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노든에 대해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그들이 노든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노든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온 세상이 노든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노든의 처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슬픈 것은 노든 자신도 그의 처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너만 했을 땐 그랬어. 조급해하지 마. 마음을 급하게 먹는다고 빨리 나이를 먹는 건 아니니까."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노든은 자신이 코뿔소의 겉모습을 가진 코끼리라고 생각했다. 코끼리는 강했다. 마음만 먹으면 바람보다 빨리 달려서 상대를 받아 버릴 수도 있었고, 물소 열 마리보다 무거운 몸통으로 상대를 깔아뭉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코끼리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것은 곧 싸움으로 번졌고, 싸움은 죽음을 부르는 일이었다. 코끼리는 스스로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코끼리들의 지혜였다. 노든은 현명한 코끼리들이 좋았다.

사람들은 겉에 드러난 것만을 보고 믿는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바보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테스트로 코끼리를 시험했지만, 코끼리는 언제나 심사숙고 끝에 스스로의 앞날을 직접 선택했다.

그는 코끼리답게, 지혜롭고 현명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무모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코끼리답게 생각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그가 코끼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와닿았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온 노든은 한동안 이곳저곳을 혼자 떠돌아다녔다. 혼자인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가끔씩 노든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풍경들이 있었다. 저 멀리서 몰려오는 시커먼 먹구름이라든가, 그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주변의 풀들이 반짝이는 광경, 하늘에서 떨어지는 첫 빗방울이 남긴 자국, 그리고 키가 큰 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노든은 압도되었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게 서툰 노든을 보고 아내는 엉뚱하지만 특별한 코뿔소라고 불렀다.

둥근 달이 높게 뜬 밤이면 훌륭한 진흙 구덩이를 찾아 달빛을 받으며 목욕을 즐겼다. 거기에 보슬보슬 비까지 내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펭귄들은 새끼를 키우는 것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 부모가 돌아가면서 알을 품는데 아무도 품지 않는 알이 발견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알이 부화를 하지 못하면 어쩌지부터 시작해서, 동물원을 싫어하지는 않겠지, 아빠가 되는 건 처음인데 잘할 수 있을까, 배가 아프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면 어떡하지, 수영은 언제부터 가르치면 좋을까, 친구들이 괴롭히면 우리가 가서 혼내 줘야 하나,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훌륭한 펭귄으로, 아니, 그럭저럭 괜찮은 펭귄으로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된 외로움은 언제나 노든의 곁에 있었고, 어느샌가 그를 잡아먹어 버렸다. 아카시아잎을 먹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악몽을 꿀 때도 노든은 혼자였다.

노든은 악몽을 꿀까 봐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날은, 밤이 더 길어진다고 말하곤 했다. 이후로도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치쿠는 윔보와 지냈던 얘기들, 알을 품게 된 얘기들, 다른 펭귄들의 얘기들, 동물원에서 건너 건너 들은 다른 동물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해 줬다. 치쿠는 정말 아는 게 많았다. 치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갔다.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나의 가장 첫 번째 기억은 새까만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과, 별들만큼이나 반짝이던 코가 뭉툭한 코뿔소의 눈이었다.

"네가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거든. 나는 항상 남겨지는 쪽이었지. 내가 바보 같지만 않았어도, 용감하게 가족을 지킨 내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다리를 절지만 않았어도, 마음씨 고운 앙가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유쾌한 치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항상 나를 괴롭게 해. 차라리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야."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노든의 말대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든은 어린 코끼리나 어린 코뿔소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펭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노든이 펭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치쿠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내가 아프거나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는 방법이라며 옛날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노든의 가족과 코끼리들, 앙가부, 치쿠와 윔보의 얘기를 들으면서 밤을 견뎠다. 그러다가 내가 잠이 들면 노든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노든은 나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우리는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노든도 보았고, 내가 있는 풍경 속에는 언제나 노든이 있었다. 나는 커다란 노든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좋았다. 노든 옆에서는 마음이 놓였다.

우리의 일과는 먹고 자고 걷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항상 하루가 너무 길다고 느꼈지만 노든은 하루가 너무 짧다고 했다. 오늘은 충분히 걷지 못했다고 아쉬워했고, 우리가 하루빨리 바다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둘 중 누구도 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어쨌든 바다를 찾아서 걷고 또 걸었다.

우리의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잠들기 직전이었다. 말이 없는 노든이었지만 잠들기 전에는 꼭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불행의 시작인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불행한 코뿔소인데 제멋대로인 펭귄이 한 마리씩 곁에 있어 줘서 내가 불행하다는 걸 겨우 잊고 사나 봐. 아까는 미안했다. 자, 이리 와, 안아 줄게. 내일은 어느 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올 것 같아? 펭귄의 감으로 얘기해 봐."
"음, 그럼 우리 내일은 저쪽으로 가 봐요!"

나는 물속에서 느낀 것을 노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그리고 노든과 내가 다르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다.

그때 노든의 대답이 얼마나 기적적인 것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윔보와 치쿠가 버려진 알을 품어 준 것부터, 전쟁 속에서 윔보가 온몸으로 알을 지켜 내 준 것, 치쿠가 노든을 만나 동물원에서 도망 나온 것, 마지막 순간까지 치쿠가 알을 품어 준 것,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노든이 있어 주었던 것…….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마주한 ‘수영’이라는 것이 그나마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었다. 펭귄이 수영을 하는 데에 기적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거는 무슨 색이라고 불러요?"
"저렇게 예쁜 하늘 색깔에 이름이 있을 리가 있겠어?"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많은 것들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 갔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밤을 보내 온 노든은 많이 지쳐 있었다. 나는 빨리 바다를 찾고 싶었다. 바다에 도착하면 노든도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이리 와. 안아 줄게. 그리고 이야기를 해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오늘 밤은 길거든. 네 아빠들의 이야기를 해 줄게. 너는 파란 지평선을 찾아서,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줘."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삶에는 우리가 자초한 불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불행도 있다. 코끼리 고아원 밖으로 나간 것은 노든의 선택이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사냥꾼들과 벼락처럼 떨어진 전쟁은 노든의 선택이 아니다. 전자는 내 몫으로 여기고 견딘다 해도 반복되는 후자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삶은 내 것이지만, 또 나만의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는 이어지고 이어져 불운한 검은 반점을 가진 채 버려진 작은 알에 도착한다.

그는 노든이 해 주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받은 사랑의 크기만큼 단단하게 자라고,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거대한 바다를 향해 홀로 떠난다.

나와 친구를 지키는 것이 더러운 웅덩이를 별빛같이 만드는 일임을 알고 서로에게 기대어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인사하게 될 것이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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