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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서면 인터뷰

 



진행: 문학동네

번역: 홍은주

 


 

© Ivan GimNinez - Tusquets Editores





Q. 무라카미 씨가 데뷔하신 지 40년이 되어갑니다. 데뷔작부터 가장 최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지난 작품들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반면, 무라카미 씨의 문학세계에서 사십 년 동안 바뀌지 않은 핵심은 무엇일까요?

 

A. 첫 소설을 썼을 때가 29세였는데 지금은 68세가 되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합니다. 스물아홉 때는 ‘소설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순여덟이 되고 보니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뭐니뭐니해도 이것은 커다란 차이입니다. 대신 그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즐긴다는 점만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습니다. 글 쓰는 일은 변함없이 즐겁습니다. 마치 악기를 자유로이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죠.

 

 


Q. 1Q84』 이후 7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입니다. 처음 구상에서 탈고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구상의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경험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A. 대략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기분전환으로 번역을 조금 한 것 말고는 거의 다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상이라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글이 ‘써진다’ 싶으면 집필을 시작하고, 매일 계속해서 써나가고, 다 쓸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자유로울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 구상 같은 것은 대체로 방해가 될 뿐입니다.

 


 

Q. 냄새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아키가와 마리에의 경우 엄마를 떠올릴 때 엄마의 체취가 아닌 그때 내리던 비의 냄새를 기억하고, 아키가와 쇼코는 재규어의 냄새에서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또한 주인공 ‘나’가 메타포의 땅에서 현실세계에 다가가는 순간도 ‘냄새다운 냄새를 맡는 순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음악과 음식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다양한 음악과 음식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유독 후각에 대한 예민함이 곳곳에 보입니다. 후각이라는 감각이 유독 이번 책에 두드러진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공간을 혹은 어떤 인물을 기억할 때, 후각이 크게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되도록 오감을 전부 활용해 글을 쓰려 합니다. 물론 후각도 오감 가운데 하나지요. 특별히 후각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Q.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 ‘자신을 믿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품 속 화자인 ‘나’도 ‘믿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요.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가장 힘든 것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믿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무라카미 씨는 살아오면서 자신이 믿는 바대로 나아갔는지, 작가로서 스스로를 믿는 힘이 주인공 ‘나’처럼 단단했는지, 아니면 멘시키처럼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려’ 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일상생활에서는 제 의견이나 신념을 꽤 확실히 지니는 편입니다. 그러나(어쩌면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믿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런 의견이나 신념을 한순간에 무화시켜버리는, 나 자신을 초월한 곳에 존재하는 흐름 같은 것입니다. 그런 힘을 정면에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혹은 그런 힘에 순순히 몸을 맡기지 못한다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Q. 이번 작품 출간 이후 일본 극우파로부터 적잖은 공격을 받으신 것으로 압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좌우 갈등의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평행선을 그리는 역사관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렇다면 거기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A. 역사에서 ‘순수한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이냐 백이냐’ 하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댑니다. 이것은 매우 슬프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소설(이야기)은 그런 단편적인 사고에 대항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야말로 소설이 일종의 (좋은 의미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가 아닐까요. 그리하여 다시 한번 말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말을 따뜻한 것, 살아 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양식(decency)’과 ‘상식(common sense)’이 요구됩니다.

 


 

Q. 한국 국민들은 2014년에 4 16일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하여 수백 명이 물속에 가라앉은 사건을 공동체적 트라우마로 경험했습니다. 그 사건은 한국 문단에도 큰 영향을 끼쳐 ‘세월호 문학’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다수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다루어지기도 하는데요, 재난 이후 문학 그리고 문학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까요?

 

A. 어떻게 하면 그렇게 크고 깊은 집단적 마음의 상처를 이야기가 유효하게 표현하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을까? 이건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여러 차례 시도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으로서는 대부분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가지 기억해둬야 할 것은 ‘어떤 명백한 목적을 지니고 쓰인 소설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진 중대한 과제입니다.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는(혹은 지워버리는) .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이런 시도에 꼭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축해야 합니다.

 


 

Q. 소설가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무라카미 씨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남다른 믿음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소설’이라거나 ‘문학’이라기보다는 굳이 ‘이야기’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같은 질문을 달리 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야기의 무엇이 우리에게 그토록 절실한 것일까요? 여태껏 작품활동을 해오시면서 이야기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체험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제 정의에 따르면 이야기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몸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넘쳐나는 것입니다. 의미나 정의, 무슨무슨 주의(主義) 같은 것을 아득하게 넘어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성이나 선악의 개념마저 초월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 것입니다. 그런 힘을 지니지 못한 소설은 아마 독자를 끌어당기지 못할 테지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의 힘을 생생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뛰어난 능력과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일을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나름대로 노력을 거듭해왔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Q. 이 질문지를 준비하는 현재 한국은 『기사단장 죽이기』 예약판매중인데요. 벌써 반응이 뜨겁습니다. 한국에는 무라카미 씨를 무한 신뢰하고 애정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수많은 독자들이 무라카미 씨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한국을 방문할 계획은 없으신지요?

 

A.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공적인 행사를 썩 좋아하지 않고 미디어에 출연하는 일도 거의 없기에 아무래도 결국 이런 초대를 사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 독자 여러분께는 늘 각별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제 책을 변함없이 열심히 읽어주셨습니다. 이번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도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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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전문은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이루어진 미미 여사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쓱 훑어봐서는 '아니 인터뷰가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시면, 인터뷰가 맞습니다. '마포 김사장'님 특유의 독백형 산문체와 미미 여사님의 조근조근한 답변이 잘 만든 카페라떼처럼 어우러져 있습니다. 맛이 있어요.

 

그러나 이 인터뷰는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여사님의 최근작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김사장님께서도 인터뷰의 도입부에서 그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여사님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미 여사님을 사랑하는 분들께만 주어지는 '특전'입니다. 어째서냐고 묻고 싶으신 분은 북스피어 홈페이지에 가셔서 질문 또는 항의를 남기시면 됩니다.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여사님의 최근작들을 읽어 보시고 다시 방문해 주시는 겁니다. 이 글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다녀오세요. 뽀뽀뽀.

 

여사님의 심층 인터뷰를 이 서재에 싣게 되어 영광입니다. 북스피어 관계자 여러분들과 여사님의 팬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자, 시작합니다.

 

 

 

이 인터뷰의 중심을 이루는 최신작의 자태

 

 

 

 

 

 

괴담을 모으는 건

괴이한 이야기를 모으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

 

 

미야베 미유키를 처음 읽었을 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한때의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내가 쓰고 싶어 하던 이야기가 여기 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스물아홉의 봄부터 겨울까지, 나는 발정 난 물개처럼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 속에서 헤맸다. 2004년 무렵의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의 악한 성질 때문에 초래한다 여기고, 그에 대한 처벌을 통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일인을 향한 사회적 시스템의 폭력이 절정에 달한 순간, 그를 변호하기 위해 등장하는 대변인 같다. 그래서 혹자는 친절한 척,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한 말투를 거슬려하는 모양이다만 나에게는 그러한 말투조차 대단해 보였다. 미야베 미유키 식으로 표현하자면, 씌인 거다.

 

이듬해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을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척 근사한 경험이었다. 예쁘고 마음씨 착한 이웃집 누나가 내 눈앞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것 같았다. 대사 하나 몸짓 하나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과 그들의 시대가 어찌나 선명하고 활기에 넘치는지,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입에서 술술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데뷔작 『우리 이웃의 범죄』를 비롯하여 열 종의 시대물과 열세 종의 현대물을 만들었고, 최신작 『밤바 빙의(가제)』를 계약했고, 몇 군데 매체에 미야베 미유키에 관한 글을 썼고, 그를 인터뷰하고 싶어 하는 몇 명의 기자들에게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에 올 수 없었고, 나는 내 안에서 너무 커져버린 그와의 만남이 엄두가 나지 않아 일본에 가지 못했다.

