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음식에 관한 47가지 진실
크레이그 샘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음식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가? 철저하게 무관심한가?

잊을만하면 냉동 꽃게 등에서 납이 발견된다. 어디 꽃게뿐이랴. 싼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아먹는 양심불량 상인들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치란다. 중금속 수치가 위험수치를 웃돈다는 특종이 충격을 주더니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다시 이번에는 문제의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식당에서 김치를 향하는 젓가락이 머뭇거려지고 있다. 어디 하루 이틀 이야기인가.

단지 값싸고 위생상태가 불결한 중국산뿐이랴. 앞서서 농약을 사용하여 콩나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부대찌개 재료로 가축에게나 먹일 수 있는 미군부대 음식쓰레기를 가공하여 식당에 공급한 상인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공업용 재료로 고급이미지의 제품을 생산해낸 악덕업자가 있었으며, 단무지나 만두파동 등 헤아릴 수가 없다. 식품 포장재를 둘러싼 발암성분이나 아이들 과자, 햄 등의 가공식품에 함유된 화학성분 역시 우리들이 끊임없이 관심 두어야 할 특종이다.

할인점 또한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싸고 음식에 관한한 위생적인 면에서도 재래시장보다 더 그럴싸해 보이는 할인점이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업제품은 물론, 식료품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할인점은, 우리에게 얼마나 진실한 소비의 동반자인가? 무엇이든 싸게? 그렇지만 어느 날 툭 불거진 할인점의 진실은 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상태였다. 국적 불명이었다. 음식을 둘러 싼 잘못을 돈벌이에 급급한 그들에게만 던질 것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자. 매스컴에서 일단 조용하면 먹어도 되고 구매해도 되는 것으로 우리는 안심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음식관련 특종이 우리를 불시에 후려칠지도 모른다. 그럼 정작 우리는 음식물의 소비주체자로서 우리 앞에 오는 음식물의 정체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음식을 둘러 싼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죽는 날까지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는 우리가 자신이 매일 먹는 음식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식품을 둘러 싼 수많은 문제들은, 발암물질이 검출되면 그때야 부랴부랴 수입을 금지한다든지, 식품에 관한 현실적인 어떤 기준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태도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적합하지 못한 재료를 음식으로 둔갑시킨다든지, 싸게 수입한 식품을 엄청난 이익을 내며 팔아먹는 악덕업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음식물 소비주체인 우리들에게도 분명 문제는 있었다.

이 책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음식에 관한 47가지 진실>은 음식물의 소비주체인 우리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담고 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47가지 진실만이 아닌 그보다 훨씬 많은 진실을 들려주며 고발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충격과 분노와 함께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는 아마 나처럼 대부분 분노하고, 너무 무관심했음에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씁쓸함은 떨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럴지도 모르겠다. 그럼 대체 무엇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거야?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 자기들부터 먹어 보라지. 아무리 돈 버는 게 중요하다고 먹는 걸로 사기를 쳐? 언제까지 불시에 덮칠 특종에 막연히 분노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소비주체로서 알 것은 알아 제대로 된 권리 찾기에 나설 것인가. 이 책이 나온 이유 중 하나이다.

쉽게 접하는 현장 이야기부터 국가 정책까지...

..육류의 유통과정에서 이런 경향이 심했고, 결국 살모넬라균이나 대장균, 광우병이 등장해 겉보기에는 싸보였던 가격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매장에서 소비자의 눈에 맨 먼저 띄는 것은 신선한 농산물이다. 이 신선한 인상은 매장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각인된다. 과일과 채소 다음으로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썩기 쉬운 식품은 빵과 우유다. 이런 물품은 보통 가게 맨 안쪽에 놓여 있는데 이것을 사려면 매장을 완전히 가로질러 가야만 한다.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는 잘 알려진 몇 안 되는 식품의 가격만 제대로 알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유와 식빵 등 비교적 가격이 고정된 물품의 가격을 왕창 할인함으로써 대형 할인매장의 가격이 무척 싸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심어준다...

-'대형할인매장-칼자루를 쥔 쪽은 누구?' 편에서 부분 발췌


이 책의 저자가 영국인이어서 그 나라의 실정과 바탕으로 미국 같은 나라들의 정책을 거론하지만, 오늘 날 인류를 둘러 싼 많은 문제들을 국경을 따로 하여 생각할 수 있는가.

