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겁니다. 사령관이신 대령님과 다른 많은 군인들은 죽을 때까지 여기에 남을 거예요. 일종의 병이지요. 중위님도 조심하십시오. 갓 부임하셨으니 시간이 있을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요새가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뭔가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요."

"대령님, 스티치오네 대위님, 오르티츠 대위님, 그리고 중령님을 보십시오. 그분들은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때까지 늘 그런 식으로 해마다 뭔가가 일어나길 기다리지요."

그 순간 지하의 정적 속에서 드로고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하창고에서 붙박이처럼 계산 일을 하는 이 노인 역시 영웅적인 운명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음울하고 초라한 이 피조물도 예외가 아닌 것인가?

조반니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노인은 침울하게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마치 사실이 그러하며, 뚜렷한 해결책이 없음을 의미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이며, 결코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들의 행운과 모험, 그리고 적어도 각자가 한 번쯤은 경험할 기적 같은 시간이, 저 북쪽 사막으로부터 올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불분명해지는 이 막막한 우연을 위해, 군인들은 인생의 전성기를 요새에서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똑같은 희망을 품고 모여 살면서도 그 희망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그에 대해 달리 생각을 하지 않아서거나, 단순히 군인정신에서 비롯된 투철한 자제심을 지닌 군인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트롱크는 규정 조항들과 세부 규율을 철저히 따랐고, 강한 책임감에서 오는 자부심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살아 있는 동안 끝까지 아무것도 바뀌는 게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더라면, 그 역시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그는 말했으리라. 이미 다 끝났다 해도 뭔가 다른 일, 진실로 가치 있는 무슨 일인가가 닥쳐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리라.

포도주 탓인지 밤이라서 그런지 모두들 다소 흥이 오른 상태다.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잦아들자 밖에서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언제나처럼 농담조였지만 다들 그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었다.

안구스티나, 저 저주받은 속물은 도대체 왜 지금도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가? 왜 그토록 병들었음에도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지 않는가? 그러기는커녕 왜 자기 앞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가? 대체 무얼 생각하는가? 어떤 비밀스러운 교만이 그를 요새에 붙잡아두고 있나?

그들은 지성과 교양 면에서는 거리가 먼 자들로, 서로의 다른 점을 사랑하는 다른 두 사람이었다. 둘이 늘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놀라웠는데, 누가 봐도 안구스티나가 더 뛰어났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친구였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오직 라고리오만이 본능적으로 그를 이해했고, 오직 그만이 친구를 걱정했으며, 그의 앞에서 떠나는 것이 보기 흉한 과시라도 되는 듯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제 같기만 한 시간이 모든 사람한테 똑같이 일정한 리듬으로 그렇게 사라져갔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느리게 흐르지도, 불운한 사람이라고 해서 더 빠르게 흐르지도 않았다.

드로고는 창밖을 내다보느라 그의 말을 무심결에 흘려들었다. 그 순간 뜰의 노란 성벽이 투명한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더 높은 곳에, 예전에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던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탑들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눈 덮인 거대한 성벽이, 공중에 훤히 드러난 보루와 작은 요새들이 보였다. 서쪽 방향에서 태양의 밝은 빛이 아직 비추는 가운데, 그것들은 불가해한 생명력으로 신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요새가 그토록 복잡하고 거대한지 드로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위치에 골짜기 방향으로 열린 어느 창문(아니면 총안일까?)이 보였다. 그 아래에는 분명 그가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다른 장교들인지도 몰랐다. 성채와 성채 사이의 깊은 심연이 기하학적인 그림자를 드리운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지붕 사이에 걸쳐진 간이 다리들, 성벽과 수평을 이루어 빗장을 채운 이상한 문들, 폐쇄된 옛 돌출회랑, 세월에 구부러져버린 긴 마룻대도 보였다.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을지 모른다. 드로고가 평지 가장자리에서 오르티츠 대위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 정오의 강렬한 햇빛 아래로 요새가 나타났던 까마득한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어떤 욕망에 이끌린 결정이었지만 단순히 비장한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순간 그는 어떤 고귀한 일을 해냈다고 믿으며 자신한테 생각지도 못한 선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이미 무감각하게 길든 습관들이, 군인으로서의 다소 과한 자부심과 이제 일상이 된 성벽을 향한 가족 같은 애정이 자리잡은 터였다. 단조로운 리듬으로 이어진 군복무는 넉 달 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유혹하고 남았다.

그가 이제 잘 알고 지내는 동료들과의 생활 역시 익숙한 습관이 되었다. 비록 가장 세밀한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녁마다 그들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이나 도시의 소식은 그들에게 끝없는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편안한 식당과 밤낮으로 늘 켜놓는 대기실의 아늑한 벽난로, 그곳의 유능한 당번병인 제로니모의 친절한 태도 역시 익숙한 습관이 되었다.

