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간호는 너무 힘들었다. 


한 명의 환자는 우리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꽤 되는 환자이면서 내가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간호를 해본 적이 있는 환자라서 좀 자만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는 새로 온 환자인데 기관절개술을 받은 환자였지만 바이타 사인이 안정된 사람이라 역시 마음을 놓고 있었다.

 

첫 번째 환자를 마리아라고 하자. 그 환자는 지금까지 꽤 오래 버텼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돌보는 날 낮부터 갑자기 혈압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태가 안 좋아지는 환자는 사실 일대일 간호를 해야 하는데 트래블러들이 거의 다 떠나고 딱 일 할 간호사들만 출근했기 때문에 내 환자를 맡을 간호사는 없었다. 다행히 다른 환자인 훌리오(라고 하자)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라 나는 훌리오는 정말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해주고 거의 모든 시간을 마리아 아줌마에게 바쳤다.


일단 마리아 아줌마의 혈압이 내려가니까 낮에 일하던 간호사가 vasopressin이라는 약을 드립으로 주고 있었다. 인계를 하면서 데보라(라고 하자)는 나에게 아무래도 마리아가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의사에게 연락해서 추가로 혈압 상승약을 처방 받아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두 가지 약을 더 처방을 받아 놓고 vasopressin과 함께 Levophed라는 약을 함께 주고 있었다. 거기다 이 환자는 프로포폴을 받고 있었는데 프로포폴은 겨우 100mls가 들어있는데 맥시멈을 받고 있으니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프로포폴을 바꿔줘야 하고, 다른 약도 줘야 하고, 2시간마다 차팅도 해야 하고, 다른 환자도 돌봐줘야 하고,,,


정말 너무 정신이 없는 날이었다. 아침에는 혈액도 뽑아서(두 환자 다) lab에 보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훌리오의 혈액 샘플에 환자 아이디를 붙이고 내 사인을 하는 것을 잊고 보내서 다시 피를 뽑아야 했고, 인계 시간은 다가오고,,,혼자 방방, 더 방방방 뛰면서 (다른 간호사가 못한 것은 내가 인계할 간호사에게 endorse 하라고 했지만,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미안해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이제 겨우 오리엔테이션 딱지를 뗐는데 벌써부터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해야 하는 간호를 endorse 한다는 건 차마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습관이 들면 안 되겠다는 각오도 있었고.)


인계를 하는데 마리아를 맡을 간호사는 바른 말 잘하고 말을 거침없이 하는 캐티(라고 하자)네. 아무튼 뭐 또 배째라는 마음으로 인계를 하는데 그녀의 첫마디가, "아니 이제 겨우 오리엔테이션 끝난 사람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환자를 맡기는 거야?"라고 큰 소리로. ㅠㅠ 그녀의 말을 듣고 위로가 되어야 하는데 더 창피했다. 그녀가, "겨우 오리엔테이션 맡았는데 이렇게 일을 잘 처리했구나."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ㅎㅎㅎ 암튼 다 지나간 일. 


그리고 하루 푹 쉬고 어젯밤 일하러 갔더니 쉬운 환자 두명이 배정되었다. 쉽다는 게 정말 쉬운 건 아니지만, 일단 줄 약이 거의 없으니까 시간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시간이 많아서 더 잘 했느냐? 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일단 두 환자 다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들이었다. 한 환자는 비비안이라고 하자. 다른 환자는 유니스. 비비안은 70세였는데 mental disorders가 있었다. Bipolar disorder와 Schizophrenia. 그런데 갑자기 먹는 것을 거부해서 failure to thrive (한글로는 성장 장애라고 나와서 아이들에게만 있는 병 같지만, 어른들도 그런 표현을 쓴다.)로 응급실에 오게 되었는데 혈압이 급하락해서 역시 혈압 상승제를 받기 위해서 중환자실로 오게 되었다. 유니스는 파킨슨병이 있는 데다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데 극심한 anemia가 진행이 되어 응급실에 왔다가 혈액도 공급받고 왜 anemia가 진행되었는지도 알아내야 했기 때문에 응급실에 와서 있다가 일반 병실로 갔는데 거기서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결국엔 중환자실에 오게 되었다.


어느 정도 할머니들을 잘 보살펴 줬다고 생각한다. 침대 시트부터 다 바꿔주고 깨끗하게 돌봐드렸다. 하지만 역시 잘하는 것으로 마칠 수 없는 나의 실력이다 보니 일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 작은 일들이 막 터지기 시작해서 또 정신없이 일을 마치게 되었다는. 


이 작은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기 너무 오래 걸릴테니, 하나만 얘기하자면, 두 할머니가 입원한 시점이 비슷한데 둘 다 혈압이 낮아서 혈압 상승제를 주입받아야 했는데 혈압 상승제는 독한 약이라서 일반 IV로 맞으면 작은 혈관이 괴사가 될 우려가 있어서 주로 큰 혈관에 특별한 라인을 주입해야 한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같은 날 그런 것을 주입받았고, 그래서 비비안의 IV라인은 사용을 안 했지만, 유니스는 그 라인으로 NS를 받고 있었다. (간호일지 쓰자니 자꾸 영어 용어를 쓸 수밖에 없어서 쓰기 싫어지네,,^^;;) 


그런데 유니스의 IV 라인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인계 시간이 다가오는 시점에 나는 유니스의 라인을 제거하고 대신 그 라인을 다른 라인과 합쳐야 하는데 잘 들어가던 다른 라인이 갑자기 막혀있어서 IV펌프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고,,,, 바쁜데 더 정신없게 내가 깨끗하게 바꿔준 유니스의 린넨에 피가 묻기 시작하고,,,그래서 그것도 바꿔줘야 하고,,, 암튼, 결론은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예상할 수 없게 자꾸 생긴다는 점. 그래서 간호하면서 하루도 (이제 겨우 경력 4개월이 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이 안 생기고 예정대로 하루가 지나간 적이 없다는.


일이 다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릴리아(라고 하자)와 그날의 차지 널스인 비니(라고 하자)와 함께 주차장을 향해 가는데 둘 다 경력이 20년 이상은 된 사람들이라 그런지 나를 위로하면서 "예전에 간호하는 것이 좋았어. 요즘은 너무 힘들어. 간호사가 되기 위한 경쟁도 세졌지만, 그만큼 전염병이 너무 많아졌어. 일하는 환경이 더 더러워졌고."라며 릴리아가 옛날을 회상하면서, 그러니까 일이 힘든 건 당연해.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도 늘 새로 배우고 있고 (새로운 병이 계속 나오니까) 간호사로 일한 지 40년이 넘어도 매번 당황되지 않는 경우는 없어. 옛날이 좋았단다. 아,, 옛날엔 일할 맛이 났구나.. 


참! 어제 일하러 가서 마리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보니, 그녀는 여전히 같은 상태로 어젯밤 간호했던 간호사를 안절부절하게 했다. 훌리오는 제법 잘 버텨 주는 것 같고. 매일 내 직장이라는 곳이 이렇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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