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 생각이 자라는 나무 5
이재진 지음, 한문정.김현빈.전경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치찬란해도 좋다. 재미있으면 된다? 2002년 많은 사람을 아무 생각 없이 유쾌, 통쾌, 상쾌하게 만들었던 영화 '소림축구'를 앙골라전이 있던 3월 1일에 다시 보았다. 어른들이야 유치하고 역겹다고 할망정 재미있게 보았다는 청소년들이 많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슛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다. 축구공의 애교(?) 또한 귀엽다. 브레이크 댄스 토마스 기법을 이용하여 슛? 축구공을 배로 감았다가 튕겨내면서 슛? 하늘 높이 솟은 공을 경공술로 상대편 골에 슛?

'저런 슛이 가능할까? 순 뻥?'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소림무술을 연마한 이들이 펼쳐내는 슛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실제로 있었던 '환상의 프리킥'을 보자.

1997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린 4개국 초청 프레 월드컵에서 선보인 카를로스의 '환상의 프리킥'은, 상대편 골대로부터 약 37m쯤 떨어진 곳에서 골인한 것으로 축구에 관심 있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37m지점에서 카를로스가 왼발 바깥쪽 슈팅으로 날린 공은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해 프랑스 수비벽 쪽으로 10m가량 직진, 프랑스 수비벽을 지나는가 싶더니 급하게 곡선으로 휘어 골문으로 쏙~! 그야말로 축구공이 살아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듯한 프리킥이었다. -책 속에서 요약

저자는, 환상의 프리킥 소개와 함께, 관련지어볼 수 있는 과학 법칙 '힘과 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그누스 효과'와 '베르누이 법칙'은 무엇이고 이들이 어떻게 환상의 프리킥에 작용하였는지를 그림까지 곁들여 자세하고 쉽게 설명한다. 독자는 <소림축구>라는 영화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교과과정인 '힘과 에너지'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알아가는 과학은 친숙하고 쉬우며 그야말로 흥미롭지 않을까? 월드컵 축구경기만큼.

주제 끝에 있는 '읽든가 말든가'에는 1954년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여 헝가리(0:9)와 터키에(0:7) 패하였던 스위스 월드컵이야기가 덧붙여 있는데 알아두면 유익한 내용이다. 특히, 축구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은 물론 100일 후 뜨겁게 불 타오를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 두고 경기를 보면 훨씬 재미있을 이야기다.

서독이 이 스위스 월드컵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헝가리를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한 것은 축구화 덕분이라고 한다. 요즘은 컴퓨터로 개인의 몸과 움직임을 다각도로 분석해 선수 각자의 경기력에 맞게 축구화 밑창에 있는 징의 개수와 위치, 모양을 배치한다고 한다. 홍명보의 축구화는 수비용으로 징이 6개, 베컴의 축구화는 공격수용으로 징이 13개다. 작은 '징' 하나의 중요성은 물론 '징'의 모양, 축구화 변천에 대해서도 간략하면서 자세히 알려준다.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걸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를 해체하여 그 안에서 비과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책으로 '2005년 과학도서 99종'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천만을 기록하는(최근 <왕의 남자>가 1200만에 육박하는 관객 수로 이 기록을 깼지만…) 이 시대에, 청소년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하여 과학과 생활의 간격을 좁혀주자는 소신에 뜻을 둔 선생님 몇 분의 노력과 열정의 소산이다.

불로장생의 신비한 명약, 화약? … 흥미로운 많은 이야깃거리들

이 책에 나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편은 무분별한 자연개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새만금 개발을 둘러싼 논란을 날카롭게 분석한 글이다.

화약 이야기도 재미있다. 왜구의 잦은 노략질에 대한 대응책으로 화약의 필요성을 느낀 최무선이 화약을 발명하는 데 2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다는 것에 고개가 숙여진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 최초의 공격용 로켓은 우리나라의 '주화'라는 것(최무선이 20년 만에 화약발명, 이때 화포 20종이 만들어짐)

세계 최초의 화약 발명국인 중국의 의약서 <신농본초경>에는 (화약의 재료인)초석과 황 등을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불로장생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그야말로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 잘근잘근 씹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다.

