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면서 어두운 골짜기에서 두려움의 숨결이 올라왔다.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드로고는 점점 작고 외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아, 단 한 명이라도 가까이에 동료들이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드로고는 농담할 기분을 되찾았을 테고, 새벽을 기다리기가 지금처럼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이 나는 검은색이 풍경 속에 하나의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있었다.
그 자체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말 뒤에 분명 다른 것들이 오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말 안장은 방금 전에 올린 듯 제대로 자리잡혀 있었다. 그러니 전설은 끝난 게 아니었다

어제까지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미신으로 여겨졌던 이야기가 사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 밤에 느낀 두려움이 싹 가시면서 불현듯 어떤 난관이 닥치든 자신은 각오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 앞에 자기 운명이 와 있다는 예감에 기쁨으로 충만되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만족스러운 운명이었다.

사막이 더없는 고독으로 빛나는 가운데, 말은 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새벽의 기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지 거의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드로고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나아갔지만, 새롭게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똑같은 돌투성이 평야와 덤불, 북쪽 끝의 안개가 전부였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그것들은 점차 색깔이 변해갔다.

북쪽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구름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밤이었다. 구름은 암벽 봉우리들을 훑고 지나가며 작은 조각들을 남겨놓았다.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부르고 있는 듯, 구름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직접 질책하는 데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변할 뿐, 할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꿈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꿈에는 언제나 부조리하고 혼란스러운 뭔가가 있는 법이라, 모든 건 가짜고 때마침 깨어나게 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결코 가시지 않는다.

좋은 날들마저 항상 무언가로 오염되는 저 아래 세상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포병들은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잘 관리된 짐승들처럼 포대 주변에서 포격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과신이라니! 오, 그가 스스로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과신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인생을 보냈고, 그에게는 몇 년의 임기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일이 진정 좋은 기회가 아니라면, 아마 모든 가능성은 끝나버릴 것이다. 그를 머뭇거리게 하는 건 두려움도 아니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아니다. 그런 생각은 아예 그의 머릿속에 없다.

그는 너무나 많이 속아왔고, 그만하면 충분했다.

어떤 나이에 이르면 희망하는 데 큰 수고가 따르고, 더는 스무 살 시절의 믿음을 되찾지 못한다.

그로서는 운명적인 일을 부추기듯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편이 더 좋은데 말이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가 괜찮다고 착각하지. 설사 늦었다 해도 말하는 게 좋아."

지금은 그 역시 한밤중의 폭풍 속에 있더라도 그곳에 올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기회가 가까이 왔었건마는, 그는 그 기회를 떠나보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안구스티나? 말도 다 끝맺지 않은 채 가버리다니. 아마도 바보 같은 얘기였겠지. 어쩌면 터무니없는 희망이었을 테고,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야.

"가끔 이런 생각이 드네. 우리가 전쟁을 원하고,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고, 불행에 화를 내는 이유는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지.

어쩌면 피로 물든 모습이었을 희망의 눈부신 깃발들은 서서히 내려가, 병사들의 마음은 다시 일상의 평온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경비병의 눈길은 지평선 경계 끝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죽기에 적당한 순간을 알았네.

영웅 같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군. 물론 어느 누구도 그를 쏘지 않았지만 말이네. 그러한 죽음은 그날 그와 함께 있던 다른 모든 병사들한테도 똑같이 주어진 기회였지. 더 쉬운 기회야 있겠지만 어쨌든 그 상황에서 그가 특별히 더 유리했던 게 아니었다 이 말이야. 하지만 다른 병사들은 대체 뭘 했나? 그들한테는 여느 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였던 거지.

"결국 그에 걸맞은 때야 늘 누구한테든 오지. 예를 들어 안구스티나는 비싼 값을 치렀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야. 어쩌면 모든 문제가 거기에 있는지 모르지. 우리가 지나치게 망설이는 건 아닌가 싶어. 실제로 그럴 만한 때는 언제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모두가 영웅이 되려고 태어나는 건 아니니까.

그들은 더이상 떠날 재간이 없었네. 서른 살에 이미 노인이 되어버렸으니까.

수많은 희망이 옳았음을 보여줄 만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하루의 나날들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평화가 세상을 다스렸고, 경비병들은 경보를 울리지 않았으며, 변화가 일어날 조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나간 세월과 다를 바 없이 이제 다시 겨울이 다가와 북풍의 바람결이 병사들의 총검에 부딪히며 약한 휘파람소리를 냈다. 오르티츠 소령은 여전히 그곳, 제4보루의 테라스에 서서, 자신이 내뱉은 지혜로운 말들을 믿지 못하고 북쪽 땅을 한번 더 쳐다봤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그만이 유일하게 그 땅을 바라볼 권리가 있고, 그곳에 남아 있을 권한이 있는 듯 보였다. 어떤 의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요새 테라스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해 진흙에 발이 빠지는 시절이 왔다. 어느 순간 가장 가까운 산맥에서 갑자기 부드러운 물소리가 들려왔고, 산봉우리들의 경사면 여기저기에는 흰 눈 줄기가 수직으로 길게 나타나 태양빛에 반짝였다. 이따금씩 병사들은 여러 달 동안 부르지 않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곤 했다.

