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는 진짜 뭐 아는 게 없더라. 여자였는데…" 같은 식이다. 말하는 사람이 굳이 성별을 언급하지 않을 때도 누군가는 "여자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자 엔지니어들에게는 늘 사족으로 따라붙는 말이다.

실력이 별로거나 일을 잘 못하는 엔지니어의 모습에 여성의 라벨을 붙이는 일은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업무 환경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건 단순히 기분 나쁜 일 정도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라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긍정적인 여성 롤모델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부정적인 모습들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냥 해봐야 강해진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그냥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과 용기야말로 강함이다.

고정관념 위협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의 부정적 고정관념에 부응할까 불안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관념 위협은 왜 발생할까? 현재까지는 고정관념을 상기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신적 처리를 하느라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인간은 외부 정보 처리를 할 때 단기적으로 작업기억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작업기억은 한계가 있는 영역이라 고정관념 위협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이 한정적인 자원의 일부분을 사실상 못 쓰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쏠리는 지나친 관심, 숨 쉬듯 접하는 성차별적인 발언들, 회식 메뉴를 정하는 사소한 일에도 "남자는 고기지!" 따위의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는 말들이 쌓여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말들과 행동들이 얼마나 성차별적인가를 매일 생각하는 건 고역이었다.

어느 한켠에 차곡차곡 쌓이던 부정적인 여성의 모습들은 ‘어쩌면 내가 그럴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너무 쉽게 이어졌다. 그래서 한계에 달했을 때 페달을 놓고 쉰 다음 다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빠져버렸다. 조금만 더 분발하면 될 일 앞에서 더 쉽고 더 잘게 박살나버린 것이다.

그 이야기가 여기저기 퍼져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내게까지 들려오는 과정에서 그의 실력, 열정, 커리어에 대한 포부는 온데간 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저 그의 ‘예쁜 얼굴’만 남았다. 눈물 쏙 빠지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도 여자는 엔지니어가 아닌 여자로 남는 것이다.

조직 자체의 남초 현상은 왜 어느 누구도 농담 삼아서라도 지적하지 않았을까?

많은 책에서 "당신을 여성 중 한 명이 아닌 독특한 가치를 가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세요" 같은 조언을 한다. 하지만 주니어이자 여자이자 엔지니어인데 페미니스트이기까지 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렵다.

사실 ‘여자가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말 자체가 여자가 일하기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능력을 보여주고 성과를 창출해 회사와 개인의 성장을 견인해야 하는 현장에서, 특정 성별에게 좋은 회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특정 성별의 입체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화하기 때문이다.

더 넓은 풀에서 더 많은 여자가 각자의 생애주기를 거치면서도 전문가로서 계속 발전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회사가 여자가 일하기 좋은 회사다.

·가정 양립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IBM의 전CEO 지니 로메티Gi­nni Ro­metty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관심 없다, 당신이 우리 조직에 있을 능력이 증명되었다면"이라고 말했다.

지니의 말은 이제IBM이 다양성, 즉 개인의 속성에 중심을 두는 조직이 아닌 아닌 포용력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2015년 맥킨지Mc­Kin­sey 및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직 내 직원들의 성별과 인종이 다양할수록 사업성과지표가 좋아졌다고 한다.

다양성은 좀 더 물리적인 개념으로 조직에 유색인종, 여성 등이 몇 명인지, 이들을 얼마나 승진시켰는지가 지표로서 작용한다. 이에 비하면 인클루전은 측정하기가 좀 어렵다. 조직에서 일하는 유색인종과 여성 등이 자기효능감과 만족감을 느끼는지, 조직에 잘 정착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만났던 많은 여자 리더는 특별히 여자라서 차별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까지 오는 건 남자든 여자든 힘든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어떤 과정을 거쳐 여자라는 정체성을 지우는지, 어떻게 성공한 여자들이 등장하게 되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슬프게도 자본주의 사업장은 여성성이라는 것이 거세된 공간이니까.

소리내서 말하지 못한 것들을 품고 있지만 나는 끝까지 내가 원하는 회사에서 웃는 얼굴로 성공할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내가 여자라서 지나야 했던 많은 일을 삭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일상적인 성차별 발언들을 얼마나 견디며 이 자리에 왔는지,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많았는지 꼭 말할 것이다. 무력해질 때마다 기록하고 세상에 내보일 것이다. 일하는 여자로서 나의 최저 방어선은 여기다.

선택적 박애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그들을 여자라는 이유로 좋아한다.

같은 여자를 갈아넣어 본인의 위상을 지키는 여자도 있다. 이럴 때면 정말 괴로워진다.

