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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바람의 아이들 펴냄)는 "사춘기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에게는 바이블처럼 많이 알려진 책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반항이 이해되더라. 아니 요즘 애들 참 불쌍한 생각까지 들더라. 네 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라며 친구가 권해 읽게 된 책이다.
봄과 여름 내내 딸아이(중1)의 이성 친구 문제로 고민했다는 내게 이 책을 권한 고향친구는 나와 비슷한 아이문제로 이미 혹독한 경험을 치른 바 있는, 학부형으로선 선배다.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꽃잎이 흩날리듯 사라져 간 모든 소년들에게
소설에 앞서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준이는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어이없게 죽어버린 중3 소년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재준이의 죽음은 친구들이나 학교에 어지간한 충격이었다. 문제라고는 전혀 일으킬 수 없는 여자처럼 곱상한 아이, 부모와 선생님 말 잘 듣고 아픈 엄마를 배려하는 이해심 많고 참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재준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미는 더더욱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학 온 지 몇 달이 지났건만 무관심으로 자신을 '왕따'시켜 버리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지겨운 학교에서 반항적인 날라리 전학생인 자신에게 '친구'라는 손을 내민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런 유미에게 어느 날 재준이 엄마가 찾아와 "며칠 전에 우연히 찾아 낸 재준이의 일기장인데 네가 먼저 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일기장에 적힌 수수께끼 같은 말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가 죽기 3일 전까지 쓴 일기장 첫 장에는 이처럼 알듯 말듯 수수께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예고라도 한 걸까?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을 작정하거나 준비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 오토바이 사고가 아닌 자살?
유미가 재준이의 일기장을 읽어 나가면서 재준이와 있었던 그간의 이야기들, 학교와 선생님, 친구와 부모님, 함께 나눈 고민 등을 회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이 중학생 소설은 계속된다.
우리 엄마 역시 내게는 감옥이다. 모든 걸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 같지만 그러기에 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항할 필요가 없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감옥이다.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책속, 재준이의 일기 중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싸우거나 어쩌다 한번 학원을 빠지는 것으로도 천식 발작을 일으켜 죽음 직전까지 가는 엄마, 이 때문에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들이 되어야만 한다.
마주칠 때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밖에는 할 말이 없는 아버지도 어떻게든 참아야만 하는 감옥이다. "형이니까!" 부당하게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만 하는지라 동생도 때론 감옥이다. 재준이의 고민은 우리에게 무척 낯익다.
아니 누구나 참고 사는 고민이라는 생각에 재준이의 죽음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재준이처럼 이해심 많고 말 잘 듣는 아이거나 유미처럼 '왕따'당하는 아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만 아찔해지고 말았다.
말 잘 듣는 아이가 죽음을 선택? 아찔하다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뵈는 우정과 사랑으로 목숨 걸고 고민하는 아이들, 외진 곳으로만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 귀를 뚫었던 내 아이, 무릎까지 닿는 교복치마를 줄였으면 하고 떼쓰던 내 딸, 오토바이로 거리를 질주하는 아이들, 성적 올리기에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아이들…'
책을 통해 만나는 이 아이들은 어느 날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내 아이이자 우리 주변의 낯익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였던가. 나 역시 이런 아이들을 눈흘기며 '싹수가 노란 불량학생'으로만 단정 짓고 마는 그런 어른 아니던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참 담담하고도 잔잔하게 이처럼 낯익은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들려준다. 엄마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내게 책을 권한 친구의 말처럼 올해 나를 어지간히 힘들게 한 사춘기 내 아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그런.
이 책은 중학생 아이들의 세계를 아주 잘 담았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어느 날 한 소년의 죽음을 접한 작가가 소설을 쓰고 또래의 수많은 중학생 아이들이 원고를 읽은 후 작가에게 자신들의 세계와 고민 등을 전달, 작가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소설을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작가의 말에 간단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이유 없는 반항을 이유 있는 반항으로 받아들여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어른들이 좀더 많아지길!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꽃잎이 흩날리듯 아프게 사라져야만 하는 불행한 아이들이 더 이상 없기를!
"2001년 9월 9일. 한 소년이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죽음의 소식을 듣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 소년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그런 애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죽음에 접한 것처럼 통곡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내내 울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그 또래의 딸이 있었던 탓일까요? 나는 아마도 그때 그 소년의 부모의 심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 내 심장에 칼질을 해대는 것처럼 숨을 쉴 수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생전의 그 소년과 절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침 나는 그 애에게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언젠간 꼭 네 얘기를 써주마. 그것이 꼭 너를 그린 얘기는 아닐지라도 너처럼 어이없이 어느 날 사라져버린 어린 넋들의 이야기를 내 꼭 써주마…."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