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몸이 전기에 의해 작동된다?"

생뚱맞기는… 그러나 사실이다. 보더니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우리의 뇌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감탄하며 수긍하고 만다. 입체적인 서술방식으로 흥미롭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이해하고 감탄하는 과정에도 어김없이 관여하는 것은 바로 이 전기다.

보더니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 보자.

"전기가 사라진다면…그런데 중단되는 것이 인간의 전기 공급만이 아니라면 어떨까? 전기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지구의 모든 바다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 증발할 것이다. 물 분자들끼리의 전기적 결합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몸 속 DNA 가닥들도 서로 뭉치지 않을 것이다. 대기를 호흡하는 생명체 중에 용케 살아남은 것이 있다 해도 금세 질식하게 된다. 전기적 인력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기 중의 산소 분자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 분자와 결합하지 못하고 쓸모없이 튕겨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 속에는 거의 언제나 같은 양의 양전하와 음전하가 들어 있다. 그 균형이 잘 잡혀 있으므로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우리가 쉬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뿐이다. -서문 중에서-

그렇다. 전기가 사라지고 전기력이 사라지면 생활의 모든 불편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우리 몸 자체가 산산조각 나고 말 것이다. 우리 몸은 생물체로서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 몸을 결합시키는 것은 이 전기력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기는 130억 년 전부터 지구와 별과 원소들 속에서 비밀스럽게 움직이면서 모든 원리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생명체가 되는 순간에 이미 숨어들었던 것이다

<뇌 그리고 그 너머>에서 우리 몸속에 흐르는 전기의 실체와 그 원리에 대하여 아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주변의 사물이나 풍경을 본다든지, 특정한 사람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의 감정을 느낀다든지, 혹은 사랑에 빠진다든지…. 이런 우리들의 모든 감정들이 이 전기에 의함이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감탄과 함께 쉽게 이해되고 만다.

"아하! 우리 몸을 작동시키는 것은 전기였구나."
"…한 아가씨가 멋진 남자를 만나 삽시간에 사랑에 빠졌다. 수십 년이 지나 이제 늙고 허리 굽은 그녀는 손자들에 둘러 싸여 앉아 있다. 자식들 중 하나가 남편이 썼던 연애편지의 한 대목을 읽어주고 있다. 처음에 그 단어들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일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때, 나트륨 펌프와 신경전달물질들이 전기의 힘을 빌려 왕성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든다. 기억이 찾아 든 것이다"<284페이지>


1790년 알렉산드로 볼타가 전류를 인식하면서 전기의 역사는 시작된다. 엄밀히 말하면 전기의 발견 그 역사일 뿐이다. 130년 전부터 이미 모든 것들 속에서 존재하였던 무한한 그 무엇에 전기라고 명칭하고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생활에 필요한 만큼 사용하기 시작한 그 역사의 시작인 것이다.

천둥번개가 사람 앞에 나타났다. 그 번쩍이는 섬광과 어마어마한 소리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면서 좀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어떤 물체와 스치는 순간 찌릿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어떤 한 사람이 궁금하기 이를 데 없어서 자꾸 궁금해 하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은밀히 체험해보기를 되풀이 하면서 전기를 발견했다. 막연히 흐르다가 그 실체를 사람에게 드러낸 것이다.

전기의 발견에 또 다른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열정으로 전보와 전구, 전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아쉽다. 아무튼 부족하고 미흡하다.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또 관찰하고 실험하고 시도해본다. 비로소 전기가 전달되도록 밀어주는 어떤 힘의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공간에 눈에 띄지 않게 날아다니는 파동이다. 지금도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날아다니고 있는 파동, 이 파동 덕분에 텔레비전이 가능하고. 레이더의 실체가 가능하다. 이런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도 우리는 휴대폰을 필요한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전기에 관한 교양서다. 그러나 전기에 대한 상식적인 이야기들만이 아니다. 전보나 전구, 전화발명과 관계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또 감동스러운 것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내 스스로 발견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과학의 어려움. 어떤 학자들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실은 이 과학자들이었다. 먼 거리에서 특수한 천재성으로 복잡한 머리를 받들고 가는 그런 개념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법칙으로만 있던 과학자들을 다시 만났다. 모스부호로 유명한 모스를 조금은 불쾌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던 에디슨도 어린 시절에 자주 접했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 가난하여 물리학자가 되었던 조지프 존 톰슨(1906, 노벨 물리학상)이나 마이클 페러데이를 감동스럽게 만날 수 있다.