너무 포괄적인 이야기들이어서 약간 힘들게 읽었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것들이다. 또한 우리가 끊임없이 불안해왔으며 막연히 궁금했지만 도대체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다. 현장은 다르지만 우리들이 생활에서 직접 느끼는 식료품과 관련한 현장의 이야기들부터 거대 식품 산업에 대한 나라의 정책까지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자.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먹을 것에 대하여 매스컴에서 특종을 때릴 때만 부르르 분노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으며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이 책은 현장에서 조금만 눈 여겨 보면 이제까지 미처 몰랐던 것이 보이는 것에 눈 트임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하여 좀 더 음식물의 소비 주체자로서 떳떳하게 건강한 음식물의 권리를 요구하게 할 것이다.

'음식은 정치적이다! 거대 식품산업과 정부의 이권 결탁 메커니즘을 파헤쳐서 우리 식탁이 어떻게 오염되어 가는지 고발한 화제작'이라는 표현이 뒤표지에 나온다.

이 책을 통하여 내 스스로 너무 안심하고 있었던 식품의 실체를 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아쉽고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유해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가 있긴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무언가 막연히 알고 있던 것에 대하여 눈이 트여가고 있어서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 더 앞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11-18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에 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 숫자꺼리
박영수 지음, 이리 그림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를 둘러 싼 숫자,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영과 공의 차이는 무엇일까? 즉, 숫자 '0'을 어떤 경우에 '영'이라 읽어야 하고, 어떤 경우에 '공'으로 읽어야 할까? 어떤 이는 “영으로 읽든, 공으로 읽든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래 세 가지 숫자들을 읽어 보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정답에 가깝게 읽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차이를 말하라면, 확실하게 구분하여 짚어주기란 어쩐지 자신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전화번호:010-569-0007-공일공-오륙구-공공칠칠 /달력:2005년-이천오년,또는 이공공오년 /계산기:0.0001-영점영영일

-영과 공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를 구별해주고 사람과 숫자의 오랜 개념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정리하면 수량의 개념일 때는 '영' 단순한 아라비아 숫자일 때는 '공'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수에 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숫자꺼리>는, 칼럼니스트 박영수가 쓴 숫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4자는 불길하다. 7은 행운의 숫자며, 중국인들은 8자를 좋아한다더라" 등 누구나 흔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아닌, 좀 더 전문적이며 다양한 이야기 거리들이다. 숫자 0에서 666까지 한 꼭지, 혹은 네 꼭지까지 다양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따라 많은 것들을 함께 알아간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나를 둘러싼 수많은 숫자는 나와 함께 살아 왔다. 그리고 숫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다양하게 움직이고 변화하며 발전하고 있다. 째깍 째깍 우리의 순간순간을 돌고 돌며 우리 삶의 전반에 깊숙이 관련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이런 숫자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손가락질에 귀신이 따라 다닌다구요?

경우에 어긋나는 사람에게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또한 기분 나쁜 정도가 지나쳐 다툼을 할 때도 분노의 감정을 실어 삿대질을 한다. 반대로 누가 길을 물으면 별다른 뜻 없이 방향을 가리키며 검지를 펴고 ‘쭉!’ 저 멀리의 방향을 가리킨다. 물론 화났을 때의 손가락질과 방향지시의 손가락질은 큰 차이다. 그러나 똑같은 개념의 검지를 사용한다.

‘하나’ ‘처음’을 나타내는 손가락 ‘검지’를 통하여 알아보는 숫자 1편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으뜸을 나타내는 엄지와는 달리 하나, 처음의 의미로는 검지를 쓴다. 검지는 아기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몸짓 언어이며 어른이 된 후에도 가장 많이 쓰는 손가락이어서 처음의 의미로 하나를 나타낸다. 그리고 방향은 물론 사물을 가리킬 때도 엄지를 쭉 편다. 그런데 검지는 귀신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앗~! 검지에 귀신이?

