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 슈퍼피쉬 - HD 리마스터링 보급판 (3disc)
송웅달 외 감독, 김석훈 목소리 / 디에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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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없어서 텔레비전 방영 때는 놓쳤는데 최근 관악도서관에서 dvd로 봤다.

 

우리나라 다큐멘타리 만드는 솜씨도 이제 수준급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슈퍼피쉬>를 만든 kbs는 아니지만 ebs도 최근 들어 뛰어난 다큐멘타리를 많이 만들고 있다.

물론 tv가 없는 나는 방송은 못 보고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어떤 내용인지 훑는 데 그치지만 그렇게 내가 보지 않고 읽은 다큐멘타리인 <아이의 사생활>,<자본주의>,<강자의 조건>,<이야기의 힘> 모두 꽤 재밌었고 새로 알게 되는 것도 많았다.

 

올해 초 출판기획자 및 번역가 박중서님을 알게 되면서 알라딘에서 박중서로 검색해 어떤 책을 만들어왔는지 검색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대구>라는 바다물고기 대구를 다룬 책이 있었는데 대구가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초첨을 맞춘 책이라고 했다. 그 뒤 바빠서 그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관심은 갖고 있었는데 <슈퍼피쉬>에서 대구 얘기가 나와 재밌었다.

 

1부에선 물고기가 식량 및 자원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여 준다. 지중해 이탈리아 어부들의 참치 사냥도 보여 주고 아프리카 도곤족의 메기잡이, 중국 농부들이 봄에 논에 쌀과 함께 새끼물고기도 심었다가 가을에 쌀과 함께 자란 물고기를 거둬서 겨울나기하는 이야기가 재밌게 펼쳐진다.

 

2부는 안타깝게 dvd가 말썽이라 못 보고 3부는 일본 스시 유래를 알려준다. 먼저 뉴욕 고급 음식점에서 스시를 먹는 사람들을 보여 주고 우리가 오늘날 아는 스시가 처음에는 우리나라 가자미식혜 같은 발효음식이었다고 알려 준다. 동남아 라오스, 태국을 돌아다니며 쌀로 물고기를 발효해 만드는 음식을 보여준 뒤 이런 요리법이 쌀농사 확산과 함께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에 온 얘기를 해 준다. 쌀+물고기 발효음식이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까지 크게 유행하다 그 뒤로 원나라 때  기름에 튀기고 끓는 물에 삶고 불에 굽는 요리법을 좋아한 지배층 몽고족 영향을 받아 거의 사라지게 된 얘기도 송나라 수도였던 카이펑-개봉이라고도 하죠-에 가서 알려준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쌀로 발효한 물고기 요리 만든 동네 찾아가서 요리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 못된 뱀이 해마다 소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댔는데 사람 시체 썩는 내음을 내는 이 발효요리를 주면 속아서 먹고 해꼬지가 없었단다. 발효하는 데 6달이 걸리는 슬로우푸드인 이 요리가 1800년 무렵 지금 같은 패스트푸드로 바뀌었고 당시 풍속화 보면 스시 파는 상인 그린 그림도 있다고.

 

4부는 금요일날 땅짐승 고기를 금지한 기독교 영향으로 유럽에서 물고기 소비가 느는 얘기를 들려준다. 바다가 없는 체코도 크리스마스 때면 잉어요리를 먹는다고 한다. 잉어비늘은 행운의 부적으로 체코 사람들은 잉어 비늘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그 밖에 양어장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유럽의 여러 수도원 얘기도 나오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 최후의 만찬에도 물고기 요리가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밌고 교육 효과도 큰 다큐멘타리였다. dvd가 제대로였으면 2부도 봤을 텐데.

덧붙여 음악 맡은 사람이 이와시로 타로인데 다름 아닌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 음악을 맡기도 했던 그 양반이다. 일본 작곡가들이 울나라 영화 음악 작업을 가끔 한다. <웰컴 투 동막골>은 히사이시 조가 했고 <우아한 세계>는 칸노 요코가 했다. <동막골>이랑 <우아한 세계>는 음악이 영화랑 겉돈다는 느낌을 난 받았었는데 <살인의 추억>은 정말 잘 어울렸었다는 기억이 난다.