전화를 발명한 벨(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야기는 감동스럽다. 벨이 전화를 발명해내기까지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었고 사랑스러운 제자 메이블이 있었다. 이들의 장애를 뛰어 넘은 사랑의 힘으로 발명된 것이 이 전화이다. 벨과 메이블의 장애를 넘어 선 사랑의 힘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그 속삭임이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뒷부분에 <뒷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데, 솔직히 기분 좋은 보너스다. 참고했으면 좋을 이야기가 아니라 더 깊이 읽었으면 하는 내용들이다. 그 뒷이야기를 통하여 약간은 어려웠던 이야기를 보충하여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이란 나에게 있어 말하자면 편식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든 것에 과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관여하고 있음에도 막연히 멀리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하여 과학에 관한 이야기들은 학설과 복잡한 기호들의 조합과 공식으로만 있을 뿐이었다.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한 그 어떤 것들이었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생활과는 그다지 밀접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나마 알고 있던 과학자 몇 사람은 이름과 함께 남아 있을 뿐인 먼 세계의 사람일 뿐, 위대한 과학자의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전기의 세계를 실감하였다. 영원히 먼 세계, 어려운 법칙의 세계에 머물고 말 사람들과 무언가가 트인 느낌이다. 단순히 에너지원으로만 인식하던 전기에 대하여 나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그런 느낌을 가졌다. 보더니스가 흥미롭게 들려주는 전기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막연히 분리되어 있던 것들이 내 삶 가까이에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보이는 만큼,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설명만으로 이해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런 책이다. 읽으면서 직접 얻어야 할 것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쓰면서 소개하는 그 책을 좋게 평가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읽어보길 권하는 마음으로 쓰고자 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이건 복이 많다면 많은 거지. 읽는 책마다 감동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데, 이 책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선 감동이다. 순수하게 나를 부추기는 그런 감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내 몸이 떠오른다 .나의 몸에 은밀히 숨어 들어있는 전기가 나의 신경세포에 관여하여 이렇게 속삭인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 그들도 나처럼 어려운 물리의 편식을 깨뜨렸으면 좋겠어. 우리는 오늘도 우리를 대신하여 수없이 고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한 과학자들 덕에 이렇게 편리한 삶을 살고 있잖아. 자 보라구. 그들의 고뇌가 우리들에게 안겨준 어마어마한 풍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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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이 리뷰 올린 것들 읽어보았는데, 쓴 사람마다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은 꼭 사서 읽고 싶게끔 쓰네요. 이렇게 좋은 책이군요. 님 때문에 이책도 보관함에 들어갑니다. 님이 쓰신 리뷰 읽다보면 모두 모두 사고 싶어져요. 잘 읽었어요. 역시 추천할게요!!

필터 2005-05-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이 책 처음에 달려들어 읽다가 아차 좀 멀어지던데요....그랬는데 뒷부분에 있는 4/1의 글에 다시 마음이 기울고....우리의 뇌와 관련된 부분이 참 좋더라구요....저도 님의 리뷰 마음 여유 가지고 읽어 볼....^^*
 
병아리에게도 배꼽이 있을까 자모사이언스 23
이자벨 아우어바흐 지음, 안냐 필러 그림, 고은주 옮김 / 자음과모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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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와 함께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이 책을 사게 되었다.제목부터가 썩 마음을 잡아 끌었다.아이가 잠든 밤이나 학교에 간 후 모두 읽었다.그리고 어제 이곳에서 두권을 더 주문했다.조카들에게 어린이날 기념으로 선물하기 위해서다. 더이상 망설임이 없이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끊임없이 묻고 묻는다.엉뚱하기조차 한 아이들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고 이어진다.미처 대답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당혹감은 아랑곳없이 다시 이어지는 물음. "왜?","왜요?"

