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스 테일 1 스토리콜렉터 20
마크 헬프린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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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번역 출간된 이 책의 원서는 1983년에 출간되었다. 1977년에 작가로 데뷔한 마크 헬프린의 작품으로 발렌타인데이인 지난 2월 14일에 미국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콜린 파렐, 제니퍼 코넬리, 러셀 크로우 주연에 아키바 골즈먼이 감독을 맡았다. 국내에는 두권으로 분권되어 번역 출간되었는데 두권 모두 합치면 1,000페이지가 넘는 비교적 방대한 양이다. 그동안 북로드에서 스토리 콜렉터라는 시리즈로 SF나 추리 소설 장르를 소개해 왔는데 사실 이 책이 이 시리즈에 끼일만 한 스릴있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사물에 인격이 부여되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그렇고 그런 가벼운 판타지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작품이 너무나 '고급'스럽다.



소설의 재미를 주로 초반부에 얼마나 빨리 몰입할 수 있느냐, 그리고 마지막에 얼마나 기대 이상의 반전이 있느냐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둘다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시대가 확실히 짐작하기 힘들 뿐더러 갱단에서 탈출한 사람이 백마를 타고 갱단의 총알을 피해 뛰어가는 모습을 머리 속에 쉽게 그릴 수 있는 설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페이지들을 넘기며 읽기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는 인물들의 성격이나 주변 상황들이 점점 뚜렷해짐을 느낀다. 몰입도나 반전 등의 잔재미는 없지만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만드는 큰 '울림'을 주는 소설이라고 자부한다.


갱단에서 탈출한 주인공 피터 레이크는 다시 갱단에게 잡힐 뻔하다가 백마를 타고 다시 도망치게 된다. 그를 변화시킨 건 도둑질하러 들어간 집에서 만난 베버리라는 열여덟 살 소녀다. 처음 만났을 때 피아노를 치고 있던 그 소녀는 폐결핵으로 죽음 직전이 도달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부자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지상의 보물이란 움직임, 용기, 웃음, 그리고 사랑 같은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았다. 그런 것은 부자도 돈으로 살 수 없었다. - 1권, p.219


뉴욕 타임즈 선정 '지난 25년간 최고의 미국소설'이라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책을 읽다가 가장 눈의 띄는 부분은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을 한 문장들이다. 분명히 어떤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실을 묘사한 문장인데 그 문장은 상당히 추상적으로 씌여져 있다. 예를 들면 피터 레이크와 베버리가 처음 성애를 나누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녀는 두 사람이 급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는 과정에 하게 될 일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상상해왔지만, 그들이하나가 되는 순간 느끼게 될 힘과 자유분방함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지금까지 1000년 동안 서로에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금지당해왔고, 앞으로 또 다시 1000년 동안 떨어져 있게 될 운명이라도 되는 듯 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팔과 팔을 엮은 채 환상과 빛 속에서 마치 구름 속을 선회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p.223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소설. 피터 레이크와 베버리의 사랑은 베버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지만 둘 사이의 인연이 어떻게든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남겨놓고 2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부분적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도시 모습도 보여주는 이 소설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함께 도시에서의 삶과 정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조성되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그 안에서 주어진 사람들간의 관계와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곧 국내에서도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소설과 함께 영화감상의 즐거움도 같이 누리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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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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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재미있는 소설의 특징이라고 하면 마지막까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함과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떠오른다. 물론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설 역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쓰가루 백년식당≫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1대 오모리 겐지로부터 시작하여 현재 3대째 식당을 하고 있으며 4대인 오모리 요이치가 가업을 물려받을지의 여부가 이 소설에서 결말이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일본은 가업을 잇는 경우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어 왔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일본은 그런 사람들이 많나보다 하는 정도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오모리 요이치가 고민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임을 알았다. 직업의 선택에 자유가 있는데 아버지가 했다는 이유로 자식이 그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고 원하는 일을 포기해야 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오모리 요이치 역시 그런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다.