어서 돈 많이 벌어 사고 싶은 dvd 랑 책 맘껏 사고 싶다. 그걸 놓을 집도 있어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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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0점 만점에 10점.
20자평 - 자본아, 말짱한 노동자들 그냥 두란 말야.

영화 내용 누설이 있으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대한민국 대표 유통업체인 더마트에서 말짱히 일 잘하던 직원들.
진상 고객에 힘든 일에 시달리면서도 나름 열심히 살아간다.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진상 고객한테 무릎 꿇는 계산원 문정희. 부잣집 딸인 동창생이 '이런 데서 일해?'하고 생각 없이 말하는 걸 듣고 속으로 조용히 화를 삼키는 88만원 세대 천우희.
염정아의 남편은 일터가 멀어서-지방인지 해외인지는 모르겠다. 남편은 영화 끝날 때까지 숨어 있다.-집에 없고 염정아가 홀로 고교생인지 중학생인 아들 도경수와 초등생으로 보이는 딸의 실질적 가장이다. 염정아는 모범사원이며 곧 정규직 승진을 눈 앞에 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애들에게 해 주고 싶은 건 많지만 해 준 건 없는 염정아는 아들에게 정규직 되면 스마트폰 사 주기로 약속한다.
문정희는 이혼인지 사별하고 유치원생 아들을 홀로 키우는 씽글맘이다.
청소 20년 한 청소아주머니 김영애, 88만원 세대 천우희, 억척스런 황정민. 여기에 이들 여성노동자들을 예의 바르게 대하는 착한 화이트칼라 대리 김강우까지 주요 등장인물 소개가 끝나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회사는 날벼락처럼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이들의 삶을 위협한다. 이에 이들은 비정규직 노조를 만든다. 노조대표가 된 염정아,문정희,김영애가 사측과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사측은 나타나지도 않는다. 노조는 다시 이야기를 시도하지만 사측은 또 협상장에 나오지 않는다.
몇 차례나 사측이 협상장에 코빼기도 안 보이자 이에 노조는 파업을 한다. 영업시간에 잠시 매장을 점거해서 항의를 하면 사측이 협상장에 나올 거라는 생각으로. 사측은 여전히 강경하다. 빨리 파업 끝내라고 말만 하지 노조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사측의 무성의 때문에 매장점유는 길어진다. 그날밤을 매장에서 자기로 하고 몇명이 나가 재료를 사 와 밥도 만들어 먹는데 왠지 뭉클하다.

매장을 점거한 여성들의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따스한 대목이다. 줄넘기 놀이도 하고 즉석 공연도 하고 연극도 한다. 연극 주제는 진상 고객들 풍자하기. 노동자들이 제 사정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며 가까워지는 대목도 좋다. 다들 저임금 고강도 노동인 마트일을 하게 된 서글픈 사연이 있다.
파업에 당황한 사측은 노조 대표인 염정아에게 너만큼은 곧 정규직으로 바꿔 줄 테니 그만두라고 다른 노조원들 모르게 비밀리 전한다. 마음이 흔들리지만 노조랑 함께 하기로 하는 염정아.
하루이틀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점유가 사흘나흘닷새로 길어진다.

