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과 벌이는 싸움은 뼈가 몇 대 부러지고 나서야 끝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창조한 건 전능하신 하느님이지만,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 건 콜트 대령이거든."

릴리는 자신 안에 깃드는 고요함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릴리는알았다. 다 잘 끝나리라는 것을.

릴리에게는 그 모든 것이 무대 위의 연극처럼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겁에 질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명을 지르든가, 아니면 아예 기절해 버려야 마땅했다. 어머니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난 몇 초 동안 세상의 속도는 느려졌고, 릴리는 안전하고 평온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것도 자신을 해치지 못하리라는 기분이었다.

"넌 아직 배우는 단계니까 실제보다 작은 판에서 두는 거다. 이건 바둑[圍碁]이라는 놀이인데,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포위하는 놀이’라는 뜻이지. 씨앗 한 개를 놓을 때마다 네 소유의 땅을 둘러싸고 울타리를 치느라 말뚝 한 개를 박는다고 생각해라. 말뚝이 자리를 옮기면 안 되겠지?"

"어릴 적에 나는 세상에 오로지 다섯 가지 맛만 존재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세상 모든 기쁨과 즐거움은 그 다섯 가지 맛을 서로 다르게 섞은 것인 줄 알았지. 나중에는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알았다. 모든 곳에는 그곳만의 새로운 맛이 있어. 그리고 미국의 맛은 위스키야."

이 나라는 어디에나 새로운 이름이 붙어 있잖느냐. 네 어머니께서도 결혼하실 때 성을 바꾸셨을 텐데? 이곳은 도착한 사람들이 모두 새로운 이름을 얻는 땅이다.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모든 맛이 조화를 이룬 그 맛이야."

장생은 바둑이 매실주보다 훨씬 더 좋았다. 단순한 규칙은 달콤했고, 패배는 씁쓸했고, 승리는 몸이 얼얼할 정도로 즐거웠거든. 바둑돌이 만드는 무늬는 꼭꼭 씹으며 음미하는 맛이 있었고.

그렇게 못된 아이는 아니었구나. 장생의 아버지는 생각했어.승부에 지고서도 품위를 지킬 줄 알다니. 그건 인간들 사이의 봉황이 지닌 품성이거늘.

"현명한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너처럼 실패를 기회로 여기지는 않는단다."

릴리는 그들의 대화에서 귀에 걸리는 영어 단어를 알아듣는 것이 즐거웠다. 이제 릴리에게도 익숙해진 중국식 억양은 그들의 음악과 닮은꼴이었다. 쇳소리 같았고, 딱딱거렸고, 구두점처럼 끼어드는 리듬은 들뜬 심장 고동 같았다.

어머니는 릴리에게 연습장에 시를 더 많이 베껴 적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언젠가는 코르셋을 차고 예쁘게 단장해서 남편을 구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아니야. 지금은 햇볕을 받으면서 뛰어다녀야 해.

릴리는 마침내 두부 한 조각을 무사히 입에 넣고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냠냠 씹었다. 그때껏 알지 못했던 맛이 입속에 퍼져 나갔다. 혀 전체가 기뻐할 만큼 풍부한 맛이었다. 짠맛, 고추의 어렴풋한 매운맛, 소스의 바탕을 이루는 약한 단맛, 그리고 혀를 간지럽히는 무언가. 릴리는 두부를 오물오물 씹어 보았다. 맛이 더 우러나오도록 해서 뭔지 모를 그 맛의 정체를 더 또렷이 밝히려고. 고추 맛은 더욱 강해졌고, 간질거리던 느낌은 얼얼한 느낌으로 변해 혀끝에서 혀뿌리까지 남김없이 뒤덮었다.

얼얼한 느낌이 갑자기 조그맣고 뜨거운 바늘 수천 개로 변해 혀를 온통 찔러 댔다. 콧속에 콧물이 가득한 느낌이 들었고, 눈앞은 눈물 때문에 뿌예졌다.

"쌀밥을 먹어라. 어서."
로건의 말에 릴리는 부리나케 쌀밥을 몇 입 씹어 삼켰다. 부드러운 밥 알갱이가 혀를 주무르고 목구멍 안을 달래 주도록. 혀는 마비돼서 감각이 사라진 듯했고, 얼얼한 느낌은 이제 가라앉았지만 볼 안쪽은 계속 따끔거렸다.

"그건 ‘마라[麻辣]’라는 맛이다. 촉(蜀) 땅의 이름을 중국 전역에 알린 얼얼한 매운맛이지. 조심해라, 그 맛은 사람을 살살 꼬드겨서 먹게 해 놓고는 입안 가득 불을 질러 댄다. 하지만 한번 익숙해지면 혀가 춤을 추고 그보다 순한 맛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지."

"중요한 건 맛의 균형이다. 중국인에게 운명이란 단맛과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 마라 맛, 그리고 부드러운 위스키 맛을 한꺼번에 모두 맛보는 거다. 뭐, 사실 중국인은 위스키가 뭔지 모를 테지만, 그래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 거다."

개를 먹다니…… 그건 어린애를 먹는 거나 같은 짓이잖아.