제대로 된 부모가 되어야 하는 현명한 부모는 어떻게든 대답해 주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물음에 귀 기울여 보지만, 속 시원히 대답해주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은 어른들의 생각을 웃돌고 뛰어넘기 일쑤다. 먼저 지치는 것은 늘 어른들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감탄할 정도로 아이들의 물음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터무니없는 물음만도 아니다. 생활의 작은 것들부터 광활한 우주세계까지 눈에 보이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들이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는 물음마저도 아이들에게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씨앗'이 되어 줄 것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가 기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물음에 답해 줄 'RJ리'가 부족하거나 설령 알고 있어도 좀더 구체적으로 대답해줄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우리가 먼저 지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아이들에게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이 주제다. 먼 이야기들이 아니라 우리 몸을 비롯하여 가까이에 늘 보이고 일어나기 쉬운 것들에 대한 기발한 물음과 재미있는 대답을 담고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과학적인 원리를 사실대로 전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읽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부터 시작하는 생물학적인 원리부터 바다나 우주로 이어지는 광활한 세계에 대한 법칙들까지 아주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병아리에게도 배꼽이 있을까? 이 제목 앞에 이미 수많은 병아리나 닭을 보았으며 얼마든지 먹고 살아 왔음에도 병아리에 배꼽이 있는지 없는지 가물가물했다. 이 기발한 질문 앞에 판매대에 있던 생닭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도마위에 있던 생닭의 배꼽 자리를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지난 여름에 먹었던 삼계탕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해도 막막할 뿐이었다.

'병아리에게도 배꼽이 있을까?' 이렇게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매일 보는 하늘이 파란 이유를 이미 우리들은 학교에서 학습하였음에도 아이들이 물으면 제대로 설명이나 해줄 수 있을까? 방귀는 어떻게 하여 뀌게 되는 건지, 파리는 왜 다리를 비벼대는지. 이 책은 이런 물음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룬다. 첫째 하늘과 관련한 이야기부터 다섯째 우리 몸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담고 있는 서른 가지 질문들을 몇 개만 소개해 보면 이렇다.

"은하수에도 나무들이 자랄까, 병아리에게도 배꼽이 있을까, 돌고래는 왜 물위로 올라와서 숨을 쉴까, 동화는 누가 생각해 냈을까, 추우면 왜 이가 덜덜 떨릴까, 왜 우리 스스로는 간지럼을 못태울까, 사람들은 왜 방귀를 뀔까?, 치즈에는 왜 구멍이 있을까?, 하늘은 왜 파랗게 보일까, 은하수에도 나무들이 자랄까, 딱따구리는 왜 나무를 쫄까, 샴쌍둥이는 왜 태어날까."

한편 이 책은 아이들에게 한 가지 물음에 대하여 대답해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궁금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또 아이들 스스로 알고 있으면 생활의 위험에 놓이지 않을 수도 있는 지혜까지 일러준다.

물음과 관련하여 덧붙여 둔 간단한 실험을 통하여 아이는 비교적 쉽게 과학 원리를 체험하고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원리에 대한 실험이나 머리카락의 건강 지수를 알아보는 실험은 돋보인다.

혹시, "별걸 다 묻는다", "아이들은 그런 것 몰라도 돼", "그걸 말이라고 하니?""그런 걸 왜 묻는데?" 이런 대답에 더 알고 싶었던 호기심을 눌러버린 기억이 있진 않는가.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역시 되풀이 하고 있는 그런 잘못은 아닌가.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을 아이들보다 먼저 읽어 보면서, 책을 놓지 못하고 반짝 반짝 빛나는 아이의 순진한 눈망울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호기심을 맘껏 충족해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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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1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 궁금해지네요^^

필터 2005-05-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마 3권 샀지 싶어요....^^*....정말 기가막히게 써보고 싶었던 책인데....나의 졸필로 가려졋나 싶네요
 
- 지성자연사박물관 1
백남극 / 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무엇인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뱀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유년시절 한때라도 시골서 자랐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터라 동물원에서나 보았을 뿐인 사람들마저 이 뱀을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막연히 두렵고 공포스러우며 혐오스럽기도 한 뱀. 이런 뱀을 연구하여 제대로 된 뱀에 관한 책 한 권조차 없는 척박한 우리 현실에 디딤돌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뱀 박사 1호인 백남극 박사다.

뱀 박사의 <뱀>을 소개하고 싶다. 남들이 외면하는 분야에 일생을 바친 소신이 일궈낸 그 가치 있는 것을 널리 알려 함께 하고 싶다.