 

계기는 ‘독자 펀드’였다. 펀드를 조성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사업적으로 바람직한 이유와 개인적으로 치사한 이유가 상당히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결국 마음에 부담을 잔뜩 짊어진 채로 지금도 식은땀을 석 되나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어쨌거나 오천만 원이 모였다. 두 달 동안 이천만 원만 모여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신작 『안주』에 대한 기대감의 발로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열흘 만에 목표액이 다 모였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작가 미팅에 관한 모든 일정은 신원 에이전시의 이정민 부장이 처리해 주었다. 2012 6 29일 오후 4, 인터뷰는 오사와 오피스(미야베 미유키, 오사와 아리마사, 교고쿠 나츠히코가 함께 만든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본사에서는 나와 최내현 공동 대표가 출동했고 통역은 『안주』의 번역자인 김소연 선생이 맡아주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간 한국의 몇몇 매체들이 했던 질문들, 예를 들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작가로서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등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그러한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포커스는 시대소설에 맞추었다. 이번 기회에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차근차근 훑어보고 싶었다.

 

 

편한 캐릭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제일 처음 쓴 시대물은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이라는 단편이다. 각각 1986, 1987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말하는 검』이라는 동명의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단편집에 대해 특별히 작가의 말을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만큼 애착이 가는 초기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처녀작에 대해 뭔가 주석을 달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으리라.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초고를 완성했을 당시 저는 아마추어나 다름없었고, 장래 프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일 밀리그램도 없었던 시기라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뻔뻔했습니다. 원고를 고쳐 쓰며 새삼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두 번째 단행본(첫 번째 단행본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이다. 즉 발표 순서로는 「말하는 검」이 먼저지만 단행본 출간으로는 『혼조』가 먼저, 『말하는 검』이 나중인 셈이다)을 출간하자는 제의를 받고 수록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했을 때 제일 고민했던 점이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원래 동일 인물이 등장하는 연작은 어느 정도 작품이 비축되면 한 권으로 묶어 출간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일부러 그런 형태에서 벗어나 이번처럼 단발 작품을 모은 단편집에 수록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제 고집이었습니다.

 

덕분에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은 장편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고 할까. 원고를 고쳐 쓰며 얼굴을 붉혔다고는 하지만, 초기작이라 여기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구성을 보여준 이 작품으로 그는 제12회 역사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단편 「말하는 검」에는 주인공 오하쓰의 둘째 오라비인 ‘나오지’라는 인물이 나온다. 첫째 오라비인 ‘로쿠조’에 비하면 잘생기고 다정다감하며 능력 있는 캐릭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장편 『흔들리는 바위』에는 빠져 있다. 『말하는 검』을 만들며 둘째 오라비 캐릭터에 반한 본사의 편집자가 아쉬워했다고 작가에게 말해 보았더니, 나오지처럼 근사한 인물은 너무나 쓰기 편하고 쉬운 캐릭터라서 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이라면 그냥 썼겠지만, 당시에는 편한 캐릭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느 작품이나 인물 설정에 숙고를 거듭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답이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는 팔방미인형 캐릭터 대신 시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혼조』에 등장하는 오린, 『누군가』의 사부로)이나 특수한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물(『흔들리는 바위』의 오하쓰, 『마술은 속삭인다』의 마모루, 『용은 잠들다』의 신지) 들을 주로 등장시킨다. 이중 시대물의 주인공인 오하쓰의 특수한 능력이 ‘초능력’이라는 것은 다소 의외다. 초능력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특기 분야이기는 하지만 시대물에 초능력, 그것도 탐정 역에 사용하기란 다소 부담스러웠으리라. 그래서 작가는 초능력을 도입할 때 오하쓰의 후견인인 네기시 야스모리를 등장시키는데 이 대목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똑같이 쓰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유령과 요괴, 초능력이 실제함을 전제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능하지만, 무엇을 쓰든 그 근저에는 ‘따뜻함’ 혹은 ‘인정’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초기 소설 중에서는 『혼조』의 「배웅하는 등롱」이 이를 잘 보여준다. 후카가와 제일의 담뱃가게 오노야에서 일하는 오린이 가게 아가씨의 연애성취 기원을 위해 축시에 참배를 명령받는다. 하지만 늦은 밤 참배하기 위해 오갈 때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배웅하는 등롱’이 오린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동료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자 동료가 오린에게 말한다. “오린, 배웅하는 등롱은 오린 너를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 너를 많이 좋아하는 누군가인지도 모르지.” 작품 속 ‘배웅하는 등롱’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동료의 말 한 마디로 인해 그때부터 ‘배웅하는 등롱’은 오린에게 있어서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왠지, 참을 수 없게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것의 상징으로 변한다. 밤의 어둠 속에 손을 내밀면 따라오는 등롱의 따뜻함이 느껴질 것만 같아 오린은 자신의 마음속에도 등롱이 켜지는 듯한 기분이 된다.

 

『혼조』는 이처럼 오싹하지만 목가적인 여덟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았을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공부하려거든 단편을 많이 써 봐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나서 미야베 미유키에게 물어보았다. 단편을 쓸 때와 장편을 쓸 때 어느 쪽이 어려운지. “저는 단편 작가로 출발했습니다. 단편은 한정된 매수 안에 캐릭터와 구성을 짜임새 있게 살려야 하기 때문에 쓰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저는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사노 요佐野洋라는 작가가 제 작품에 대해 ‘당신의 작품은 장편도 하나하나의 단편을 연결한 것 같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제 작품은 장편의 경우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를 떼어놓으면 각각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룬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뭐가 어렵고 뭐가 더 쉽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장편이든 단편이든 똑같이 쓰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작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기만 하면 행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을 즐겁게 하고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단편이든 장편이든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재미있는 소설을 쓸 뿐이다……라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아니고(저녁 여섯 시 이후로는 일절 집필 작업을 하지 않는다) 게임도 많이 하는 모양이지만, 뭐 게임 소설도 쓰니까.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은 초기 단편 「길 읽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에서 활약한 오하쓰가 등장하는 장편이다. 오하쓰는,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보통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는, ‘영험한’ 능력을 가진 소녀, 미소녀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감지한 그녀는 주어진 힘을 이용하여 오캇피키(절도죄로 옥에 갇혔다가 나온 뒤에 포도청에서 포교의 심부름을 하며 도둑 잡는 일을 거들던 사람)인 오빠 로쿠조를 도와 사건을 해결하곤 한다. 두 작품 모두 『미미부쿠로』라는 기담집의 내용을 차용하고 그 작가인 네기시 야스모리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미야베 미유키는, 실존 인물이기도 한 네기시 야스모리를 극에 등장시켜 오하쓰로 하여금 괴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그의 손발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초능력’이라는 기술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미부쿠로』란 ‘소문을 모아 수집한 이야기 주머니’라는 뜻으로, 에도 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우리로 치면 ‘전설의 고향’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전부 10권에 1000편의 기담이 담겨 있는데, 이중 『흔들리는 바위』는 “기이한 돌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이야기”를, 『미인』은 “오래 살아서 사람의 말을 배운 고양이”를 모티브로 삼는다.

