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전문은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이루어진 미미 여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쓱 훑어봐서는 '아니 인터뷰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시면, 인터뷰가 맞습니다. '마포 김사장'님 특유의 독백형 산문체와 미미 여사님의 조근조근한 답변이 잘 만든 카페라떼처럼 어우러져 있습니다. 맛이 있어요.

 

그러나 이 인터뷰는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여사님의 최근작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김사장님께서도 인터뷰의 도입부에서 그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여사님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미 여사님을 사랑하는 분들께만 주어지는 '특전'입니다. 어째서냐고 묻고 싶으신 분은 북스피어 홈페이지에 가셔서 질문 또는 항의를 남기시면 됩니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여사님의 최근작들을 읽어 보시고 다시 방문해 주시는 겁니다. 이 글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다녀오세요. 뽀뽀뽀.

 

여사님의 심층 인터뷰를 이 서재에 싣게 되어 영광입니다. 북스피어 관계자 여러분들과 여사님의 팬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자, 시작합니다.

 

 

 

이 인터뷰의 중심을 이루는 최신작의 자태

 

 

 

 

 

 

괴담을 모으는 건

괴이한 이야기를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

 

 

미야베 미유키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한때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내가 쓰고 싶어 하던 이야기가 여기 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스물아홉의 봄부터 겨울까지, 나는 발정 난 물개처럼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 속에서 헤맸다. 2004년 무렵의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악한 성질 때문에 초래한다 여기고, 그에 대한 처벌을 통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인을 향한 사회적 시스템의 폭력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등장하는 대변인 같다. 그래서 혹자는 친절한 척,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한 말투를 거슬려하는 모양이다만 나에게는 그러한 말투조차 대단해 보였다. 미야베 미유키 식으로 표현하자면, 씌인 거다.

 

이듬해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을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척 근사한 경험이었다. 예쁘고 마음씨 착한 이웃집 누나가 내 눈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것 같았다. 대사 하나 몸짓 하나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과 그들의 시대가 어찌나 선명하고 활기에 넘치는지,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입에서 술술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데뷔작 『우리 이웃의 범죄』를 비롯하여 열 종의 시대물과 열세 종의 현대물을 만들었고, 최신작 『밤바 빙의(가제)』를 계약했고, 몇 군데 매체에 미야베 미유키에 관한 글을 썼고, 그를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몇 명의 기자들에게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에 올 수 없었고, 나는 내 안에서 너무 커져버린 그와의 만남이 엄두가 나지 않아 일본에 가지 못했다.

 

계기는 ‘독자 펀드’였다. 펀드를 조성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사업적으로 바람직한 이유와 개인적으로 치사한 이유가 상당히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결국 마음에 부담을 잔뜩 짊어진 채로 지금도 식은땀을 석 되나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어쨌거나 오천만 원이 모였다. 두 달 동안 이천만 원만 모여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신작 『안주』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열흘 만에 목표액이 다 모였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작가 미팅에 관한 모든 일정은 신원 에이전시의 이정민 부장이 처리해 주었다. 2012 6 29일 오후 4, 인터뷰는 오사와 오피스(미야베 미유키, 오사와 아리마사, 교고쿠 나츠히코가 함께 만든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본사에서는 나와 최내현 공동 대표가 출동했고 통역은 『안주』의 번역자인 김소연 선생이 맡아주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간 한국의 몇몇 매체들이 했던 질문들, 예를 들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작가로서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등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그러한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포커스는 시대소설에 맞추었다. 이번 기회에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차근차근 훑어보고 싶었다.

 

 

편한 캐릭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제일 처음 쓴 시대물은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이라는 단편이다. 각각 1986, 1987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말하는 검』이라는 동명의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단편집에 대해 특별히 작가의 말을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만큼 애착이 가는 초기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처녀작에 대해 뭔가 주석을 달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으리라.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초고를 완성했을 당시 저는 아마추어나 다름없었고, 장래 프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일 밀리그램도 없었던 시기라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뻔뻔했습니다. 원고를 고쳐 쓰며 새삼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두 번째 단행본(첫 번째 단행본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이다. 즉 발표 순서로는 「말하는 검」이 먼저지만 단행본 출간으로는 『혼조』가 먼저, 『말하는 검』이 나중인 셈이다)을 출간하자는 제의를 받고 수록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했을 때 제일 고민했던 점이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원래 동일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은 어느 정도 작품이 비축되면 한 권으로 묶어 출간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일부러 그런 형태에서 벗어나 이번처럼 단발 작품을 모은 단편집에 수록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제 고집이었습니다.

