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톱을 깎아 주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은 눈앞이 캄캄해진다. 다른 사람의 손톱을 깎으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당신이 어머니께 효도를 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동안 안전장치 루틴은 당신이 어머니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보장한다.

이 로봇은 죄책감을 덜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멀리 살고 핑곗거리도 너무 많은 이들을 위하여.

어머니 곁의 당신이 본질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머니가 어젯밤에 잠드셔서 깨어나지 않으셨어요.
이제 밤마다 어머니한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당신은 서랍장 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고 만다.

스스로 미국인이 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어떻게 수많은 작은 결정들이 쌓여 돌이키지 못할 변화를 일으키는지, 어째서 결심하지 않는 것이 결심하는 것과 똑같은지를 생각한다. 당신에 관해 눈곱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당신이 정해진 방식대로 행동할 거라 기대하는지를 생각한다.

딸에게 당신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당신의 선택을 어떻게 변명할지 생각한다. 나중에 그 애가 이해할 만큼 자랐을 때. 드넓은 대양 너머 다른 대륙에서 새 삶을 시작하느라 치러야 했던 대가를 생각한다. 결코 얻지 못할 사면에 관해 생각한다. 재판관은 당신 자신이므로.

긴장이 돼서 아직은 그 이유를 밝힐 수가 없다. 미리 말해 버리면 징크스가 될까 봐.

나는 아직 어려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지 못하지만, 부모님이 주신 세계가 있어서 아주 행복하다.

꼭 붙어 있고 싶은, 안에 감싸지는 동시에 바깥에 있는 느낌이다.

아빠는 ‘안으로’ 들어와서 내 방의 표면에 자리를 잡는다. 20차원인 아빠의 모습은 이 4차원 공간에 처음에는 조그마한 점으로 투영되다가, 서서히 윤곽선으로 바뀌어 천천히, 환한 금빛으로, 하지만 살짝 흐릿하게 일렁거린다. 아빠는 딴 데 정신이 팔렸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랑 같이 놀아 주는 시간이 적다고 해서 나쁜 아빠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빠는 훨씬 높은 차원에서 일하는 데에 하도 익숙하다 보니 4차원에서는 엄청 지루해한다. 그런데도 성장기 아이한테는 4차원 환경이 최고라는 전문가들 말을 듣고 내 방을 클라인 대롱 형태로 디자인해 주었다.

우리 의식을 여러 개의 구성 알고리즘으로 분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각각의 알고리즘은 다시 루틴과 서브루틴으로 해체되었고, 결국 우리는 개별 명령어, 즉 근원 코드가 되었다. 그런 다음 바이 박사님은 우리 부모님들이 어떻게 제각각 우리에게 그 알고리즘의 일부를 주었는지 설명하셨다. 우리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알고리즘들이 여러 루틴을 재결합하고 재배치한 결과 우리는 완전한 인격, 즉 우주에 새로이 탄생한 어린 의식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낳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두에게 각자의 일부를 조금씩 나누어 달라고. 내 생각에 나의 끝내주는 수학 실력은 해나 이모한테서, 부족한 참을성은 오코로 삼촌한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친구 사귀기에 서투른 건 리타 고모를 닮았고 정리정돈을 잘하는 건 팡레이 삼촌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나의 거의 모든 부분은 엄마랑 아빠가 물려주었다. 나무 모양인 내 가계도에 제일 굵게 그린 나뭇가지는 엄마와 아빠를 의미한다.

나의 부분적인 형제자매들은 내 부모님 중 한쪽이 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끔 나를 놀리곤 했다. 고대인과 보통 사람이 만나면 잘 사는 경우가 드물다고, 그래서 우리 엄마가 아빠와 나를 떠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누구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대들었고, 결국에는 다들 그런 생각을 멈추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포옹하도록 허락한다. 우리 둘의 알고리즘이 서로 얽히고, 클럭이 동기화되고, 서로의 스레드가 동일한 신호 간격에 맞추어 반응한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익숙한 엄마의 사고 리듬 속으로 내가 기꺼이 추락하는 동안, 엄마는 내 사고 리듬 속에서 나를 부드럽게 다독인다.

"우리 반에서 내가 수학 제일 잘해요." 나는 엄마에게 자랑한다. "우리 반 2621명 중에서요. 아빠는 내가 아빠처럼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소질이 있대요."

엄마는 끝내주는 이야기꾼이고, 그렇다 보니 엄마가 육체에 갇힌 채로 겪었던 결핍과 역경이 내 의식 속에 거의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탐험은 인류의 숙명이야.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는 성장해야만 해. 네가 어린아이에서 성장해 가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수학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상상계의 풍경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그건 실제가 아니야. 가상의 실체에 대한 영원한 통제권을 손에 넣으면서 인류는 무언가 잃어버렸어. 안으로만 눈을 돌리다 보니 현재에 만족하게 된 거야. 우리는 별들과 저 우주 바깥의 세계를 잊어버렸어

나는 엄마한테는 도무지 모질게 굴 수가 없다. 그 점은 분명 아빠를 빼닮았을 것이다.

나는 물질세계를 실제로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새로운 감각의 충격이, 엄마 식으로 생각하면 ‘숨이 막힐 정도’이다. 나는 그런 구식 표현이 좋다. 비록 무슨 뜻인지 늘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움직이는 느낌이 아찔하다. 이게 바로 육체를 지닌 고대인으로 사는 기분일까? 보이지 않는 중력의 결합력, 자신을 지구에 묶어 두는 그 힘에 저항하는 느낌? 그 느낌은 너무나 답답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나즐겁다.