'검'은 '귀신'을 뜻하는 옛말이며, '검지'는 '귀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말이 놀랍다. 옛 사람들은 검지로 누군가를 가리키면 귀신의 눈길이 그리로 쏠린다고 믿었다. 귀신마저 주목하는 곳이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그러니까 삿대질이나 손가락질은 최고의 모욕이었고 저주였다. 받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 나쁘다. 우리의 일상에서 격해진 감정 따라 너무 쉽게 삿대질과 손가락질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옛사람들은 검지를 함부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손가락질이나 삿대질이 귀신의 저주라고 기분 나빠하는 정서는 우리 나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가깝게는 일본에서, 멀리는 이슬람 문화권까지 보편화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뜻을 거의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지만 손가락질이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손가락질이 귀신의 저주라고 여겨진다니 여행객들은 더 주의할 일이다.

숫자를 통한 지적 탐구여행

다양한 숫자의 유쾌하고 다양한 스캔들이 참 재밌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 중에 우선 몇 개만 덧붙여 보면 이렇다.

11숫자 48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 사람이 평생 벗는 피부 무게가 대략 48킬로그램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70과 관련하여선 원자력 발전소가 바닷가에 세워지는 이유이고, 53이라는 숫자에는 트럼프의 비밀이 들어 있었다. 94라는 숫자와 관련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아기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에 뼈의 개수가 94개 없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숫자는 참 매력 있는 문자다. 날짜 하나에 그날 나의 기념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든가 삶을 바꾼 계기의 추억도 들어 있었다. 뿐만이랴? 오늘도 나는 하루를 더하였고 나이를 조금씩 더하였다. 일일이 의식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숫자들과 함께한 나의 하루였다. 놀랍다. 숫자와 늘 함께 살아서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숫자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을 줄이야?

숫자를 통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으며 유용했다. 숫자를 따라 가다보니 사회, 역사, 생활, 종교 등이 다양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은 초등학생 전 학년에 해당하는 기준을 잡아 둔 책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아이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아이들 책이라지만 이 책을 통하여 숫자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얻어낸 것들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기초를 얻었다.

이왕이면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숫자 여행은 어떨까. 요즘 아이들 책 중에는 부모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내 아이가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한 나머지 점점 책에서 멀어진다고 염려만 할것이 아니라 이런 책을 통하여 아이와 함께 해보는 호기심 여행은 어떨까? 그것도 책을 읽고 다양하게 이야기 나누어 볼 수 있는 소재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10-25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후의 만찬 1
하비에르 시에라 지음, 박지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하비에르 시에라의 <최후의 만찬 1, 2>는, 그림이 그려질 당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과 함께 찬사를 받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소재로 한 팩션(faction = fact + fiction,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의 문학작품)이다.

복원인가 훼손인가

22년간에 걸친 복원 작업 끝에 1999년 5월 28일 '최후의 만찬'이 드디어 다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을 때, 전세계 미술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논란이 팽팽했다.
"그림을 구제했다. 제대로 된 복원이다."
"그림을 망쳐 놓았다. 훼손이다."

당시 벽화에는 프레스코화가 일반적이었는데, 그 기법의 단점이라면 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섬세한 빛과 그림자를 그려내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레오나르도는 석고에 수지성 용해제를 첨가한 바탕과 템페라와 유채물감을 섞은 재료로 5년간에 걸쳐 이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석고의 수분이 재료의 기름에 반응하여 곰팡이가 발생했다. 결국 완성 20년 후부터 손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더니, 50년 후에는 '얼룩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500년이나 지나 22년간의 복구 작업 끝에 1999년 5월 28일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감동과는 달리 전세계 미술계는 복원과 훼손 논쟁으로 떠들썩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3년간의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세상에 선보인 <최후의 만찬>은 35개국에 수출되어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작가를 일약 팩션의 대부로 만들어 버린 작품이다. 작가는 말한다.
"80%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20%는 허구다. 그림의 배경 밀라노를 수없이 오고 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80%의 역사를 가지고 20%의 허구로 만들어낸 요리, 그 맛은 어떤 맛일까?

주인공이 되어 함께 풀어 보는 비밀코드

<최후의 만찬>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교황청에 '아고레로'라는 인물로부터 투서가 날아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위대한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교도의 우두머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밀라노 공작의 후원으로 대성당에 그리는 그림에 이교도적인 요소와, 그들만의 암호를 가득 그려 넣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최후의 만찬' 그림 오른쪽 끝에서 두번째에 자신을 그려 넣어 예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레오나르도는 교황을 정말로 배반한 것일까?