뱀이란 제목만 가지고 혹자는 독자되기를 두려워하거나 꺼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책 속의 100여점에 달하는 컬러사진 대부분이 이 뱀이다. 혹은 뱀과 관련된 사진들이 담겨 있다.(혹시라도 뱀을 좋아하는 사람이 원없이 볼 수 있을 만큼 뱀의 다양한 사진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있는가' 금방 감탄할 수밖에 없다. 한 학자의 소신에 고개 숙여 답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쓴 백남극 박사는 여러 종류의 뱀을 실제로 사육하며 얻어낸 지식들과, 뱀사냥(?)을 통하여 얻어진 것들을 이 책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파충류에 관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연구, 그 업적의 결과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서 뱀 앞에서 호기심으로 물어 보는 아이에게 우리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인가. 뱀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앞서 우리는 뱀에 대하여 무엇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막연히 두려워하고 말하기조차 꺼려야 하는가.

이 책 속에는 뱀에 관한 기본 지식과 함께 우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잘못된 상식들을 수도 없이 지적해주고 있다. 요즘처럼 겨울잠에서 깨어난 뱀이 가장 많은 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알아야 할 '꺼리'이다.

우리들이 독사와 비독사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머리 모양을 말하는데 흔히 알려진 상식처럼 독사만이 머리가 삼각꼴은 아니라고 한다. 독이 없는 뱀도 비상시에 독사처럼 머리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기도 한다고 하며, 머리가 둥근 것 중에도 치명적인 양의 독을 품고 있는 게 있고도 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이야기들도 많다. 뱀은 일년에 두세 번 허물을 반드시 벗어야 한다는 것, 허물을 벗지 않으면 죽고 만다는 것, 뱀의 똥은 백묵처럼 쓰이기도 한다는 것, 뱀이 똬리를 트는 이유 등 아이들과 동물원에 가서 으스대고 들려줄 수 있는 뱀에 관한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롭다.

뱀과 관련한 신앙이나 전해오는 뱀과 관련한 설화 등 동화처럼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도 소개하고 있으며, 뱀에 물렸을 경우의 응급처치법, 또한 앞으로 뱀 사육을 할 사람들을 위한 이런 저런 정보까지 담아내고 있다.

막연히 두렵고 혐오스러워 택했던 책인데, 시시때때로 들고 펼쳐봄은 이 책에 대한 그만한 가치랄까. 막연히 두렵다가 이 책을 통하여 낱낱이 알고 나니 뱀이란 막연히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1억 3천만년 전,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구상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살고 있는 지구의 파수꾼, 뱀!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40배나 되는 오랜 세월을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해왔던 파충류의 대표로서…" 이런 뱀이다. 이런 뱀의 실체를 낱낱이 해부하고 알려주고 있다. 뱀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14종의 뱀에 관하여 사진과 함께 그 특성을 낱낱이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뱀에 물렸을 경우 응급처치법도 실질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들려준다. 들이나 산에 자주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막연히 두려운 뱀에 대하여 낱낱이 알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많다.

막연히 두렵고, 혐오스러웠던 편견을 이 책으로 하여 누그러뜨렸다. 이제 뱀은 무조건 멀리해야하는 그런 존재만은 아니다 생태계 한몫을 담당하는 지구의 같은 생물체이다.

산이나 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리도 없이 어느 순간 발밑을 공략하고 말지도 모를 뱀에 대한 공포를 없애줄 그런 책이다. 아이들에게는 특정 존재에 대한 편견을 키우지 않게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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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1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은 정말 무조건 싫은데요~ 님의 리뷰 읽어보니까 조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뱀박사도 있군요. 산이나 들에 자주 다니는 사람에게는 필독서로 꼭 읽어보아야 될 책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근데, 리뷰를 어찌 이리 길게 쓰시나요?

필터 2005-05-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은 책이랍니다.음...지성사에서 나온 시리즈인데 다른 책 박쥐 신청했습니다. 아마 내일쯤 오지 싶어요.오늘 올 줄 알았더니 안와서 서운....제 리뷰가 너무 길지요?...아고 글좀 줄여 보아야지 썼다하면 길어지니....

