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새로 산 일기장, 지금이 고비. 오늘 꼭 쓰세요.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을 넘기면 백지로 남은 일기장이 1년 동안 스트레스가 됩니다.

업주측에서건 손님측에서건 사람을 강제로 무릎 꿇리거나 90도 절을 하게 하는 등, 인간성 자체를 비굴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의 이름이 뭐가 되든.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일, 그것도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왕조 시대에, 선비를 욕보여선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 민주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그 선비에 해당한다.

새해에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가 그 새해를 설날로 미루는 사람은 결심씩이나 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다.

평생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고 글 한 꼭지를 썼다. 200자 원고지 20매니 길지 않은 글이지만, 힘들었다. 이 나이에 증오에서 원기를 얻어 일을 해야 하니, 서글프다.

‘문전배달’이라고 써 붙인 차가 지나갔다. 데이트하던 여자가 남자에게 : "전문배달을 잘못 썼나봐." 남자의 대답 : "그러게." 익숙하게 쓰던 단어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비극적인 일이다. 문전박대, 문전걸식의 박대와 걸식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모신 선생님 중 한 분은 젊었을 때 권투 선수였다. 수업중 학생에게 뭘 시켰는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죽기 전에 해!"라고 말했다. "안 하면 너 죽는 수가 있다"는 뜻과 "너 그러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못한다"는 또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금연 나흘째, 내가 담배 피우는 상이 자주 어른거린다. 아무때나 졸음이 온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좀 흥취 있게 ‘이름 좋은 하늘타리 빛 좋은 개살구’라고도 한다. 하늘타리는 맛없는 야생 수박, 개수박이라고도 한다. 요즘 생약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 이를 하늘수박이라 부르는데, 하늘타리와 개수박을 조합한 말일 게다.

‘문화’는 제 땅을 벗어나는 순간 보편성의 시험을 거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랍 문화와 대면할 때, 우리의 시각이 알게 모르게 서구화되어 있다는 자의식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고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랍 문화 내부에서 만든 여러 편의 영화이다. 나는 그 서사의 성찰을 믿는다.

책을 손에 들기는 했지만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 용기를 숙제로 내주고 갔을 것이다.

젊은 날에 다른 사람은 모두 단단하고 투명한데 자기만 불투명하고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은 살아 움직이고 생각하고 실천하거나 못하며 애쓰는 존재들인데 누가 투명할 수 있겠는가. 나를 고정해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오히려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팀 아이텔의 그림에는 뒷모습이 많다. 뒷모습은 서부의 총잡이들에게만 무방비 상태인 것은 아니다. 얼굴로는 온갖 표정을 써서 나를 표현하거나 감출 수 있지만, 내 뒷모습은 나를 감추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뒷모습으로 내가 타인처럼 드러난다.

해방 전에 한국인이 미국행 여객선을 탔다. 승객 식탁마다 출신국 국기를 꽂는데, 선장이 한국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백기를 꽂아주었다. 어릴 때 이런 글을 읽고 울었다. 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때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IS 같은 데를 찾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IS를 찾아간 김군이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한다고 했다는데, 그건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해주지 않는다는 개인적 원한을 이데올로기 형태로 바꾼 것일 뿐이다. 성폭행 앞에 ‘거룩한’이란 말을 덧붙이고 싶은 것. 좌절된 에로스는 자주 파괴의 욕망이 된다.

오늘 금연 열하루째, 원고지 10매짜리 글 한 꼭지를 썼다. 잠자리에 들어간다만 내일은 또 어찌하리.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을 읽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나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엉성하고 못 쓴 글이기 때문이다. 나쁜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나쁜 일에 동원된다. 나쁜 글쟁이에게서는 우리말이 나쁜 글에 동원된다.

한자 혼용 문제가 나오면 영어는 라틴어를 혼용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자는 글자고 라틴어는 언어가 아닌가. 글자 그 자체로만 말하자면 영어 알파벳이 바로 라틴 문자다. 한자를 라틴 문자와 비교하자면 영어는 한자 전용과 같다.

여성 혐오는 어머니 증오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회로부터 보호해주는 사람이지만, 사회의 요청을 아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들은 사회는 보지 못하고 어머니만 본다. 더구나 심약한 아들은 사회보다 어머니가 더 만만하다.

이 아들이 나중에 폭력 가장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또한 인종주의자가 되고 차별주의자가 된다. 그에게는 늘 복수해야 할 사회를 대신해줄 만만한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차별이건 지역 차별이건 비열하지 않은 차별주의자는 없다.

아내가 딸과 대화중에, "남자는 아무리 커도 애다." 그런데 그 애가 바로 나 아닌가. 남자는 제 어머니에게 기대했던 애정을 다른 여자에게도 기대한다. 끝내 애일 수밖에 없다. 이 유아적 사랑 투정이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 대개 근본주의로 치닫는다.

내가 "남자는 아무리 커도 애"라고 썼던 말을 ‘그러니까 여자들이 돌봐줘야 한다’는 칭얼거림으로 이해한 분도 있군요. 나는 오히려 ‘네가 거대한 명분을 내걸고 실은 애처럼 떼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현재 고2부터 대입 면접에서 인성 평가를 한단다. 이게 황우여 아이디언가 본데 곧 인성 학원이 생길 듯하다. 한 가지 더, 인성 깨알수첩도 나올 것이다.