함께 영화를 보면서 자근자근 설명해주는 것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살갑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웅장한 화면에 압도당하여 얼떨결에 흘린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나 할까?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주제로 한 저자의 설명이어서 새삼스럽게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들인데 저자가 딴지 걸고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몇 번이고 돌려보고 싶을 만큼이다.

영화와 접속하여 만나는 과학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 '플레밍의 법칙'처럼 학교에서만 배우는 딱딱한 것들부터 '저체온증', '유전자 조작' '핵' 'GPS'처럼 우리 어른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까지 다양하다. 또 '유전자 조작 식품' '방사능'처럼 과학이 낳은 부작용과 21세기 인류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다루고 있는 영화는 위에서 설명한 <소림축구>처럼 가벼운 코미디물부터 <타이타닉>처럼 여운이 깊은 것까지 다양하고 폭넓다. 이 외에도 <진주만>, <블랙 호크다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트루 라이즈>, <트리플 액스>, <스파이더 맨>, <매트릭스> 등 모두 열여섯 편이다. 영화 한 편마다 학교 교과와 관련한 이야기 두세 꼭지를 실었다.

주제마다 끝에 '읽든가 말든가' 코너를 실어 관련 상식을 들려주는데 틈나는 대로 읽으면 그야말로 누구 앞에서든 폼 재고 으스댈 수 있을 정도다. 감동 있게 본 영화를 해체하고 딴지를 하도 많이 걸어서, 영화 보는 재미를 떨어뜨릴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딴지를 참고 삼으면 영화 보는 안목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더 영화에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학교 공부에 우선 치우쳐 이런 좋은 책을 맘껏 읽지 못하는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훔쳐 보는 거울 속의 나
윤하나 지음 / 이지북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고개를 숙일 것인가, 당당할 것인가?

대중매체에서 성(性)과 관계되는 제목은 대체적으로 인기가 높은데,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주체인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요, 막연하고 궁금하지만 확실하게 이야기되고 알아야 할 절실한 문제가 바로 성(性)을 둘러 싼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명의 주체인 우리들은 우리들의 성에 대하여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혹시 성(性)은 감춰야 할 것, 막연히 은밀하기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제목만으로 클릭하고 여전히 막연한 것들만 알고 마는 것은 아닌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체연령에 맞는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성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제시되고 교육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얼떨결에 성년을 맞고 다시 얼떨결에 성인이 된다고 말하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은 무엇을 얼마나 속 시원히 알고 있는가? 그리하여 본인이나 배우자의 문제는 물론 사춘기에 접어 든 내 아이나 조카가 물어 온다면 무엇을 제대로 알려 줄 수 있는가?

<내가 훔쳐보는 거울속의 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성(性)을 위하여, 또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성이 아닌 생명의 주체인 여성과 남성이 제대로 된 화합으로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성을 위하여 쓰였다. '내가 훔쳐보는 거울속의 나' 고개를 숙일 것인가? 당당 할 것인가?

산부인과에 갈까? 비뇨기과에 갈까?

성인이 된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떤 증상이든 산부인과와 비뇨기과를 쉽게 구분 짓지 않고 산부인과에 많이 의존한다. 또한 일부 여성들 중에는 비뇨기과를 남성들의 전용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차이점과 함께 현명한 선택이 보인다. 언제 산부인과에 가야하고 언제 비뇨기과에 가야 할까?