오모리 요이치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연습을 위해 중화요리집에서 일했지만 그만두게 되었고 도쿄에서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피에로 분장을 하며 풍선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피에로 이벤트를 하면서 만난 쓰쓰이 나나미라는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고 서로 영원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의 상황들이 펼쳐진다. 40대가 훌쩍 지나버린 지금 20대의 연애시절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오모리 데쓰오 역시 아버지로서 고민이 없지 않다. 아들이 정말 원하는 일이 가업을 잇는 것이 아니라면 아들의 희망사항을 들어주고자 생각하는 속깊은 아버지다. 결국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이 녀석, 제법 매력 있는 놈이네..."라고 중얼거리며 눈시울을 붉히는, 마음이 따뜻한 아버지다.


초대 오모리 겐지의 친구가 만들어 준 자개장은 3대째 이어지게 되고 그 소망이 그대로 4대째로 이어질 찰나에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소설을 끝맺는다. 오모리 요이치가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을 아버지에게 보여준 것은 다름아닌 고등학교때 10년 후 희망사항을 적은 졸업문집이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백년식당을 이어가겠다는 꿈을 적어놓았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기대하게 만든다. 나의 10년 전 희망사항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을 이루어놓았나. 나의 할아버지, 또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유산은 무엇이었고 나는 그 유산을 잘 전수하고 있는가. 소설을 덮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인생이 있다. 초대 증조 할아버지에게도 2대째인 우리 할아버지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같은 마음으로 식당을 이어오지 않았을까?  - p.281


앞서 말한대로 흥미진진함도 없고 반전도 없는, 밋밋한 구성이지만 마음의 온도는 분명 훨씬 따뜻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0년이 된 시골의 허름한 식당의 모습,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벚꽃 풍경이 머리 속에 그려지며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 가업을 이어가는 오모리 요이치와 쓰쓰이 나나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식당에서 흩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이어져 4대까지 전수된 메밀국수 한사발을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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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십자가 1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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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려말기의 권력구조는 황제, 최씨 무인정권, 불교계의 삼각구도였다. 이 소설은 당대의 승려이자 문헌학자로 정평이 나 있던 수기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던 지밀 스님이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당대 최고의 각수장인 김승이 대장경판 772장을 보내온 뒤로 여덟 장의 경판을 보내오자 수기 스님은 의문을 품는다. 추가로 보내온 여덟 장의 경판에는 마굿간에 간난아기가 누워 있고 한 여인과 수염이 풍성한 사내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 그림과 '末艶懷後産一男名爲移鼠(말염회후산일남명위이서)'라는 글씨가 씌여져 있었고 이 부분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의문을 풀기 위해 수기의 명을 받고 개경으로 향한 지밀은 황제가 머물던 개경의 안화사라는 절의 서재에서 발견한 책과 개경에서 만난 몽골군사의 찰갑옷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경교(기독교)의 문양으로 인식한다. 추가로 보내온 경판에 어떤 연유로 경교의 메시지를 심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밀은 각수장 김승을 만나러 길을 떠난다. 경판을 도둑맞은 사건을 감찰할 목적으로 김승을 만나러 떠난 길은 험난했다. 지밀은 고개에서 용오름을 만나 눈이 멀고 타고 간 말은 돌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거기다가 동행한 인보도 죽는다. 죽은 인보의 시신을 살펴보던 중 지밀의 백부인 유승단과 김승이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된다. 인보의 죽음을 둘러싸고 지밀은 김승을 비롯한 경고도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지만 죽음의 원인을 밝혀가던 중 인보가 최이의 간자였음이 밝혀진다. 김승과 탁연 등 경교도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풀어지면서 지밀은 그들과 마을을 같이한다. 사실 그들은 최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부패된 불교를 바로 세워 왕정을 복고하기 위한 혁명을 계획중이었다. 더 나아가서 몽골군을 몰아내는 목표를 세운 것은 물론이다. 이 목표를 세우기 위해 최씨 부자 집에 간자를 파견하기도 한다. 지밀의 의심이 풀어지게 된 계기는 초조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서 불타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2권 중반부로 들어서 경교도 마을 사람들의 목표가 드러나면서 결론을 대략 예상할 수 있다. 아무리 팩션 소설이라지만 그래도 사실에 근거했다면 결국 그때 당시 지엽적으로 번졌던 경교도들은 더 이상 확산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경교도들이 더욱 확산되어 조선시대 이후까지 지속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종교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약간의 반전도 가미되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결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경교(景敎)는 기독교 종파 가운데 하나인 네스토리우스교(Nestorianism)가 동양에 전래된 이후 붙여진 명칭이다. 사실 기독교 계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삼위일체성을 부인하는 등 당시의 전통신학에서 벗어난 주장을 했기 때문에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되어 추방된 사람이다. 그들이 동아시아로 넘어가면서 교세를 확장시킨 종교가 경교라고 불리운다. 소설에서도 가온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내용에서 '도마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영혼'이라는 소개에서 정통 기독교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밀이 경교를 이해하면서 말한 다음 문장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의 신학이론에 따라 '구원'의 속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인들은 흔히 중생을 구제하겠노라, 세상을 구원하겠노라 장담한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가 없다. 세상은 처음부터 구원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극락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중생구제니, 구원이니 들먹이는 부류나 집단이 있다면 대개가 사기꾼이거나 정신착란자일 가능성이 크다. 종교의 이름을 달고 그런 망발을 한다면 지옥이 거기서 그리 멀지가 않다.  - p.302 [2권]


