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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평점 :
70년생 글쓴이는 빈곤한 집안의 맏이이자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란다.
결국 돈 때문에 중학교 중퇴하고 미싱일 하는 노동자가 되는데
일은 길고 힘들고 받는 돈은 적고 남성관리자들의 성추행은 난무한다.
공장 버스 운전수에게 강간되기까지 한다.
공장 동료 하나가 이따금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데 공장일보다 힘 덜 들고
몸까지 팔지 않아도 되고 술만 따르고 노래만 불러 줘도 꽤 추가수입을 올린다고 권해서
호기심으로 그 동료 따라 가 봤다가 정말 첫날 9만원 팁을 받는다.
이 때 지은이는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밤별 보고 퇴근해도 한 달 월급이 15만원이었다고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하고 놀라워한다.
그렇게 가끔 나이트클럽 알바를 병행하다 사귄 다른 공장 동료의 막내외삼촌의 아이를 배고
행복을 꿈꾸지만 남자는 도망가버리고 임신중단수술을 받는다.
도저히 미싱사로의 삶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아 차라리 룸쌀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돈 좀 마련해 다른 길을 찾으려고 했던 게 스무 해 동안 착취와 속임수가 만연한 성매매 지옥에
빠져드는 거란 걸 지은이는 몰랐다.
지은이가 자세히 밝히는 성매매여성을 옭아매는 사슬은 무시무시하다.
사실상 노예제다. 업주들이 성매매여성들을 묶는 무기는 빚이다.
업주들은 잘 꾸며야 돈 잘 벌어 빨리 다른 길 찾아나설 수 있다며
옷,구두,백을 사게 만들고 미용실과 피부관리실에도 등록하게 된다.
이런 물건과 재화를 제공한는 이들은 모두 업주와 이익관계로 얽혔고
가격도 다른 곳보다 훨씬 비싸다. 그나마 이런 걸 사는 데 드는 돈을 성매매여성이
내야 한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는 업주조차 드물다. 처음엔 그냥 꾸며야 하니까
골라 보라며 납품업자에게 보내는데 순진한 초보아가씨들은 업주가 돈 내는 걸로
착각하다 나중에야 저도 모르게 빚더미에 오른 걸 깨닫는다.
업주들은 슬슬 이제 빚 갚아야지 하면서 술 따라 주고 노래 부르고 춤 같이 춰 주는 것보다
돈 더 되는 몸팔기를 강요한다.
시간이 얼마 지나면 다시 유행에 맞춰야 한다며 새 옷, 새 구두, 새 백 사기를 강요하고
말 안 듣는 여성은 다른 이들 앞에서 프로정신 모자라다, 몸관리가 엉망이다, 넋빠진 년 이런 소리를 날마다 들어야 하고 이른바 진상처리반으로 쓰인다.
진상처리반은 진상손님만 받는 여성들을 말하는데 당연히 업주에 고분고분한 다른 여성들보다 신체폭력과 언어폭력을 심하게 겪고 수입도 적다.
별별 명목으로 벌금도 물린다. 지각해도 벌금, 몸 아파서 하루 쉬어도 벌금, 진상손님의 무리한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해도 벌금, 이래도 벌금, 저래도 벌금. 이 벌금이 꾸밈비에 덧붙어 성매매여성들 빚은 열심히 일해도 자꾸 늘기만 한다. 또 여성들은 구매자 누구에게 동료 누구와 함께 술과 안주 얼마를 팔았는지 기록을 꼼꼼히 한다고 한다. 업주가 틈만 나면 기록을 조작해서 돈을 적게 주려 하기 때문이라고.
아울러 성매매여성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싸우게 부추겨 단합하지 못하도록 한다.
딱 재벌이 노동자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 노동자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
룸쌀롱 여성들에게는 사창가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도록 주입해서 룸쌀롱 현실이 얼마나 나쁜지 못 보도록 길들인다.
독립심이 센 여성들에게는 일부러 폭력적이고 돈씀씀이도 쪼잔한 진상손님을 붙여서 길들이고 새로 온 순진한 여성들은 그나마 점잖고 돈 잘쓰는 손님을 붙여서 여성들끼리 사이가 틀어지게 한다고 말한다. 그나마 점잖은 구매자라도 여성들에게 힘겹기는 50보100보다. 이렇게 상황이 나쁜 줄 몰랐던 초보여성들은 탈출을 꿈꾸지만 이미 빚으로 얽매여 탈출구는 없다.
여기에 업주는 경찰과 공무원에게 성상납하고 단속을 피한다.
공권력도 업주 편이지 성매매여성들 편은 아니다.
업주와 구매자들의 비열함,폭력스러움,상스러움을 읽다 보면 염세주의자 되기 딱 좋다.
이 생지옥에서 지은이는 끊임없이 다치고 몇번씩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또 버텨나간다.
지은이의 기억은 놀랍다. 스무 해 동안 겪은 스무 곳 가까이 되는 업소의 위치,시설과 거기서 만난 업주들,구매자들,동료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밀도가 높은 책이다.
마지막에 여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성매매를 어렵게 빠져나오는
그나마 해피엔딩이지만 읽는 내내 우울하고 힘들었다.
이제 다른 성매매여성들의 탈출을 돕는 게 일인 지은이의 앞날은 평안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