어느 날 사측은 알바 고용해서 영업하려 들지만 노조가 성공적으로 알바들을 쫓아내고 점유를 지킨다.
김강우는 노조와 사측에 끼여서 갈팡질팡하다 사측이 정규직들까지 위협하려 들자 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조와 함께하려 한다. 문정희가 '우리 어려울 땐 뭐 하시다 이제 사측이 괴롭히니까 함께하자고요?'하고 따지긴 하지만 결국 힘을 합치기로 하고 김강우가 노조위원장을 맡게 된다.
염정아 아들인 도경수는 할머니랑 둘이사는 조손가정 아이인 같은반 지우랑 친해진다. 둘 다 가난한 거 때문에 더 가깝게 된 거 같다. 지우가 도경수에게 돈 없어도 굶지 말고 그냥 급식 먹으라고 하는 거나 편의점알바하는 지우가 저녁으로 먹을 과자 한 봉지 사러 온 도경수한테 막 유통기한 넘긴 삼각김밥 챙겨 주는 모습이 좋다. 방금 검색해 보니 지우가 최강희 나왔던 <달콤 살벌한 연인> 만든 손재곤 감독의 2010년 개봉 영화 <이층의 악당>에서 김혜수 딸로 나온 바로 그 배우다.
도경수는 수학여행 갈 돈 마련하려 편의점에서 일하기로 한다.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고 여동생도 잘 못 돌보게 되자 엄마 염정아랑도 사이가 틀어진다. 도경수가 엄마에게 말을 안 해서 염정아는 아들이 수학여행 갈 돈 마련하느라 일한다는 걸 모르는 상황. 어느 날 매장을 점유하느라 바쁘던 염정아가 모처럼만에 집에 와서 난장판인 집안에 홀로 내팽개쳐진 딸을 보고 늦게 들어온 도경수를 꾸짖자 도경수는 "엄마가 내게 해 준 게 뭐 있냐?"고 따지고 순간적으로 화가 난 염정아는 도경수 뺨을 치고 도경수는 가출해버린다. 염정아가 수소문 끝에 지우를 찾아가 도경수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하고 지우가 "너희 엄마가 해 준 건 없지만 해 주고 싶은 건 많으니까 들어오래."란 말을 전해들은 도경수는 집에 온다.
나중에 도경수가 편의점 주인에게 임금 떼이게 되자 지우가 벽돌을 던져 편의점 유리를 깨 버리고 주인은 도경수를 두들겨 팬 뒤 경찰로 끌고 가고 염정아가 아들 찾으러 경찰서에 간다. '유리창 값 내놓으라'는 주인에게 염정아는 "애들 일 시키고 돈 안 줘서 빌미를 준 게 당신이니 난 못 준다'고 앙칼지게 대들고 결국 주인에게 돈을 받아내 아들에게 준다. 자본에 환멸을 느낀 염정아는 이제 영화 처음 나오던 착하고 순하기만 한 서민이 아니다. 아들은 수학여행 안 가도 된다고 우리반에 수학여행 못 가는 애 또 있으니 괜찮다며 힘들 테니 이 돈 엄마가 쓰라며 주고 모자화해가 이뤄진다. 수학여행 못 가는 다른 애는 지우다.

다시 이야기를 매장으로 돌리면 파업이 길어지자 뉴스에도 알려지고 다른 노동계 사람들도 와서 촛불집회도 열고 지지하는 콘서트도 벌이고-재밌는 게 노래부르는 가수를 맡은 배우 이름이 박근혜다.물론 대통령과는 동명이인이지.-무슨 국가기관에서 노동자들이 옳다고 회사는 노동자들 복직시키고 협상에 성실히 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며 해피엔딩이 될 듯한 조짐을 보여 주는데 결국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회사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사정이 급한 노동자들의 내분을 기다리고 결국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 내부에서 서서히 편이 갈린다. 회사는 이 때를 틈타 강경진압에 나서고 노동자 몇 명이 다친다. 사측은 매장점유를 되찾고 나서 지친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당근과 노조지도부를 향한 소송 같은 채찍을 써서 매장을 다시 연다. 진압과정에서 싱글맘 문정희 아들이 다치자 문정희는 치료비를 벌려고 다시 마트에서 일하게 되는데 꼭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아빠가 파업 동료들과 맏아들이자 빌리의 큰형 몰래 일터로 돌아가는 거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해고된 김강우는 마트 본사에서 화이트칼라인 마트 직원들에게 호소문을 나눠주며 지지를 호소해보지만 '당신이 나서서 순진한 아줌마들 꼬드기는 바람에 그 아줌마들 다 해고됐잖아? 너가 그 아줌마들 생계 다 책임질래?'라고 비웃는 화이트칼라 하나랑 주먹다짐하고 감옥에 갖힌다. 이제 겉보기에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 거 같긴 한데 정말 그런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마트에 모인다. 대표로 뽑힌 염정아가 매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고객들에게 '저는 몇 달 전까지 여기서 회사가 잘 돼야 우리도 잘 된다고 생각하던 노동자였습니다.'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사측은 마이크를 빼앗고는 노동자들을 경찰을 불러 해고노동자들을 다 내쫓는다. 이 때 마트에서 일하던 문정희는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해고자들 편에 선다. 호스로 물 뿌리는 경찰. 영화 광고지에 쓰인 염정아랑 문정희가 카트를 밀며 경찰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난다. 내 주위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모두 울었다. 나도 울었다.

