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6
제프리 애쉬 지음, 안규남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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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빈부의 격차, 소수에게만 독점되는 권력.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부터 평등치 않았던 인류의 지난날과 만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믿음이 존재치 않던 시절, 누군가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던 시절,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너무 멀리 떠나와서일까? 나에게 그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적인 부유함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형성된 것임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거침없이 흘러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는 불과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말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는 잠들어 있었다.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선진 계몽'이라는 탈을 쓰고 곳곳에 밀려들던 그 순간, 아시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시기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기였다.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강인함을 갖춘 인물, 모든 이들을 포용하되 때론 독불장군과도 같은 성미로 타협을 거부할 줄 알아야만 하는 인물, 지금의 우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 즉 시대가 낳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인도 역시 잠들어 있었다. 세포이 항쟁으로 인해 무굴제국이 붕괴한 이후 인도 전역은 철저히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869년 태어난 간디에게 이러한 식민 질서는 너무도 견고한 것이다 못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대대로 수상직을 맡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저항'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영국인에 대한,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복합적 감정에 시달렸다. 영국은 그에게 인도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 줄 구원자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인도를 억압하고 있는 지배자이기도 했다. 아니, 법률 공부를 위해 영국에 머물면서 최대한 런던 사람처럼 보이고자 노력했던 것 등을 본다면 그는 처음에는 오히려 후자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른다.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조금씩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개인적인 깨달음에 그치지 않았다. 직접 인도인들을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그는 희망을 읽었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의 잔잔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힘을...

비폭력,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신념이었다. 어찌 보면 이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폭력적이다 못해 무기로 무장을 했건만, 그런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걸어나가다 쓰러지는 것이 전부이다. 희생은 또 다른 희생을 낳았다. 첫 번째 대열이 쓰러지면 두 번째 대열이 밀고 나갔고, 두 번째 대열 역시 쓰러지면 그 다음 대열이... 하지만 그들의 피는, 그들의 죽음은 미움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두고 무력보다도 더욱 우월한 무기라 이야기하곤 했다.
스스로를 향한 강렬한 채찍질과도 같은 이러한 방식의 투쟁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지속했던 단식에서도 역시 엿볼 수 있다. 타인을 해하지 않는 그의 투쟁방식은 상대를 약하게 하진 못했지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편을 강하게 만듦으로써 승리하는 전술과도 같았다. 그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적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기에 그에겐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았고, 상대는 절대적으로 미워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었기에 상대와의 타협 역시 적정한 선에서는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필요로 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그가 종종 보인 독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는 카스트 제도 최하단에 위치하는 불가촉 천민들에 대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 받는 여성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은 자신의 종교에 의해 엄격하게 자신을 기속했지만,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포용할 줄 알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한 폭력을 없애고자 그는 노력했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은 실패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두교 신자로서 그는 무슬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무슬림 극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지방에서는 종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린 인도와 파키스탄의 깊은 갈등을 여전히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간디의 정신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다 못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라 재해석하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력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간디가 보여준 선례는 희망이요, 이상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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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열린사회의적 > 한 시대의 증인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자로...!!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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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를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나는 언제나 이처럼 우리 군부나 정보주나 극우.반공 .반통일적 전쟁주의자들이 몽매한 국민을 속여가며 그들의 정권 연장을 도모하고 민족의 화해를 거부하는 그들의 주장의 가면을 벗기기를 사명으로 여겼지. 대중에게 진실을 밝히고 깨우쳐주려고 했어요(646쪽)"

리영희를 처음 접한 것은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였습니다. 그 책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들려주었습니다. 그 충격을 통해 그의 책을 몇 권 보았습니다. 『새들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까지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가히 '전환시대의 논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내가, 우리가 가진 미국관(--觀)에 대해 전혀 낯선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그 깊이와 정세 분석,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낙동강 오리알 처럼,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든데라는 거짓말같다는 이야기뿐. 하지만 내가 그의 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가 말하는 논리가 사실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시대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은 리영희를 아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리영희를 모르는 사람.

나는 ①리영희의 글쓰기가 무엇인가를 살핀 다음, 그 글쓰기에 비친 ②세계관을 담아보고, ③리영희라는 인간적인 존재④역사적인 물음, 더 나아가 ⑤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대를 적어보겠습니다.