 

내면에 어두운 부분을 감싸 안고 있는 인간의 죄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필치, 에도의 정경과 음식 가이드가 회를 거듭할수록(말하는 검-->흔들리는 바위-->미인) 노련해지고 오하쓰와 손발을 맞춰 사건을 해결해 가는 우쿄노스케와의 애정 전선이 궁금해지는 가운데 그는 돌연, 이제 더 이상 오하쓰 시리즈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2002년 『메롱』을 출간한 직후의 인터뷰에서다. 해서 이 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단숨에 대답하더니,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라고 말을 이으며 살짝 웃었다. 오하쓰 시리즈에서 고난에 맞서 사건을 해결하는 건 초능력을 지닌 오하쓰나 말하는 고양이 데쓰였다. 이때 오하쓰와 데쓰는 사건의 당사자이기보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뛰어드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롱』을 기점으로 작가는, 구원이란 초능력을 지닌 외부의 존재가 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다른 이들과의 유대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표현이리라. 그러고 보면 ‘거울’, ‘미늘 갑옷’ 등 일종의 신물神物을 사용하여 ‘괴이’를 잠재우는 패턴은 『미인』에 등장하는 말하는 고양이 데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온 존재에게 구해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낳는 끝없는 힘을 그렸기 때문에, 사령의 망집에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맞서는 『메롱』의 결말은, 그래서 이전 미야베 미유키 시대물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차근차근,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서

 

 

앞서 미야베 미유키는 “실제로 제 작품은 장편의 경우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토리를 떼어놓으면 각각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저는 단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룬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뭐가 어렵고 뭐가 더 쉽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그와 같은 구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얼간이』와 『하루살이』다. 아무리 음침한 사건을 그린다 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속 어둠을 마구 발산시킨다 해도, 미야베 미유키가 결국 희망을 그리면서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얘기한 바 있다. 헌데 『얼간이』와 『하루살이』를 거치면서 이 같은 기조가 미묘하게 변한다. 『얼간이』는 일견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편 단편이 연결되며 중반까지 인정 어린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의외의 형식으로 연결되는 중반 이후가 되면 범죄에 손을 물들였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는 ‘범인’과 그 범인을 다 알면서도 숨겨주는 주인공의 모습이 묘사되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얼간이』가 나온 직후 2001년에는 인간 말종에 가까운 범죄자 ‘피스’를 주인공으로 한 현대 미스터리 『모방범』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확실히 세기가 바뀌는 시기에 간행한 『얼간이』는 미야베 미유키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얼간이』의 후일담이 되는 『하루살이』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고민하는 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 모두를 구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토쿠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오미네는 여자라는 점을 무기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정 넘치는 오토쿠는 오미네가 나쁜 남자에게 속았을 뿐이라 여겨 어떻게든 오미네의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주려 노력하지만, 오미네의 ‘어둠’이 얼마나 깊은지 아는 헤이시로는 오토쿠에게 오미네와 엮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또한 전에 일하던 요릿집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오토쿠의 가게를 돕게 된 히코이치는, 자신의 출세가 빨랐기 때문에 질투를 품은 선배이자 형님인 하나이치에게 지위를 위협당한다고 생각한다. 그 얘기를 들은 헤이시로는, ‘직인이라면 실력의 좋고 나쁨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법인데 그 분함을 딛고 일어나 수업에 전념하거나 진로를 변경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굴러 떨어지고 있는 하나이치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이러한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어리광을 받아주거나 상처를 핥아주는 것은 진정한 인정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라는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엄격한 인식”이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간이』와 『하루살이』는 분명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걸작은 아니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올리듯 전개는 느긋하고 템포도 할랑하다. 잔잔하다 못해 뭐 이렇게 심심한 소설이 다 있나 하고 느끼는 독자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그러한 결점(처럼 보이는 것) 덕분에 이야기의 핵심이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것이다. 마치, 이것이야말로 미야베 미유키가 이야기를 엮어가는 스타일이다,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어쨌든 기분이 좋다. 침상 가마를 타 보니 버릇이 들 것 같다. 벌렁 드러누워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어디든 느긋하게 실려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매일을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올리듯이 차근차근. 제 발로 걸어가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서. 모두들 그렇게 하루살이로 산다. 쌓아올려 가면 되는 일이니까 아주 쉬운 일일 터인데 종종 탈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제가 쌓은 것을 제 손으로 허물고 싶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무너진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어째서일까?” 독자는 마지막에 떠오른 물음과 함께 남겨져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차근차근, 밥벌이를 찾아서, 모두들 그렇게 하루살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일 터인데 종종 탈이 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고도 전혀 그런 생각에 잠기지 않으셨다면 할 수 없지만요.

 

 

저도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바다토끼가 나는 여름의 폭풍우 치는 날, 정신 이상으로 아내와 자식을 죽였다는 소문이 도는 막부의 중신 ‘가가 님’이 마루미 번에 유배된다. 이후 가가 님의 악행을 방불케 하는 독사毒死와 유행병을 비롯하여 각종 괴이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전부 ‘가가 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바보의 ‘호’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만이 ‘가가 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데……, 라는 내용의『외딴집』은 지금까지 언급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소설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배경이 ‘후카가와’가 아닌 시코쿠의 가상 마을 ‘마루미 번’이며, 다양한 시정 사람들이 나오지만 막부의 중직을 맡았던 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시정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보다는 번의 존속을 위해 비상식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무가 사회의 비정한 모습이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가 직접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마루미 번의 모델은 사누키 마루가메 번이고, 유배된 죄인인 ‘가가 님’의 모델은 도리이 요조鳥居耀이다. 도리이 요조는 양학을 경시하고 쇄국정책을 지지했으며, 에도 시대 초기의 봉건적인 농업사회를 복원하기 위해 실시했던 덴포개혁天保改革의 주요 인물이다. 덴포개혁 중 재정상의 곤란과 민중의 궁핍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실시한 도리이의 시정 단속은 매우 엄격했으며 사상과 문화에 대한 통제로 이어졌다. 게다가 함정수사를 주요 수단으로 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로부터 ‘요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덴포개혁 말기, 개혁을 주도한 미즈노 다다쿠니를 배신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도리이는 이후 미즈노가 복귀하자 직무태만과 부정을 이유로 해임되어 유죄를 선고받았고, 메이지 유신으로 사면을 받을 때까지 20년 이상을 마루가메 번에 유배된다. 마루가메에서 도리이는 유배지에서의 무료함도 달랠 겸, 젊은 시절부터 터득했던 한방에 대한 소양을 살려 유폐 저택에서 약초를 재배하며 자신의 건강유지 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치료하기 시작한다.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학식도 풍부했던 도리이에게 마루가메의 번사들은 가르침을 청하기 위해 방문했고 그들로부터 존경받게 되었다. 이렇게 연금되어 있던 시절의 도리이 요조는 ‘요괴’라는 소리를 들으며 미움을 받던 관리 시절과는 반대로 마루가메 번의 사람들로부터는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소설,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서 악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도리이 요조를 소재로 하면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기존의 해석에 머물지 않는다. 가가 님은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악귀’ 취급을 받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등장인물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외딴집』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나는 당신의 시대물 가운데 『외딴집』이 최고라 생각한다고 말해 주었더니, 미야베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당시 집필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관해 들려주었다.

 

“이 책을 작업할 때는 몇 번이나 연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시대물인데 가공의 번을 만들다니, 무모한 일을 벌이고 만 제 탓입니다, 공부가 부족해 쓰지 못하겠습니다, 하고요. 그런데 담당 편집자분이 신인물왕래사의 명편집자였어요.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분이라 혼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1 30매 분량을 못 쓰겠다고 하자, 그럼 20매도 좋아요, 라고 하셨지요. 제가 또 우는 소리를 하니까, 그럼 10매만이라도 쓰세요, 라고 했어요. 이번엔 마감 못 맞춰요, 라고 하면, 그럼 하루 더 드릴게요, 라고 격려해 주며 결코 쓰는 걸 멈추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싱긋싱긋 웃으면서 원고를 받아가 주신 덕분에 『외딴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그런 재능을 알아봐 주는 명편집자를 만나 완성한 이야기인 셈이다. 더구나 이 편집자는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를 쓸 때부터 “도중에 몇 번이나 죽는 소리를 하며 ‘이제 못하겠어요, 그만할래요’라고 징징대는” 미야베 미유키를 달래가며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 넙죽 엎으려 절해야 할 대상은 미미 여사 쪽이 아니라 신인물왕래사의 명편집자 쪽일지도. 작가가 어찌나 칭찬을 하던지, 혹시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 사람을 인터뷰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

 

 

에도 시대, 간다 미시마초에 자리 잡은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화려하고도 독특한 모양새의 주머니로 에도 풍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화려한 주머니와는 달리, 이곳에는 가슴속에 상처를 간직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오치카. 미시마야 주인의 조카딸이다. 그녀는 열일곱이라는 꽃다운 나이에도 미시마야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견뎌가고 있다. 어느 날, 주인 이헤에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헤에와 바둑을 두고 싶다며 손님이 찾아온다. 오치카는 어쩔 수 없이 숙부를 대신하여, 숙부가 바둑을 두는 ‘흑백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를 알아보는 법. 손님 역시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사내였다. 손님은 그 자리에서 오치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죽인 형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이 뒤섞인, 잔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치카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온갖 불행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죄와 벌이 있다. 각각의 속죄가 있다. 어둠을 껴안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조카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이헤에는 오치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특이한 일을 벌인다. ‘흑백의 방’에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 대회(백물어百物語)를 여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로 오치카, 상처를 간직한 소녀 한 사람이다.