저녁에는 인내심이 필요한 체스게임이 벌어져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승리는 종종 드로고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오르티츠 대위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제나 그래. 신참들이 항상 이기지.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일인데, 자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착각하기 쉽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방식일 뿐이야. 결국 다른 사람들도 그 방식을 따라 배우게 되고, 언젠가는 꼼짝없이 지고 마는 거지."

우기에 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평소 창문 안으로 달빛이 비쳐드는 지점과 시간에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그 움직임, 매일 밤 정확히 한시 반에 아랫방에서 들려오는 니콜로시 중령의 뒤척임도 그에게는 습관이 되었다. 그 시간이면 중령은 오른쪽 다리에 입은 오래전 상처의 통증이 이상하게 되살아나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것이다.

요새를 떠나려면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 또 요새의 삶이 하루하루 별반 다르지 않은 나날들을 얼마나 어지러운 속도로 삼키게 될 것인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어제는 그제와 똑같았고, 그는 그날들을 더는 구분할 수 없을 것이었다. 사흘 전 일이든 열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든 똑같이 까마득하게 여겨질 터였다. 그렇게 그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시간은 도피하고 있었다.

그날 밤 테라스 가장자리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망토를 걸친 자기 모습이 자부심 넘치는 군인다운 아름다움을 풍기는 것만 같았다.

드로고는 홀로 남았고, 실제로 행복감을 느꼈다. 요새에 남기로 한 결정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오래도록 지속될 커다란 선의를 위해 소소하되 확실한 기쁨을 포기했다는 씁쓸함을 자부심 어린 마음으로 음미했다(어쩌면 언제든 적당한 때에 떠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에게 위로를 주었을지 모른다).

고귀하고 위대한 일들에 대한 예감이?아니면 단순히 희망이었을까?그를 요새에 남게 했다.

어떤 행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의 앞에 놓인 그 시간이라니! 단 일 년도 그에게는 영원처럼 여겨졌고, 인생의 좋은 시기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바닥이 드러날 리 만무한 기나긴 시절, 아직까지 보물이 고스란히 간직된, 싫증내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시절이 가고 있는 듯했다.

벌써 청춘은 저물어가기 시작했건만 삶은 그에게 지칠 줄 모르는 집요한 환영으로 나타났다. 드로고는 시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신들이 그렇듯이, 눈앞에 수백 년의 젊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불행일 수 있었다. 더구나 그는 단순하고 평범한 삶, 인간다운 짧은 청춘, 고통스러운 은총의 소유자였으니, 모두 열 손가락으로 세기에 충분하고 미처 알기도 전에 사라져버릴 것들이었다.

바람이 길게 내려오는 물줄기를 흔들고, 메아리가 수수께끼 같은 놀이를 벌이는가 하면, 물이 바위에 부딪혀 서로 다른 소리가 나면서 끊임없이 말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언제나 이해를 갈구하지만 결코 그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 삶의 말들이었다.

경비병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추위나 처벌에, 사랑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적대적이고 거친 산의 소리였다. 얼마나 서글픈 오해인가, 드로고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게 이런 식일지 모른다. 주위에 우리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얼음과 바위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인사를 하려 하지만 팔은 힘없이 떨어지고 미소는 사라져버린다. 우리가 철저히 혼자임을 깨닫게 되므로.

천천히, 그러나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밤길을 걸어가며 새벽을 재촉한다. ‘쿵쿵.’ 조반니 드로고의 가슴에서는 심장이 뛴다.

스물두 달은 긴 시간이요,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 말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고, 풀밭에 불과했던 땅에 커다란 집이 생겨날 수 있는 시간이며, 아름다운 여인이 늙어버려 더는 아무도 그녀를 원하지 않게 될 수 있는 시간이다. 또 (당사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별다른 걱정 없이 지내지만) 오랫동안 앓게 될 질병이 진행되어 육체를 천천히 잠식하고, 언뜻 짧게나마 호전되는 듯 보였다가, 다시 병이 깊어지면서 마지막 희망을 앗아가고, 결국은 죽은 이가 묻힌 뒤 잊히고도 남을 시간, 이후 그의 아들이 다시 웃을 힘을 되찾아 저녁마다 여자들을 데리고 아무 생각 없이 묘지 울타리를 따라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고도 남을 긴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드로고의 존재는 멈춰 있었다.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는 변함없는 일과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감 없이 몇백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시간의 강은 요새 위로 흘러가면서 성벽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아래 먼지와 돌멩이 조각들을 끌어모았으며 계단과 사슬들을 낡게 했지만, 드로고에게는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도망치듯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아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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