 

덕분에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장편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고 할까. 원고를 고쳐 쓰며 얼굴을 붉혔다고는 하지만, 초기작이라 여기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구성을 보여준 이 작품으로 그는 제12회 역사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단편 「말하는 검」에는 주인공 오하쓰의 둘째 오라비인 ‘나오지’라는 인물이 나온다. 첫째 오라비인 ‘로쿠조’에 비하면 잘생기고 다정다감하며 능력 있는 캐릭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장편 『흔들리는 바위』에는 빠져 있다. 『말하는 검』을 만들며 둘째 오라비 캐릭터에 반한 본사의 편집자가 아쉬워했다고 작가에게 말해 보았더니, 나오지처럼 근사한 인물은 너무나 쓰기 편하고 쉬운 캐릭터라서 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이라면 그냥 썼겠지만, 당시에는 편한 캐릭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작품이나 인물 설정에 숙고를 거듭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답이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는 팔방미인형 캐릭터 대신 시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혼조』에 등장하는 오린, 『누군가』의 사부로)이나 특수한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물(『흔들리는 바위』의 오하쓰, 『마술은 속삭인다』의 마모루, 『용은 잠들다』의 신지) 들을 주로 등장시킨다. 이중 시대물의 주인공인 오하쓰의 특수한 능력이 ‘초능력’이라는 것은 다소 의외다. 초능력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특기 분야이기는 하지만 시대물에 초능력, 그것도 탐정 역에 사용하기란 다소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래서 작가는 초능력을 도입할 때 오하쓰의 후견인인 네기시 야스모리를 등장시키는데 이 대목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똑같이 쓰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유령과 요괴, 초능력이 실제함을 전제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능하지만, 무엇을 쓰든 그 근저에는 ‘따뜻함’ 혹은 ‘인정’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초기 소설 중에서는 『혼조』의 「배웅하는 등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후카가와 제일의 담뱃가게 오노야에서 일하는 오린이 가게 아가씨의 연애성취 기원을 위해 축시에 참배를 명령받는다. 하지만 늦은 밤 참배하기 위해 오갈 때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배웅하는 등롱’이 오린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동료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자 동료가 오린에게 말한다. “오린, 배웅하는 등롱은 오린 너를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 너를 많이 좋아하는 누군가인지도 모르지.” 작품 속 ‘배웅하는 등롱’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동료의 말 한 마디로 인해 그때부터 ‘배웅하는 등롱’은 오린에게 있어서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왠지, 참을 수 없게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것의 상징으로 변한다. 밤의 어둠 속에 손을 내밀면 따라오는 등롱의 따뜻함이 느껴질 것만 같아 오린은 자신의 마음속에도 등롱이 켜지는 듯한 기분이 된다.

 

『혼조』는 이처럼 오싹하지만 목가적인 여덟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았을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공부하려거든 단편을 많이 써 봐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나서 미야베 미유키에게 물어보았다. 단편을 쓸 때와 장편을 쓸 때 어느 쪽이 어려운지. “저는 단편 작가로 출발했습니다. 단편은 한정된 매수 안에 캐릭터와 구성을 짜임새 있게 살려야 하기 때문에 쓰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저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사노 요佐野洋라는 작가가 제 작품에 대해 ‘당신의 작품은 장편도 하나하나의 단편을 연결한 것 같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제 작품은 장편의 경우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를 떼어놓으면 각각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룬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뭐가 어렵고 뭐가 더 쉽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장편이든 단편이든 똑같이 쓰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작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기만 하면 행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을 즐겁게 하고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단편이든 장편이든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재미있는 소설을 쓸 뿐이다……라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아니고(저녁 여섯 시 이후로는 일절 집필 작업을 하지 않는다) 게임도 많이 하는 모양이지만, 뭐 게임 소설도 쓰니까.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은 초기 단편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에서 활약한 오하쓰가 등장하는 장편이다. 오하쓰는,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는, ‘영험한’ 능력을 가진 소녀, 미소녀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감지한 그녀는 주어진 힘을 이용하여 오캇피키(절도죄로 옥에 갇혔다가 나온 뒤에 포도청에서 포교의 심부름을 하며 도둑 잡는 일을 거들던 사람)인 오빠 로쿠조를 도와 사건을 해결하곤 한다. 두 작품 모두 『미미부쿠로』라는 기담집의 내용을 차용하고 그 작가인 네기시 야스모리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미야베 미유키는, 실존 인물이기도 한 네기시 야스모리를 극에 등장시켜 오하쓰로 하여금 괴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그의 손발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초능력’이라는 기술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미부쿠로』란 ‘소문을 모아 수집한 이야기 주머니’라는 뜻으로, 에도 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우리로 치면 ‘전설의 고향’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전부 10권에 1000편의 기담이 담겨 있는데, 이중 『흔들리는 바위』는 “기이한 돌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이야기”를, 『미인』은 “오래 살아서 사람의 말을 배운 고양이”를 모티브로 삼는다.