 

2000년에 발표한 『괴이怪』의 속편 격인 『흑백』은 원래 한 권으로 완결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화, 한 화를 『괴이怪』처럼 독립적인 이야기로 쓸 생각이었는데 미시마야라는 설정을 만들어 막상 쓰다 보니 「만주사화」도 「흉가」도 이야기가 길어져 버려서 한 권 분량을 다 썼을 즈음에 “이건 한 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백물어니까 100화까지 쓸게요, 100화를 쓰기 전에 제가 죽는다면 죄송한 일이지만요, 후반은 수명과의 전쟁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해 담당 편집자를 기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미야베 미유키가 말한 ‘백물어(百物語)’란 말 그대로 ‘백 가지 이야기’이며 일본의 전통적인 괴담 대회를 이른다. 우리로 치면 밤에 여럿이 둘러앉아 차례차례 자신이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과 비슷할까. 백물어가 우리와 다른 점은, 이야기하는 장소의 옆방에 사방등을 놓고 백 개의 심지에 불을 붙여놓는데 이야기를 마친 사람이 혼자 옆방에 가서 심지에 붙은 불을 하나씩 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에 놓아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다시 이야기를 하는 방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100번째 이야기까지 마치면 옆방의 심지가 모두 꺼져 어둠에 빠지고, 진짜로 괴이한 현상이나 도깨비가 튀어나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 놀이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일본 괴담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으며 『제국백물어諸百物語(1677), 『오토기백물어御伽百物語』(1706), 『태평백물어太平百物語』 등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백물어를 할 때는 99번째 이야기까지만 하고 100번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괴이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백물어는 일본에서 아주 친숙한 유희로, 일본의 괴담 작가라면 다들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분야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끼와 모리 오가이도 ‘백물어’를 썼을 정도다. 현대 작가 중에는 교고쿠 나쓰히코가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와 『속 항설백물어』로 인기를 끌었다.

 

괴담을 즐기는 풍습이 민간에 꽃을 피웠던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글을 써 온 미야베 미유키에게 백물어는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였으리라.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를 ‘라이프 워크(필생의 사업)’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미시마야 괴담이 아니라 미시마야 ‘변조’ 괴담인 이유가 궁금했다. “괴담 대회라는 건 예전부터 있었으니까 새로운 것도 아니지요.” 때문에 이걸 처음 구상할 때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모으는 호사가에게 초점을 맞추는 종래의 방식과 달리,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듣는 설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흑백』과 『안주』에 등장하는 백물어가 ‘변조’ 괴담인 것은 이러한 차이에서 기인한다. 백 가지 이야기를 다루지만, 듣는 사람은 여러 명이 아니라 오치카 혼자. 더구나 주인공 오치카에게는 괴담을 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괴담을 들음으로써 상처받은 자신의 내면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변조’인 이유다.

 

때문에 작가는 “뭐든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상처가 있고 힘도 약하며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 필요했다”고 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핵심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반드시 오치카일 필요는 없다. , 혹은 당신이어도 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이야기의 말미에 그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앞으로도 오치카는 ‘변조 백물어’(괴담대회)를 계속해 나가면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점점 나이를 먹어갈 겁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백 가지 이야기를 하나둘 쌓아갈 뿐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오치카의 일생을 그려가고 싶습니다.” 아아 결혼이라, 부럽다. 나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흑백』의 나막신 가게 주인 아들과 『안주』의 서당 선생 가운데 누구와 결혼하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역시. 빙그레 웃을 뿐 알려주지 않는다. 지금으로선 『흑백』과 『안주』의 다음 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한편, 『흑백』과 『안주』는 일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고 있는 듯하다. 요즘처럼 메일과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로 표현하는 시대에,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지 생각해 본다. 과연 완벽하게 전해지고 있을까. 고래로 괴담은 사람이 사람에게,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방식이었고, 어느 인터뷰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풀어진 새로운 정보가 매일 초단위로 오고가는 현실 속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귀에서 귀로 이야기되고 전해지며 계속되는 게 사실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괴담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마주 보고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가의 생각이 『흑백』과 『안주』를 쓰게 만들었으리라. 그런 생각을 직접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텐데, 라고 하니 재삼재사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건강상의 이유(비행기를 타면 고막에 이상이 생긴다)로 나라 밖에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고 만드는 각 나라의 번역자와 편집자에게, 언제나 자신의 작품을 기다려 주는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스페인, 베네수엘라, 뜻밖에 유럽과 브라질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다고 하니, 과연 대단하다. 세계 재패도 멀지 않았다, ……라는 게 반드시 농담인 것만은 아닌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돌이켜 보면 지난 7년 동안 내가 미미 여사와 만날 기회는 꽤 많았다. 이런저런 매체에서 직접 인터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을 번역해서 내는 편집자의 입장으로 미팅을 신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어느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게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미미 여사를 만나는 일은 오래된 나의 소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 소원이 이번에 덜컥 이루어진 거다. 얼마나 기쁜지 아마 임지호 편집장 빼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 ‘독자 펀드’가 아니었다면 좀 더 먼 훗날의 일이 되었겠지. 투자해 준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 만남이 인터뷰의 형태가 된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전부터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에 관해 내 나름대로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왜 현대물이 아니라 시대물이었느냐면, 내가 현대물 보다 시대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뻔한 이유 외에도, 그의 문학적 세계관이랄까 색깔이라고 해야 되나, 그러한 것들이 현대물보다는 시대물에서 더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보고 싶었다. 나는 문학 평론가가 아니니까 이번 인터뷰에 그의 문학적 세계관인지 뭔지 하는 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변명이 되겠지만 작가의 20년 문학 활동을 2시간 동안 조망해 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나 같은 아마추어가 말이지. 질문지를 작성하기 위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몇 날 며칠을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뭐 생색을 내자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인터뷰하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다소 각이 잡힌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다. 인터뷰 당시의 흥취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다. ……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용에 대해서야 읽는 분들이 판단할 일이겠고, 나야 뭐, 지난 7년 동안 영차영차 만들어온 그의 시대물들을 일정한 토대 위에 나란히 세워놓고, , 요기서 이렇게 변했구나, 이 지점은 상당히 미묘한데 왜 이렇게 썼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렇다면 만나서 물어봐야지, 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마주 앉아 얼굴을 맞대고 그의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떠는 내내 나는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내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대로의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만큼은 꼭 이 말을 쓰고 싶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당신은 정말 심성이 맑고 순수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해 보았더니, 그럴 리가, 우리 사무실에서 내가 제일 어둡고 사악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교고쿠 나츠히코 씨와 오사와 아리마사 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정해 주었다며 호호 웃는 모습도, 상당히 실례되는 표현이 되겠지만, 귀여우셨어요. 시간이 좀 더 흘러, 본사가 10주년이 될 때쯤 다시 한 번 그를 만나고 싶다. 그때까지, 귀여운 모습으로 지금처럼 써 주세요, 미미 여사님.

