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무해하고 귀여운 말실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사람마다 웃음 버튼이 모두 다른 곳에 달려 있다던데 나는 특히 이런 ‘잘못 튀어나온 말’의 사례만 들으면 유달리 정신 줄을 놓고 웃는다.

고전적인 일화로,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친구 엄마가 콘플레이크를 꺼내놓고 "포클레인 먹어라"라고 했다든가, 택시 타고 "전설의 고향 가주세요" 했는데 기사님이 어떻게 알고 예술의전당 앞에 잘 내려주셨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산달’을 ‘만기일’로, ‘인큐베이터’를 ‘컨테이너’로 바꿔 말한 예시들은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나의 웃음 버튼이다.

최근 들었던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누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남동생에게 엄마가 "요즘 너희 누나 엄청 바빠. 회사 일도 많고, 판교까지 텔레파시도 배우러 다니잖아" 했다는 일화다(어머님, 필라테스요). 저 이야기를 들은 날 종일 배가 찢어지게 웃으며 99퍼센트의 확률로 ‘키친타월’을 ‘치킨타월’이라 부르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대체로 공백이 잘 채워지지 않고, 의심이 많아 알고 있는 것도 잘 말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런 유연한 사고와 대범한 실행이 늘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새롭게 익힌 어려운 말을 열심히 잘못 외워놓고 그저 으쓱해할 어린이들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때가 왔을 때 조마조마해하며 결정타를 날린 뒤 의기양양 뿌듯해할 모습도 눈에 선했다.

여담이지만, 제발 너무 재밌는 책의 표지엔 꼭 ‘폭소 주의’ 같은 경고문을 실어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의 허세는 정말 대담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때론 틀린 표현이 있어도 잡아내기 어렵고, 대놓고 웃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확실히 어린이들은 새말을 익히는 과정에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나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두려울지언정 과감히 시도해보고 틀리면 수정해나갈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새로운 말들을 익히고,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용감한 마음을 닮고, 배우고 싶어졌다.

잘 몰라도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마음. 틀리면 다시 배우고 익히려는 단단한 마음. 실수를 실험으로, 실패를 실현으로 바꾸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늘 꽃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싫어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별 관심이 없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의 대부분 동안 나는 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그냥 살아왔다. 내가 자라나느라 바쁘고 정신없어서. 나를 피워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숨차고 버거워서. 물론 내 삶을 살아내느라 보지 못한 것이 어디 꽃 하나뿐일까 싶긴 하지만.

이를테면, 늘 거리가 있던 친구 한 명과 우연히 학교 화단에 핀 사루비아꽃을 같이 따 먹으며 가까워진 일이라든가, 배낭여행 중 같은 방을 쓰게 된 다른 나라 친구가 어제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오늘은 맛있는 점심을 먹어서 같은 이유로 매일 꽃을 사와 고단한 창가를 밝혔던 일 같은.

나는 한참 우울하다가도 생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질 수가 없다. 얼마나 즐겁고 들뜨는지 때론 친구들에게 먼저 나서서 축하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정작 축하받아 마땅한 일엔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민망해하는 내가 생일날만큼은 한껏 비대해진 자아로 기쁨을 만끽한다. 나도 참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고요하고 오붓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럴 때도 돈과 시간과 마음을 듬뿍 쏟아 오직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챙기고 애써봤자 결국 나 혼자 남는 걸. 난 영원히 이렇게 살아가겠지. 대체 난 왜 태어났을까……. 참았던 서러움이 복받쳐 가슴이 꽉 막혀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애초에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그렇듯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그랬어야 마땅한 소중한 생일날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좋은 기분을 다른 누군가가 선사해주기만을 기다린 걸까.

내가 어떤 선물을 가장 좋아하고, 어떤 하루를 보내야 가장 기쁜지 제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데. 왜 정작 내가 나를 모른 척하고 손 놓고 전전긍긍하기만 했을까. 내 생일을 진심으로 정성껏 축하했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는데.

더는 다른 누군가의 축하를 기다리지 말자고.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나를 가장 많이 축하해주자고. 내가 내 생일의 진짜 주인이 되자고.

생각해보면 생일은 정말 대단한 날이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굉장한 행운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대 사건이다.