 

내면에 어두운 부분을 감싸 안고 있는 인간의 죄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필치, 에도의 정경과 음식 가이드가 회를 거듭할수록(말하는 검-->흔들리는 바위-->미인) 노련해지고 오하쓰와 손발을 맞춰 사건을 해결해 가는 우쿄노스케와의 애정 전선이 궁금해지는 가운데 그는 돌연, 이제 더 이상 오하쓰 시리즈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2002년 『메롱』을 출간한 직후의 인터뷰에서다. 해서 이 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단숨에 대답하더니,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라고 말을 이으며 살짝 웃었다. 오하쓰 시리즈에서 고난에 맞서 사건을 해결하는 건 초능력을 지닌 오하쓰나 말하는 고양이 데쓰였다. 이때 오하쓰와 데쓰는 사건의 당사자이기보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뛰어드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롱』을 기점으로 작가는, 구원이란 초능력을 지닌 외부의 존재가 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다른 이들과의 유대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리라. 그러고 보면 ‘거울’, ‘미늘 갑옷’ 등 일종의 신물神物을 사용하여 ‘괴이’를 잠재우는 패턴은 『미인』에 등장하는 말하는 고양이 데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온 존재에게 구해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낳는 끝없는 힘을 그렸기 때문에, 사령의 망집에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맞서는 『메롱』의 결말은, 그래서 이전 미야베 미유키 시대물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차근차근,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서

 

 

앞서 미야베 미유키는 “실제로 제 작품은 장편의 경우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를 떼어놓으면 각각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룬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뭐가 어렵고 뭐가 더 쉽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그와 같은 구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얼간이』와 『하루살이』다. 아무리 음침한 사건을 그린다 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속 어둠을 마구 발산시킨다 해도, 미야베 미유키가 결국 희망을 그리면서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얘기한 바 있다. 헌데 『얼간이』와 『하루살이』를 거치면서 이 같은 기조가 미묘하게 변한다. 『얼간이』는 일견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편 단편이 연결되며 중반까지 인정 어린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의외의 형식으로 연결되는 중반 이후가 되면 범죄에 손을 물들였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는 ‘범인’과 그 범인을 다 알면서도 숨겨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묘사되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얼간이』가 나온 직후 2001년에는 인간 말종에 가까운 범죄자 ‘피스’를 주인공으로 한 현대 미스터리 『모방범』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확실히 세기가 바뀌는 시기에 간행한 『얼간이』는 미야베 미유키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얼간이』의 후일담이 되는 『하루살이』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고민하는 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 모두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토쿠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오미네는 여자라는 점을 무기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정 넘치는 오토쿠는 오미네가 나쁜 남자에게 속았을 뿐이라 여겨 어떻게든 오미네의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주려 노력하지만, 오미네의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 아는 헤이시로는 오토쿠에게 오미네와 엮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또한 전에 일하던 요릿집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오토쿠의 가게를 돕게 된 히코이치는, 자신의 출세가 빨랐기 때문에 질투를 품은 선배이자 형님인 하나이치에게 지위를 위협당한다고 생각한다. 그 얘기를 들은 헤이시로는, ‘직인이라면 실력의 좋고 나쁨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법인데 그 분함을 딛고 일어나 수업에 전념하거나 진로를 변경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굴러 떨어지고 있는 하나이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이러한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어리광을 받아주거나 상처를 핥아주는 것은 진정한 인정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는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엄격한 인식”이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간이』와 『하루살이』는 분명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걸작은 아니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올리듯 전개는 느긋하고 템포도 할랑하다. 잔잔하다 못해 뭐 이렇게 심심한 소설이 다 있나 하고 느끼는 독자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점(처럼 보이는 것) 덕분에 이야기의 핵심이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이야말로 미야베 미유키가 이야기를 엮어가는 스타일이다,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어쨌든 기분이 좋다. 침상 가마를 타 보니 버릇이 들 것 같다. 벌렁 드러누워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어디든 느긋하게 실려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매일을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올리듯이 차근차근.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서. 모두들 그렇게 하루살이로 산다. 쌓아올려 가면 되는 일이니까 아주 쉬운 일일 터인데 종종 탈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제가 쌓은 것을 제 손으로 허물고 싶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무너진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어째서일까?” 독자는 마지막에 떠오른 물음과 함께 남겨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차근차근, 밥벌이를 찾아서, 모두들 그렇게 하루살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터인데 종종 탈이 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고도 전혀 그런 생각에 잠기지 않으셨다면 할 수 없지만요.

