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동경하고, 희생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찬란한 업적과 전례 없는 파괴를 불러올 엄청난 능력이었다.

Albert Camus는 "모든 것은 의식意識에서 시작되고, 모든 가치는 의식을 거쳐 탄생한다."고 했다.

가끔 은퇴를 코앞에 둔 과학자가 뒤늦게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주로 ‘객관적 현실’을 파고들었고, 의식은 과학의 탐구 대상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것은 환상일 수도 있지만, 사고는 완강한 회의론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미국의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는 "나는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지만,2 당신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나’라는 존재가 더욱 확고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아직도 의식의 경험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감각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에 의식이 개입되는 과정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양자물리학은 기본 입자의 거동과 생명의 저변에 깔려 있는 생화학적 과정을 설명해 준다.

첫째, 뉴턴이 고려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영역을 탐구할 때에는 양자물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둘째, 뉴턴이 고려했던 것보다 훨씬 큰 영역을 탐구할 때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도입해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근본적 성질을 비롯하여 생명체의 출현에 반드시 필요한 별과 행성의 형성 과정을 설명해 준다.

세 번째는 가장 난해한 영역으로, 뉴턴이 고려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려면 여러 개의 입자들이 한데 모여서 생명과 마음을 창출하게 된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의 거동을 완전히 이해하면, 현실 세계에 대한 엄밀하고 독립적인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동일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동일한 물리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언젠가는 몇 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수학방정식으로 표현될 것이다. 참으로 우아한 우주가 아닌가!

우리는 이야기의 증인이며,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들이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이야기에는 비밀이 없고, 모호한 구석도 없다.

의식의 수준에서 우주를 이해하려면 완전히 개인적이면서 자율적이고 주관적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1) 물질은 의식을 창출할 수 있는가?(2) 자율적인 의식은 두뇌와 몸을 구성하는 물질에 물리 법칙이 적용된 결과에 불과한가? 물질과 마음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굳게 믿었던 데카르트는 두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no’라고 대답했다.

우주에는 물질이 있고, 마음을 가진 생명체도 존재한다. 물질은 마음에 영향을 주고, 마음은 물질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다른 존재다. 현대과학의 언어로 말하면 "원자와 분자

나는 지적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의식도 결국은 물질 입자와 이들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으로 설명될 것 같다.

다양한 혁명적 발상이 출현하여 물리 법칙의 우선순위가 결정될 것이며, 바깥 세계의 객관적 현실과 내면 세계의 주관적 경험을 아주 깊은 단계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뇌는 시각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단어와 문장을 분석하느라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당신은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다.

대화와 보행, 심장박동, 혈액순환, 소화, 근육의 움직임 등도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진행된다.

성 오거스틴Saint Augustine(마음은 자신을 담을 정도로 충분히 크지 않다. 그런데 담기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어디에 있는가?5)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마음은 본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6)

윌리엄 셰익스피어(너의 가슴으로 가서 문을 세 번 두드리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라7)

(음악이란 계산이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은밀한 연산과정이다8)

흥미로운 것은 의식의 감지 범위를 벗어난 것 같으면서도, 무의식의 메아리가 의식에 감지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두뇌도 숨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피험자가 어떤 영상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다른 영상을 40밀리초(10만분의 4초)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보여 주면(정지 화면이나 동영상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는 식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잠재의식 영상은 의식이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950년대 말에 코카콜라사의 시장조사 연구팀이 영화필름 사이에 광고 화면을 끼워 넣어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12

당신의 의식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영상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 정보가 두뇌에 영향을 주어 반응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론은 당신의 두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력을 조율하고, 데이터를 추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뇌는 신경 섬유를 통해 접수된 신호를 빠르게 송수신하고, 생물학적 과정을 제어함으로써 적절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이것이 전부라면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 시간만 충분히 투자하면 된다. 그러나 마음이 하는 일을 넘어서 마음이 느끼는 감각(자신이 인간임을 느끼는 내면의 경험)을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과학으로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말하는 ‘어려운 문제hard problem’다.

1671년의 어느 날, 뉴턴은 현대과학이 태동하던 그 시기에 가장 많은 과학 기사를 썼던 헨리 올덴버그Henry Oldenburg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빛의 절대적 특성을 정의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빛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색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확실한 것과 추론을 섞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노란색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노란색 물체를 보았을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노란색의 느낌’이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노란색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과 나, 그리고 뉴턴은 그렇게 할 수 있다. 특정 색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것이 바로 뉴턴의 고민거리였다.

색에 대한 느낌은 노란색이나 푸른색, 또는 초록색의 정신적 ‘환상phantasm’을 훨씬 넘어선 문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의식의 일부로 여겨지는 다양한 내적 감각(생각, 감정, 기억, 표상, 욕망, 소리, 냄새 등)을 관장한다는 점이다.

입자의 거동을 서술하는 수학 체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초대형 입자 가속기와 초고성능 천체 망원경을 통해 사실로 판명되었는데, 어디를 들여다봐도 입자의 내면 세계를 서술하는 부분은 없다.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는 입자의 무리가 어떻게 색감과 음감을 느끼고, 사랑과 증오를 느끼고,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는 말인가? 입자는 질량과 전기전하를 비롯한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지만(전기전하와 비슷하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핵전하nuclear charge라는 것도 있다), 이런 양은 주관적 경험과 완전히 무관하다.

박쥐에게 적용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당신과 나의 육체는 상호 작용 하는 입자의 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의식을 가진 존재는 3인칭의 객관적 서술만으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호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챌머스David Chalmers(1966~ )는 1994년에 투손Tucson*에서 개최된 의식학회에 어깨까지 닿는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연단으로 올라와 생명체의 내면 세계를 ‘어려운 문제’라고 정의했다.

챌머스는 ‘마음이 없는 입자와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환원주의적 관점(입자와 물리 법칙)을 밀어붙인다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뇌에서 진행되는 물리적 과정이 곧 의식이라는 나의 오래된 믿음은 뿌리째 흔들렸고, 물리적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두뇌의 물리적 기능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닛은 "메리가 빛의 물리학에서 눈의 생화학적 작동 원리와 두뇌의 신경과학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빨간색을 본 적이 없어도 색으로부터 창출되는 내면의 감각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학습에 지나칠 정도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빨간색에 대한 느낌은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빨간색을 직접 보면서 스스로 체득한 것이다), 색과 관련된 지식을 얻는 방법이 직접 경험하는 것뿐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잭슨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검증되지 않은 믿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을 메리는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배웠을 뿐, 그녀의 완벽한 지식은 빨간색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알아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과거의 잭슨과 그의 추종자들이 옳은가? 아니면 관점을 바꾼 잭슨을 비롯하여 "메리는 장미꽃을 생전 처음 보아도 새로 배우는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옳은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 상반된 관점이 대두될 때마다 검증 가능한 결과를 비교하면서 직관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헤쳐 왔다. 그러나 메리의 이야기에 관한 한, 확실한 결론을 내릴 만한 실험 결과(또는 데이터나 계산 결과)는 단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으며, 내면 세계의 원천을 설명하는 정확한 이론도 없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직관적으로 그럴듯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유연한 가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느 쪽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의식이 물질에 작용하는 물리적 힘을 통해 서술되는 것이라면 그 중간 과정만 알아내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대과학의 범주 바깥에 있는 낯선 개념을 도입하여 기초부터 꿰어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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