어떤 인간도 단순하지 않았고, 어떤 관계도 간단하지 않았다. 늘 뭔가가 더 있었다. 애정 뒤엔 희생이, 희생 뒤엔 배신이, 배신 뒤엔 복수가, 복수 뒤엔 전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전쟁 뒤엔……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허공에의 외침만 남았다. 아, 인생 대체 뭘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보통의 사람들도 알고 보면 모두 굉장히 특수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었다(다들 어느 정도는 지랄 맞은 구석이 있었다). 또 너무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듯 보이는 일상의 문제들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엄청나게 크고 복잡한 딜레마를 끌어안고 있었다(모두 보이는 것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S는 늘 세심하고 살뜰하게 주변을 챙기지만 진심이 아니거나 불필요한 말은 절대 하지 않는 정확한 친구였다.

난 이 모든 과정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애초에 풀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겠지.

한 발 떨어져 나를 천천히 살펴보니 조금 짠하긴 했다.

문득 궁금했다. 오랜 세월 내게서 외면당한 그 마음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또 어딘가를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숨통을 끊어놓아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나는 숨 쉬는 법을 잊기 전에 노래 부르는 법을 먼저 잊어버린 거였다. 노래를 잊었는데 어떻게 제대로 숨을 쉬며 살 수 있었겠는가. 그런 삶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피할 수 없는 즐거움. 조건 없는 행복. 그것이 내게는 노래였다.

정말이지 노래방은 혼자 가야 제맛이었다. 우선 좋아하는 노래는 수십 번이고 다시 부르고, 질리는 노래는 언제든 눈치 안 보고 꺼버릴 수 있었다. 또 듣고 싶지 않은 노래는 감내하며 들을 필요가 없어 너무 좋았다.

도대체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참담하고 막막했을 때, 내가 나를 제일 모르겠고 못 믿겠어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그 외롭고 황량한 마음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야 했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저 세상에 노래가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게 내겐 훨씬 중요한 일이다. 때론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근심 걱정은 일순 잠잠해지고 다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버터 향이 충만한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풍겨오면, 종일 빳빳하게 굳어 있던 목덜미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갖가지 모양의 빵들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고단한 일상에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것들이 제각각 얼마나 다른 느낌으로 고소하고 달콤할지, 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촉촉하고 바삭거릴지 상상하다 보면, 시끄럽고 복잡했던 속이 어느새 편안하고 고요해졌다.

현실의 시간과 영화 속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영화를 다 만들고 공개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모든 여름은 전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한글을 그들의 만화로 배운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만화를 본다고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만화를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가 내 삶을 활짝 열어주었다.

어쩌면 만화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놀이이자 안식처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내게 없는 것이라도 감히 원하고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선한 마음으로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정말 원하고 꿈꾸던 자리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문방구는 부모나 선생처럼 우리를 돌보고 보살필 의무가 없는 어른과 처음으로 관계를 맺어보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 관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내 쪽에서 먼저 그만둘 수 있는 놀라운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함부로 그만두면 정말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수도 있으니 늘 신중을 기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문방구를 통해 진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중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방구를 단골로 삼을지 결정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아담문방구 아저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에게도 늘 친절하고 다정하게 응답하는 좋은 어른이었다.

그녀는 문방구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의 모든 결정을 너무도 쉽고 편하게 내렸다. 거기엔 어떤 고민도,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나는 왜 저렇게 못 하는 거지. 이유는 하나였다. 돈.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살 돈이 있었고, 나는 딱 스티커 한 장 살 돈밖에 없었다.

그때도 아저씨는 주저하며 눈치만 보던 나를 아주 반갑고 편안하게 맞아주셨다. 지나간 일은 이제 그만 잊으라는 듯.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듯. 이후 나는 아무리 화가 나고 절박해져도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 일은,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속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편, 마음 깊이 안심하기도 했다. 어떤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나를 예전처럼 믿어주고 늘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어른이 내게도 있었으니깐.

아저씨를 다시 만나면 십수 년 전 그때 정말 죄송했다고, 하지만 아저씨 덕분에 진짜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나는 좋아하는 걸 말할 때도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는 좋아하지 않을까 봐. 무엇이 좋다고 말하면 나를 그런 것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길까 봐. 지금은 좋아하지만 나중에 마음이 완전히 바뀔까 봐. 별별 창의적인 걱정을 다 하느라 다소 뾰족하거나 거친 것들은 뒤에 숨기고, 뭉툭하거나 부드러운 것부터 소개할 때가 많다.

물론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고 거짓말하진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의리와 예의는 확실히 지킨다.

역시. 좋아하는 마음은 변해도 진심을 다했던 덕질은 늘 뭔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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