▲ 푸른책과 암호
ⓒ2005 노마드북스
밀라노로 파견된 레이레 신부는 암호를 풀어 나가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이교도들을 추적해 나간다. 말하자면 소설의 내용은 '최후의 만찬'에 이교도 레오나르도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려 넣었다는 비밀스런 음모를 종교 재판관이자 암호해독가인 레이레 신부가 풀어가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타로카드에 새겨진 푸른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푸른 책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든 '푸른 책'을 찾아 레오나르도가 이교도의 우두머리라는 걸 밝혀내야만 한다. 하나하나 살해되는 사람들. 살인범은 누구일까? 아고레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많은 의문과 팽팽한 긴장 속에서 결국 레이레 신부는 레오나르도가 그림에 숨겨둔 이교도적인 암호들을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

책을 읽다보면 간혹 작품속의 주인공이나 한 사람인양 착각하며 빠져들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사람들의 몸짓과 은밀한 눈짓까지 느껴져서 주인공인양 착각하며 나도 모르게 비밀코드를 찾아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잘 짜여진 각본대로 읽어 나가는 동안 레이레 신부보다 내가 먼저 그 비밀을 캐내고 싶은 어이없는 착각까지 할 만큼 빠져 들었다고 할까. 정신없이 빠져 들며 나도 모르게 되풀이하던 착각은 이랬다.

▲ 주세페 보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초상', 1516년경, 레오나르도가 그린 자화상? 진실은?
ⓒ2005 노마드북스
"레이레 신부가 암호를 해독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종교재판에 회부하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내어 부패한 교황청을 세상에 먼저 알려야 한다. 앗~! 레오나르도… 알렉산드로 수사처럼 은밀히 살해당할지도 몰라. 많은 추종자들을 위하여 어서 피해요."

그리하여 레이레 신부가 그림을 들여다보며 의문을 던질 때 나도 다시 책 속의 그림일망정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장미의 이름>과 <다 빈치 코드>의 중간

이 작품의 무엇이 착각까지 하며 빠져 들게 했을까? 소설 두 권을 읽는 내내 밀라노에서의 즐거운 탐험이었다. 아쉽다면, 불쑥불쑥 보고 확인하고 싶던, 르네상스 부흥기의 위대한 걸작인 실제의 '최후의 만찬'(1494~1498,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 세로 9.1미터, 가로 4.2미터)을 지금 당장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전에 <장미의 이름>을 읽으며 팽팽하게 긴장하고 느꼈던 그런 쾌감이랄까. 오랜만에 맛보는 충족된 지적 스릴이랄까. 이런 나의 느낌을 굳이 비교하자면 <장미의 이름>과 최근 열광을 불러 일으켰던 <다 빈치 코드>와 그 중간이라면 좋겠다. 다만 <장미의 이름>이 다소 어려웠다면 이 작품은 비밀코드를 뒤따라가며 술술 읽어졌다. 또한 <다 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결혼설을 바탕으로 최후의 만찬 일부분을 거론했다면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을 둘러싸고 있다.

현학적인 호기심인가, 지적 충족까지 겸한 자연스런 호기심인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가는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모두 다를 것이다. 이 소설은 또한 당시 중세사회와 교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른 많은 작품들의 탄생배경에 대한 정보도 제공함으로써 지적 충족까지 얻을 수 있게 한다. 단순한 재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 할까.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이 종교화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듯, 소설 <최후의 만찬> 역시 종교를 떠나 걸작으로서 누구나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만족할 것이다. 80%의 진실을 20%의 허구가 얼마나 맛있게 요리해주는지는 읽는 사람마다 그 맛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소설이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일거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작가의 음모에 걸려든 줄도 모르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걸려들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신없이 읽었다. 팩션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하비에라 시에라는 낯설었다. 그러나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며, 또 다른 누군가가 동일 소재 '최후의 만찬'으로 새로운 비밀코드를 우리 앞에 내보인다면 주저없이 읽어 보고 싶다.

세계의 미술계가 '최후의 만찬'을 둘러싸고 논쟁을 되풀이하듯, 하비에르 시에라의 작품에 쏟아지는 세계 35개국의 관심과 찬사가 절대로 아깝지 않다는 그런 감동이었다.

'최후의 만찬' 속에 숨은 일곱 가지 비밀을 캐라!

