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마의 작은 방
이루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이루마의 작은 방>에서 이루마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 중에 '사랑스런 나의 동거녀, PIANO'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곡이 제대로 연주되지 않거나 쉽게 표현되지 않을 때 피아노를 새침떼기, 혹은 토라진 애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첫사랑 그녀의 검은 눈동자라 표현하는가 하면, 해로한 부부처럼 편안한 존재로, 혹은 집착이 강한 요부나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에 비유하며 피아노와의 깊은 교감을 들려준다.

'사랑스런 나의 동거녀, PIANO'는, 연주와 작곡을 하면서 때때로 느끼는 어려움과 온갖 감정을 피아노와 연인관계로 비유하여 적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피아니스트다운 표현이어서 다시 돌아가 읽기를 몇 번 되풀이 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나에게 무엇일까? 동반자, 스승, 친구… <이루마의 작은 방>은 유쾌하고 편안한 친구와 같았다.

<이루마의 작은방>은 이루마 자신이 직접 쓴 글모음으로, 어떻게 하여 피아노와 친해졌는지부터 현재 28살에 이르기까지의 소소한 성장 과정과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로 입지를 굳히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마치 이루마의 방에 초대되어 커피를 함께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제법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누는 듯 살갑다고 할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렇다.

5살 때 우연히 두 누나 어깨 너머로 피아노를 배웠으며 11살 때 영국으로 음악유학을 떠났는데 작은 숲 속 퍼셀 스쿨의 유일한 동양 꼬마였다. 아끼는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 4만원으로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돈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어도 서울에 사는 이모에게 기대지 않은 것은 서울에 남는 것을 부모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서울이 참 좋았으며 서울에서 첫 음반을 내고 싶었다 등등.

국제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이루마의 음악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하는구나. 젊은층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팬도 다양하다지, 아마? 네티즌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예술가요. 검색어 첫 번째라던가? '겨울연가'와 '여름향기'에서 들려준 애틋한 선율의 감성은 이런 것에서 비롯되었구나.'

또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책 속에는 자신과 관계되는 것들을 사진에 담아 짧은 단상을 적은 페이지도 자주 보인다. 단상은 깊고 향기롭다. 사진들은 스타의 것들이어서 스타의 생활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림자란 빛이 있기에 생기는 것. 힘들고 서럽고 외로웠던 것도 내게 꿈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빛을 따라 잘도 가지를 뻗어가는 화초줄기처럼 내 음악도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 책 속에서

"당신 일상의 배경음악이고 싶습니다"

"내 음악이 사람의 심장박동을 따라가는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아가 뱃속에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듯, 유난스럽게 특별한 음악을 전하기보다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런 리듬을 따라가는 것… 내 음악이 언제 어디서나 찾게 되는, 삶의 배경음악 같았으면 좋겠다." - 책 속에서

책을 읽는 내내 느낌은, '국제적인 피아니스트 일류 이루마'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처럼 편안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있던 이야기들은 솔직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이다. 또한 다정다감하고 유쾌하였다.

이루마의 작은 방. 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말에 주인이 잠시 일어선 사이에 방안 여기저기를 기웃거려본다. 이루마의 꼬마 시절을 보는 듯 작고 까만 장난감 피아노. 편안해 보이는 면바지와 셔츠. 발이 닿지 않아 힘들어하는 누나 대신 밟아주며 발바닥을 퍼렇게 멍들게 한 피아노의 황동 페달. 밤새 작곡하였을까? 수북이 쌓인 티백은 물기를 머금고 있네? 피아노 건반 위의 오선지에 지우개 달린 노란 연필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고 피아노 옆에 놓인 작은 간이 서랍장 위에 밤색 낡은 가방이 있는데, 그 앞에 기웃거리고 있으니 주인은 가방에 얽힌 사연을 이렇게 말한다.

"그 가방은 아버지가 졸업 기념으로 사주신 것인데 10년 넘게 들어서 낡고 헐었습니다. 들고 다닌 시간만큼 헐었지만 그만큼 정(情) 또한 들었지요. 새것이 생겨도, 더 좋은 것이 생겨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물건에 배인 정 때문이겠지요?" - p71. 가방 사진과 설명을 정리함)

이 아름답고 편안한 만남을 이젠 끝내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젠 어느 공간에서든 이루마의 음악이 스치면 방안의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편안해지리라. 그리하여 미소 지으리라. 28살 청년 음악가 이루마의 다부지고 아름다운 꿈 생각을 해본다. 동양의 유일한 꼬마로서 당당히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기까지 남다른 인내와 노력을 하였던 수많은 시간들과 타인에 대하여 따뜻한 배려가 힘이 되어 언젠가는 꼭 꿈을 이룰 것이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영국으로 음악유학 떠나길 잘했다고 어머니 친구들은 자주 말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악 뒷바라지 하려면 훨씬 많은 돈이 들거든요. 숲 속의 작은 음악학교 '퍼셀 스쿨' 선생님들은 학생 저마다에게 세심하여 장점을 찾아 칭찬과 격려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열정으로 늘 따뜻한 분들이었습니다. 제게 꿈이 있다면 새소리가 들리는 시골 숲 속에 '이루마의 작은 음악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음악에 재능이 넘치는 뮤지션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 책 내용을 토대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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