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방과 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기, 독재자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아버지를 둔 딸의 이야기이다. 그 딸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진주 사천공항에 내려 예전에 왔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진주는 그녀의 아버지가 수감되었던 도시이다. 겁 많은 딸이었던 자신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그 아버지의 기억이 스친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성인이 된 딸은 홀로 진주로 간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도망다니던 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늘 미행당하고, 발각될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딸은 아버지를 존경의 마음으로 기억에 담고 있다. 교도소장 마저도 존경한다고 말했던 그 아버지. 학교 선생님도 아버지를 훌륭하신 분이라고 하셨것만 선생님들은 그렇게 훌륭한 분이 왜 이 세상에서 도망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딸은 깨닫는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분들은 자신들이 독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싸우는 분들이었다.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분들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그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을 위한 새로운 투쟁을 해왔다. 젊은 시절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모두 얼굴과 눈빛이 달라졌고, 때로는 금배지를 단 의원이 된 사람도 생겨났다. 결국 책에서도 언급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말처럼 오늘날 반딧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시야가 반딧불을 찾아낼 만큼 충분히 어둡지 못하기에 우리가 반딧불을 못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주공항에 도착한 딸의 마음에 아버지와의 과거는 애써 숨기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결코 숨겨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진주는 그녀에게 고향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감옥이 있던 진주에서 아버지와 함께 시절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숙제를 가지고 가지 않은 딸은 준비물을 가져온 아빠를 무시하며 모른척 한다. 아버지와 그 동료들과 함께 투쟁의 노래를 부르던 일도 기억에 스친다. 지금의 고통이 언젠가는 반드시 복이 되어 찾아들 것이라는 선녀보살의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해 그렸을 것 같은 어린 시절 손과 발의 그림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아빠,. 저의 손이에요. 저의 발이에요. 저는 이만큼 자랐어요." 어린 시절 함께 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그리고 그 딸은 서로에게 얼마나 그리움이었고 고통이었을까.


어린 시절 200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쓴 글을 보다보면, 책의 구석구석에서 딸의 상처받은 마음이 느껴질 때면 잠시 읽기를 멈추게 된다. 그 마음을 느껴보려고 잠시 머리 속으로 그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이 부서진 기억을 되찾기 위한, 그 아버지의 딸이 남긴 기록이다. 굳이 소설이라고 한다면 자전적 소설 느낌이 난다. 또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느낌으로 읽으면 뭉클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기욤 뮈소의 반가운 신작이 출간되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기욤 뮈소의 작품은 <센트럴 파크>였다. 그동안 기욤 뮈소의 이름을 못들어 본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에 읽어야지 하며 미루던 차에 마침내 읽었던 작품이었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적절히 결합된 이 작품을 읽고나서 기욤 뮈소의 이름을 내 기억 속에 각인시키게 되었다. 그 뒤에 읽었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인데 <센트럴 파크>에는 약간 못미치지만 그래도 획기적인 스토리 구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이후에 세번째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이 바로 이 <브루클린의 소녀>이다. 이 소설에서는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주인공인 라파엘과 여자주인공인 안나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라파엘은 결혼하기 전에 안나의 과거에 대해 궁금하다며 안나를 다그쳤고, 그 이후에 안나는 자취를 감춘다.



안나의 행방에 수상한 기미를 느낀 라파엘은 전작 형사의 마르크의 도움을 받아 안나의 행방을 추적해 나간다.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안나의 과거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라파엘은 안나가 과거에 살았던 뉴욕의 할렘가를 향해 간다. 그 이후에 이야기는 마르크의 이야기와 라파엘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안나의 원래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임을 알게 되고 그녀는 과거에 사이코 패스였던 하인츠 키퍼 사건의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왜 과거를 숨기고 파리로 와서 안나 베커라는 이름으로 살아야만 했을까.


미처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에 하나의 궁금증은 또다른 궁금증을 만들어내고 애초에 궁금했던 점들은 빙산의 일각임을 알게 된다. 라파엘과 마르크는 각자 영역에서 안나의 행방을 추적하게 되면서 마르크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라파엘은 미국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각 주인공들이 경험했던 충격은 역시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뭔가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마지막 몇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결말이 예상되지 않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했다. 한국 독자들을 고려해서인지 한국인 이름도 등장시킨다. 추워가는 겨울 밤 따뜻한 방구석에서 소설의 한기를 느껴가며 쾌감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픽업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덧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네번째로 읽게 되었다.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온≫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새록새록하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과연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자연스레 인정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픽업을 포함하여 전체 열두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간 발표했던 여러 장편소설에 나오는 인물에 못지 않게 짧은 분량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내고 있다.



