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색이란 물체(페라리)의 본질이 아니라 두뇌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표상일 뿐이다.

차에서 풍겨 오는 냄새도 마찬가지다. 차의 내부는 시트와 카펫, 플라스틱 등에서 방출된 방향성 분자芳香性 分子*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맡아 줄 생명체가 없으면 냄새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페라리의 빨간색과 특유의 냄새가 창출된 곳은 자동차 조립 공장이 아니라 당신의 두뇌다.

약간의 비교 과정을 거친 후 "역시 페라리야!"라는 감탄사를 유발한다.

그라지아노는 이 결과를 살짝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가 제안한 이론의 핵심은 "당신이 세부 사항에 아무리 신경을 쓴다 해도, 정신적 표현은 항상 단순화된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에서 접하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서 단순화하는 것은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마음이 생존에 필요한 다른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래전에 세세한 사항을 감지할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했다 해도, 데이터 분석에 집중하다가 포식자를 피하지 못해 멸종했을 것이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종은 생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를 몇 개의 범주로 과감하게 통폐합시킨 종이었다. 페라리의 빨간색을 눈사태나 지진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라. 살아남으려면 반응이 빨라야 하고, 반응이 빠르려면 불필요하게 세세한 사항을 무시해야 한다.

우리는 자동차, 눈사태, 지진이 아닌 동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에도 위와 비슷한 단순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물리적 외형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까지 단순화시킨다.

학자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획득한 이 능력을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우리는 직관적으로 모든 생명체들이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으로 부르기도 하고,32 ‘지향적 입장intentional stance(우리는 모든 동물과 인간이 지식과 믿음, 욕망, 그리고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이라 부르기도 한다.33

빨간색 페라리를 바라볼 때, 당신은 자동차의 간편한 도식뿐만 아니라, ‘페라리에 집중하고 있는 당신’에 대한 간편한 도식도 함께 만들어 낸다. 페라리는 빨갛고, 매끄럽고, 반짝인다.그리고 당신의 의식은 빨갛고, 매끄럽고, 반짝이는 페라리에 집중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세상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만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식認識, awareness’이라 부른다.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의식을 완벽하게 설명하려면 신경학neurology이라는 방대한 영토를 정복해야 한다.

나의 마음을 만들어 낸 기본 재료는 커피잔의 기본 재료와 동일하다.

커피잔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바로 그 힘이 복잡다단한 마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식을 물리학으로 풀면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미스터리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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