▲ 이 작품은 '최후의 만찬'을 집중 탐색한다. 최후의 만찬속에서 7개의 비밀스럼 음모의 코드를 밝혀내라.
ⓒ2005 노마드북스
레이레 신부는 드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밀을 캐냈다. 레오나르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보는 '최후의 만찬'… 레이레 신부가 경악할 만하다. 다음은 작품 속에서 제기되는 일곱 가지 비밀.

1. 식탁 끝의 매듭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매듭의 진실은? 2. 단도는 누가 쥐고 있는가? 베드로의 손인가? 아니면 익명의 손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과연 무슨 의도로 단도를 든 베드로를 그렸는가. 3. 예수의 오른쪽 여인은 요한이 아닌 마리아 막달레나인가? 예수 오른쪽에 그려진 사람은 요한인가? 여인인가? 4. 후광은 왜 없는가?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와 12제자 머리 위에 후광을 그리지 않은 레오나르도는 정말 이교도? 5. 유월절 새끼 양은 어디 있는가? 유월절 만찬의 상징인 새끼양도 없고 약간의 음식들은 '카타르파'에서 허용한 것들뿐이다. 왜? 6. 사라진 성배는?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상징인 성배를 레오나르도는 왜 생략했을까? 7. 레오나르도는 왜 예수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가? 오른쪽에서 두번째 유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신? 그런데 왜 예수에게 등을 돌린 채 수근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션이 사랑한 미술 - 마이 러브 아트 2
김정혜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미술과 패션, 패션과 미술은 어떤 관계일까? 15명의 화가와 15명의 패션디자이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서로를 빛나게 할 수 있는가?

'점' 하나는 작지만, 무수한 점은 세계를 이룬다? 색점으로 순간과 세계를 표현해 낸 조르주 쇠라와, 한 코 한 코가 점이 되어 옷을 이루는 니트의 명가 미소니의 패션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첫 주제 조르주 쇠라와 미소니부터, 마지막 주제까지 두 사람 혹은 그들의 작품, 예술성을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가 남달랐다.

클림트를 만나고 베르샤체를 만난다. 그간 클림트는 '유디트'나 '키스'를 통하여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클림트와 연인 에밀리 플뤼게의 이야기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또 다른 재미랄까. 클림트의 찬란한 황금빛, 그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니면 여성에 대한 클림트의 순수한 평가?

베르샤체는 클림트의 무엇에 반했을까?

사치스러움의 대명사 베르샤체와 클림트, 그들의 연관성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은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요부인 동시에 강한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의 이미지였다.… 키스라는 작품을 보면… 금빛 찬란한 두 사람의 가운은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가 연상되는, 평면적이지만 아름답고 화려한 패턴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남성의 옷은 직사각형, 여성의 옷은 원형의 패턴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미술사에서 여성의 누드를 가장 잘 묘사한 화가가 클림트라면, 지아니 베르샤체는 여성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여성을 위한 옷으로 베르샤체의 옷만큼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성적 매력과 현대적인 관능미를 자유롭게 표현한 베르샤체... - 책 속에서


모든 예술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춤을 선보이면서 음악은 필수조건이며 무대 배경 역시 미술이 담당한다. 미술작품을 전시하며 음악이 또한 관여하여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미술과 패션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만큼 깊이 서로를 관여하고 모방하며 그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순수 미술만을 고집하던 미술관에서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미술관에 거는 것을 꺼려해 왔었다. 사실 미술의 많은 요소를 바탕으로 한 패션작품 아닌가.

1980년대 들어 비로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파리 루브르 미술관 등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1990년대에 들어서는 패션과 미술의 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더욱 불분명해졌다. 이제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후원하는 것은 화가들이다. 그들은 세트제작이나 디스플레이에 관여하며 패션을 돋보이게 한다. 반면 패션계는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들을 후원하여 그들이 예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

<패션이 사랑한 미술>은, 패션이 미술과 융합되는 과정을 재미있고 쉽게 들려주고 있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미술사나 패션사를 비교적 배제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문적인 패션으로서의 시각이나 이해보다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받아들이며 비교해가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15인의 화가와 15인의 명가 이야기를 통하여 알아가는 사소한 그들의 이야기나 작품설명이 재밌다.