<픽업>은 금융사기꾼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를 유치하고 자금을 빼돌려서 돈을 버는 인간말종이 주인공이다. 결국 피해자 중의 한명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복수를 당하며 결국 손가락 하나를 잘리게 되는 끔찍한 결말을 맡게 된다. 잘린 손가락으로 맥도날드에 음식을 주문하며 주문받는 청년이 희대의 사기꾼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직한 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짤막한 단편인 <크리스마스 반지>과 뒤에 이어지는 <여름 소나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특히 여름 소나타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애인을 놓아버리고 나서 후회하며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결국 애인을 내치고 결혼한 여자와도 결별을 하게 되는 결말이 영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 나는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날을 긴 호흡으로 읽어내려나는 장편소설과는 달리 시작하려는가 싶으면 끝나버리는 단편소설의 짧은 호흡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이 책 역시 고민 끝에 읽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단편소설집의 기존 인상을 지우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단편소설집이지만 인물들이 극단적이다보니 서로 연결고리를 찾게 되고, 앞에 나온 인물이 뒤에 나온 인물과 동일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열두 편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 상의 아쉬움은 인간의 아름다운 면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글라스 케네디 특유의 스토리라고 여겨지지만 열두편이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 이혼, 일탈, 미움, 사기, 일탈 등 인간의 어두운면을 주로 다룬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은 밝고 아름다운 면을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아이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작년 10월에 읽은 ≪죄의 메아리≫의 저자가 쓴 소설이다. 죄의 메아리도 그러하였지만 역시나 밤을 새서 읽어보고 싶은 또 하나의 장편소설로 평가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며,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연결될 때마다 이야기의 종말이 어떻게 구성될지 긴장하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 한 50여 페이지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여인 그웬 베켓이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데이브 탠너와 만나 약혼식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데이브 탠너의 정체가 무엇인가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에이미 밀즈의 살인사건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이 살인사건과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고리를 갖게 될런지 궁금하게 만든다. 또한 약혼식에서 그웬과 데이브의 결혼을 반대하며 소동을 피운 피오나 반즈가 살해되면서 피오나의 정체와 함께 피오나를 살해한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약혼식 소동 이후 피오나와 채드 베켓(그웬 베켓의 아버지)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뭔가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되려나보다 했는데 역시나 곧이어 '다른아이'편이 시작되면서 1940년으로 거슬로 올라가 피오나와 채드 베켓(그웬 베켓의 아버지)의 어린시절이 등장하는 짤막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노바디' 브라이언 소모빌은 이야기의 전체 흐름을 흔들어 놓는다.


이 책의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물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시간을 초월하여 상당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인물에 대해서 메모를 하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또한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다양하며 스토리가 빈틈없이 탄탄하다는 느낌이다.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살인자가 누구일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살인에 연관된 다양한 스토리의 결말이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소설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몇번의 만남을 통해 대략 이런 사람일 것이라며 지레짐작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사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내면의 또다른 면이 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우리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오해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게다가 장르소설로서 갖추고 있어야 할 대부분의 흥미요소들은 다 갖추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을 만한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펠탑만큼 커다란 구름을 삼킨 소녀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밝은세상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제목과 저자를 봤는데 일단 저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웬지 긴 제목이 어디선가 봤을 법한 느낌도 들어서 조회를 해보니 작년 이맘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의 저자가 쓴 신간이었다. 그때의 추억을 더듬어 보니 소설치고는 은근히 철학적인 내용 속에 배꼽을 잡게 만드는 코믹 코드가 숨어있는 작품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 역시 그냥 한번 읽고 끝내버릴 킬링타임용 소설이 아닌 인간 삶에 대해 좀더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이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전작 같은 경우 워낙 황당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책 첫페이지부터 스토리 몰입감이 대단했지만 이 책은 그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하늘을 날겠다고 공항 관제탑에 연락을 하는 비키니 입은 여자 이야기가 살짝 호기심이 생기지만 현실세계 관점에서 봤을 때 너무 얼토당토않은 설정이기때문에 이게 무슨 SF소설도 아니고 판타지 소설도 아닌고 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주인공인 프로비당스는 프랑스의 여자 집배원이다. 점액과다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는 모로코 소녀 자헤라를 알게 되어 그를 살려내리라 다짐하고 딸로 입양한다. 하지만 화산재로 인해 모로코 뿐만 아니라 공항의 모든 비행기가 연착하면서 모로코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버린다. 그녀는 결국 하늘을 나는 법을 터득해 모로코로 가게 된다. 하늘을 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과 모로코로 가게 되는 과정이 3/4 정도를 차지한다.


프로비당스와 자헤라의 이야기는 소설 속의 주인공 내가 미용사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가끔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혼동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프로비당스는 과연 하늘을 날 수 있을까, 그래서 프로비당스와 자헤라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자헤라의 병은 치료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지만 결국 마지막 결론에 이르게 되면 무언가 모를 감동이 밀려오게 된다.


로맹 퓌에르톨라,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작가이다. 이번 두번째 작품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다음 작품을 보게 되었을 때는 절대로 이름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래야 더 감동이 밀려오는 작품을 익숙하게 대할 수 있을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