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이 실행된 후에는 당신이 추적하던 전자의 모호한 상태가 실험 장비와 당신의 두뇌, 그리고 의식에 영향을 미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결과들이 섞인 상태’가 당신의 생각에 그대로 투영되어야 한다.

관측 문제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인지한 현실과 양자역학의 수학 체계에서 예측된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뿐이므로, 해결의 열쇠가 ‘의식’에 있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의식이 양자역학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여러 개의 가능성 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현실에서(또는 적어도 관찰자의 의식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신비롭고, 의식도 그에 못지않게 신비롭다.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육체와 두뇌를 포함한 모든 기능의 저변에 깔린 미시물리학적 과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식도 언젠가는 양자역학의 범주 안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식을 도입해도 딱히 놀라운 점이 없다면 의식을 고려한 방정식은 미래의 양자역학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것이다. 의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지만, 미래에는 양자적 우주에서 또 다른 물리량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췌장에서 키모트립신을 만들고 재채기를 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심오하고 고유한, 나만의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직관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자율적인 존재로서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스스로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이 세상에 오고가는 것이 신의 뜻이나 물리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자유의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40 그로부터 한 세기 후, 세상사에 신의 개입을 거부했던 에피쿠로스Epicurus는 과학의 결정론determinism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막고 있다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신이 모든 권세와 권위를 독점하고 있다면 경건한 마음으로 신을 섬기는 인간에게 최소한의 자유가 보상으로 주어질 텐데, 아첨이나 아부에 둔감한 자연의 법칙은 인정사정이 없다. 에피쿠로스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가 가끔 법칙을 무시하고 무작위로 움직이면서 이미 결정된 미래를 피해간다고 생각했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난처하게 만드는 현대식 버전의 논리가 하나 있다. 당신과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현실 세계가 전개되는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결정이 반영된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물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당신과 나는 어디까지나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입자의 집합일 뿐이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두뇌를 가로지르는 입자들이 낳은 결과이며, 우리의 행동은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나타난 결과다.

우리의 개성과 가치, 그리고 자존감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타협을 모르는 물리 법칙이 낳은 결과라면 자유의지는 발 디딜 곳이 없어진다. 우리는 우주의 냉정한 법칙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 같다.

나의 관심사는 당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행동을 좌우하는 법칙을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수학 계산으로 생명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이 법칙이 모든 것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수학적, 또는 실험적 증거는 하나도 없다.

우리의 몸과 두뇌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무생물에 적용되는 법칙을 초월하여 의외의 기능을 발휘하면 좋겠지만, 이런 희망사항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과학적 지식에 위배된다.

지금 당신은 이 책을 읽는 것이 자유의지를 발휘한 결과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몸에 속한 입자의 움직임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반면에 양자물리학의 방정식은 앞서 말한 대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명확하게 예측하지 않고 ‘발생할 확률’만을 예측한다.

무작위라는 것은 자유의지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유의지가 개입된 선택이라면 통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수학의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로 관측을 해 보면 수학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양자적 확률에서 하나의 명확한 현실로 변하는 과정을 모른다 해도, 이 과정은 자유의지와 무관하다.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 입력이 부족해도 기본 법칙이 계속 작동하고, 인간의 몸과 두뇌의 입자에도 똑같은 법칙이 적용되는 한, 자유의지는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입자의 운동에 기인한 현상이다. 당신과 내가 만나 서로 손을 잡으면 당신의 손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내 손의 입자들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악수’라는 행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당신의 성대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주변의 공기 입자를 흔들면 이 효과가 도미노처럼 주변 입자로 전달되어 공기에 파문波紋이 형성되고, 이 입자가 나의 고막을 구성하는 입자를 때리면 머릿속에 있는 다른 입자들이 연쇄적으로 움직이면서 두뇌에 신호를 전달하여 "안녕하세요?"라는 소리를 인식하게 된다. 나의 두뇌에 있는 입자들이 자극을 감지하여 "어쭈, 이 친구 손을 꽤 세게 잡는데?"라는 느낌이 들면, 곧바로 나의 손을 구성하는 입자들에게 ‘저 친구와 똑같은 악력으로 손을 잡을 것’이라는 명령이 하달되고, 두 사람은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며 과도한 인사를 나눈다.

모든 입자들이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는 것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확실하게 입증된 사실이다.

만일 우리에게 초능력이 주어져서 모든 현상을 입자 규모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 자유의지의 산물처럼 보이는 생각과 행동이 물리 법칙의 결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끈이론의 방정식이 드디어 풀렸다는 희소식을 전해 줄 수도 있으며

당신이 특별한 이유는 내부의 복잡한 배열이 다양한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나의 목숨을 구한 당신의 영웅적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사실은 자유의지의 발현이 아니라 물리 법칙을 따른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갑자기 벤치를 박차고 튀어 올라 사람을 구하고, 훗날 그 행동을 회고하면서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이다. 인간(자유)의 본질은 바로 이런 사고와 느낌, 그리고 행동에 깃들어 있다.

처음에는 하나같이 "전통적인 자유의지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신과 바위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라면서 기를 죽여 놓고, 한숨을 쉬며 돌아서려고 하면 뒷덜미를 잡으며 "그래도 힘내세요! 당신이 누릴 수 있는 다른 자유도 많이 있답니다."라면서 달래 준다.43 내가 추구하는 접근법에서 이런 자유를 발견하려면 행동에 부과된 제한조건을 걷어 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 몸의 입자들이 의자나 머그잔의 입자와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자유로운 것은 물리 법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거대한 내부 조직이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천억×십억×십억 개의 입자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설명한다면 나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내가 현재 개발 중인 아이디어를 설명하거나 방문한 장소와 만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것이다.

이런 거시 규모의 서술에서는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고, 우리의 선택이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하나의 자극에 대하여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하다.

개중에는 자신의 인지력이 물리 법칙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결론짓는 입자 집단도 있고, 생각이 유별나게 깊은 집단은 자유의지와 물리 법칙이 서로 상충된다는 사실에 몹시 당혹스러워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물리 법칙을 초월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 적도 없다.

입자 집단은 개개의 입자를 지배하는 법칙 대신,(개인의) 복잡하고 다양한 거시적 행동에 초점을 맞춰서 자신의 능력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방향을 전환하면 입자 집단은 ‘내 의지로 이룬 것 같으면서도 결코 물리 법칙을 벗어난 적이 없는’ 놀라운 행동과 경험을 후대에 전할 수 있다.

과거에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나’라고 느끼는 감각과 내가 가진 능력, 그리고 내가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유의지…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입자를 조금만 조작하면 나에게 친숙한 특성들이 사라진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물리학적인 이해와 마음의 직관적 감각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우리의 의식이 언제 탄생했는지, 자기 성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또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언제부터 느꼈는지는 분명치 않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우리의 조상들은 약 10만 년 전(또는 그 이상)부터 이런 경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인류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두 발로 일어서서 세상을 둘러보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능력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