이 책은 우리가 늘 익숙하게 보아왔던 단어들인 초경, 생리, 피임, 섹스, 성병, 유방암과 같은 목록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간 보아 왔던 책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저자가 여자라는 것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 올 뿐이고 무엇보다 생리적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여자가 그만큼 더 솔직하게 풀어내진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80년대에 사춘기를 보내며 성년에 접어들었고, 여성최초 비뇨기과 전문의로서 지금 현재 의료 일선에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간 의료 일선에서, 혹은 인터넷 사이트나 잡지 Q&A등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으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우선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졌으며 몇 년 사이에 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자유분방 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엔 발전과 함께 발생하는 문제와 답이 구체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케케묵은 관점에 의한 이야기들만 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저자가 제시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오늘도 우리들의 다른 이브들이 고민하고 듣고 싶어 하는 지금 현재의 이야기들이며 지금 막 새로운 성에 눈을 뜨고 있는 무수한 이브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또한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언제나 막연히 궁금하고, 알아야 할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아 언제나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꼭 필요한 전문적인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아울러 저자가 상담 받았던 질문 중에서 꼭 필요한 것을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밖에...아름다운 남성들을 위하여

전체적으로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 2부가 여성의 몸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3부는 남성에 대해서다. 여성 자신의 성만이 아닌 상대적인 성을 알아 가는 것은 아름다운 성의 기본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여성들에게 남성의 몸과 성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을 봤을 때 이 책은 여성들만이 아닌 아름다운 성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알아야 할 이야기들은 별도로 지면을 할애하여 눈에 띄게 실었다. '알고 보면 재미있는 생리대 이야기'에서는 생리대의 종류와 역사, 우리나라의 생리대, 종류, 역사와 함께 지금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생리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더 많이 알아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섹스, 피임, 안전한 성 등의 확실한 이야기를 의사의 입장에서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남성도 유방암이 발생하는데 여자들에 비하여 상당히 진행된 다음에야 발견된다는 것과 함께, 이런 경우 남자도 여자처럼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 포경수술은 남성의 것만이 아닌 여성도 필요에 의해 포경 수술을 한다는 것, 성병과 공중 목욕 시설의 상관관계 등. 이 책은 꼭 알아야 할 것들만 쏙쏙 짚어내 편안하게 들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누구냐? - 신분 증명의 역사, 청년학술 58
발렌틴 그뢰브너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년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내로라하는 유지들이 모두 모였는데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뚱보목수가 괘씸하였다. 목공기술이 아무리 뛰어난들 자신들(유지들)보다 못한 뚱보일 것이었다. 뚱보목수 마네토가 괘씸하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골려줄 쑥덕공론을 하였고 일은 이튿날부터 착착 진행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미 계획적으로 입을 맞추어 뚱보는 빚쟁이 마테오가 되어버렸고 급기야 법정으로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뚱보도 처음에는 마테오가 아니라고 하소연하였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테오라고 주장해 별 수 없었다. 나아가 이제는 스스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테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테오라고 주장하였다.

자신이 마테오가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마테오가 되었고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혼돈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뚱보목수이야기>라는 소설의 대략의 줄거리로 1400년경 피렌체에서 실제로 살았던 인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당시에는 이와 비슷한 일이 많았다고 하며,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개개인, 즉 나의 신분을 누가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처럼 신분증명의 구체적인 수단이 없던 시대에 한 사람의 정체성이 무엇을 바탕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와 신분을 누가 만드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런 일은 중세에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어느 날, 나를 닮은 사람이 감쪽같이 나를 대신한다면 나의 신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사람으로 나를 몰아간다면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 속의 몇 해가 이미 지나버린 사진? 그런데 나를 대신하는 사람이 나와 비교적 많이 닮았다면? 그럼 나를 대신하는 코드 13자리의 숫자? 이마저도 이미 단단히 작정하고 달달 외워 술술 말할 정도라면? 그럼 나만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증명해보임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마저 단 한 사람도 없다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신분 증명의 역사이다. 아직 사진이나 지문 채취 등의 기술이 없던 시절 신분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현대적인 개인 정보관리 체계나 시각 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던 시절,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바로 그 사람이라고 알아보았을까?

