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도 없고 뛰어난 구석도 없지만, 그와 같은 타입은 설명하기 힘든 장점이 있었다. 그는 시골 신사가 제격인데, 정치에 자신을 낭비하고 있었다. 야외에서 말과 개를 다루는 그의 모습은 정말 최고였다

그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평온함,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을 나타낼 뿐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리였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 그것이 진리였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했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행복해지고 지저분한 얼굴을 보면 바로 우울해졌다

또한 휴 휫브레드를, 그 존경스러운 휴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클라리사를 비롯해 모두가 그의 발아래 엎드렸건만.

이런 민감한 감수성이 바로 그를 파멸시킨 요인이었다. 이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심지어 소녀처럼 변덕스러웠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나뭇잎 하나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리처드 댈러웨이는 엄숙하고 단호한 어조로, 점잖은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열쇠 구멍으로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내용이라면서(게다가 거기에 나오는 관계 또한 용인할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 점잖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죽은 전처의 여동생의 방문을 허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야말로 헛소리였다! 그런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설탕 발린 아몬드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그들이 늘 산책하던 담장 둘린 정원에는, 장미 덤불과 커다란 꽃양배추가 심어져 있었다. 샐리는 그 정원의 달빛 속에서 장미 꽃잎을 뜯다가, 꽃양배추가 아름답다고 감탄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대단히 감상적으로 보였으나, 표면 아래의 그녀는 아주 날카로웠다.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재주는 샐리보다 더 날카로웠다. 게다가 대단히 여성적이어서,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특수한 재능, 여성 특유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설 때면,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구석도 없고,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히 재치 있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들어오면 그 공간은 늘 그녀의 공간이 되었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녀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지위와 상류사회, 세상이 말하는 출세 같은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수고를 들이면, 언제라도 그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지저분한 여자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 실패자들, 그리고 피터와 같은 낙오자들을 싫어했다.

그녀는 사람이라면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축 처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늙는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바로 이거야. 열정은 여전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을 천천히 불빛 아래 돌려 볼 수 있는 힘을─마침내!─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존재에 최상의 향기를 더해주는 힘이지.

인간의 모든 감정이 사라진 뒤에도 질투심은 남는다고 생각했다.

신들이 아무리 악당처럼 제멋대로 굴어도 우리가 숙녀처럼 행동한다면 인간의 삶을 해치고 좌절시키고 망치려는 신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이런 그녀의 생각은 실비아가 죽은 후, 그 끔찍한 사건 후에 형성되었다.

물론 클라리사는 삶을 최대한 즐겼다. 즐기는 것은 그녀의 천성이었다. (신만이 그런 그녀의 천성을 모두 알리라. 피터조차 세월이 이렇게 흐른 뒤에도, 클라리사의 그런 면모는 단편적인 장면 몇 개로만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그녀에게는 냉소적인 데가 없었다. 점

남편보다 두 배나 더 예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남편의 눈을 통해 만사를 봤다. 결혼 생활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있음에도 언제나 리처드의 말을 인용했다.

쉰이 지나면 다른 사람은 필요치 않다고, 여자들에게 계속 예쁘다고 말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쉰 줄에 접어든 솔직한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침에 온실 문을 열고 화초에 핀 새 꽃을 발견한 정원사처럼, 그저 꽃이 피었구나, 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랬다. 그는 허영과 야심과 이상주의와 정열과 고독과 용기와 게으름 같은 흔해빠진 씨앗들로 꽃을 피웠다.

모든 일은 시시한 농담에 지나지 않고, 인간은 침몰하는 배에 사슬로 매여 있는 종족이라고(그녀는 결혼 전에 헉슬리와 틴덜26의 책을 즐겨 읽었고, 그들은 모두 바다에 관한 은유를 즐겼다),

끔찍한 고백이지만(그는 다시 모자를 썼다), 쉰세 살이 되고 보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필요치 않았다. 인생 그 자체, 인생의 순간순간, 그것의 방울방울, 여기, 이 순간, 지금 이 햇빛 속에, 리젠트 공원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힘이 남았다 해도, 인생의 참맛을 보기에는 남은 인생은 너무 짧을 것이다. 그 남은 세월 동안 생의 기쁨을, 생이 지닌 그늘을 미묘하게 추출해내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것들이 전보다 더욱 견고해 보이고,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라리사가 준 고통도 예전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몇 시간, 몇 날 동안이나 (신이여, 아무도 엿듣지 않게 하소서!) 데이지조차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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