 

 

저도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바다토끼가 나는 여름의 폭풍우 치는 날, 정신 이상으로 아내와 자식을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 막부의 중신 ‘가가 님’이 마루미 번에 유배된다. 이후 가가 님의 악행을 방불케 하는 독사毒死와 유행병을 비롯하여 각종 괴이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전부 ‘가가 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바보의 ‘호’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만이 ‘가가 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데……, 라는 내용의『외딴집』은 지금까지 언급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소설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배경이 ‘후카가와’가 아닌 시코쿠의 가상 마을 ‘마루미 번’이며, 다양한 시정 사람들이 나오지만 막부의 중직을 맡았던 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시정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보다는 번의 존속을 위해 비상식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무가 사회의 비정한 모습이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마루미 번의 모델은 사누키 마루가메 번이고, 유배된 죄인인 ‘가가 님’의 모델은 도리이 요조鳥居耀이다. 도리이 요조는 양학을 경시하고 쇄국정책을 지지했으며, 에도 시대 초기의 봉건적인 농업사회를 복원하기 위해 실시했던 덴포개혁天保改革의 주요 인물이다. 덴포개혁 중 재정상의 곤란과 민중의 궁핍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실시한 도리이의 시정 단속은 매우 엄격했으며 사상과 문화에 대한 통제로 이어졌다. 게다가 함정수사를 주요 수단으로 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요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덴포개혁 말기, 개혁을 주도한 미즈노 다다쿠니를 배신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도리이는 이후 미즈노가 복귀하자 직무태만과 부정을 이유로 해임되어 유죄를 선고받았고, 메이지 유신으로 사면을 받을 때까지 20년 이상을 마루가메 번에 유배된다. 마루가메에서 도리이는 유배지에서의 무료함도 달랠 겸, 젊은 시절부터 터득했던 한방에 대한 소양을 살려 유폐 저택에서 약초를 재배하며 자신의 건강유지 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치료하기 시작한다.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학식도 풍부했던 도리이에게 마루가메의 번사들은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방문했고 그들로부터 존경받게 되었다. 이렇게 연금되어 있던 시절의 도리이 요조는 ‘요괴’라는 소리를 들으며 미움을 받던 관리 시절과는 반대로 마루가메 번의 사람들로부터는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소설,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서 악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도리이 요조를 소재로 하면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기존의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가가 님은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악귀’ 취급을 받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외딴집』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나는 당신의 시대물 가운데 『외딴집』이 최고라 생각한다고 말해 주었더니, 미야베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당시 집필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관해 들려주었다.