2005-05-1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올의 청계천이야기 - 서울, 유교적 풍류의 미래도시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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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의 <청계천 이야기>에는 짧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기본적으로는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글들이다. 청계천 복원과 미래의 도시, 풍류의 도시로서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문화일보> 기자로서 문화일보에 기고했던 글들도 싣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앞의 네부분은 청계천 복원과 관련된 글들이다. '유교적 풍류의 도시철학' '청계천의 본명은 개천(開川), 반드시 열려야 한다' '유교적 풍류 꿈꾸는 역사 인식의 분기점' '청계천복원은 도시미화 아닌 도시혁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네장에서 다루고 있는 전체적인 내용은 우리에게 좀 더 세세하게 알려질 필요가 있는 우리의 중심도시 서울과 도시개발의 제대로 된 정책이나 방향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두장은 '도올 어린이 교육신헌'과 '도올 어린이 교육신헌 해제'라는 글이다. 어린이라는 개념과 어린이날을 비롯한 어린이들에 관련된 교육 등에 대한 독창적인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첫장 '유교적 풍류의 도시 철학'에서는 미래의 도시로서 서울을 '유교적 풍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죽어 있는 도시가 아닌 살아 있는 도시 구현을 위한 도올의 기철학적 논거들이다. 청계천 복원의 의미가 또 다른 개발이 아닌 문명과 문화적인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김용옥은 여러가지 사상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첫번째에서 다루어지는 글들은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삼간론이나 주역, 임마누엘 칸트의 시간적 개념이나 동의보감 등 여러 사상들을 통하여 미래도시, 풍류도시로서의 서울의 개념을 설명해 주는데 다소 난해하다. 노자의 수레바퀴와 관련한 글은 아무래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두번째는 청계천이 복원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풍수지리학적인 면에서의 설명이다. 지금의 서울이 있기까지를 풍수지리학적인 시각에서 설명하며 여체와 비유하여 청계천을 생명의 근원인 '현빈지문'으로 그 의미를 두기도 하는 김용옥의 독창적인 글들이다.

세번째, 청계천 복원을 주도하고 있는 이명박 시장과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다. 도올과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개발(복개와 복원)이 또 다른 도시 개발 사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의 주도자로서 청계천 복원에 대한 필요성이나 서울시장으로서 대중교통에 대한 정책 등에 관한 글을 접할 수 있다. 잠시 깊은 생각을 머물게 하는 대목은 이명박 시장이 지난 날 청계천의 복개에 참여했고 이제는 청계천 복원의 그 주도자의 입장이라는 시대 상황과 관련된 글이다.

네번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도시 꾸리찌바시의 성공적 변신이야기가 실려 있다. 꾸리찌바시의 성공적 변신을 주도했던 레르네르 전 시장과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1960년대만 하여도 어느 도시나 다름 없던 꾸리찌바가 세계가 극찬하는 유토피아적 도시로 성공할 수 있음의 그 기본적인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지혜의 등대'. 꾸리찌바시 후미진 곳곳에는 '지혜의 등대'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세워져 있어서 어둔 밤을 밝힌다. 이 '지혜의 등대'는 파출소나 동사무소, 도서관을 통합한 역활을 한다.

생태도시 꾸리찌바시와 레르네르에 관하여 소개하는 글을 덧붙여 보면

"... 레르네르는 그 도시의 시장을 세번이나 했고,빠리나의 주지사를 두번이나 했다. 브라질의 가장 존경받는 행정가로서 그는 꾸리찌바를 이 세상에서 가장 지속적인 생태도시로 변모시켰다. ... 레르네르와 꾸리찌바시는 유엔 최고의 환경상(1990), 에너지 보존 국제 협회상(1990), 하비타트 영예대상(1991), 유니세프 아동 평화상(1996) 등 수도 없는 국제 대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타임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건전한 도시로서 꾸리찌바를 뽑았다."

완벽한 버스 교통 시스템과 환경친화적 도시설계로 '꿈의 도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꾸리찌바시. 그리고 이런 도시를 만들어 낸 레르네르. 외형적인 눈부심보다는 서민들의 생활을 편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갖가지 도시행정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네번째 장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다소 어려운 느낌이 든다.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에 실려진 글들은 도올의 기철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내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번째 장과 네번째 장은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특히 네번째에서 만난 생태도시 브라질의 전 시장 레르네르의 이야기는 서울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반드시 모범 삼아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는 도올이 <문화일보>에 게재한 글들로 어린이에 관한 독창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어린이'라는 말이 서양의 기독교적인 교육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니고, 동학사상에서 온 토착적인 것이라고 도올은 말한다. 아울러 어린이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비교적 알기 쉽게 들려 주고 있다.

