에단 개인의 활약만큼이나 이 프랜차이즈의 정체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이 날 해칠 리 없다고 대충 믿는 폴 러드의 인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천진하게 유유하다."

외모도, 경력도 경이롭게 꾸준한 이 오십대 배우는 분량이 미미한 조연을 마다하는 법이 없고, 주연작의 다수가 할리우드에서 점점 홀대받는 중급 예산 드라마와 저드 애퍼타우<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 친 후에>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등을 작업한 유명 코미디 감독 사단표 남성 앙상블 코미디라 배우론을 쓸 계기가 마땅치 않았다. 마침내 <앤트맨>으로 <씨네21> 표지를 장식한 폴 러드의 사진을 보며 나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진 않았지만, 자못 감격했다.

환경법에 관심을 가진 법대생으로 분한 출세작 <클루리스>(1995)부터 <내가 사랑한 사람>(1998), <아이 러브 유, 맨>(2009) 등에서도 폴 러드는 능력 있지만 자기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 그리고 동료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표현에 따르면 "잘생겼지만 안 잘생긴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였다(폴 러드가 영화에서 막춤 추는 장면만 모아도 5분짜리 클립은 너끈히 나올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똑똑한 스콧 랭은 도둑질하러 온 게 아니라 훔친 걸 되돌려주러 왔다고 해명하다 체포된다. 보통 같으면 말도 안 되는 바보짓에 각본가의 자질을 의심하겠지만, 폴 러드라면 얘기가 다르다. 멀쩡히 똑똑하면서도 얼간이의 실수를 심심찮게 저지르는 남자로 그는 그럴싸하다.

여기에는 ‘타인의 악의에 대한 방심’으로 요약할 수 있는 폴 러드 캐릭터 특유의 성향도 무관하지 않다. <아워 이디엇 브라더>(2011)의 농부 네드(폴 러드)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정복 입은 경찰에게 유기농 대마를 한 줌 집어줬다가 옥살이를 해서 못난 놈 취급을 받는다. 이유 없이 남이 날 해칠 리 없다고 대충 믿는 폴 러드의 인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도 천진하게 유유하다.

영화 속 그는 자기보다 작고 약하거나 뒤처진 상대들과, 가르치려는 자세 없이 쉽게 어울린다. 초등학생도, 집주인 할머니도 그를 붙들고 하소연한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사고 친 후에>(2007)에서 유치한 철부지 남자들과 소파에서 속없이 뒹굴거리고 있는 반듯한 폴 러드를 보고 있자면 "이봐, 당신은 거기 속하지 않는다고"라고 외치며 귀를 잡고 끌어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중이다.

배우가 보유한 자질을 곧장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연장했다는 점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와 폴 러드의 스콧 랭은 유사한 예다.

다우니 주니어와 프랫에겐 없고 폴 러드에게 있는 것은, 살면서 모서리가 군데군데 닳은 부드러운 단념의 표정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실망하더라도 티를 내거나 곧장 노하지 않는다. <아이 러브 유, 맨>에서 동성 또래 친구를 사귀러 나간 자리에 할아버지가 나온 걸 본 피터(폴 러드)는 낙심하면서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눈다.

스크린의 폴 러드는 언제나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남자다. 유일한 노력 분야는 농담 정도다. 영화 밖에서도 만만찮은 장난꾼이어서 <앤트맨> 촬영장에서 스콧이 줄어드는 장면의 상대역 연기를 찍을라치면 도와준다고 옆에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거나 소파 뒤로 다이빙해 폭소로 인한 NG를 냈다고 한다.

이 장난스런 태평함에 로맨틱한 페이소스를 불어넣는 요소는 독특한 눈이다. 크게 치뜨는 일이 드문 폴 러드의 아주 옅은 카키색 눈은 때로는 저 너머를 보는 듯도 하고 다른 때는 안쪽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있는 것도 같다(물론 그가 자주 하는, 숙취가 남아 있는 연기에도 매우 유용한 눈이다).

<앤트맨>의 페이턴 리드 감독은, <아이언맨> 시리즈와 달리 앤트맨의 헬멧 내부 숏을 찍지 않고, 슈트 입은 스콧이 헬멧을 젖힌 모습을 넣은 이유를 묻자 "폴 러드는 눈이 매우 아름답다. 앤트맨일 때도 그 눈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베티 데이비스처럼 이 배우의 눈에 헌정된 팝송이 나오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거다. 어쩌면 벌써 나왔을지도?

폴 러드가 줄리엣의 구혼자 패리스로 분한 배즈 루어먼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그는 로미오에게 시선을 앗긴 줄리엣의 손을 붙들고 열심히 막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가씨, 로미오 말고 저 물색없는 남자를 택해! 그래야 훨씬 길고 복된 생애를 누릴 수 있어!’

폴 러드가 연기하는 남자들은 숭배하진 않을지언정 싫어하기 매우 어렵다. 오죽하면 폴 러드는 어떤 외부자도 끝내 끼어들지 못한 6인조 시트콤 <프렌즈>의 일곱 번째 ‘프렌드’였다.

그러고 보면 호들갑 없이 꼭 필요한 연기를 꼭 필요한 만큼 완수하는 동시에 관객과의 친근감을 지속하는 이 배우는, 미국 배우와 영국 배우의 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우른 케이스인지도 모르겠다.2015. 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