 

“이 책을 작업할 때는 몇 번이나 연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시대물인데 가공의 번을 만들다니, 무모한 일을 벌이고 만 제 탓입니다, 공부가 부족해 쓰지 못하겠습니다, 하고요. 그런데 담당 편집자분이 신인물왕래사의 명편집자였어요.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분이라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1 30매 분량을 못 쓰겠다고 하자, 그럼 20매도 좋아요, 라고 하셨지요. 제가 또 우는 소리를 하니까, 그럼 10매만이라도 쓰세요, 라고 했어요. 이번엔 마감 못 맞춰요, 라고 하면, 그럼 하루 더 드릴게요, 라고 격려해 주며 결코 쓰는 걸 멈추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싱긋싱긋 웃으면서 원고를 받아가 주신 덕분에 『외딴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그런 재능을 알아봐 주는 명편집자를 만나 완성한 이야기인 셈이다. 더구나 이 편집자는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를 쓸 때부터 “도중에 몇 번이나 죽는 소리를 하며 ‘이제 못하겠어요, 그만할래요’라고 징징대는” 미야베 미유키를 달래가며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 넙죽 엎으려 절해야 할 대상은 미미 여사 쪽이 아니라 신인물왕래사의 명편집자 쪽일지도. 작가가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혹시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 사람을 인터뷰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

 

 

에도 시대, 간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화려하고도 독특한 모양새의 주머니로 에도 풍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화려한 주머니와는 달리, 이곳에는 가슴속에 상처를 간직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오치카. 미시마야 주인의 조카딸이다. 그녀는 열일곱이라는 꽃다운 나이에도 미시마야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견뎌가고 있다. 어느 날, 주인 이헤에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헤에와 바둑을 두고 싶다며 손님이 찾아온다. 오치카는 어쩔 수 없이 숙부를 대신하여, 숙부가 바둑을 두는 ‘흑백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를 알아보는 법. 손님 역시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사내였다. 손님은 그 자리에서 오치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죽인 형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인,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치카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온갖 불행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죄와 벌이 있다. 각각의 속죄가 있다.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조카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이헤에는 오치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특이한 일을 벌인다. ‘흑백의 방’에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 대회(백물어百物語)를 여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로 오치카, 상처를 간직한 소녀 한 사람이다.

 

2000년에 발표한 『괴이怪』의 속편 격인 『흑백』은 원래 한 권으로 완결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화, 한 화를 『괴이怪』처럼 독립적인 이야기로 쓸 생각이었는데 미시마야라는 설정을 만들어 막상 쓰다 보니 「만주사화」도 「흉가」도 이야기가 길어져 버려서 한 권 분량을 다 썼을 즈음에 “이건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백물어니까 100화까지 쓸게요, 100화를 쓰기 전에 제가 죽는다면 죄송한 일이지만요, 후반은 수명과의 전쟁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해 담당 편집자를 기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미야베 미유키가 말한 ‘백물어(百物語)’란 말 그대로 ‘백 가지 이야기’이며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 대회를 이른다. 우리로 치면 밤에 여럿이 둘러앉아 차례차례 자신이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과 비슷할까. 백물어가 우리와 다른 점은, 이야기하는 장소의 옆방에 사방등을 놓고 백 개의 심지에 불을 붙여놓는데 이야기를 마친 사람이 혼자 옆방에 가서 심지에 붙은 불을 하나씩 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에 놓아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다시 이야기를 하는 방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100번째 이야기까지 마치면 옆방의 심지가 모두 꺼져 어둠에 빠지고, 진짜로 괴이한 현상이나 도깨비가 튀어나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 놀이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일본 괴담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으며 『제국백물어諸百物語(1677), 『오토기백물어御伽百物語』(1706), 『태평백물어太平百物語』 등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백물어를 할 때는 99번째 이야기까지만 하고 100번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괴이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백물어는 일본에서 아주 친숙한 유희로, 일본의 괴담 작가라면 다들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분야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끼와 모리 오가이도 ‘백물어’를 썼을 정도다. 현대 작가 중에는 교고쿠 나쓰히코가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와 『속 항설백물어』로 인기를 끌었다.

 

괴담을 즐기는 풍습이 민간에 꽃을 피웠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글을 써 온 미야베 미유키에게 백물어는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였으리라.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를 ‘라이프 워크(필생의 사업)’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미시마야 괴담이 아니라 미시마야 ‘변조’ 괴담인 이유가 궁금했다. “괴담 대회라는 건 예전부터 있었으니까 새로운 것도 아니지요.” 때문에 이걸 처음 구상할 때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모으는 호사가에게 초점을 맞추는 종래의 방식과 달리,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듣는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흑백』과 『안주』에 등장하는 백물어가 ‘변조’ 괴담인 것은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한다. 백 가지 이야기를 다루지만, 듣는 사람은 여러 명이 아니라 오치카 혼자. 더구나 주인공 오치카에게는 괴담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괴담을 들음으로써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변조’인 이유다.