1. 리영희의 글쓰기
"취재기자는 세 가지 스타일이 있어. 발로 뛰는 기자, 남의 기사들을 모아서 쓰는 기자, 안건의연구를 통해서 접근하는 기자. 이 세가지에요. 나는 그 세번째의 연구.조사하는 방식이 주특기였기 때문에, 간사이면서 혼자 정보원을 만나는 그런 취재는 필요가 없었어요(315쪽)"

언제나 연구 조사하는 방식이 주특기이기에, 그는 무작정 찾아가서 '~꺼리'가 없느냐고 묻고 다니지 않습니다. 연구 조사를 통해 90% 이상의 문제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음, 나머지는 이에 대한 답변을 얻는 형식을 취합니다. 이런 지은이의 글쓰기는 삶을 관통하는 세계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일생 동안 '군부'나 '정보부'가 주는 정보만을 가지고 기사화했다면, 시대의 증인으로 우리곁에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정부에 의해 압박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세상에 다가가야 하는가를 지은이의 직업정신에서 읽어내려갑니다. 그의 글쓰기는 『모략』에서, 손자의 전략을 인용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이기는 兵은 먼저 승리를 구하고 싸움을 한다. 패하는 兵은 먼저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하려 한다.

2. 리영희가 바라보는 세상(세계관)
"공자의 『논어』에 「정언」(正言)편이 있어. 제자가 공자에게 "정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공자는 "사물의 이름(명칭 또는 명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다시 말하면, 검은 것은 희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검다고 해야 하고, 악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고 칭해야 하고, 사슴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불러여 하고, 말은 사슴이 아니라 말이라고 칭해야 하고... 이처럼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이나 형상의 본질을 정학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간의 생존에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또한 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에요.(374쪽)"

"나는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조선침략과 합방, 그리고 식민지 문제들에 대한 법적.정치적 죄과에 대해서는 응분의 준엄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민족적 입장을 취하지요. 이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한일 두 나라의 문제를 과거의 역사적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일본인 또는 일본 민족에 대해 일방적 비난이나 규탄을 일삼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아요. 19세기 말의 한민족이나 당시 우리 선조들이, 어느모로 보나 나라를 지키는 데 허물이 없었다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당시 우리 선조들의 책임도 컸어요. 이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하는 엄연한 진실이지요. 자기 민족의 허물은 비단 보자기로 덮어두고 상대방의 행위만을 극악하게 그려내는 것을 나는 반대해요.(585쪽)"


지은이는 공자의 말을 빌려서,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나 세계관은 이 '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물은 현실과 같습니다. 그는 현실 또한 객관적인 눈으로 옳은 것은 옳고, 그런 것은 그러다고 말할 때 긴실을 볼 수 있고,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신을 스승으로 모실 정도로 그럴 감싸는 것도 '정의'에 먼저 다가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3. 내가 믿는 사랑이...
가장 추한 모습으로 다가 올 때에 너는 그 사랑을 두 손 열고 맞이할 수 있느냐?

혁명을하든가, 민중 운동을 하든가, 역사적 진보를 믿는다면서, 가진자보다 못 가진자, 조금 더 힘들여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건냅니다. 하지만 그는 때때로 사랑으로 화답하지 않고 시기, 질투, 배반 등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진정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광주 교도소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알고, 그 기쁨을 같은 재소자에게 알린 댓가가, "22일 벌방형". 작은 광한만 곳에 가만히 누운 채 있어야 하는 곳, 빛 마저 들어오지 않고, 온통 새까많게 칠해진 먹방 같은 공간에 화장실이 나란이 누워 있는 곳. 그곳에서 낯 모를 사람에게 '빵'과 '우유'를 얻어먹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런가?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육체적 경험을 가장 낮은 장소에서 온몸을 겪습니다. 과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어갈 수가 있을까? 지은이는 "난 머리가 혼란해졌어요"라고 인간적인 고뇌를 이야기 합니다. 그는 신(神)이 아니며, 또한 성인(聖人)도 아닌, 우리곁에 숨쉬는 이웃이였습니다. 이웃이기에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상이란 엉뚱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는 반면, 같은 국민에게 밀고를 당하고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기도 하는 그런 것인지. 난 머리가 혼란해졌어요.(499쪽)”