 

영화가 담은 주제도 2014년 한국사회에 중요하지만 극 자체의 완성도와 연기, 재미도 왠만한 오락영화 못잖게 뛰어나다. 추천한다.

극장에서 내려가기 앞서 사정 되시는 분들은 꼭 보세요. 신림롯데시네마에선 벌써 한 주 만에 하루 2회 상영으로 상영횟수가 줄어들었더군요. 첫 주엔 하루 8-9회 상영해 줬는데 말이죠.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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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14-11-18 화요일 신림롯데시네마 2관 k7에서 9:10조조로 봤다.

 

올해 극장에서든 디비디로든 몽땅 다 통틀어 본 영화들 가운데

<족구왕>,<천리마축구단>,<디어 평양>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 자세히 쓰고 싶은데 지금 바빠서...나중에 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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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장 자크 아노 감독, 잭 왈라스 외 출연 / SRE (새롬 엔터테인먼트)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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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인 1990년에 내게 수학 과외 가르치시던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던 애들이랑 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어느 극장-이름은 잊었다-에서 봤었다. 어제 2014.11.15 토요일 dvd로 다시 봤다.

다시 보니 새끼곰이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큰 곰이 총을 쏴서 죽이려 했던 사냥꾼이 무방비상태가 돼서 죽을 수 있는데 안 죽인 건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와 데커드를 떠오르게 한다.

 

1990년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주 수업에 오신 과외선생님이 우리 어머니께 영화에 대해 말씀하시며 '영화 처음에 큰 곰이랑 새끼곰이 같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이 있고 끝 부분에 둘이 같이 서는 장면이 있어요. 끝 부분 장면 보니 새끼곰이 촬영하며 꽤 자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라고 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았는데 어제 다시 보니 과외선생님 기억이 틀렸다는 걸 알겠다.

 

영화 끝부분에 새끼곰이 두 발로 서는 장면 있고 새끼곰이 처음보다 많이 자란 것도 맞다. 다만 새끼곰 혼자 선다. 큰 곰이랑 같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은 어렸을 때 장면 하나 뿐이다.

 

문득 1990년의 수학과외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던 애들이 보고 싶다.

 

별점은 5점을 줘야 맞는데 4점만 준 건 dvd비율이 4:3이기 때문이다. 검색하니 새롬에서 나온 이 dvd 말고 다른 dvd도 나와 있는데 그건 오른왼쪽 안 잘리고 다 나오는지 궁금하다.

 

지금 읽는 책 제프리 밀러의 <연애>랑 <죽기 전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 보니 <불을 찾아서>를 장 자끄 아노 감독의 대표작으로 소개하던데 그 영화도 언젠가 보고 싶다. 그 밖에 내가 본 아노 영화 또 뭐 있나 생각해 보니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있고 다른 동물 영화인 <형제>는 소문만 듣고 아직 안 봤다는 것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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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죽지 그래 - 남정욱이 청춘에게 전하는 지독한 현실 그 자체!
남정욱 지음 / 인벤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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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와 어제-2014.11.14금~15토-에 걸쳐 신림역 포도몰 반디루니스 책방에서 읽다.

 

저자 남정욱씨를 첨 알게 됐는데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이 분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는 독설로 독자를 분발케 하는 자기계발서 가운데 하나-이런 책 가운데 가장 잘 팔린 책이 아마 김미경의 <언니의 독설>이겠다-거니 하고 별 생각 없이 집어들어 목차를 훑고 머리말을 읽었다. 그랬다가 작가의 글솜씨와 자세에 빨려들어가서 다 읽게 됐다.