나는 엄마에게 기체의 균형을 잡는 계산을 머릿속으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하냐고 묻는다. 중력에 맞서 호버링 비행체를 안정화하는 데에 필요한 동적 피드백 계산은 너무나 복잡해서 나는 도무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내 수학 실력은 끝내주는데도.

"응, 이건 그냥 본능으로 하는 거야."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깔깔 웃는다. "넌 디지털 토박이잖아.

"난 왜 당신한테 안 된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걸까?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혹시 애 학교에 결석한다고 전해야 돼?"
"긴 여행이 될 거야. 그래도 해 볼 가치는 있어. 당신은 르네랑 영원히 함께할 거잖아. 난 그저 나한테 남은 시간의 극히 일부를 애랑 같이 보내고 싶을 뿐이야."

에너지 보존은 인류의 최우선 임무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게 진짜가 아닌 걸알잖아." 엄마가 생각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모든 게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그곳이 육체를 지닌 인류로 가득하던 시절, 에너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소비하던 시절을. 사람들은 널따란 공간을 한 명 아니면 두 명이 독차지하고 살았고, 냉난방을 가동한 상태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기계를 소유했으며, 음식을 만들고 옷을 세탁하는 등 온갖 신기한 일들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내내 탄소를 비롯한 갖가지 독소를 상상도 못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대기 중에 분출했다. 인간 한 명이 소비하는 에너지양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은 의식 100만 개체를 부양할 만큼 막대했다.

나는 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이 암흑시대의 기술이라고 배웠다.

"우리 여행의 진짜 출발지는 바로 여기야." 엄마가 생각한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긴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뭘 할지야. 르네, 두려워할 것 없어. 엄마가 너한테 시간과 관련된 중요한 걸 보여 줄게."

인간의 피조물은 그 어떤 것도 영원토록 남지 못해. 데이터 센터조차도 우주가 열역학적 사망을 맞기 전에 언젠가는 산산이 무너질 거야. 하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남는 법이야. 실체를 지닌 것은 모두 죽을 운명이라고 해도.

클록 수를 낮추는 일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남들보다 뒤처진 느낌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남들을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살 테고, 진짜 우정은 나이 차이 같은 건 거뜬히 뛰어넘으니까 괜찮을 거다.

난 사람들이 꿈을 실현시키도록 돕는 데에 소질이 있어. 하지만 당신의 꿈은 내가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는 거였지.

베이징의 여름은 사나워. 덥고,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공기는 소나기가 지나간 길가의 물웅덩이처럼 텁텁하지. 무지갯빛 휘발유 막으로 덮인 물웅덩이 말이야. 너랑 나는 찜통 안에서 천천히 익어 가는 만두가 된 기분이었어. 우리가 세 들어 살던 그 방 안에서.

달은 정말 멋진 곳이었어. 공기는 선선하고, 하늘은 깨끗하고, 무슨 도서관처럼 조용했거든.

이 장원차오라는 남자는 방금 막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사람처럼 보였지만, 상대방을 관찰하는 그의 눈빛은 냉랭하고, 차분하고, 면밀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얼굴이 붉어진 아이를 보고 샐리는 아이가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 이름은 비니예요."

장원차오의 영어 발음은 외국식 억양이 강했지만, 샐리는 그가 하는 말을 거뜬히 이해했다. 그 남자는 또박또박, 차분하게 말했다. 다급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샐리는 구해 주고 싶었다. 스스로의 믿음과 자유를 위하여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한 이 용감하고 조그마한 중국인 남자를.

이때껏 살아오는 동안 내내 샐리는 명확성을 신봉했다. 친구들이 다툴 때면 언제나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를 잘 알았다. 언제나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옳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샐리 본인만큼 옳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뭐가 진짜로 옳은 일인지 가늠하기 힘들 때도 있어. 그럴 때면 옳다고 느끼는 쪽을 택해야 하는 거야."

"아니요, 규칙대로만 하면 언제든 뭐가 옳은지 알 수 있어요."

망명 신청자는 자기 사연에 더 끔찍한 세부 사항을 추가해서 우리가 좋아하겠다 싶은 이야기로 가공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믿어. 왜냐면 그 사람들의 사연은 이 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얼마나 질서 있고, 안전하고, 더 행복한지 확인시켜 주니까. 우리가 아직 특별하다고 확인시켜 주는 증거란 말이야.

어떤 이야기든 간에, 네가 진실이라고 믿을 때에만 진실인 법이야.

"그 아이가 진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날에, 너의 이야기는 비로소 진실이 될 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지요.

"저는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집이 한 채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답니다. 세상은 참혹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법은 그중 일부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더군요."

릴리 아버지는 중국인 남자들이 만드는 요리가 더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요리하는 소리 또한 요란해서, 기름이 끓으며 내는 지글거리고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네모난 식칼이 도마를 치는통 통 통 소리 역시 또 한 가지 음악이었다. 한편 그들의 요리는 냄새 또한 야단스러워서, 길 저편에서부터 흘러와 열린 문으로 스며드는 연기는 뭔지 모를 양념과 이름 모를 채소의 매콤한 냄새로 릴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연주했다.

중국 놈들은 너 같은 크리스천 여자애를 보면 신이 나서 토막을 쳐 가지고 저 커다란 프라이팬에 볶아 먹을 게 뻔해. 저놈들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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