미래 도시로서의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한 서울에 거는 기대와 어른들의 영원한 로맨스인 어린이들은 더이상 방임되어서는 안된다. 말하자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렇다. 서울과 어린이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우리 어린이 사상이나 어린이날을 흔히 서양의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오인한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아울러 우리 전통사상 속에서의 어린이나 아녀자의 의미를 우리의 토착적인 사상이나 풍토를 예로 들어 말해 준다. 근대, 가장 자주적인 운동이었다는 동학사상과 우리의 어린이를 접목시켜 들려 준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자못 의미 있는 그런 글들이다.

이 책의 분량은 140페이지에 불과하다. 시간적으로 보면 짧은 시간에 쉽게 읽어낼 수도 있는 그런 분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고 얇은 책이 담고 있는 글들은 쉽게 넘겨 읽는 그런 글들은 결코 아니다. 특히 생태도시 꾸리찌바에 관한 부분은 몇 번을 되풀이해 읽어도 좋을 그런 글들이다. 또한 도시개발의 정책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졌으면 하는 그런 내용들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다. 그리하여 우리도 서울을 꾸리찌바 같은 도시로 꿈꾸게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하여 꾸리찌바의 시민들이 그랬듯 자발적인 참여를 아깝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도시 행정정책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 정책의 길에 앞으로 나설 사람들도 또한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리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든지, 이랬다 저랬다하는 비효율적인 정책을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싶다.

꾸리찌바 후미진 곳에서 밝게 빛나고 있는 지혜의 등대. 이 지혜의 등대로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으로 숨쉴 수 있는 서울과 우리의 다른 도시 건설을 부디 헤아려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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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관심 분야도 참 방대하네요. 이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님의 글을 읽고 나면 꼭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어요^^

필터 2005-05-1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이 책 사보지 마세용..
제가 반했던 부분은 꾸리찌바시에 관한 글 뿐이예요...^^*
대신 꾸리찌바에 관한 책을 사보세요
이책은 공짜로 얻은겁니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슬로건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는 과거를 조작한다.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그렇게 조작한다. 오지도 않은 1984년을 1979년에 읽었다. 삶에 대하여 특별한 주체성이 확립되기 전 어린 나이에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이 슬로건만이 오래 남아 있다.

현재에 서서 과거를 보고, 현재에 서서 미래를 추측해본다. 가상해본다. 조지 오웰이 다룬 것처럼 과거를 조작할 순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만들어 보고 가상설정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상상하는 크기나 폭만큼 얼마든지 넓고 크고 깊게 만들어 볼 수 있는 미래.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실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추측하는 가상의 세계가 당연히 일어날 듯 잘 짜여진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가상이다. 가상의 세계가 더할 수 없이 생생하다.

조지 오웰이 예측한 미래 1984년을 이미 이십 년이나 지난 오늘 나는 살고 있다. 1984년 이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책을 일부러 읽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지난 역사에서 지금 살아가는 지혜를 빌리고 싶었었다.

조지 오웰의 1984년도 그다지 특별하게 기억 될 정도의 느낌으로 읽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 책을 선택한 건 순전히 호기심에서 였다.인간의 유전자를 맘대로 조작한다든지, 그리하여 복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문제들이 궁금하여 이 책을 선뜻 택한 것이다.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함께 우리들이 우려하는 문제들을 골라 다루고 있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어떤 세계든지 이끌어 나갈 주체로서의 우리 몸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첫장에서 다루어진다.

두 번째 장에서는 지구 파멸까지 초래할 수 있는 핵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세 번째, 네 번째 장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 강대국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네트워크와 관련된 삶과 결코 나몰라라 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에서 다룬다.

생물학과 관련한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 우리 몸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가상의 첫 장. 자식을 주문하고, 그 주문된 자식을 받은 뒤 놀라는 부모들의 이야기부터 우선 솔깃하게 들어왔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신체적, 지적, 심지어 감성적 특성까지도 설계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막상 자신들의 자식이 제조되어 나오자 부모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 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애덤을 생각하였다. 몰리를 위하여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지금을 살아가는 애덤과 질소 속에서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다른 애덤들. 그리고 불치병을 치료할 신약을 기다리며 냉동인간을 자처한 많은 사람들.

몰리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그 용도로 인간에 의하여 애덤이 만들어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찬반의 의견으로 맞섰다. 애덤을 만들어 낸 인간들이 그 인간제조술을 바탕으로 이제는 자식을 주문하고 과학자들은 주문받은 자식을 생산해낸다.

