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학자의 논문은 진실에 대한 전달로 그만이지만, 기자이자 문필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신랄한 현실과 함께 그 속에 담긴 희망과 감동을 전하고 있어 일면 부러웠다.

神은 공평하다"는 믿음은 늘 도전받는다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존재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가혹한 시련을 겪고, 조력자를 만나 성장하며, 소명을 깨닫고 도전해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낸다. 그 과정은 언제나 설레고 감동적인데, 아마 우리가 그런 삶을 소망하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생 후 지속된 반복적인 과다 출혈로 관절이 굳어 10년 이상 휠체어에 의존해 정상적인 보행과 움직임이 불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탁월한 지적 능력과 성실함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중에도 틈틈이 학업에 몰두해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이제 서울대학교 입학전형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극한의 시련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하며 살아온 그의 경험이 체계적인 교육을 발판으로 향후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희망과 기회로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 군의 입학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통증은 다른 감각과 달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면역되는 통증이란 없다. 한번 찾아온 통증은 잦아들지 않고 결국엔 몸을 망가뜨리고 영혼까지 태워 버린다.

사람의 몸속에서는 수많은 작은 출혈이 발생하고 곧 지혈되곤 한다. 그런데 중증 A형 혈우병 환자는 피가 응고하도록 만드는 정상 인자(8인자)가 유전적으로 없거나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혈우병 환자들은 대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정상 인자를 보충하는 강력한 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아버지와 함께 서울대 면접장으로 향했다. 무심한 듯 보이는 아버지와 가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걱정도 즐거움도 많은 수다쟁이 엄마는 이날 아침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는 돼야 이용할 수 있는, 현묵에게는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었다.

기초적인 영단어에도 파고들면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나아가 다른 영단어들의 기원에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Thursday가 ‘토르의 날’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나, Villain이 ‘농노’를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오늘날 영어의 Village와 같은 조상을 가진 단어라는 점 등이었습니다.

오늘날 쓰이는 영어의 원류를 조금이나마 알아본 경험을 통해 단순히 영어 실력을 키우기보다는, 영어의 역사와 다른 언어와의 연결 고리 등 더 깊은 언어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영어를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메노르는 2시대 인간들이 살던 축복받은 땅이며 아라고른은 그 혈통을 간직한 인물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배경은 3시대다 ― 를 해외 사이트를 통해 직접 구입해 읽고, 읽은 다음에는 아마추어 번역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톨킨의 글을 읽는 것은 이전까지 보아 온 영문 텍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톨킨의 글은 문장의 어순을 유연하게 뒤바꾸기도 하고, 문장 중간에 다른 구를 삽입하면서 문장의 호흡을 조정하는 동시에 풍성한 맥락을 제공하며, 수식어 뒤에 또 수식어가 붙기도 했습니다.

고풍스러운 어투를 사용하고, 자연이나 풍경을 묘사할 때는 비슷한 대상도 다양한 어휘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협곡 지형을 가지고도 valley, dale, ravine, gorge, vale 등의 다양한 어휘가 쓰이곤 했습니다. 마치 영어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어로 된 문학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어만의 맛이 있듯이, 영어에도 영어만의 맛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원문을 볼 때는 자연스럽게 의미가 이해되던 문장인데 번역하고 나니 이해하기 어려워지거나, 원문에서는 문학성이 느껴지던 문장이 막상 번역하면 딱딱하게 바뀌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어 표현력과 어휘력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습니다.

소설이나 글을 볼 때도 문장을 주의 깊게 보면서 어휘, 문체, 표현을 습득하고자 하고, 평소에 말을 할 때도 좋은 표현이 생각날 때마다 이를 의식적으로 기억해 두었다가 활용했습니다.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인 다채로운 어휘를 표현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어휘를 메모해 두곤 했습니다. 가령 강을 표현할 때만 해도 시내, 물줄기, 강물, 개울 등으로 어휘의 폭을 넓혔습니다.

