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뇌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기억하는 추론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어서, 공정한 관계가 유지되도록 우리의 행동을 조절한다. 내가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당신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인간관계 장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호의를 잊었다간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를 것이다.

내가 나의 형제와 아이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중요한 유전자를 그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표준진화론에 의하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친족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한 개체는 자연에 의해 선택될 확률이 높고, 그의 후손 중 상당수는 여전히 친족 보호 본능을 갖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種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럿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분담하면서 공동생활의 효율을 높여 왔기 때문이다.

내가 한 집단에서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해도,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사적인 복수심이 끓어오를 것이다.

‘네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도 너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그러나 네가 불공정한 행동을 한다면 곧바로 보복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학계에서는 종교의 적응 효과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곳이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시 베링Jesse Bering은 언어의 기원을 연구하다가 가십gossip(험담, 쑥덕공론)이 "집단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지었다.

집단의 규율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바람이나 나무 위, 또는 하늘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범법 행위를 자제하게 되고, 가십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집단에서 추방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즉, 종교적 성향은 혈통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세대가 거듭될수록 종교에 더욱 심취하게 되고 인원수도 많아지는 것이다.2

그러나 현실적이건 상징적이건, 죽은 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될 수 있다.

"법치 정신과 공정성에 투철한 사람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조금만 노출돼도 큰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이와 비슷한 영향을 받고 있을 것"

베커는 이 실험 결과를 두고 인류의 문화가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무력해지는 심리’를 경감시키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웃기고 있네…"라며 비웃는 것도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란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적 기질을 함양하는 수단이며, 서정적 매력이나 정직함, 또는 영웅적 행위의 형태로 삶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했다.2

종교는 자연선택된 뇌를 포용하고, 집단의 결속을 유도하고, 불안감을 해소하고, 개인의 평판과 번식 기회를 높여 주었다.

"두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26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면서 탄생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없었고 공간도, 하늘도 없었다.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섞였으며, 이를 주관한 자는 누구인가? 끝없이 깊은 바다가 존재했을까? 태초에는 죽음도, 영생도 없었고 낮과 밤의 구별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숨을 쉬었으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순환 과정의 하나일 뿐이며, 윤회에서 벗어나면 존재라는 개념조차 없는 영원한 세계로 진입한다. 우리의 단명한 삶은 영원의 세계로 가는 신성한 통과 의례인 셈이다.

누가 뭐라 해도 과학의 기초는 단연 수학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세상은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알려 주는 이야기와 바람직한 행동을 안내하는 지침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종교의 교리와 연결되어 신도들의 마음에 굳건한 ‘믿음’을 만들어 낸다.

몸에 내장된 패턴 감지 장치가 과도하게 반응하여, 아무런 관계도 없는 패턴들 사이에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가끔은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도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네 번에 한 번꼴로 카드의 무늬를 맞출 수 있고, 열세 번에 한 번은 숫자를 맞출 수 있습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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