열정이 넘치고 송곳 같은 돌파력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다른 매니저들이나 동료들과 부딪히는 일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은 거의10년 전 일이었는데도 여전히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섭도록 능력 있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여자를 만난 것도 괴로웠다.

온몸을 불사르며 일하는 열정가이자 대단한 기술자였지만 시니어들이 갖춰야 할 어른의 자세는 없었다. 예를 들면 비난 없이 건설적인 피드백을 정확히 주는 것, 조직과 개인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조언해주는 것, 다른 사람이 많이 모인 미팅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과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을 구분해서 하는 것 등 말이다.

‘할 말은 하는 쿨한 실력자’라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더 진이 빠졌다.

글과 영상으로 배운 페미니즘은 나 개인의 생활을 너무도 어렵게 만들었다. 많은 점에서 그랬지만 특히 여자 동료와의 관계가 그랬다. 모든 여자를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나 스스로를 옥죄다가 욕심으로 바뀌었다. 다른 여자들도 나처럼 모든 여자를 응원해줬으면, 일터든 생활이든 여성 인권 증진에 관심을 가졌으면 싶었다.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처럼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성을 뭉뚱그려 평면적으로 본 것이다.

미워하는 여자를 한 개인으로 보고 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건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모든 개인은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길 바라는 것은 상처를 자처하는 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싫은 여자들은 계속해서 생기겠지만 그들을 여자가 아닌 개인으로 봐야 한다.A와B와C는 되도록 피하겠지만, 나쁜 말들로 그들을 욕하고 싶어질 때면 남들이 아닌 일기장 앞으로 달려가 쏟아낼 것이다. 개인만 싫어하고 여자는 사랑하기 위해 택한 소소한 전략이다.

창업한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나는 특히 더 작아진다. 그들은 빛을 내며 달리고 있다. 해결하고 싶은 세상의 문제가 있고, 실제로 세상에 멋진 결과물들을 내놓고 직원들 월급도 준다. 자신의 일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은 정말로 빛이 난다.

나는 대개 내 에너지를 쏟아부어 전력투구하지만 종종 그에 합당한 결과를 손에 쥐지 못할 때도 있고, 그 노력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쉽게 폄하될 때도 있다.

열심히 사는 성실한 사람일수록 부서지기 쉽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약한 것은 부서지는데, 성실한 사람은 약해서 부서진다.

"솔직히 지금도 열심히 하는 게 무서워서 대충 할 수 있는 건 대충 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다가 상처 받는 게 무서워서. 그래도 쓸쓸해요.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억누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한 적도 없었으니까."

열심히 한다는 것에는 미련한 구석이 있지만, 당장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열심히 산다고 당장 집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 반드시 열심히 했다는 경험 때문에 웃는 일은 생긴다.

시간을 날려버렸다고 생각했던 시절, 너무 열심히 살아서 너무 미웠던 과거의 나 덕에 알게 된 것들은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있었다. 사는 게 힘들어 가끔 잊어버리긴 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배우고 보니 서핑이 너무 좋아서 여행 내내 서핑을 했다. 서핑은 일어서는 그 짧은 순간이 너무 즐겁고 짜릿하지만 그렇게 일어서려면 배, 엉덩이, 허벅지 근력이 필요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타고 싶었지만 근력 운동을 일절 하지 않던 시절이라 몇 번만 타면 해변에 누워 쉬어야 했다.

열심히 사는 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근력을 기르는 것이다. 근육이 생기기는 하는 건가, 운동한다고 되는 건가, 소용이 있는 건가 싶다. 하지만 서핑처럼 인생의 재미를 더해주는 순간들을 맞이하려면 열심히 살아온 시간으로 다져낸 근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파도 위에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작아도 필요한 일들을 찾아 해내는 성실하고 기계적인 태도. 이렇게 살아낸 시간이 있는 사람은 정말 멋지다. 꿈이나 소명 같은 건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 각자의 인생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물론 타인의 전략을 평가절하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 사라지진 않는다. 분명히 ‘그렇게 살기를 잘했어’라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 순간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동료들의 그런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함께 기뻐할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삶 아닐까? 그러니 부디 다른 사람의 열심도, 스스로의 열심도 무시하지 말자. 누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빈정대면 쳐다도 보지 말고 지나가자.

이제 사람들의 냉정한 반응에 괜히 혼자 상처 받았던 신입사원 때의 나는 없다.

매달 돈을 받는 데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 역시 같다는 것을 알게 돼서인 것 같다.

불필요하게 날을 세워 말한다거나 상대가 불편할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힘든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신입사원일 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속마음을 너무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냥 나를100퍼센트 보여주고 이해받고 싶었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숨길 수 있는 건지 잘 몰랐다. 그래서 괜히 세상이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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