지밀이 그동안의 사건을 돌아보며 종교의 역할을 술회하는 장면은 곱씹어볼 만하다. 요즘 '정치참여'라는 이슈로 종교와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역할을 해야 참 종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 정답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천명한다. 어떤 종교라도 타락한 세상을 행햐 입발느 소리, 쓴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썩었다면 그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 그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신을 팔아먹고 번지는 사특한 무리들이다. 그런 종교는 차라리 없어져버려야 세상이 더 평화롭다. 인간은 종교 없이도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p.304 [2권]


오랜만에 재밌는 역사 팩션 소설을 읽었다. 약 300 페이지 가량의 두권이 책이 금새 읽힌다.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의 스타일을 따르면서 내용은 역사와 종교, 문학과 철학을 아우른다. 고려말 최씨 무신정권기의 역사와 대장경의 조성과정 및 기독교의 동방 전래 과정 등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페이지 넘기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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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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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았을 때 받은 느낌은 제목이 독특하다는 것. 몇페이지 넘기다보니 '착한 스프'는 사람 이름이었다. 95년 말에 PC통신 천리안에 가입한 뒤로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당시 4대 PC통신 서비스를 모두 가입하여 사용했는데 당시는 익명성이 강조되다보니 대화명을 사용했고 내가 사용한 대화명은 '열쇠'였다. '착한 스프'는 이 책의 주인공이 좋아했던 남자의 대화명이고 주인공 본인은 '제인', 절친인 홍아의 대화명은 '우체통'이었다. 이렇게 '착한 스프'와의 만남은 PC통신에서 이루어진다.



가끔 살다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걸 독심술이라고 하나. 특히나 어린 시절에 알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이런 가슴아픈 소설은 등장할 수 없었을게다.