세상이 어지러운 날, 미륵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내려옵니다. 그리고 온 사람들에게 바르게, 착하게 살아라, 내 말을 듣고 극락을 누려라, 너희가 그토록 바라던 이, 내가 미륵이다.라고 했는데, 혼탁한 세상에서 돌아온 답은 '니가 미륵이면, 나도 미륵이고, 저 강아지도 미륵이다'라는 암상뿐이다. 미륵은 수 없이 이야기를 하고, 수 없이 같은 말을 되로 받는다. 하지만 끝끝내 사람을 저버리지 못하고, 그가 한 행동은...(소설 토정비결』 참조)

감옥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할 때에, 나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떠올립니다. 수 많은 색과 국제 정세 분석의 능력과 대학교수라는 상당한 인텔리겐차이면서, 사람 앞에서 '머리가 혼란'스러워하는 인간 리영희. 그도 나와 같이 숨쉬는 사람이란걸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질감보다 내가 평생을 따라도 모자랄 듯한 선생(先生)인 동시에 스승입니다.

4. 계속 되풀이 되는 역사?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남한의 청녀들이 돈덜이를 위해서 미국의 용병으로 파견되었을 때에, 한국정부와 극우 반공주의 언론들은 마치 전 세계 국가와 민족들이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는 줄로 착각했어.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군대를 파견해, 그 따위의 범죄적인 전쟁에 협력한 나라는 남한 이외에 필리핀, 타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세 나라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상시 5만 명의 전투부대를 보낸 것과 달리, 이들 나라에서 보낸 병력은 포병, 공병, 병참 등, 천 명 내지는 최고 3천 명 정도였어오. 그밖의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거절했어. 영국은 혈연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미국의 전쟁협력자가 아닐 수 없는 처지인데도, 마지못해 '유니온 잭'(영국 국기)을 앞세운 의장대 6명만을 파견했어. 600명도 6천 명도 아닌 단 6명이오! 사이공 공항에서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의장대요. 수없임낳ㅇ느 국제법 위반과 정치적 관례와 상식을 뒤엎는 행위들이 많았어. 나는 베트남전쟁 기간 중에 오로지 미국 지배집단의 이 같은 범죄적 행위를 연구하고, 우리 한국의 극우 반공적 언론 통제의 쇠살을 뜷?진실의 편린이나마 전달하고자 무진장 애를 썼어요.(357쪽)"

우리 민족성을 평화를 상징하는, 남의 나라를 한번도 침범하지 않은 나라라고 더 이상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5만명이라는 젊은 사람을 보냈고, 그곳에서 '라이따이한'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켰고, 나몰라라 합니다. 아무런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세계 3위의 강력한 군사력을 드높였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주권국가로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과 관계에서 형님 동생으로 지내거나, 한 배를 탄 민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없으면 안되는 나라. 미국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나라. 과연 한 국가로서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는가? 미군이 빠져나가면 그 국방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우리 누나가 동생이 미군에게 처참히 짓밟혀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 분노를 타국에 가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마저 듭니다? 미군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해방, 한국 전쟁을 그치는 동안 꾸준히 준비하였다면, 적어도 국방비에 얽매혀 한 국가의 존엄성을 남의 나라에 그냥 던져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이 부르면 언제나, 어디든지 달려가는 총알바지 군인을 키우는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악순환의 고리 끊기와 국제 관계 속에서의 자리매김을 언제할 것인가? 미군없는 한국을 준비하여 주체성과 내 나리에대한 자부심과 타나라에 대한 이해와 겸손을 지닌 국가로 거듭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베트남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정치.군사.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에요. 베트남전쟁이 그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에는 라틴아메리카의 10여 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범.점령했고, 약소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테타를 읽으켜서 전복시켰 왔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쿠바와 카스트로 정권타도 공격이고, 니카라과에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부패.타락한 미국 예속정권을 혁명으로 쓰려뜨리고 참신한 민중적 정치혁신을 하려던 산디니스타 정권을 그런 방식으로 타도했어요(1979).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깨끗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의 정권에 대해 미국은 역시 같은 음모적 수법으로 대통령을 사살하고 미국 예속 군부쿠테타를 조장하여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킵니다(1973). 아르헨티나 군부쿠테타(1976), 볼리비아(1980), 콰테말라(1983), 아이티(1988), 파나마(1989), 콜롬비아(1989) 등 열거하면 끝이 없어. 이것이 민주주의.정의.자유를 내세우는 '미국이라는 나라'요, 나는 한국인의 미신인 미국(美國)이라는 국가의 지배적 본성의 추악함으로 깨우치는 노력을 나의 임무의 중요한 항목으로 삼았지. 오늘의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전쟁을 보시오. 이것이 나의 연구와 집필의 주요 동기였어. 이 모든 추악한 행위의 근본 동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투자와 시장확보와 미국 기업의 무한정적인 경제력 장악을 위한 것이지. 미국 자본주의의 목적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거나 자주적이고자 하는 인민과 정권을 미국 자본주의는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다구.(361~362쪽)"