간단하게 말하자. 13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는 어떻게 개인의 신상 정보를 관리했을까? 당시는 오늘날 같은 관리도, 주소도 없지 않았는가? '패스포트'나 '수배전단' 같은 말은 배경 없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중세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가 호주머니 안에 지니고 다니는 신분증에 담겨 있는 중세의 흔적을 추적해 보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과연 여권이 담고 있는 400년 혹은 600년 전의 흔적이란 무엇일까? 현재와 중세는 도대체 어떤 의미로 함께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 책 속에서


<너는 누구냐?>는 신분증명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소재부터가 흥미롭거니와 중세 유럽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야사를 보듯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어서인지 이야기들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작가와 함께 피렌체로, 혹은 베네치아로 중세 유럽의 도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일어나고 있는 신분증명을 위한 역사의 흔적으로 숨 가쁘게 다녀본다.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무엇이 있었을까? 그림이나 문장(汶章)이나 배지 표장(表章)등이 있었고 복식(옷)또한 개인과 개인이 속한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에도 여전히 연결되고 있는 것들이고 보면 중세 유럽의 이야기들이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신분증명에 필요한 수많은 것들의 출현, 사용, 발달을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전반부에서 개인과 개인집단의 신분증명의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적인 기록의 사실과 함께 이를 둘러싼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명의 도구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의 우리들의 신분증명서와 바로 연결되어있기도 한 것을 보면 신분증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지금 우리들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책 속에는 진짜를 향한 가짜들, 즉 사기꾼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나온다. 진짜를 어떻게 하면 진짜로 증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짜가 될 수 있을까? 즉, 수많은 진짜들의 진짜를 향한 노력과 함께, 가짜로 가고 싶은(스스로는 진짜가 되고 싶겠지만) 가짜들, 즉 사기꾼들의 어이없는 에피소드들이 배꼽을 쥐게 한다.

신분증명의 역사. 인류와 함께 발전해 온 이 역사는 우리 개개인의 역사와 함께 맞물려 있다. 오늘날 우리들 개개인을 증명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들이 지갑 속에 지니고 다니는 신분증은 이젠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증명이 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ID가 나의 중요한 신분증명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ID를 넣어 로그인을 하고 ID를 품고 있는 닉네임으로 우리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다. ID를 입력한 로그인으로 특수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신분이 증명되기도 한다.

책은 두껍지만 신분증명의 역사와 관련된 것들만 알아가든,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하여 재미 만을 골라내어 알아가든 특이한 소재와 함께 여러모로 재미있는 책이다.

너는 누구냐? 나?. 신분은 꼭 눈에 보이는 증명서로만 존재하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너는 나에게 꽃이 되어 나와 너만을 위한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 피어날지니 누가 나를 불러 줄까? 신분증명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너와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영엄마 2006-01-1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터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그런데요, 생태계가 뭐예요? 토토 과학상자 1
김성화.권수진 글, 조위라 그림 / 토토북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대체 몇 가지 종류의 생물을 먹고 살까? 반대로 사람들을 잡아먹는 생물은 대체 몇 가지 종류나 될까? 지구에는 대체 몇 가지의 생물이 살고 있는 걸까?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것은 대략 5천여 종이며, 모기처럼 피를 빨아 먹든 통째로 삼키든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생물은 대략 1천여 종이라고 한다. 그리고 알려진 생물만 140만여 종이며 알려지지 않은 것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데 1천여 종의 생물이 인간을 잡아먹겠어. 설마?"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사를 더해 갈수록 1천이란 숫자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 수치는 절대 아니라고 한다.
-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먹이사슬만 해도 적어도 6천여 종의 생물이 먹고 먹히는, 즉 공생관계나 천적이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태사슬은 어떤 질서에 의해 끊임없이 돌고 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데요, 생태계가 뭐예요?>는 전체적으로 생태계, 즉 먹이사슬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기본적인 먹이사슬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생태계의 벌판으로 서슴없이 나가도록 이끈다. 먹이사슬에 대해 제대로만 알고 있어도 아이들은 건강한 생태계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

자기의 똥을 먹어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토끼, 왜 몰랐을까?