등장인물이 여러 명 있지만 앞서 말한대로 주요 등장인물은 크게 세명이다. '온정선'은 '착한 스프'라는 대화명을 쓰고 있었고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제인'이라는 대화명을 쓰는 '이현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한다. 여성스러운 성격의 이현수에 비해 '우체통'이라는 대화명을 쓰던 '홍아'는 외모는 이현수보다 매력적이었지만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추구한다. 그 도전이 결국 현수와 정선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정선은 인생에 여자는 하나밖에 두지 않으리라 생각(p.182)했고 그 마음을 현수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항상 현수가 정선보다 빠르거나 정선이 현수보다 빨랐다(p.251). 거기다가 훼방꾼도 등장한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해 나도 그랬을지 모르겠고 누군가도 그랬을지 모른다. 정선은 '사랑을 맛보게만 하고 결실을 주지 않은 이 땅(p.248)'을 떠나기로 작정한다. 자리를 잡으면 다시 현수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고백의 편지가 현수에게 도착했고 현수는 정선에게 전화하지만 정선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오랜만에 달달한 소설을 읽었다.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아 몰랐는데 SBS ≪따뜻한 말한마디≫,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작가라고 한다. 제목을 보니 소설의 느낌과 유사함을 느낀다. 조회해보니 '따뜻한 말한마디'는 '기황후'에 밀려 시청률이 높지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첫번째 소설이라고 하는데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든다. 작가가 그리는 또다른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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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황후 - 전2권 기황후
장영철.정경순 지음 / 마음의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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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몽골에서 일주일간 머무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지평선이 펼쳐진 초원이 인상적이었던 나라이다.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도 몇일간 머물렀지만 그 초원의 게르에서 이틀간 머무르면서 몽골의 낙후된 실상을 볼 수 있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날 몽골인들과의 저녁 만찬에서 한 몽골인이 큰 지도를 펼쳐들었는데 그것은 몽골제국이 아시아와 유럽의 가장 큰 영역을 지배했을 당시의 지도였다. 그만큼 몽골인은 그때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싶다. 중국 북쪽에 작은 나라로 머물러 있지만 자신들은 세계를 다스렸던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황후≫를 읽으면서 그때 다녀왔던 몽골 초원이 떠올랐다. 책은 그 땅을 지배했던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순제는 어린 시절 타환이라 불렸다. 타환은 아버지인 명종에 이어 황위를 물려받아야했지만 정권 다툼이 밀려 동생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황태제의 신분으로 고려로 유배를 온다. 그 시절 고려는 원나라에게 공녀를 차출하던 힘없는 나라였다. 고려 군사였던 기자오는 자신의 딸이 공녀로 차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장을 하여 남자로 살아가게 했다. 고려 왕의 지시를 받아 유배를 온 타환을 보호하게 하다가 고려 말단 장수였던 염병수의 모함으로 여자임이 밝혀지면서 공녀로 원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타환을 다시 만나게 되고, 충혜왕과는 사랑을 나누어 아들을 낳게 된다. 그 아들이 우여곡절 끝에 순제의 제1황후의 아들이 되면서 태자 신분이 되면서 원나라 정국은 폭풍 속에 쉽싸이게 된다.


지난 2013년 10월 28일부터 MBC에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 기황후 역에 하지원, 충혜왕 역에 주진모, 순제(타환) 역에 지창욱이 열연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충혜왕을 왕유라는 가상의 인물로 대체했다. 하지만 그 밖의 인물들이 실존인물에 가까워 여전히 문제를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기황후나 충혜왕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좋지 않다. 대부분 역사가들은 충헤왕을 주색에 빠져 방탕한 행동을 일삼다가 원나라에 의해 폐위된 임금이라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소설은 소설이 아닌가. 역사 속의 인물을 소재로 하더라도 가상의 허구적인 스토리가 내재된 것이 역사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다만 그 소설 속의 내용을 실제 역사속에 인물을 평가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상영중인 변호인을 보며 노무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듯이 말이다.


소설이 원래 드라마 상영을 가정하고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그 자체만으로는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그렇다치고 인물묘사나 상황의 설명 등 각 문장들이 유려하지가 못하다. 또한 문법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장들이 속출한다. 예를 들어 '순제가 즉위에 오른 이후로는(2권, p.57)', '그 안에 적힌 이름들을 호명하자(2권, p.108)' 등은 '역전앞'과 같은 동어반복이라는 문법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2권의 마지막 장의 제목이 '마침내 천하의 주인이 된 기황후'이다. 따라서 책의 결말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이런 식의 제목은 소설 구상 단계에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결말을 알아도 결말을 맺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다소 열린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제목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고려시대, 그리고 원나라 시대의 역사적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드라마로 인해 더 흥미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인 기황후는 우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평가가 상반될 수는 있겠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한 나라의 주도권을 잡은 그녀의 스토리를 통해 현실을 조명해 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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