 

때문에 작가는 “뭐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상처가 있고 힘도 약하며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 필요했다”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핵심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반드시 오치카일 필요는 없다. , 혹은 당신이어도 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이야기의 말미에 그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앞으로도 오치카는 ‘변조 백물어’(괴담대회)를 계속해 나가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점점 나이를 먹어갈 겁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백 가지 이야기를 하나둘 쌓아갈 뿐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오치카의 일생을 그려가고 싶습니다.” 아아 결혼이라, 부럽다. 나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흑백』의 나막신 가게 주인 아들과 『안주』의 서당 선생 가운데 누구와 결혼하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역시. 빙그레 웃을 뿐 알려주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흑백』과 『안주』의 다음 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편, 『흑백』과 『안주』는 일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고 있는 듯하다. 요즘처럼 메일과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로 표현하는 시대에,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지 생각해 본다. 과연 완벽하게 전해지고 있을까. 고래로 괴담은 사람이 사람에게,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방식이었고, 어느 인터뷰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풀어진 새로운 정보가 매일 초단위로 오고가는 현실 속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귀에서 귀로 이야기되고 전해지며 계속되는 게 사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괴담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마주 보고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가의 생각이 『흑백』과 『안주』를 쓰게 만들었으리라. 그런 생각을 직접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텐데, 라고 하니 재삼재사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건강상의 이유(비행기를 타면 고막에 이상이 생긴다)로 나라 밖에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고 만드는 각 나라의 번역자와 편집자에게, 언제나 자신의 작품을 기다려 주는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스페인, 베네수엘라, 뜻밖에 유럽과 브라질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하다. 세계 재패도 멀지 않았다, ……라는 게 반드시 농담인 것만은 아닌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돌이켜 보면 지난 7년 동안 내가 미미 여사와 만날 기회는 꽤 많았다. 이런저런 매체에서 직접 인터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을 번역해서 내는 편집자의 입장으로 미팅을 신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어느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게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미미 여사를 만나는 일은 오래된 나의 소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 소원이 이번에 덜컥 이루어진 거다. 얼마나 기쁜지 아마 임지호 편집장 빼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 ‘독자 펀드’가 아니었다면 좀 더 먼 훗날의 일이 되었겠지. 투자해 준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 만남이 인터뷰의 형태가 된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전부터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에 관해 내 나름대로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왜 현대물이 아니라 시대물이었느냐면, 내가 현대물 보다 시대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뻔한 이유 외에도, 그의 문학적 세계관이랄까 색깔이라고 해야 되나, 그러한 것들이 현대물보다는 시대물에서 더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보고 싶었다. 나는 문학 평론가가 아니니까 이번 인터뷰에 그의 문학적 세계관인지 뭔지 하는 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변명이 되겠지만 작가의 20년 문학 활동을 2시간 동안 조망해 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나 같은 아마추어가 말이지. 질문지를 작성하기 위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몇 날 며칠을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뭐 생색을 내자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인터뷰하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다소 각이 잡힌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인터뷰 당시의 흥취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다. ……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용에 대해서야 읽는 분들이 판단할 일이겠고, 나야 뭐, 지난 7년 동안 영차영차 만들어온 그의 시대물들을 일정한 토대 위에 나란히 세워놓고, , 요기서 이렇게 변했구나, 이 지점은 상당히 미묘한데 왜 이렇게 썼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만나서 물어봐야지, 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마주 앉아 얼굴을 맞대고 그의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떠는 내내 나는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대로의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만큼은 꼭 이 말을 쓰고 싶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당신은 정말 심성이 맑고 순수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해 보았더니, 그럴 리가, 우리 사무실에서 내가 제일 어둡고 사악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교고쿠 나츠히코 씨와 오사와 아리마사 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정해 주었다며 호호 웃는 모습도, 상당히 실례되는 표현이 되겠지만, 귀여우셨어요. 시간이 좀 더 흘러, 본사가 10주년이 될 때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고 싶다. 그때까지, 귀여운 모습으로 지금처럼 써 주세요, 미미 여사님.

 

by 마포 김사장

 

 

 

 

특전 1. 여사님의 귀여운 자태

(사진제공: 북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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