 

by 마포 김사장

 

 

 

 

특전 1. 여사님의 귀여운 자태

(사진제공: 북스피어)

 

 

 

 

 

특전 2. 인터뷰 막전막후 후기 및 여사님의 인사말 보러 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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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ce Carol Oates (1938. 6. 16)

 

 

 

조이스 캐롤 오츠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메일 인터뷰의 특성상 한번에 쏟아진 길고 포괄적인 질문들은 간결한 대답을 통해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md이기 이전에 작가의 팬으로서, 답변의 '스타일'이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인터뷰 속에서 가장 최근에 국내에 (다시) 소개된 <좀비>에 대한 몇 개의 힌트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영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더욱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작가입니다. 짧은 인터뷰나마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이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알라딘: 당신은 제가 아는 모든 소설가를 통틀어 가장 다양한 장르를 성공적으로 소화하는 작가입니다. 순수문학을 기조로 하지만 법정 로맨스의 공식을 미묘하게 비튼 『나와 더불어 그대 뜻대로』처럼 그 소재와 전개가 독특한 경우도 있고, 포와 호손의 흔적이 느껴지는 19세기 환상문학 스타일의 작품들, 독특한 분위기의 사이코 스릴러와 동화, SF 단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당신의 다작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곤 하지만, 단지 작품 수로만 봤을 때는 이에 필적하는 작가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도 위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시도가 이루어진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저 작품을 전개하기에 적합한 도구를 탐색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식 자체에 신선함을 느끼고 거기에 일종의 도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츠: '이야기하기'는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렬한 충동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즉 작가가 사용하는 작법 기술의 일부는 그 작가의 문학 및 문학사에 대한 깊은 숙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중개된 목소리’, 말하자면 등장인물의 목소리와 작가의 목소리가 합성된 스타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이야기를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드라마화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가 이야기에 대해 편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그저 읽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경험에 직접 빠져들게끔 만듭니다. 나는 항상 다른 것을 실험하고 있고 쉼 없이 새로운 형태를 모색합니다.

 


 

알라딘: 당신의 소설이 포스트모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감한 시점 변화나 완결되지 않고 중단되는 문장들 같은 외적인 면에 집중하곤 합니다. 반면에 당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배경은 대부분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작품들의 내적 전개는 포스트모던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형식-구조에 대한 관심’ 또는 ‘해석 불가능한 미궁으로써의 세계’ 같은 주제보다는 전통적인 드라마에 더 가깝습니다. 보통의 소설 분류에는 적용시키기 힘든, 불안한 표현과 명료한 스토리의 결합은 어떻게 탄생한 것입니까?

 

오츠: 실험을 통해 작가는 해당 작품에 어울리는 형식 구조를 발견합니다. 예를 들어 『좀비』에서 화자는 늘 독자를 ‘속이는’ 것에 신경을 쓰는, 교활하고 따분한 유머감각을 지닌 독백자monoligist입니다. 짤막한 장들은 그의 급하고 변덕스럽고 참을성 없는 성격을 보여줍니다. 그는 차분해지지 않는 사람이고 만족을 미뤄두는 사람이며 도색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공상가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일종의 일그러진 예술가라 할 수 있죠.

 

 

 
알라딘: 단편집 『소녀 수집하는 노인』에 나오는 작가들, 포,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에밀리 디킨슨은 모두 미국 작가입니다. 또한 당신의 글과 어느 정도 이상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이 다섯 작가는 단지 미국 문학의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일종의 개인적인 오마주로써 선택된 것은 아닌지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소설관은 세간의 평가처럼 ‘포스트모던’하기보다는, 오히려 19세기 이후 종말을 앞두고 있던 낭만주의와 그에 뒤따른 모더니즘 소설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다양한 형식의 서술 방식을 사용해 온 반면에, 그 내용에 있어서만큼은 폭풍 같은 운명 속을 헤쳐 나가는 드라마를 유독 집중적으로 그려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츠: 과거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환기시키는 것은 ‘포스트모던’적인 실험입니다. (포와 디킨슨은 ‘위대한 미국 작가들’이 아닙니다.) 내 글은 때로 장난스럽고, 교조적이거나 무겁지 않아서 즉석에서 쓴 분위기를 풍깁니다. 초현실적인 요소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유를 나타내는 일종의 몸짓입니다.

 

*'작가들' / 질문이 영역되는 과정에서 '작가'가 novelist로 옮겨졌고, 답변에서는 not "great American novelists." 라고 쓰여졌습니다. 이는 포와 디킨슨이 '위대한 소설가는 아니다' 라고 말한 걸로 보입니다. 아마 그들이 시인이어서일 수도 있겠죠. 물론 에드거 앨런 포는 소설도 썼습니다만...

 

 


알라딘: 앞선 두 질문을 바꾸어 말하면, 영감 또는 글을 쓰게끔 만드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예전에 쓰신 작법서 『작가의 신념The Faith of a Writer』에서 영감은 신비에 가까운 성질로 묘사되었는데, 혹시 그 이후에 더 파악하신 점이 있나요?

 

오츠: 영감은, 제게는, 명상과 사색, 그리고 꿈으로부터...

 

 


알라딘: 어둠과 불안이 대부분의 작품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어떤 상징적인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외적 장치인가요, 아니면 내면의 요구 또는 영감에 의한 본능적인 전개인가요? 즉, 어둠은 관찰로 발견하게 되는 ‘바깥’일까요, 아니면 관찰자의 마음을 감싼 내면일까요? 이 둘의 조합이라면 조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오츠: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좀비』의 경우, 내레이터의 자아상 속에 ‘어둠’은 없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정당하다고, 타인들이 자신을 화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부분의 우리와는 아주 다른 존재인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에 매료되었고, 그러한 개인을 표현했습니다.

 

 


알라딘: 위에서 언급한 『소녀 수집하는 노인』에 수록되지 않은 작가들 중에 당신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와 셔우드 앤더슨입니다. 잘 맞혔나요? 영향을 받은 작가 또는 작품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오츠: 포크너, 멜빌, 포만큼이나 루이스 캐럴,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D. H. 로렌스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알라딘: 눈여겨보시는 젊은 작가가 있는지요? 있다면 누구입니까?

 

오츠: 예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가르친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대단히 성공적인 젊은 작가이며,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입니다. 그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재능 있고 대담합니다.

 

 


알라딘: 한국에서 당신의 작품들은 꾸준히 소개되어왔으나, 이번에 재출간된 『좀비』를 통해 비로소 대중적으로 재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비로소 당신을 발견한 독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오츠: 『좀비』는 공상가/소시오패스를 개인의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타인에 대한 이용(오용)에 대한 정치적 발언입니다. 쿠엔틴 P(『좀비』의 주인공)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심리학 교재를 접했고, 거기에 나온 방법대로 자신을 위해 좀비를 만들고자 합니다. 1940~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다양한 동기로 이 전두엽 절제술이 많이 시행되었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정치적 전략입니다. 나는 조국을 무척 사랑하지만, (지금 이곳의 많은 작가-친구들이 그러하듯) 그 사랑은 아무런 비판 없는 눈먼 애정은 아닙니다.

 

-끝

 

-인터뷰 성사를 위해 도와주신 문학동네 관계자 여러분, 본문을 번역해 주신 <좀비>의 번역자 공경희 님께 감사 드립니다.

 

 

 

인터뷰에서 주로 다루어진 책들

 

<좀비>

 

 <소녀 수집하는 노인>

 

 

 

 

알라딘 저자 파일의 조이스 캐럴 오츠 보기 -> 클릭하세요

위키피디아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 보기 (영문) ->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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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velist가 아니라고 한 건 에드거 앨런 포는 단편을 주로 썼기 때문일 겁니다. novel은 주로 장편을 뜻하거든요 ^^ 흥미로운 인터뷰 잘 봤습니다~ :) 두 권 다 읽어보고 싶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3-02-25 09:31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소설가라고 말한 건 포+디킨슨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둘의 공통점이 시였으니까 아마 그런 의미일거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호박새님의 말씀이 더 어울리네요. 역시 포를 좋은 소설가가 아니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으니까요. ㅎㅎ 그러고보니 인터뷰 올릴 때 무척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왜 포가 좋은 소설가가 아니란거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시원하다..
 

 

 

귀여운 목소리의 미미여사십니다.

좌측을 자꾸 쳐다보셔서 대본이 있는가 싶었지만, 그 자세가 '고심하는 상태'임을 후반부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홍보 인터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첩보를 전해주신 분에 의하면 이 인터뷰는 여사님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자청하신 녹화라고 하네요. 마음에 들어 하셨답니다. 세 번이나 보셨다고도 해요(정말?!). 하긴, 여사님께서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시는 걸로도 알려져 있죠. 특히 봉준호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십니다. 본인의 작품을 영화화 해주길 기다리고 계실지도 몰라요. 언제 꼭 한 번 이뤄졌음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은 무엇보다 <화차>로 여사님의 세계에 새로 진입하신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분이십니다.

