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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
김도수 지음 / 전라도닷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징글징글한 고향 사랑이야기, 고향은 계속된다.
아저씨는 고향 집이 그렇게 좋소? 니 꼬추는 괜찮냐? 삥아리가 몇마리 나왔능가 모르겄다. 물만 안 질어다 묵어도 좀 핀헐 틴디. 꽃가마 하나 얻어 타고 갈려고 써빠지게 일헌다. 어머니 사랑비는 언제나 세울까. 마당에 멍석 깔고 보던 14인치 흑백 텔레비전. 존말로 헐 때 나와 줘. 해필이면 시아부지 양발이 떠내려가 부렀다냐. 니가 쇠죽을 어치게 쒀 줬냐. 그 땐 도수 되련님 쥐어박고 싶었제. 달걀로 사 먹었던 아이스 깨끼.- 목록에서
책의 목록부터 훑다가 마음속 사투리에 우선 다급하게 골라 읽었던 글들이다. 삥아리, 멍석, 질어다, 해필이면…. 고향이 물씬 풍겨나는 그런 단어들이다. 제목만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이 되면서도, 무척 궁금하여서 페이지를 들추어가며 골라 읽었다. 골라 읽으며 '역시 그렇구나' 싶을 만큼 공감하며 고향으로 자꾸만 내달았다.
저자의 고향에는 가본 적 없지만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자라 온 고향이야기들이었다. 어디 이 글뿐이랴. 시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어서 어느 날 무척 그립기도 하여 눈가에 이슬 맺히기도 몇 번은 하였을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한껏 부러울 그런 이야기들이랄까. |
책 속에서 만나는 고향 모습들…추억 몇 자락은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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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도수 |
책 속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마음을 잡아끈다. 늘 보고 자라 온 모습들이다. 자랄 때만 해도 예사로 보았는데, 어느 날 문득 몹시도 그리운 고향을 대신해주는 모습들…. 그 모습들을 다시 책 속에서 만나는 동안은 덜 외롭다.
올망졸망 옥수수가 매달린 툇마루 흙벽, 토란대 말리는 좁다란 마루, 낮은 담 위에 노랗게 익어가는 호박, 고개를 숙여야만 들고 날 수 있는 한지가 발라진 문, 꼴망태, 닭까리, 조록 조록 매달려 말라가는 곶감, 섬돌 위에 엎어놓은 까만 고무신, 정자나무 아래에서 담소하는 마을 사람들의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되찾아 놓은 마을로 들어가는 징·검·다·리.
저자가 직접 찍어 책 속에 곁들인 풍경에, 누구라도 마음속에서 아스라이 흐르던 이야기 몇 꼭지, 추억 몇 자락 쉽게 끄집어내어 들려 줄 수 있을 법하다. 우연히 고향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단박에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끈끈한 형제의 정까지 느낄법한 그런 모습들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눈이 자꾸 머물고 마음이 자꾸 머물러서, 이른 봄부터 한여름 내내 냇가에서 놀던 동무 생각에 여름휴가 길에 읽은 책인데, 명절 앞두고 고향길, 그 설렘에 다시 펼쳐 읽게 된 책이다. 아니 지난 해 나에게 온 이후로 고향 생각이 나면 자꾸만 집어 드는 책이다. 고향을 어떻게 담아 올까 싶어져서 다시 꺼내들었다. 어느새 고향집에 가있다.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는 '징글징글한 고향 사랑이야기들'을 듬뿍 담고 있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의 글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살아 있지만, 세월 따라 묻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의 정서를 바탕으로, 소박한 이야기들이 낯익은 사투리들과 함께 흠씬 가슴을 적신다.
저자는 아름다운 섬진강변 진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80년대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객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객지생활을 하며 주말이면 이 책의 이야기들의 바탕이 되는 고향 진뫼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어 쪄먹는다. 그리고 섬진강변에 나가 피리를 잡고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서 고향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꾸 발길이 그리로 돌려져서 헐값 50만원에 팔아버린 고향집을 다시 되찾기까지의 이야기, 큰 물난리에 돌들이 떠내려가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이어놓던 300여년 이어져 온 그 징검다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잇게 된 이야기, 섬진강변의 추억 어린 바위들을 되찾아 제자리에 갖다 놓은 이야기,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나이든 고향 어른들만 살아가는 고향에 젊은 온기를 불어 넣은 이야기 등 사계절이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있는 고향이야기들이다.
7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저자가 들려주는 형제들 간의 끈끈한 이야기도, '그립다 깨복쟁이 친구들'이라는 큰 제목으로 자잘 자잘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난 듯 정겨운 이야기들이다. 웃음 머금고 읽다보면, 어느새 양지 볕에서 빠끔사리(소꿉놀이) 하던 동무들 생각이 아련하게 피어난다.
어느 해 이맘쯤, 친구가 와서 주먹을 펴보였다. 친구 손에는 연둣빛 풋밤이 세알 있어서 우린 그걸 손톱으로 밀어 까서 먹었었는데…하루 종일 붙어 노는 것도 모자라 밤새 촉수 낮은 불빛아래서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밤새 재잘댔지…커서도 변치 말자고 우정을 맹세하던 고향 친구들은 모두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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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맘시리도록 보았던 찰옥수수와 진뫼마을로 들어가는 징검다리가 있는 섬진강변. 징검다리는 저자가 고향에 찾아 놓은 마을의 보물 1호다. 큰 물난리에 징검다리가 유실되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잇곤 하였다. 300여 년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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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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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월곡떡'이란 큰 제목 속에 있는 11편의 글은 저자가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로 가슴 아린 글들이다. 아직 친정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는데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우리의 대부분 어머니들처럼 어지간히 생활력 강한 저자의 어머니가 많은 형제들을 키워내면서 모질어지는 모습이 내 어머니의 모습이어서 눈물이 자꾸 맺혔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고향 사랑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사람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하다. 고향은 강하고 모진 어른들도 순하게 만들어 주고 응석도 부리고 서러움 하소연하며 실컷 울어도 좋을 어머니 가슴 같은 곳이 아닐까. 아무도 살지 않아 성묘 후 멀찍이서 고향마을과 집터를 바라보다 올지라도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는 곳 고향.
올해는 친정 동네 빈집들마다 환한 불이 켜지고, 집마다 송편 쪄내는 솔내음이 가득 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