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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십자가 1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평점 :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던 고려말기의 권력구조는 황제, 최씨 무인정권, 불교계의 삼각구도였다. 이 소설은 당대의 승려이자 문헌학자로 정평이 나 있던 수기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던 지밀 스님이 풀어가는 이야기이다. 당대 최고의 각수장인 김승이 대장경판 772장을 보내온 뒤로 여덟 장의 경판을 보내오자 수기 스님은 의문을 품는다. 추가로 보내온 여덟 장의 경판에는 마굿간에 간난아기가 누워 있고 한 여인과 수염이 풍성한 사내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 그림과 '末艶懷後産一男名爲移鼠(말염회후산일남명위이서)'라는 글씨가 씌여져 있었고 이 부분에 의문을 품게 된다.
의문을 풀기 위해 수기의 명을 받고 개경으로 향한 지밀은 황제가 머물던 개경의 안화사라는 절의 서재에서 발견한 책과 개경에서 만난 몽골군사의 찰갑옷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경교(기독교)의 문양으로 인식한다. 추가로 보내온 경판에 어떤 연유로 경교의 메시지를 심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밀은 각수장 김승을 만나러 길을 떠난다. 경판을 도둑맞은 사건을 감찰할 목적으로 김승을 만나러 떠난 길은 험난했다. 지밀은 고개에서 용오름을 만나 눈이 멀고 타고 간 말은 돌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거기다가 동행한 인보도 죽는다. 죽은 인보의 시신을 살펴보던 중 지밀의 백부인 유승단과 김승이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된다. 인보의 죽음을 둘러싸고 지밀은 김승을 비롯한 경고도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지만 죽음의 원인을 밝혀가던 중 인보가 최이의 간자였음이 밝혀진다. 김승과 탁연 등 경교도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풀어지면서 지밀은 그들과 마을을 같이한다. 사실 그들은 최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부패된 불교를 바로 세워 왕정을 복고하기 위한 혁명을 계획중이었다. 더 나아가서 몽골군을 몰아내는 목표를 세운 것은 물론이다. 이 목표를 세우기 위해 최씨 부자 집에 간자를 파견하기도 한다. 지밀의 의심이 풀어지게 된 계기는 초조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서 불타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2권 중반부로 들어서 경교도 마을 사람들의 목표가 드러나면서 결론을 대략 예상할 수 있다. 아무리 팩션 소설이라지만 그래도 사실에 근거했다면 결국 그때 당시 지엽적으로 번졌던 경교도들은 더 이상 확산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경교도들이 더욱 확산되어 조선시대 이후까지 지속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종교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약간의 반전도 가미되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결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경교(景敎)는 기독교 종파 가운데 하나인 네스토리우스교(Nestorianism)가 동양에 전래된 이후 붙여진 명칭이다. 사실 기독교 계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삼위일체성을 부인하는 등 당시의 전통신학에서 벗어난 주장을 했기 때문에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되어 추방된 사람이다. 그들이 동아시아로 넘어가면서 교세를 확장시킨 종교가 경교라고 불리운다. 소설에서도 가온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내용에서 '도마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영혼'이라는 소개에서 정통 기독교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밀이 경교를 이해하면서 말한 다음 문장에서도 네스토리우스파의 신학이론에 따라 '구원'의 속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인들은 흔히 중생을 구제하겠노라, 세상을 구원하겠노라 장담한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가 없다. 세상은 처음부터 구원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극락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중생구제니, 구원이니 들먹이는 부류나 집단이 있다면 대개가 사기꾼이거나 정신착란자일 가능성이 크다. 종교의 이름을 달고 그런 망발을 한다면 지옥이 거기서 그리 멀지가 않다. - p.302 [2권]
지밀이 그동안의 사건을 돌아보며 종교의 역할을 술회하는 장면은 곱씹어볼 만하다. 요즘 '정치참여'라는 이슈로 종교와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역할을 해야 참 종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인지 정답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천명한다. 어떤 종교라도 타락한 세상을 행햐 입발느 소리, 쓴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썩었다면 그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 그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신을 팔아먹고 번지는 사특한 무리들이다. 그런 종교는 차라리 없어져버려야 세상이 더 평화롭다. 인간은 종교 없이도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p.304 [2권]
오랜만에 재밌는 역사 팩션 소설을 읽었다. 약 300 페이지 가량의 두권이 책이 금새 읽힌다.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의 스타일을 따르면서 내용은 역사와 종교, 문학과 철학을 아우른다. 고려말 최씨 무신정권기의 역사와 대장경의 조성과정 및 기독교의 동방 전래 과정 등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페이지 넘기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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