 

이 인터뷰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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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2-03-1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정말 귀여운 목소리네요. ㅋㅋㅋ

외국소설/예술MD 2012-03-13 09:1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귀여우시죠. 눈이 막 반짝반짝거리는 것 같아요.

쥬베이 2012-05-10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여사님 말씀하시는 거 처음 봄
되게 귀여우시다ㅋㅋㅋ
 

<다, 그림이다>의 공저자 손철주, 이주은 님을 만났습니다. 이상하게 재미있는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표현할까? 아, 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妙 하다!

 

정말 그런지 한번 확인해 보시죠.

 

-알라딘 최원호, 이승혜 MD

 

 

 

 

 

알라딘: 일반적인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책의 포맷이 특이한데요, 두 분이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이 기획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포맷의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요?


손철주(이하 손): 에디터와 이주은 교수의 사전공작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서 저는 포획됐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미 다 정해진 다음에 같이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나요?

 

손: 우리를 엮은 것에 나는 포박당한 거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은 삼자가 오래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눴죠. 이런 꼴이 나오게 된 것은 합작의 결과입니다.

 

이주은(이하 이): 제가 작년에, 마종기 선생님하고 루시드폴이 쓴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편지 형식이 신선했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의 출판사 담당자가 제 대학원 후배에요.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은데 파트너가 어떤 사람이 좋을까’ 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대뜸 손철주 교수님은 어떠냐. 손 교수님이 나랑 작업을 하시겠냐 (웃음) 그렇게만 얘기가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날 손철주 선생님을 만날 일이 생겼어요. 같이 식사를 하는데 제가 한 번 여쭤봤어요. 같이 한 번 써보실래요? 그렇게만 말씀을 드리고 생각할 시간을 드렸어요. 선생님이 여행을 다녀오시고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셋이 합작이 시작이 됐습니다.


알라딘: 그러면 원고는 꼭지마다 왔다갔다하면서 쓰여진 건가요? 한 분이 먼저 쓰고 다른 분이 다음에?


이: 아니에요. 처음 계획을, 어떤 것들을 써야겠다 어느 정도 정하고 시작해야 될 것 같아서 저도 목차를 짜고 선생님도 목차를 짰어요. 합의를 하면서 진행이 됐습니다.


알라딘: 제시된 주제들이 주로 어둡지 않은, 무난한 소재들이 선택이 된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같이 고르신 건가요? 단어들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손: 우리는, 거대한 담론을 거론할 만한 - 이 교수는 제외하고- 저한테는 그런 깜냥이 없어요. 


이: (웃음) 저도 없어요. 저도 일상적인 거 좋아해요.


손: 사소하지만 삶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주제어가 무엇인가 하고 여러 개를 뽑았죠. 그 중에 어떤 것들이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만한 키워드인가 고민해보고 그래서 열 개 정도가 나왔습니다.


알라딘: 혹시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습니까?


손: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인데 그 질문 속에는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알라딘: 이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이 있는데요, 이따가도 여쭤보겠지만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기획과정에서 빠졌다거나 물려놓은 주제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 이 질문에 대해서는 허무한 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딱 하나가 있어요. ‘남녀의 시각’이에요. 출판사 담당자가 이거는 했던 말 또 하는 것 아니냐 하면서 가차없이 빼버렸어요. 아마 글이 신통치 않았겠지. (웃음)


알라딘: 실제로 본문까지 작성이 됐다가 편집과정에서 빠진 건가요?

 

손: 네, 그렇죠.

 

알라딘: 그 주제에 대해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 맨 처음에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 꼬집어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각각의 입장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볼 때 내가 그 그림의 어느 부분에 교감하는가가 관건이 되지, 내가 여자라서, 남자라서 관점이 다른 건 아닌 것 같아요. 남녀 시각의 차이를 꼬집는다는 게 어려웠어요. 어렵다보니까 글이 문장을 장악하지 못해서 난해해졌나봅니다.

 

알라딘: 그 주제만 가지고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맞아요. (웃음) 그리고 그 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여자 대표자가 아니고, 손 교수님이 남자 대표자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남녀로 구분지을 수 없는 경험들이 있어요.
 

 

본격적으로

 

알라딘: 제가 이 책의 카피를 썼을 때 느낀 점입니다. 두 분의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른 점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손철주 선생님은 그림을 먼저 보고 그 안의 형식이나 기법을 서술함으로써 이야기를 먼저 풀어나가세요. 이주은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떤 그림에서 시작된 영감이나 흥취를 포착한 뒤에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다른 예술 작품들로 옮겨갑니다. 단지 문장의 스타일이 아니라 구성 자체가 그런 식인데요, 손철주 선생님과 달리 안에서 파생해서 밖으로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이주은 선생님의 경우에는 이전 글에서 보여졌던, 외부로 확장되는 식의 글쓰기가 보다 심화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글이 대조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고요. 이것이 편집과정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잡아가는 전략적인 기획인지, 자연스럽게 합이 이렇게 맞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손: 저에 대한 지적은 100% 맞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텍스트에서 찾습니다. 이번 책의 경우 텍스트는 제가 고른 그림이겠죠. 그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 이런 스타일은 과거에 기자였던 이력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어떤 담론을 먼저 가지고 그 담론에 합당한 텍스트를 찾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반대로 텍스트를 먼저 고르는 편이예요. 일단 텍스트 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면, 기자는 기사를 쓸 때 팩트 중심의 기사를 씁니다. 그 팩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에요. 저는 그렇게 글을 써 왔기 때문에 팩트, 텍스트 즉, 그림 그 자체가 저에겐 더 중요해요. 그 텍스트는 물론 제가 지향하는 키워드도 포함하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키워드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견강부회를 잘 해야 돼요 (웃음).

저는 텍스트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포함되어 있는 가치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깊이 들어가면 미술 전문 서적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책에서) 결국 미술이라는 텍스트 속에서 삶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텍스트를 분석하면서도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삶의 컨텍스트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글을 어디까지 심화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었죠. 이 책을 쓸 때는.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이: 저는 서양미술 속에 있는 그림들을 제가 보는 방식으로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것 같아요. 서양미술을 볼 때 다른 것들이 많이 끼어들어요. 그 그림을 볼 때. 이거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데? 책 속에 나온 장면같은데? 이렇게요.
제가 보는 방식으로 소개하다보니까, 하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패치워크식으로 하나의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서 조각들을 잇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만 제가 하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잘 만들지 않으면 억지스럽지만 잘 만들면 자연스럽게 조각보 안에서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 조각보 안에는 책도 있고,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어요. 그 조합 안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이게 이주은이 보는 방식이야’ 이렇게.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는 단서들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일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런 식의 글쓰기를 <당신도 그림처럼>에서 시작했다가 이번에 더 본격화한 것 같아요.


알라딘: 소재를 이어붙이는 식의 글쓰기를  점점 심화시킨 거군요.

 

이: 네, 자기가 보는 방식으로 결국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에 에세이집을 몇 권 냈을 때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제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제 얘기를 거의 다 하고 (웃음) 이제 제 얘기보다는 제가 본 것들, 모두가 봤을 만한 것들,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주변에 있는 소재들을 끌어다 오면 더 공감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요.

 

알라딘: 친근한 소재를 가져와서 같이 공유하는 방식이군요.

 

이: 네, 같이 수다를 떠는 거죠. 이 그림 보면 뭐 생각나지 않니, 아 맞다맞다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저는 텍스트를 파고들기보다는 처음부터 컨텍스트에서 출발하는 방식입니다.

 

손: 이 교수가 중요한 얘기를 했어요.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언어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맞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에 왕분이라는 문인이 있는데 그 문인이 ‘일체경어개정어야 一切景語個情語也’라는 말을 했어요. 모든 경치를 말하는 언어는 모두 다 자신의 정을 드러내는 말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어떤 경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책의 경우에는 그림이죠- 그 이야기는 내 자신의 정서와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드러내는 언어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글은 경치를 자연의 이치라든가 과학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에요. 감상이란 그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소재를 가지고 문학, 음악, 작곡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다 제 정에 겨워서 우는 소리라는 얘기입니다. 감상이란 그런 겁니다.