퇴임 전에 오랫동안 논술 고사 출제위원으로 일했다. 학원 과외가 아무 소용없는 문제를 내는 게 늘 목표였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학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학원은 수많은 젊은 두뇌가 1년 열두 달 생각하고, 출제위원들은 열 명이 한 달 정도 생각한다.

90년대던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족보를 베껴오라고 하고, 가훈을 적어오라고 했다. 가훈이 없는 집은 가훈을 만들어주겠다는 오지랖도 나왔다. 그런 생각을 했던 녀석들이 지금 늙은 뉴라이트들이다.

친정으로 시가로 울며 애 맡기러 다니며 대학원 수업에 들어오던 내 제자들은 전업주부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개인의 감상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자유롭고 엄정하게 기술하려는 태도를 흔히 산문 정신이라고 부른다. 피천득의 「수필」은 그런 정신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엄정함을 피해 달아나려는 감상 취향을 찬양한다.

"수필의 빛은 비둘깃빛이나 진줏빛이다." 이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면 무슨 소린가.

대입 인성 평가에 대한 질문. 1) 정부가 인성 평가를 하라고 하면 대학이 해야 하는가. 2) 인성이 나쁜 사람은 왜 대학에 가면 안 되는가. 3) 인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4) 인성 나쁜 사람이 대학에 안 가면 국민 인성이 양호해지는가.

피천득의 「수필」에 대해 좀 심하게 말한 것 같기도. 그게 그냥 개인 수필집에나 들어 있었으면 미적 취향이 약간 후지긴 하지만 그런대로 깔끔한 한 편의 수필이었을 텐데, 교과서에 실려 수필 문학을 규정하고 그 예시가 됨으로써 한국 수필을 망친 것이다.

잠시 먹방을 봤는데 50년 후의 한국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조악한 음식이 될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텐데.

난 소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장국밥, 고등어찌개, 만두, 좀 비싼 걸로는 생선국. 많이 먹는 편은 아니고. 내가 먹는 것보다도 같이 간 사람이 맛있어 하는 걸 좋아한다. 국물에 고춧가루 확 집어넣으면 정말 질색.

보육교사나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 중요하다. 돈이 무섭다. 나만 해도 원고료 많이 주는 잡지는 더 힘들여 글 쓴다. 묵은 원고라도 좋은 원고 내주고. 트윗에서 오타 많이 내는 것도 원고료가 없기 때문이다.

과외 수업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최악의 학생. 재수생 여학생. 모든 걸 자기 엄마한테 물었다. 내가 숙제를 내주면 숙제를 해야 되는지까지도. 엄마의 판에 박은 대답 : 지 일은 지가 결정해야지 누구한테 묻냐? 학생의 대답 : 엄마가 이렇게 키웠잖아요.

아내가 뒤늦게 『삼국지』를 읽고 있다.
아내 : 관우 장비, 이 사람들 다 어떻게 되는 거야?
나 : 다 죽었어.
아내 : 그런데 왜 현재형이야?

지하철 시는 없애는 게 최상책이다. 바꾸어도 결국 그런 수준의 시가 들어온다. 지하철 기다리면서까지 시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혼자 생각할 시간도 있어야지. 1분 1초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이 거기까지 시를 끌어들였을 것이다.

충무로역에서던가, 너무나 기가 막힌 ‘시’가 있어, 사진을 찍어두려고 폰을 들이댔더니, 옆에서 어떤 학생이 "저건 시도 아닌데"라고 내 귀에 들리게 말했다. 그래서 그게 시가 아닌 것을 확실히 알았다.

이 아무개 선생의 번역에 관한 트윗을 알티한 후 열 명 정도의 팔로워가 언팔을 했다.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뒤라 그러려니 하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앉아 목소리를 드높여서 얻게 되는 이익이 무엇일까.

"미국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60대 교사를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휴대전화를 빼앗겼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SBS뉴스가 이런 트윗을 올렸다. 이때 ‘무차별’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떤 단어를 옮긴 것일까.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나는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학교가 모든 걸 다 가르칠 수는 없는데 모든 시간을 다 뺏는 것이 문제.

IS 무장 군인들이 모술 도서관에서 이슬람 신앙 서적 이외의 책을 모두 수거해갔다는 이야기는 고토 겐지의 참수 소식만큼 가슴 아프다. 이런 폭거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방의 침탈로 합리화될 수 없다. 세상을 몽매 속에 끌고들어가는 투쟁에 미래가 있겠는가.

토론 수업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중요 저작들이 모두 외국어로 되어 있는 상태에선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열쇠만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곡식 창고가 옆에 있는데, 토론을 한답시고 마당에서 낟알을 줍겠는가. 토론은 지식 생산의 의지 아래서만 가능하다.

JS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신판이 나왔다기에 알라딘에 들어가는 수고를 무릅썼다. 저자는 늙고 표지만 젊어졌구나.

누이동생에게 며느리가 시부모를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시부모가 농촌 무지렁이로 무식하기 때문이라네요.

나는 제자들에게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할 때, 단어 하나하나를 엄격하고 자유롭게 쓰라고 말한다. ‘엄격하게’는 그 뜻과 용법에 맞게라는 뜻, ‘자유롭게’는 인습적 문맥을 벗어나 새로운 문맥, 새로운 문장 환경에서 그 뜻이 완벽하게 발휘되게라는 뜻.

나는 내가 영락없는 유슬림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기막히게 머리 좋은 여제자들이 애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이다.

금연 한 달. 금단 현상이 여전히 심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나라도 무언가 달라진 게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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