텔레비전 같은 매체에서 패션쇼를 통하여 패션을 만나게 되는 순간 "저걸 옷이라고… 저걸 어떻게 입어?…"와 같은 이질적인 느낌 대신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관심이랄까. 커피 한잔을 마시며, 화려하고 도발적인 화보들만 잠시 골라보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몇 목록은 보충자료가 아닌 깊이 있는 이야기로써 미술과 패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외에도 미술과 패션 용어 수록이 요긴하다. 쉬어가는 페이지에서 잠시 소개하면.

..국내 디자이너들 역시 많은 화가의 이름을 거론하는데, 자신은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화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설윤형은 화가 천경자를 손꼽는다. 가장 한국적인 색과 형태로 옷을 만드는 설윤형은 천경자의 회화에 등장하는 커다란 꽃과 새, 그리고 화려하지만 슬픈 색에 매료되어 옷에서도 자수와 꽃문양을 자주 사용한다.. -책 속 '쉬어가는 페이지' 중에서

설윤형 외에도 국내 유명 디자이너인 박윤수, 박지원, 홍미화 이야기도 잠시 맛볼 수 있다. 다양한 시각, 다양한 시도의 이런 책들은 나름으로 재미있다.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화가의 길을 갔을 것이라는 국내외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화가나 패션디자이너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던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미술이나 패션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 독자인 내가 느낀 재미는, 그간 많이 알려진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에 비해 덜 알려진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사생활은 늘 흥미롭다. 예술가의 사생활은 작품을 이해하는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그것도 이미 많이 알려진 화가와의 연관성은 흥미를 바짝 당긴다고 해야겠다.

루이비통 핸드백도 미술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다? 구치가 매료된 실레의 깡마른 나체 속 에로스는? 프라다백에 얽힌 미니멀리즘의 비밀은 무엇일까? 마티스와 푸아레, 피카소와 비오네, 워홀과 웨스트우드, 말레비치와 쿠레주, 실레와 포드… 화가와 디자이너의 달콤한 밀회를 이 책은 보여준다.

패션으로 미술을 읽는다. 미술을 통하여 패션을 본다. 미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다시 새로운 관심으로 발견해가는 패션의 깊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
김도수 지음 / 전라도닷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징글징글한 고향 사랑이야기, 고향은 계속된다.

아저씨는 고향 집이 그렇게 좋소? 니 꼬추는 괜찮냐? 삥아리가 몇마리 나왔능가 모르겄다. 물만 안 질어다 묵어도 좀 핀헐 틴디. 꽃가마 하나 얻어 타고 갈려고 써빠지게 일헌다. 어머니 사랑비는 언제나 세울까. 마당에 멍석 깔고 보던 14인치 흑백 텔레비전. 존말로 헐 때 나와 줘. 해필이면 시아부지 양발이 떠내려가 부렀다냐. 니가 쇠죽을 어치게 쒀 줬냐. 그 땐 도수 되련님 쥐어박고 싶었제. 달걀로 사 먹었던 아이스 깨끼.- 목록에서

책의 목록부터 훑다가 마음속 사투리에 우선 다급하게 골라 읽었던 글들이다. 삥아리, 멍석, 질어다, 해필이면…. 고향이 물씬 풍겨나는 그런 단어들이다. 제목만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이 되면서도, 무척 궁금하여서 페이지를 들추어가며 골라 읽었다. 골라 읽으며 '역시 그렇구나' 싶을 만큼 공감하며 고향으로 자꾸만 내달았다.

저자의 고향에는 가본 적 없지만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자라 온 고향이야기들이었다. 어디 이 글뿐이랴. 시골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어서 어느 날 무척 그립기도 하여 눈가에 이슬 맺히기도 몇 번은 하였을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한껏 부러울 그런 이야기들이랄까.

책 속에서 만나는 고향 모습들…추억 몇 자락은 나올 법하다

ⓒ2005 김도수
책 속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마음을 잡아끈다. 늘 보고 자라 온 모습들이다. 자랄 때만 해도 예사로 보았는데, 어느 날 문득 몹시도 그리운 고향을 대신해주는 모습들…. 그 모습들을 다시 책 속에서 만나는 동안은 덜 외롭다.