봄이 온 지금 갈라져나간 나무의 온갖 조각들에서 영원히 점점 더 작아지는 생명의 고동이 다시 한번 깨어나는 것이다.

세면장에는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다. 세면대는 청결하고, 바닥은 청소가 되어 있다. 틀어진 수도꼭지는 병사들의 잘못이 아니다.

창문의 유리들은 닫혀 있지만, 아마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구석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유리 너머로 하늘과 닮은 무언가가 보이긴 하지만, 그곳에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만한 건 전혀 없다.

어쩌면 장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똑같은 하늘과 태양이 그가 있는 쓸쓸한 세면장과 머나먼 초원을 동시에 비추고 있다고 말이다.

젊은 여자들은 꽃으로 머리장식을 하고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차려입었다. 언제라도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듯, 모두 즐거운 모습이다.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다른 장교들의 얼굴이 그의 신경을 거스른다. 항상 똑같은 얼굴들, 늘 똑같은 이야기들, 똑같은 임무, 그리고 똑같은 서류들을 그는 본능적으로 떠올린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는 연약한 욕망들이 들끓는다. 그 바람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확실한 건 성벽도 아니고, 그곳의 병사들도 아니며, 나팔소리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작은 말이여 평원의 길을 달려라. 늦기 전에 달려가라. 푸른 초원과 친숙한 나무들, 사람들의 마을과 교회 그리고 종탑들을 보기 전까지는 피곤하더라도 멈추지 마라.

요새여 영원히 안녕, 더 머무는 건 위험할 테니. 너의 간단한 수수께끼는 풀렸고, 북쪽의 사막평원은 계속해서 황량하게 남으리라. 결코 적들은 오지 않고, 너의 먼지투성이 성벽을 공격하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영원히 안녕, 오르티츠 소령이여. 더는 이 초막 같은 요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울한 친구여. 당신처럼 다른 많은 이들이 너무나 오래 희망을 고집해왔다. 시간은 당신들보다 훨씬 빨랐고, 당신들은 다시 시작할 수 없으리.

요새에 있는 요 몇 년, 그는 아주 좋은 결정적인 기회들을 몇 번 놓쳤다. 하지만 조반니는 아직 젊고,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시간은 그에게 얼마든지 남아 있다.

더이상 요새를 생각하지 마라. 네가 고원 가장자리에 도착했던 그 시간을 뒤돌아보지 마라. 길은 이제 골짜기로 빠지려는 참이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아주 무모한 실수가 될 것이다.

말은 즐겁게 빨리 걸을 것이고, 날씨는 화창하며, 공기는 따뜻하고 가볍다. 그리고 아직 길게 남아 있는 인생은 여전히 출발점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성벽과 포대, 보루 가장자리에 보초를 선 경비병들을 둘러볼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인생의 한 장이 천천히 넘어가면서 이미 끝나버린 다른 장들과 합쳐지고, 맞은편에서 또다른 장이 펼쳐진다. 넘어간 쪽은 고작 얇은 층에 불과하고, 그에 비하면 앞으로 읽어야 할 장들은 무궁무진한 종이 뭉치나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나아가려면, 언제나 삶의 일부인 또다른 장은 써버려야만 하는 법.

그 냄새는 그에게 까마득한 시절을, 일요일의 달콤한 기쁨과 즐거운 식사, 그리고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굳게 닫힌 창문과 숙제, 아침 청소, 질병, 말다툼, 쥐들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거실에 앉아 쏟아지는 많은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는 행복감이 무기력한 슬픔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예전에 비해 집이 허전해 보였다. 형제들 중 한 명은 외국으로 떠났고, 또다른 한 명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여행중이었으며, 세번째 형제는 시골에 있었다. 오로지 어머니만 집에 남아 있었는데, 그녀 역시도 잠시 후에는 성당 봉사를 위해 외출해야 했다. 그곳에서 어머니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로고의 방은 책 한 권 옮겨지지 않은 채 그가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어딘가 다른 사람의 방처럼 보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마차 소리와 부엌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홀로 자기 방에 있었고, 어머니는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며, 형제들은 모두 멀리 있었다. 그렇게 세상 전체가 조반니 드로고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창문을 열어 회색빛 집들과 서로 맞닿은 지붕들을, 그리고 안개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뒤 서랍에서 낡은 공책들과 여러 해 동안 간직했던 일기장, 몇몇 편지를 찾았다. 그는 자신이 적어둔 내용을 보며 몹시 놀랐다. 정말이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일들, 까맣게 잊고 있던 이상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피아노에 앉아 조율을 해보다가 다시 건반 뚜껑을 덮었다. 이제 뭘 하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밤에는 유쾌하게 즐겨보려는 결심으로 늦게까지 집밖에 있었다. 매번 젊은이답게 사랑을 찾고 싶은 평범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고 외출했지만, 매번 실망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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