관우는 기다란 핏빛 구름이 손짓하는 동쪽을 향해 쉬지 않고 말을 몰았다.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싸움의 쾌감과 복수의 달콤함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어. 관우는 신이 된 기분이었단다.

둘은 별빛 아래 머물렀다. 한참 동안, 아주 한참 동안.

내가 황제라면 판관은 다시금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테고, 농부는 어진 마음으로 부지런히 들을 일굴 것이며, 다관은 다시금 학자와 가희(歌姬)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할 것이오.

불콰해진 얼굴은 이미 피처럼 붉었지만, 손은 무심하게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지. 마치 화동들이 꽃을 따는 5월의 정경을 시로 쓰기에 앞서 붓을 만지작거리는 문인처럼.

"성공할지 어떨지는 저도 모릅니다. 인생은 모름지기 실험이니까요. 하지만 훗날 죽음이 목전에 오면, 한때 용처럼 날아오르고자 애썼다는 기억은 떠올릴 수 있겠지요.

이 전포를 두르고 나서, 나는 오로지 덕(德)의 이름으로만 도검을 휘둘렀소. 그대가 내게 그 이상의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이오?

"형님 곁에서 나란히 싸울 때면 말이지." 장비가 검은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난 겁이란 게 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니까. 정신은 굳건해지고 마음은 예리해지고, 기운은 빠지는데 투지는 거꾸로 더 활활 타오른다, 이거야."

단단하고 서늘한 옥 술잔은 부드러운 와인과 더없이 잘 어울렸지. 날은 점점 캄캄해졌지만 술잔의 재료인 옥돌은 속에 빛을 품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얼굴은 술잔의 빛으로 물들었어.

로건은 비파를 무릎 위에 올리고 서양 배처럼 생긴 몸통을 쓰다듬었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쓰다듬듯이.

중국 남자아이는 누구나 엄마 젖과 함께 마시기 시작한다는 고량주의 맛에 익숙해지려고 여태 애쓰는 중이었다. 고량주를 마시면 면도날을 한입 가득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중국인이란 게 뭐요? 오랑캐는 또 뭐고? 그런 걸 고민해 봤자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이 깃드는 것도 아니요. 그럴 바에야 난 차라리 서역에서 고비 사막을 넘어온 초록 눈의 무희들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비파를 타겠소.

"관우는 당연히 살아 있다." 손권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렇게 말했다. "관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평생 유일한 여한은 이제 곧 건너갈 저세상에서 관우와 벗이 될 수 없음이니라. 언젠가는 그와 친구가 되기를 앙망했거늘."

"나는 너와 네 아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허나 관우가 네 아비를 기꺼이 섬긴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내가 간파하지 못한 네 아비의 장점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관공(關公)은 지금도 너를 굽어보고 있을 터, 나는 그에게 나 또한 덕이 없는 자가 아님을 보여 줄 것이다. 내가 너를 해치는 일은 없을 테니 나의 궁에서 언제까지나 귀빈으로 지내도록 하라."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분은 무인일 뿐 아니라 시인이기도 하셨단다. 또한 명예를 잊지 않으려 하루하루 분투한 분이기도 하시지."

"하지만 빨래는 여자들의 일이잖아요! 그 남자들은 체면이란 게 뭔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잭이 중국인 남자들의 사업 계획을 들려주었을 때 엘지가 외친 말이었다.

"글쎄, 그게 그렇게 체면 깎이는 일인가? 당신은 왜 중국인들이 하는 일이라면 죄다 싫어하질 못해서 안달이야?"

이 마을의 나약한 남정네들은 보나마나 크리스천의 의무에 어두울 테니 중국인들한테 빨래를 맡기겠죠.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정직한 홀어머니들한테 맡기는 것보다 싸게 먹힐 테니까.

아옌에게서 가족 이야기를 들은 잭은 묘한 부조화를 느꼈다. 자신이 보기에는 이토록 어리기만 한 아옌이 단지 요리와 세탁을 잘하는 영리한 청년이 아니라, 실은 아내가 곁에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의 요령을 배워야 했던 남편이자 아마도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네가 만든 요리를 먹기 전까지 난 양배추하고 콩이 쇠고기나 소시지보다 더 맛있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어. 은은하게 감도는 쓴맛에 마음이 끌릴 거란 생각도 못했고 말이야.

"시버 씨는 칭찬도 참 후하게 하시네요. 남편 입맛에는 뭐니 뭐니 해도 아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는 건 저도 알아요."

아옌은 눈물을 닦았다. "싼룽[三龍]이 그러는데, 식당 이름을 ‘개는 사람 무시, 사람은 개 무시 식당’이라고 지으래요."

"중국에 되게 유명한 만두 가게가 있는데 거기 이름이 ‘개가 쳐다도 안 보는 집(1858년 톈진에서 문을 연 유명한 만두 전문점 ‘거우부리[狗不理]’를 가리킨다. 주인의 아명이 개였는데 장사가 워낙 잘돼서 손님이 와도 만두 빚기에만 바빠 ‘개놈이 만두만 팔지 손님은 쳐다도 안 보네[狗子?包子, 不理人]’라는 말에서 가게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 옮긴이)’이거든요.

"싼룽 말이 미국에선 중국 식당이 절대 성공 못할 거래요, 손님들이 젓가락 쓰는 법을 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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