 

작가가 제 약점을 툭 털어놓는다. 초중고교 다닐 때 공부 못 했고 별 재주도 없었다고. 학벌도 나쁘다고 했다. 학벌 좋은 분들은 내 책 안 읽으셔도 된다고도 미리 머리말에서 밝힌다. 젊을 때보다 나아졌지만 지금 형편도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대단한 성취를 이룬 건 아니라고 밝힌다. 젊을 때는 괴로운 일이 많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도 한다. 경기도에 집이 있고 42살에야 혼인하고 애가 둘 있다고. 어쩌면 애는 하나일 수도 있다. 지금 책을 내 옆에 두고 독후감 쓰는 게 아니라 확인해드릴 수 없는 거 양해 바란다. 대학교에서 글쓰기 가르치고 여기저기 글 써서 먹고 산다고.  젊을 때 작가처럼 가진 거 없는 사람들에게 최악을 면하는 길을 알려 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책의 나머지에서 그 길을 알려 주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이 많았다. 특히 사례들이 작가가 몸소 겪거나 주위에서 본 것으로 채워져 현장감이 아주 높다. 설득력 있는 사례와 작가의 글솜씨와 알맞은 인용을 잘 골라 쓰는 작가의 박학다식에 읽으며 고개를 몇번씩이나 끄덕였다. 당근과 채찍을 알맞게 쓰는 작가의 솜씨는 퍽 훌륭하다. 먼저 갈수록 나빠지고 장기불황 덫에 걸린 경제상황을 직시하자고 채찍질을 한다. 다음에는 절망한 독자들에게 '요즘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많고 그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사실 학벌 좋고 부모 잘 만난 사람 말고 나머지에게는 옛날도 지금만큼 어려웠다'고 그래도 살 길은 있다고 당근도 주고 어려운 상황을 넘긴 이들의 현장감 넘치는사례를 알려준다.

 

작가가 독자의 신뢰를 얻는 솜씨도 세련됐다. 예를 들면 지난해인 2013년 여름 개봉했던 하정우 주연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인용하며 영화 속 테러리스트가 분노하게 되는 건 이해한다고 아마 이 책 쓸 때 대상 독자로 작가가 생각했을 절망에 빠져 폭력이라도 휘두르고 범죄라도 저지르고 싶은 이들에게 공감을 주고 나서는 '그래도 테러는 답이 아니다. 성공해도 나한테 아무 잘못한 일 없는 이들까지 다치게 하고 나도 다친다'며 다른 길을 보여 준다.

 

여러분의 성공을 가로막는 사람으로 강신주와 김난도를 골라 비판하는 대목도 설득력 있다.

특히 강신주를 심하게 비판하는데 읽다 보니 작가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강신주 책-다상담 세 권과 다른 책 두어 권-을 읽으며 뭔가 모자라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었는데 그걸 시원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작가에게 존경심과 고마움을 느꼈다. 강신주가 자본주의를 벗어나자고 여유를 갖고 살자고 말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비싼 강연료를 받고 강연하고 한 달에 한 권 꼴로 책 나오는 것에도 알 수 있듯 여유없게 빡빡하게 일에 치어 산다고 작가가 말하는 대목에서는 '정말 그래'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작가의 김난도 비판은 퍽 순하다. 요점은 서울대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인 조언이지만 돈,학벌,연줄 없는 여러분들에게는 별 도움 안 되니 여러분 현실에 맞는 다른 충고를 찾으라는 거였다.

 

그 밖에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말들.