혼자서 아무리 고민해도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을 때는 직접 영국 현지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 문의하는 방법으로 의문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원문에서 오류를 찾아낸 적도 있습니다. 작중 지형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제가 책을 보면서 기억한 지도대로라면 분명 eastwards가 되어야 하는데 westwards로 적힌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이것이 오류가 맞는지 출판사에 직접 문의했더니 출판사에서도 지적에 감사드린다는 답변을 해 왔습니다. 이후 최신 판본을 읽어 봤더니 문의했던 부분이 eastwards로 고쳐져 있었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서적을 바로잡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에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계속되는 출혈 탓에 장래에 학업이나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적어 이후의 학업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가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은 가족과 몇몇 주변인 외에는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제 가족과 주변인들은 저를 장애를 이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엄연한 인격체로 대해 주셨습니다. 주변의 긍정적인 배려와 도움 덕분에, 비록 학창시절에 마땅히 해야 할 경험을 쌓지는 못했지만 스스로를 비관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장애는 남았지만 이제 주위의 도움으로부터 독립해 어엿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제게 대학은 사회의 첫걸음을 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 온 세월이 길다 보니 스스로 베풀고 돕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능동적인 부분이 많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이라는 세상에 진출해 그동안 부족했던 사회 경험을 쌓고, 여러 가지를 배우며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중, 고등학교는커녕 그 흔한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8년을 자기 방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네트워크로 무한하게 펼쳐진 링크를 거쳐, 원정대처럼 지식을 향해 뻗어 나갔다.

톨킨은 영국에서 셰익스피어만큼 존경받는 문호다.

《가디언》은 톨킨에 대해 "반세기 남짓한 작업 기간에, 어떻게 한 인간이 민족 하나가 일구어 낼 만한 창작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더 심오한 뜻이 이 오류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심연에서 올라오는 통증보다 이런 생각이 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참혹한 육체를 가졌던 10대의 현묵이 올린 번역은 그 누구의 것보다 집요하고 장대하며 일관됐다.

7월 하퍼콜린스 담당자들과 메일을 주고받은 것도 더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였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톨킨이 남긴 원고 일부를 아들 크리스토퍼ChristopherTolkien가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80년에 영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그런데 여기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에서 다 설명하지 않았던 다양한 배경들이 담겨 있다. 어떤 가상의 세계를 설정하며 가장 기초적인 가상의 언어를 구축하고 그 위에 가운데땅의 역사를 쌓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바로 가운데땅 역사의 일부분이다.

톨킨의 책은 톨킨 자신이 출간한 것보다 아들이 낸 것이 더 많다.

좋아하고 그의 저작물을 사랑하는 사람 ― 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10대의 어린 현묵은 그런 마음으로 수년간 번역을 지속했다.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시작된 난치병 10대 소년의 작업은 이렇게 공식 번역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마추어로 시작한 번역은 결국 프로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입시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어떤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히 본인의 힘만으로 원서의 오류를 고쳐 낸 난치병 소년의 놀라운 성취였다.

아들 크리스토퍼가 1980년 출간한 후 40년간 ‘서북쪽’으로 표기됐던 그 부분이 현묵이 지적한 대로 고쳐져 배포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묵은 이에 대해 겸손하게 말했다. "누구도 눈치채기 힘든 아주 사소한 부분을 수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사실은 아주 많은 것을 웅변하고 있다. 10대 소년이 어떻게 지식을 쌓아 하나의 체계를 이뤄 냈는지, 지식의 디테일이 얼마나 풍부한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으며, 변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모든 것이 압축된 일화였다.

이토록 완벽한 자립성과 놀라운 자기주도성을 갖춘 이야기를 학교 활동으로 제시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현묵은 입시를 위해 이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공부의 본질’에 충실하게 그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학교의 이름을 가리자 입학을 위해 최고의 시스템을 갖춘 학교에 다니는 입시 수재들이 강세를 보인 거죠. 그전까진 입학사정관들이 일반고 출신들에게 정성적인 평가를 더해 줬다면 블라인드로 그런 고려가 불필요해진 겁니다. 블라인드로 인해 경쟁주의가 더 강하게 작동하게 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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