올망졸망 옥수수가 매달린 툇마루 흙벽, 토란대 말리는 좁다란 마루, 낮은 담 위에 노랗게 익어가는 호박, 고개를 숙여야만 들고 날 수 있는 한지가 발라진 문, 꼴망태, 닭까리, 조록 조록 매달려 말라가는 곶감, 섬돌 위에 엎어놓은 까만 고무신, 정자나무 아래에서 담소하는 마을 사람들의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되찾아 놓은 마을로 들어가는 징·검·다·리.

저자가 직접 찍어 책 속에 곁들인 풍경에, 누구라도 마음속에서 아스라이 흐르던 이야기 몇 꼭지, 추억 몇 자락 쉽게 끄집어내어 들려 줄 수 있을 법하다. 우연히 고향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단박에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끈끈한 형제의 정까지 느낄법한 그런 모습들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눈이 자꾸 머물고 마음이 자꾸 머물러서, 이른 봄부터 한여름 내내 냇가에서 놀던 동무 생각에 여름휴가 길에 읽은 책인데, 명절 앞두고 고향길, 그 설렘에 다시 펼쳐 읽게 된 책이다. 아니 지난 해 나에게 온 이후로 고향 생각이 나면 자꾸만 집어 드는 책이다. 고향을 어떻게 담아 올까 싶어져서 다시 꺼내들었다. 어느새 고향집에 가있다.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는 '징글징글한 고향 사랑이야기들'을 듬뿍 담고 있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의 글들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살아 있지만, 세월 따라 묻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의 정서를 바탕으로, 소박한 이야기들이 낯익은 사투리들과 함께 흠씬 가슴을 적신다.

저자는 아름다운 섬진강변 진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80년대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객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객지생활을 하며 주말이면 이 책의 이야기들의 바탕이 되는 고향 진뫼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어 쪄먹는다. 그리고 섬진강변에 나가 피리를 잡고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서 고향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꾸 발길이 그리로 돌려져서 헐값 50만원에 팔아버린 고향집을 다시 되찾기까지의 이야기, 큰 물난리에 돌들이 떠내려가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이어놓던 300여년 이어져 온 그 징검다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잇게 된 이야기, 섬진강변의 추억 어린 바위들을 되찾아 제자리에 갖다 놓은 이야기,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나이든 고향 어른들만 살아가는 고향에 젊은 온기를 불어 넣은 이야기 등 사계절이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있는 고향이야기들이다.

7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저자가 들려주는 형제들 간의 끈끈한 이야기도, '그립다 깨복쟁이 친구들'이라는 큰 제목으로 자잘 자잘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난 듯 정겨운 이야기들이다. 웃음 머금고 읽다보면, 어느새 양지 볕에서 빠끔사리(소꿉놀이) 하던 동무들 생각이 아련하게 피어난다.

어느 해 이맘쯤, 친구가 와서 주먹을 펴보였다. 친구 손에는 연둣빛 풋밤이 세알 있어서 우린 그걸 손톱으로 밀어 까서 먹었었는데…하루 종일 붙어 노는 것도 모자라 밤새 촉수 낮은 불빛아래서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밤새 재잘댔지…커서도 변치 말자고 우정을 맹세하던 고향 친구들은 모두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

▲ 맘시리도록 보았던 찰옥수수와 진뫼마을로 들어가는 징검다리가 있는 섬진강변. 징검다리는 저자가 고향에 찾아 놓은 마을의 보물 1호다. 큰 물난리에 징검다리가 유실되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잇곤 하였다. 300여 년 동안...
ⓒ2005 김도수
'내 어머니 월곡떡'이란 큰 제목 속에 있는 11편의 글은 저자가 어머니를 회상하는 글로 가슴 아린 글들이다. 아직 친정어머니께서 살아 계시는데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우리의 대부분 어머니들처럼 어지간히 생활력 강한 저자의 어머니가 많은 형제들을 키워내면서 모질어지는 모습이 내 어머니의 모습이어서 눈물이 자꾸 맺혔다.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하다. 고향 사랑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사람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하다. 고향은 강하고 모진 어른들도 순하게 만들어 주고 응석도 부리고 서러움 하소연하며 실컷 울어도 좋을 어머니 가슴 같은 곳이 아닐까. 아무도 살지 않아 성묘 후 멀찍이서 고향마을과 집터를 바라보다 올지라도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는 곳 고향.

올해는 친정 동네 빈집들마다 환한 불이 켜지고, 집마다 송편 쪄내는 솔내음이 가득 넘치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