 

1)어느 자수성가한 기업가-이 분 이름이 정휘동씨였던 거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이 분이 세운 기업 이름도 모르겠다-가 사훈으로 '닥치는 대로 하라'인데 특히 학벌도 돈도 연줄도 없는 사람들은 이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2)실력 있어도 대인관계 나쁘면 회사생활 하기 힘들다며 작가 경험을 말해 주는데 작가는 고생 끝에 간신히 들어간 영화홍보사에서 일은 못 해도 인사성은 좋아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잘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인사성 바르고 실력도 좋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소문의 앞부분은 사실이지만 뒷부분은 전혀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도 그런 소문이 돈 뒤에는 일하기도 편해지고 다른 길도 열리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더불어 '인품 나쁘다고 소문났는데 실력 때문에 일자리 얻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 천재들'이라며 아부,아첨까지 해선 안 되지만 슬기로울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3)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도 들을 만 하다. 작가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을 못 했는데 같은 학년이라도 학생들 솜씨는 천차만별이라며 차라리 잘 하는 이들과 못 하는 이들을 나눠 가르치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러면 열반 애들이 자존심 다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반론에 대한 답도 명쾌하게 내 놓는다. 그런 일 잘 안 생기며 생기더라도 지금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 듣는 것은 고문이며 알아들을 수 있는 기초를 가르치는 게 더 인간적이고 학습의욕을 돋구는 거라고.

 

4)공부의 중요성도 강요하고 공부가 재밌는 것이라고도 알려준다. 고비만 넘으면 재밌어지니 공부와 독서를 꼭 하라고 충고하며-작가는 공부랑 독서는 같은 거라고 본다- 공부와 독서로 삶을 바꾼 이들을 소개한다. 도서관에서 3년간 9000권을 읽고 삶이 바뀐 김병완 얘기도 나온다. 작가의 경험도 말해 주고 작가가 득을 본 독서법도 알려 준다. 실재 작가는 초중고 때 공부 못 한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박학다식하다. 폴 존슨의 역사책과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와 책, 바쇼의 하이쿠, 실베스터 스탤론 영화 <록키>, 그 밖에 기억은 안 나지만 작가가 인용한 많은 영화 및 책을 보면 작가가 꾸준한 독서 및 영화 관람으로 머리 속에 많은 지식을 쌓았다는 게 눈에 보인다. 책도 역사,문학,실용,심리학,경제경영으로 여러 분야다.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도 소개해 주고 또 그렇게 공부 잘 한 정약용도 우의정이 된 ???-이름을 잊었다-랑 사이가 나빠서 말년을 유배로 보냈다고 얘기하며 실력 만큼이나 대인관계에서 슬기롭게 사는 것의 중요성도 다시금 강조한다.

 

5)자연스럽다는 말이 사실 끔찍한 말이라고 하며 새끼를 수백 마리 낳지만 간신히 하나나 둘이 어른이 되는 게 자연이라고 한다. 사람도 이 자연 속에 사는 동물이며 사람이 겪는 괴로움 대부분은 우리가 동물인 걸 잊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작가 말하길 우리는 만물의 대장일 뿐 영장은 아니란다. 사람은 불평하는 동물인데 그럴 시간에 살 궁리 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한다. 이런 작가의 말은 꽤나 혐오스럽고 극우적이며 사회적 다윈주의 및 히틀러의 인종주의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게 이 작가의 글솜씨와 자세 및 마음씨다. 예를 들면 제목과 달리 작가는 남들에게 독설하는 걸 싫어한다고 밝히고 있고 내 생각에도 작가는 남에게 독설 잘 못 할 거 같다. 이 책에 담긴 독설도 결국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주장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내게 정말 도움 되는 책이었다. 작가가 소개한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이 갔다. 예를 들면 김병완은 딱 한 권 읽었는데-어느 책이었는지는 잊었다- 그 책은 별 감흥 없어서 젖혀 둔 작가인데 이 책 때문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인벤션이란 출판사도 첨 만나는데 이 책 때문인지 출판사의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띠지에 나온 사진이 작가가 맞는지이다. 회색 띠지에 흑백으로 찍은 사진인데 책 속 작가 얼굴이랑은 다른 거 같다. 띠지 속 인물은 여자로 보이는데 대체 누구지?

 

덧붙여서-제목 '차라리 죽지 그래?'는 영화 <록키>에서 나오는 대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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