초식동물인 토끼는 풀을 먹어 1차적으로 똥으로 배설, 다시 제 똥을 먹어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토끼의 똥은 '식변'이라는 부드러운 것과 염소 똥처럼 단단한 것 두 가지로, 식변은 배설하면서 바로 입으로 가져가고 단단한 것은 일을 삼고 먹는다. 토끼에게 자신의 똥은 무척 소중한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근본적인 영양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 염소의 되새김에 해당한다고 할까?

우리 집은 늘 토끼를 키웠는데 토끼장 바닥은 배설물이 쌓이지 않게 어느 정도 틈새를 두고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기준일 뿐인데, 태어난 지 3주부터 제 똥을 받아먹는 것으로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토끼로서는 다소 주인이 원망스러웠을 법하다. 간혹 토끼가 똥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어른들도 있지만 똥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런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우리들의 경험 속에 녹아 있는 정보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분명 아이들은 책 속에 빠져들 것이다. 이 책은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어 이야기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보다는 아름다운 공생을~

먹이사슬과 함께 흔히 말하는 것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다. 먹고 먹히는 것은 비교적 눈에 쉽게 띄지만 '공생'이라는 것은 자세하고 지속적으로 관찰할 때만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공생은 간혹 있는 특별한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물들의 공생은 우리의 상상보다 많으며 우리들 인간 역시 수많은 생물의 공생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자연 생태계의 이야기는 동물탐험 같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정글이나 사바나도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과 주변의 이야기이다. 자연계에 상대를 거꾸러뜨리거나 먹고 먹히는 살벌한 현장만 있는 것이 아닌, 다양한 공생도 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 주자. 그래서 따뜻한 눈으로 인간들의 아름다운 공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자.

하마의 똥은 우리들에게 더러운 배설물에 불과하지만, 연못에서 하마의 똥이 사라지면 그곳은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기도 한다. 또 코끼리 같이 동물의 똥을 통해서만 탈피를 하거나 씨앗 껍질의 균을 털어내고 비로소 싹을 틔우는 식물들도 있다. 그리고 쇠똥구리처럼 똥을 통해 생존과 번식을 하기도 한다.

더럽고 전염의 매개라고 인식하기 예사인 똥이지만 이책은 이런 무조건적인 편견보다는 생태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좀 더 다른 시각을 가지게 한다. 이밖에도 이 책은 생태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코끼리는 왜 이렇게 크죠? 나무늘보는 대체 왜 이렇게 느린 걸까요? 씨앗마다 모양이나 특성이 모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물들마다 특별히 좋아하는 먹이들이 모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알려진 생물만 140만종이라고요? 75만종의 곤충까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대체 뭐죠?...

평상시 한 번씩 품어 보았거나 아이들이 물어 보았을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그런데요, 생태계가 뭐예요?"라고 아이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 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루마의 작은 방
이루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이루마의 작은 방>에서 이루마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 중에 '사랑스런 나의 동거녀, PIANO'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곡이 제대로 연주되지 않거나 쉽게 표현되지 않을 때 피아노를 새침떼기, 혹은 토라진 애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첫사랑 그녀의 검은 눈동자라 표현하는가 하면, 해로한 부부처럼 편안한 존재로, 혹은 집착이 강한 요부나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에 비유하며 피아노와의 깊은 교감을 들려준다.

'사랑스런 나의 동거녀, PIANO'는, 연주와 작곡을 하면서 때때로 느끼는 어려움과 온갖 감정을 피아노와 연인관계로 비유하여 적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피아니스트다운 표현이어서 다시 돌아가 읽기를 몇 번 되풀이 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나에게 무엇일까? 동반자, 스승, 친구… <이루마의 작은 방>은 유쾌하고 편안한 친구와 같았다.

<이루마의 작은방>은 이루마 자신이 직접 쓴 글모음으로, 어떻게 하여 피아노와 친해졌는지부터 현재 28살에 이르기까지의 소소한 성장 과정과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입지를 굳히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마치 이루마의 방에 초대되어 커피를 함께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제법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누는 듯 살갑다고 할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렇다.