비평도 마찬가지죠. 비평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층위가 있습니다. 어떤 비평이라도 텍스트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끔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평론가들은 그 텍스트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 오류가 생깁니다. 경지를, 예술을 이야기하면서는 특히 그 오류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과학적 언어와는 다른 것이죠.

 

알라딘: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여기에 대해 질문을 몇 가지 더 드리려고 했는데 결론이 나왔네요. 계단을 밟아가려고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습니다.


손: 그것은 인터뷰를 위해서 질문을 짜는데... 아마 질문을 짜오셨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이 사람은 이런 답을 하고 다음의 내 질문은 이렇게 한다는 계획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생각대로는 절대 안됩니다. 저는 기자를 해봐서 압니다. 좋은 질문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답이 따라오지는 않아요. 전후 순서가 바뀌고, 어떤 대답이 더 가치있는지의 등위가 헷갈리게 되요. 인터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혼란 중에서도, -우리 인터뷰와는 관계가 없는 얘기에요(웃음)- 억지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대답을 유도해서 내가 써야 할 글 쪽으로 몰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어요. 내 의도와는 다른 일탈된 언술들이 나왔을 때도 그 말의 줄거리를 잡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유능한 기자가 되는 겁니다. 다음에 던져야 할 질문이 대답하는 와중에 일치감치 나왔다고 해서 결코 절망하거나 질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자기의 질문을 포기하고 그 사람의 말에서 단서를 잡아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은 겁니다.


알라딘: 저자 인터뷰를 여러 번 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도 개요대로 가지 않고 쓰다보면 처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인터뷰는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기도 해요.


손: 그렇죠. 생각지도 않은 답이 나왔을 때, 내 글을 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인생에서 대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알라딘: 서른 하나입니다.


손: 김훈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정말 말 안들을 나이입니다(웃음). 그런데 내 말, 내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삶이잖아요. 누구도 자신의 말에게 삶이 복종하게끔 만들 수는 없어요.


알라딘: 많이 와 닿는 말씀입니다. (웃음)


이: 좀 이상한 인터뷴데요? (웃음)

 

 

 


 

인생, 묘, 하다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앞의 다른 책들에서 다 하셨다고 했는데, 독자 입장에서 느낀 바로는, 다루기는 했으나 비껴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그렇죠, 완전 노출시키면 안되죠. 제가 완전 소설가도 아니니까. (웃음) 분위기만 풍기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했어요.

 

알라딘: <당신도 그림처럼> 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의 비율이 줄었다가 이번 책에서는 다시 종종 등장하는데요, 유독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로 어두운 순간들이었는데요. 왜 그런 순간들이 주로 표출이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어두운 순간만 글로 쓰여지는 걸까요?


이: 제 성격이 아마 그런가봐요. 기쁠 때는, 발산을 하면서 기뻐하는 거예요. 저는 제 인생이 기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쁠 때는 그걸 만끽하는데, 안 좋거나 좌절하거나 어둡거나하는 부분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죠. 글쎄요, 잘난 척, 약간의 엘리트 의식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두운 면은 꾹꾹 누르는 거예요. 억압된 것이 그림자로 남는 거죠. 그러다가 어떤 그림을 봤을 때 그 위에 그림자가 덮이는 거예요. 어두운 기억들이 그림 위에 덮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알라딘: 평소의 삶에서 의식적으로 누락시켰던 부분들이 그림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거군요.

 

이: 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올라오는 거죠.


알라딘: 선생님의 어두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 쓰신 책은 전체적으로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죠. 힘들지만 잘 살아봅시다하는 (웃음) 이런 류의 내용이 많았으니까요. 각종 교양서 중에서 생의 어두움을 이렇게 회복해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말하는 책은 많은데, 직접적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책에서 자화상을 이야기한 글 같은 '직접적으로 어두운' 글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저는 어떤 것을 극복하자, 지금 이 단계가 힘드니까 다음 단계로 넘

어가자라는 입장은 아니에요. 힘든 것도 삶의 한 측면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건 극복의 신화들이에요. 저희 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살았고, 그걸 우리에게 알게모르게 강요했는지도 모르죠. 고통을 모른 척 피하는 건 비겁해요. 피하지 않고 보는 것. 지금 순간이 고통이었을지라도 괜찮다라는 입장. 왜냐하면 생이라는 건 그런 단계들이 얼룩져있는 것이니까요. 그게 근본적인, 삶에 대한 제 입장입니다.

 

알라딘: 이 주제와 관련해서 처음 질문 드렸을 때, 중심을 약간 비껴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질문을 드렸었죠. 그때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셨습니다. 만약 고통을 그대로 바라보자라고 생각을 하셨다면,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제가 성숙한 소설가 같은 사람이었다면 삶의 고통이나 내가 느낀 바를 폭로하듯이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 근본 입장은 필터를 끼고 보는 거예요. 그림이라는 필터처럼. 필터를 끼고 현실의 어떤 면들을 조금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몽환적으로. 전 그런 부분이 손 선생님과 맞는 면이라고 생각해요. 손 선생님에게도 약간 몽환적인 부분이 있어요.

 

손: 몽환을 쉬운 말로 번역하면 흐리멍텅. (웃음)

 

이: 저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완전 4차원은 아니고(웃음),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는데, 환상과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는 환멸도 느껴요. 환상, 현실, 몽환, 환멸,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해요. 선생님과 맞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가 약간 환상을 쫓는 면들이라고 생각해요.


손: 그걸 그림으로 대입을 하자면,

중국의 오랜 화론에 보면, 그림의 화품, 그림의 품격을 분류한 사람이 있어요. 가장 오래된 화품의 등급으로 신품, 묘품, 능품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신품은 귀신 신자, 귀신같은 작품이고 묘품은 아주 묘-한 작품, 능품은 아주 능한 작품을 말하는 거죠. 능품은 이른바 잘 그렸다, 명작이다라는 것들이고, 신품은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얘기에요.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은 모든 화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이긴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당대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겁니다. 신의 뜻을 어떻게 알겠어요?

누구나 잘 그린 그림은 능품으로 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 잘 그렸다고 동의하는 겁니다. 신품은 인간으로서 그걸 가려낼 수는 없지만 이디얼Ideal적인 측면, 궁극의 가치가 이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죠.
그 중간에 묘품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정말 묘한 거예요. 묘하다는 말은 묘하기 때문에 묘한 거예요. 저는 그 묘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면,  남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어떤 연유에선가 마음 속 어딘가에 딱 걸리게 되는 그게 묘품이에요. 모든 사람이 잘 그렸다고 이야기하는 능품과는 다른 겁니다. 나에게로 와서 활짝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죠. 다른 사람한테는 그것이 풀에 불과할지라도 나에게는 꽃으로 보이는 작품이에요. 몽환이라는 말도 그런 묘한 정서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점에서는 나도 몽환적인 점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묘품이에요.


이: 서양에서도 그런 게 있어요. 알베르트라는 수학자가 인체의 아름다움을 600개의 비율로 나눴어요. 정말 완벽한 미녀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미녀를 사랑하기란 어렵죠. 대부분의 사람은 눈과 코의 비율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비율이 틀어진 상태, 코가 짧고 인중이 길고 이런 것들이, 그 사람만의 삐뚤어진 부분이 나한테는 너무 매력적인 거잖아요.

 

알라딘: 마치 서양미술에서 풍크툼을 설명하는 부분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다니 처음 들었는데 재미있네요.

 

손: 묘품을 그려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이것이야말로 명품이 되고, 신품이 될 것이다 하는 확신에 차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것으로 됐다, 더 이상 덧칠할 필요가 없다는 시점에서 작품이 탄생하지 않습니까? 아무 보장도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끝을 냈을 겁니다. 필유곡절입니다. 그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곡절과 연유가 자기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이죠. 그런 것이 묘품입니다. 그런 몽환이 어느 한 사람을 평생을 매달리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손 선생님의 몽환과 제 몽환은 다를 거예요. 화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스트들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필터링을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그림을 이중적으로 봐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어두운 면을 같이 보기도 하고, 가장 어두운 순간에 행복한 면을 보기도 하고. 그림이 항상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알라딘: 그것이 선생님 자신의 캐릭터와도 연관이 있나요?

