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사랑한 미술 - 마이 러브 아트 2
김정혜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미술과 패션, 패션과 미술은 어떤 관계일까? 15명의 화가와 15명의 패션디자이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무엇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서로를 빛나게 할 수 있는가?

'점' 하나는 작지만, 무수한 점은 세계를 이룬다? 색점으로 순간과 세계를 표현해 낸 조르주 쇠라와, 한 코 한 코가 점이 되어 옷을 이루는 니트의 명가 미소니의 패션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첫 주제 조르주 쇠라와 미소니부터, 마지막 주제까지 두 사람 혹은 그들의 작품, 예술성을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가 남달랐다.

클림트를 만나고 베르샤체를 만난다. 그간 클림트는 '유디트'나 '키스'를 통하여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클림트와 연인 에밀리 플뤼게의 이야기는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또 다른 재미랄까. 클림트의 찬란한 황금빛, 그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아니면 여성에 대한 클림트의 순수한 평가?

베르샤체는 클림트의 무엇에 반했을까?

사치스러움의 대명사 베르샤체와 클림트, 그들의 연관성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은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요부인 동시에 강한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의 이미지였다.… 키스라는 작품을 보면… 금빛 찬란한 두 사람의 가운은 비잔틴 미술의 모자이크가 연상되는, 평면적이지만 아름답고 화려한 패턴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남성의 옷은 직사각형, 여성의 옷은 원형의 패턴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미술사에서 여성의 누드를 가장 잘 묘사한 화가가 클림트라면, 지아니 베르샤체는 여성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여성을 위한 옷으로 베르샤체의 옷만큼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성적 매력과 현대적인 관능미를 자유롭게 표현한 베르샤체... - 책 속에서


모든 예술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춤을 선보이면서 음악은 필수조건이며 무대 배경 역시 미술이 담당한다. 미술작품을 전시하며 음악이 또한 관여하여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미술과 패션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만큼 깊이 서로를 관여하고 모방하며 그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순수 미술만을 고집하던 미술관에서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미술관에 거는 것을 꺼려해 왔었다. 사실 미술의 많은 요소를 바탕으로 한 패션작품 아닌가.

1980년대 들어 비로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파리 루브르 미술관 등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1990년대에 들어서는 패션과 미술의 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더욱 불분명해졌다. 이제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후원하는 것은 화가들이다. 그들은 세트제작이나 디스플레이에 관여하며 패션을 돋보이게 한다. 반면 패션계는 벌어들인 돈으로 화가들을 후원하여 그들이 예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다.

<패션이 사랑한 미술>은, 패션이 미술과 융합되는 과정을 재미있고 쉽게 들려주고 있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미술사나 패션사를 비교적 배제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문적인 패션으로서의 시각이나 이해보다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받아들이며 비교해가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15인의 화가와 15인의 명가 이야기를 통하여 알아가는 사소한 그들의 이야기나 작품설명이 재밌다.

텔레비전 같은 매체에서 패션쇼를 통하여 패션을 만나게 되는 순간 "저걸 옷이라고… 저걸 어떻게 입어?…"와 같은 이질적인 느낌 대신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관심이랄까. 커피 한잔을 마시며, 화려하고 도발적인 화보들만 잠시 골라보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몇 목록은 보충자료가 아닌 깊이 있는 이야기로써 미술과 패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외에도 미술과 패션 용어 수록이 요긴하다. 쉬어가는 페이지에서 잠시 소개하면.

..국내 디자이너들 역시 많은 화가의 이름을 거론하는데, 자신은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화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설윤형은 화가 천경자를 손꼽는다. 가장 한국적인 색과 형태로 옷을 만드는 설윤형은 천경자의 회화에 등장하는 커다란 꽃과 새, 그리고 화려하지만 슬픈 색에 매료되어 옷에서도 자수와 꽃문양을 자주 사용한다.. -책 속 '쉬어가는 페이지' 중에서

설윤형 외에도 국내 유명 디자이너인 박윤수, 박지원, 홍미화 이야기도 잠시 맛볼 수 있다. 다양한 시각, 다양한 시도의 이런 책들은 나름으로 재미있다.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화가의 길을 갔을 것이라는 국내외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화가나 패션디자이너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던 책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 미술이나 패션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일반 독자인 내가 느낀 재미는, 그간 많이 알려진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에 비해 덜 알려진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사생활은 늘 흥미롭다. 예술가의 사생활은 작품을 이해하는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 그것도 이미 많이 알려진 화가와의 연관성은 흥미를 바짝 당긴다고 해야겠다.

루이비통 핸드백도 미술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다? 구치가 매료된 실레의 깡마른 나체 속 에로스는? 프라다백에 얽힌 미니멀리즘의 비밀은 무엇일까? 마티스와 푸아레, 피카소와 비오네, 워홀과 웨스트우드, 말레비치와 쿠레주, 실레와 포드… 화가와 디자이너의 달콤한 밀회를 이 책은 보여준다.

패션으로 미술을 읽는다. 미술을 통하여 패션을 본다. 미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다시 새로운 관심으로 발견해가는 패션의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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