교통사고로 팔다리를 잃어도, 혹은 장기가 손상되어도 인간들은 척척 만들어서 붙여주고 몸안에 장기를 넣어 준다. 그렇게 보내온 21세기의 한때를 2112년 지금 되돌아 본다. 22세기를 살고서도 23세기를 이어 살 만큼 인간의 수명도 얼마든지 연장되어져 있다. 제목처럼 가상에 불과한가.

두 번째로, 그리 멀지않은 2036년에 전세계에 생중계 되는 방송프로그램이다. 이 생중계 방송에서 일본 총리는 과거사 관련하여 침통한 어조로 연설의 첫 말을 한다.

"99년 전 우리 국민이 저지른 수치스러운 행위를 일본 국민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30년 후인 2036년 12월 13일은 난징 대학살 99주년 그 가상의 날이다. 일본 총리가 난징대학살 추모 기념관 개관식에 초대되어 침통한 어조와 모습으로 연설을 하는 것.

지금 기고 만장한 일본이 어찌하여 중국에 사죄하는가. 자발적으로?천만에 그건 아니다. 2030년대에 중국은 세계의 강자가 된다. 이제 일본은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중국과 손을 잡아야만 한다. 중국에서 일본에게 그 동맹의 조건으로 내세운 조건은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저지른 극악 범죄행위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다.

그 사과의 조건으로 중국내에 난징을 비롯한 5곳에 해당하는 전쟁기념관을 지으라는 것이다. 일본은 마지막까지 버텨 보지만, 결국은 살아 남는 어쩔 수 없는 방법으로 중국의 조건에 굴복한다.

일본이 중국에 사죄할 수밖에 없는 설정, 가상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가도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을 기획한 사람들이 보는 구미적인 시각에서 우리 한반도는 결코 중요할 수 없는 그런 변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지금부터 2112년까지의 픽션일 뿐이다. 그렇지만 모든 픽션은 논픽션을 가능성으로 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두고 여러 각도의 모티브에 의하여 이 책은 씌어졌다.이 책이 그려내는 가상의 순간들은 지금의 벌어지고 있는 순간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생생하게 전개된다.

조지오웰의 1984년 이후 인간 미래의 삶을 가장 잘 예측하고 묘사한 책이라든가? 과학문명의 눈부신 발전과 인간 복제 등 놀라운 과학적인 성과에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회의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하여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불안과 회의를 다시 바라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예측하는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다면 또한 이 가상역사 21세기를 펼쳐보라.

536페이지라는 분량에 결코 기죽지 말자. 덤벼 펼쳐보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만큼 생생한 긴장을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가상의 세계에 자주 혼동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과연 어느 지점인지. 제일 뒷장에 실어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몇 페이지를 읽었다. 지금 현재 내가 살아가는 시점의 글인줄 알았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읽다보니 아뿔싸 2112년에 씌어지고 있는 글이었다. 이렇게 나도 모르는 순간 착각을 되풀이 하며 읽은 책이다.

<가상역사 21세기>가 포함하고 있는 요소들은 다분히 매력적이다. 과학적인 무한한 호기심과 한편으로는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미래에 대한 생생한 설정이 매력적이다. 어쨌거나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그래도 행복한 시대라는 것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한통속이다. 미래는 일부러 설정된 따로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후는 모두 미래고 가상세계로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출발점에 있다. 조금 전 호흡한 순간들은 지금 현재, 미래를 넘어가는 한 호흡이다. 결국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21세기다.

다만 아쉽다면,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책을 기꺼이 집어들고 충분히 읽어 낼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그런 책이다. 우리 세대가 미처 발견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충분히 발견해내고 훨씬 더 매력있는 미래 설계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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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1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지 오웰의 <1984년>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 말이 가장 생생히 기억나네요. 가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하고 헷갈려요. 결국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21세기는 행복한 시대라는 것에 안도를 하네요^^ 우리 청소년들... 정말 책 읽을 시간 없지요.. 그래서 안타까워요

필터 2005-05-13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청소년들이 이 책 읽으면 아마 우리같은 머리속에서 나오는 것과는
또 엄청 틀린 구성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스타워즈는 저리가라 할만큼의
대단한 스펙타클~.....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