 

이: 그냥 제 캐릭터는 단순한 형이에요. (웃음)

 

알라딘: 손철주 선생님도 책을 읽다보면 본인의 이야기를 안하시죠.

손: 제 얘기를 안한다고요? 제가 이주헌씨와 대담을 했는데요. 이주헌씨가 말하길, 자기는 자기 글에 자기를 집어넣을 수가 없는데, 손선배는 자기 글에 완전히 집어넣는다고 합디다.


이: 손 선생님이 글에 자신을 집어넣는 방식은 옛 선인들의 말에 중첩시키는 방식이에요. 누구누구가 이르기를, 이렇게 인용을 했지만 그게 다 선생님 말씀이에요.

 

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잖아요.

알라딘: 물론 그 글투나, 다루고 있는 문구들을 보면 아, 이런 얘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오죠. 기계적으로 비평을 하는 게 아니라 컨텍스트를 다루면서, 말하자면 빌려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요.


이: 인용을 위한 인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하시는 거죠. 음흉스러운 사람이죠. (웃음)

 

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복화술에 관심이 많아요. 글을 쓰는 행위가 ‘팩트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이지 않습니까. 글은 내가 쓰지만, 내가 인용하거나 거론하고 있는 소재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듣게끔 하는 이른바 복화술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요. 어디 밖에다가는 처음 하게 되는 말인 것 같은데...
내가 내 말로 떠들면 연설처럼 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내 말인데 내 말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 그것이 객관성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즉자적이 아니라 대사적으로 독자들이 여기도록 하는 거죠. 그건 기법적 측면에 관한 것일텐데 저는 제 글이 ‘나’가 많이 들어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다루고 있는 주 소재가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에 빗대서 말을 하는 것이군요.

 

이: 모든 인용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서 끌어오는 거예요. 인용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죠. 학술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어떤 입장으로 끌고 나가려면 계속 그쪽 인용문만 끌어오거든요. 그럼 엄청난 서포트를 받게 되죠.

 

손: 글쓰기를 잘하려면 견강부회를 잘 해야 된다니까 (웃음). 그런데 박음질이 드러나면 하수가 되는 거죠. 그 박음질, 이음매가 드러나고 하면 안되는 거죠. 재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재봉이 어렵다는 거죠.

 

이: 통하는 게 있네요. 아까 패치워크라고 했던 것.

 

 

 


다, 그림이다?


알라딘: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가 일종의 짧은 동양화론, 서양화론인데요. 두 분이 다른 스타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 선생님은 거죽 안에 있는 성정, 기운을 말씀하셨고, 이 선생님은 외면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환영을 창조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죠. 그 마지막 꼭지에 대해서 조금씩 더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 세계는, 혹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인데요. 사실 저는 이 책의 마무리는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량상 짧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 형상의 바깥에서 기이함을 얻는다. 사의간필이라는 기법적 측면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외형을 그리되 그 외형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뜻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화에서 사의 기법이라는 거예요. 외형이 아니라 뜻을 그리는 거죠.  그럼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상외기득이다. 형상 바깥에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아마 소식과 같은 걸 거예요.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 내용은 초자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비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인생에서도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하기. (잠시 침묵) 글을 쓰는 자도 '인생은 고해다' 하면 사실 다 끝나는 거예요. 더 쓸 말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문학인들이 인생이 고해라는 걸 수많은 작품으로 거듭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들어 저것을 말하기인데, 그걸 삶에 대입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일종의 불교의 연기론 같은 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생겼구나 싶습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못 되기를 나혼자서 기원했기 때문에 그 다음날 그 친구가 가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거예요. 황당한 얘기처럼 보입니까? 이건 몽환이 아니고 제가 살아 온 경험이에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 말이 안되죠. 근데 칭찬이 반복되면 고래가 춤추는 거 맞아요.

조선시대 귀빈들 사이에서 사람 저주하면서 찌르는 인형 있지 않습니까, 그거 효과가 있습니다. 세상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슨 얘기하다가 인생론까지 와버렸지?

 

 

 
알라딘: 질문이 그것입니다. (웃음)

 

손: 동양화에 기본정신을 더 이야기하면서 인생과 관련된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웃음). 그것이 생기는 이유는 이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라딘: 눈에 안보이는 일종의 인과법칙이군요.

 

이: 그런 게 동양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서양적 사고는, 예를 들어 별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동양에서는 별이 떨어졌으니 이쪽에서 영웅이 태어나겠구나 하고, 서양에서는 그 별을 파악해서 천문학이 발달하고요. 서양에서는 있는 그 자체로 정복하려고 애쓰고 동양에서는 어떤 사후 징조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미술에서도 나타납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시대에서부터 모방론이 나오고 똑같은 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요. 똑같은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닮은꼴은 속성도 비슷하다는 거죠. 그래서 서양에서는 분류학이 발달합니다. 닮은꼴이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에요. 결국 환영은 끊임없이 추구되어 오면서 서양미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환영과 현실에 대해서 쭉 이야기 하게 됐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인상과 인상이 가지는 내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그런데 김훈 선생님이 서문에서 그 둘을 모아주셨어요. 하나는 솔거의 그림을 똑같이 그린 것. 하나는 신비로움이 빠져버린 그림. 앞뒤가 딱 맞물리는 결과가 나왔어요. 신기해요. (웃음)


 

BONUS
 

알라딘: 이제 간단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근래에 본 책, 영화, 그림 등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으신지.


손: <그날들> 윌리 로니스. 그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는 그런 책을 좋아하나봐. <한번은,(빔 벤더스)> 그것도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사진이 가진 속성 같아요. 한 순간.

 

손: 윌리 로니스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이 주제를 한 번에 포커싱을 해서 응축해나가는 힘이 없어요. 파편화된 문장들이죠. 그래서 인생과 더 닮아있어요. 글도 너무 잘 설계된 글은 가짜 같아요. 못 쓰는 글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아주세요.
내가 만일 그 사진만 봤다면 그 사진에 담겨져 있는 그날들의, 그 순간에 딱 한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온전히 내가 간취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아요. 로니스의 그 못 쓴 글을 읽을 때, 그 사진이 정말 생에서 딱 한 번 벌어진, 위대할 수 있고 경이로울 수 있는 일이 되는구나...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로니스처럼 글을 못 써야 될 것 같아. (웃음) 저도 내가 선택한 그림을 독자에게 확 안겨주고 싶은 허영심이 있어요.

 

알라딘: 그 책의 특징을 확실히 파악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저는 최근에 <흑산>을 읽었어요. (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인터뷰에서 빼야겠는데요. (웃음. <그날들>은 <다, 그림이다>가 나온 이봄 출판사의 책이고, <흑산>은 손철주 선생님이 주간이신 학고재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손: 이거는 꼭 넣어야 해. 앞에 건 빼더라도 이주은 교수가 <흑산>을 추천했다, 손철주가 <그날들>을 추천했다. (웃음)

 

이: 소설가라면 인간의 고통, 슬픔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주인공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간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요. 소설가는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인데, 한번쯤 권할 만한 책인 것 같아요. 휴머니즘 차원에서요.

 

손: 생애의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소설에서는.


알라딘: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매우 즐거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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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ja2 2011-12-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인터뷰 중 제일 재밌는 인터뷰 기사!!

snow_drop 2011-12-1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알차네요~ㅎㅎ

자몽설탕 2011-12-1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요 일간지 인터뷰보다 심도있고 알찬 인터뷰 기사네요. 와...오랫동안 만나셨나 봐요.
재밋는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안녕반짝 2011-12-1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만남 자체가 정말 너무 멋집니다!

비로그인 2011-12-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인터뷰를 읽다니 기쁘네요.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

ㅍㅇㅈㅎㅋ 2011-12-1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 첫번째 사진 두 분 너무 귀여우세요!!! 인터뷰 내용도 뭔가 깨알같이 꽉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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