5살 때 우연히 두 누나 어깨 너머로 피아노를 배웠으며 11살 때 영국으로 음악유학을 떠났는데 작은 숲 속 퍼셀 스쿨의 유일한 동양 꼬마였다. 아끼는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 4만원으로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돈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도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기대지 않은 것은 서울에 남는 것을 부모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서울이 참 좋았으며 서울에서 첫 음반을 내고 싶었다 등등.

국제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이루마의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는구나. 젊은층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팬도 다양하다지, 아마? 네티즌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예술가요. 검색어 첫 번째라던가? '겨울연가'와 '여름향기'에서 들려준 애틋한 선율의 감성은 이런 것에서 비롯되었구나.'

또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책 속에는 자신과 관계되는 것들을 사진에 담아 짧은 단상을 적은 페이지도 자주 보인다. 단상은 깊고 향기롭다. 사진들은 스타의 것들이어서 스타의 생활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자란 빛이 있기에 생기는 것. 힘들고 서럽고 외로웠던 것도 내게 꿈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빛을 따라 잘도 가지를 뻗어가는 화초줄기처럼 내 음악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 책 속에서

"당신 일상의 배경음악이고 싶습니다"

"내 음악이 사람의 심장박동을 따라가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아가 뱃속에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듯, 유난스럽게 특별한 음악을 전하기보다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런 리듬을 따라가는 것… 내 음악이 언제 어디서나 찾게 되는, 삶의 배경음악 같았으면 좋겠다." - 책 속에서

책을 읽는 내내 느낌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 일류 이루마'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편안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있던 이야기들은 솔직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이다. 또한 다정다감하고 유쾌하였다.

이루마의 작은 방. 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말에 주인이 잠시 일어선 사이에 방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본다. 이루마의 꼬마 시절을 보는 듯 작고 까만 장난감 피아노.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와 셔츠. 발이 닿지 않아 힘들어하는 누나 대신 밟아주며 발바닥을 퍼렇게 멍들게 한 피아노의 황동 페달. 밤새 작곡하였을까? 수북이 쌓인 티백은 물기를 머금고 있네? 피아노 건반 위의 오선지에 지우개 달린 노란 연필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고 피아노 옆에 놓인 작은 간이 서랍장 위에 밤색 낡은 가방이 있는데, 그 앞에 기웃거리고 있으니 주인은 가방에 얽힌 사연을 이렇게 말한다.

"그 가방은 아버지가 졸업 기념으로 사주신 것인데 10년 넘게 들어서 낡고 헐었습니다. 들고 다닌 시간만큼 헐었지만 그만큼 정(情) 또한 들었지요. 새것이 생겨도, 더 좋은 것이 생겨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물건에 배인 정 때문이겠지요?" - p71. 가방 사진과 설명을 정리함)

이 아름답고 편안한 만남을 이젠 끝내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젠 어느 공간에서든 이루마의 음악이 스치면 방안의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편안해지리라. 그리하여 미소 지으리라. 28살 청년 음악가 이루마의 다부지고 아름다운 꿈 생각을 해본다. 동양의 유일한 꼬마로서 당당히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기까지 남다른 인내와 노력을 하였던 수많은 시간들과 타인에 대하여 따뜻한 배려가 힘이 되어 언젠가는 꼭 꿈을 이룰 것이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영국으로 음악유학 떠나길 잘했다고 어머니 친구들은 자주 말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악 뒷바라지 하려면 훨씬 많은 돈이 들거든요. 숲 속의 작은 음악학교 '퍼셀 스쿨' 선생님들은 학생 저마다에게 세심하여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열정으로 늘 따뜻한 분들이었습니다. 제게 꿈이 있다면 새소리가 들리는 시골 숲 속에 '이루마의 작은 음악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음악에 재능이 넘치는 뮤지션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 책 내용을 토대로 정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