지은이는 수 없이 미국이라는 실체를 해부함으로써, 우리가 존경하거나 동지애를 가질 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줍니다. 과연 '극우.반공. 반통일적 전쟁주의자들'이 미국을 등에 업고 우상화할 때에 굳굳히 맞서 싸운 이가 리영희입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미국이라는 실체를 이야기하면서, 민족의 주체성을 제기합니다. 만약 리영희가 없었다면 우리가 가진 미국관은, CNN이 내보내는 영상만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을까 합니다.

5. 시대를 읽는 힘.
우리는 내부적으로 보는 시선에서, 외부적으로 보는 시선으로 돌려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의 영구 집권만 생각하는어리석음, 박정희의 유혈 독재의 지속이나 높은 경제 성장이라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촌이라는 울타리에서 벌어이지는 힘찬 움직임과 그 속에 우리가 나아갈 지향점과 희망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광범위하고 선구적인 시점을 심어준 사람은 리영희입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보여준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정부의 극비문서(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세계적 변화가 머지 않아 한반도와 남한애 광명의 햇살을 비춰줄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했어. 이것이국내의 질식할 것만 같은 반죽음의 상태를 참을 수 있게 하는 활력소(424쪽)"였다고 회고합니다. 즉 국내에서 암울한 통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그는 세계적 정세를 통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짐작합니다.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하나의 땅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우리나라만 존재하는 마냥, 좁은 세계관만 존재합니다.

이제 인터넷을 통한 시.공간의 동시성이 열렸습니다. 마우스 클릭(click) 한번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가 있으며, 미국의 일방적인 언론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대변하는 알자지라 방송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상호 연관성에서 놓여 있으며, 같이 일을 쉽게 꾸밀 수가 있습니다. 몇 몇 지상파나 언론이 전해주는 정보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변화가 기계적인 변화에 인간이 대응하면서 깨닫는 것이라면, 온몸으로 부딪혀 세계적인 흐름을 읽어냔 사람은 리영희입니다. 스스로 열린 생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고, 인류애적 사랑을 추구한다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한 세대 먼저 탐구하고, 노력한 사람 - 그는 역사적 중심에 서서 살아있는 기록이자, 그의말을 빌려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제공한 선구자입니다.

리영희의 글쓰기는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의 탐구는 "연구.조사"가 주특기입니다. 연구.조사를 통한 폭넓은 시야는 내가 보지 못하고나 못 본 것에 대한 쿠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 일으켜 주었습니다. 즉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리영희는 시대의 선구자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칙론적 자세가 시대의 증언자이자 선구자로 우리곁에 두었습니다. 분명 우리시대는 두 분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리영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이렇게 높을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자리는 높습니다.

덧붙임--
리영희의 대화는 그 이전 저서, 『역정』이라는 자서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들은 좌.우로 난다』등 몇 권의 저서를 읽지 않고 접근할 때에,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까라는 의문은 기대만큼의 선물을 주지 않을 듯 합니다. 즉 『대화』에는 인간적인 리영희가 있고, 그의 저서에는 사회적 리영희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부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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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대학생이 되면 꼭 읽어야 할 ... 리영희 선생님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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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화의 원흉, 진실의 목탁...

리영희 선생님. 우리 시대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판단한 그놈들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내가 대학 들어가서 읽은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은 좀 관념적인 글이었고, 동녘편집부의 <철학 에세이>는 '이게 뭐 철학이지? 좀 허술한데?' 하는 생각을 들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읽은 선생님의 <전환 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분단을 넘어서>같은 책들은 나의 <절대 데모를 해서는 안 된다>던 무식한 주관을 일거에 무너뜨린 책들이었다.

그분의 역작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베트남의 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온 것은 과연 무엇인지... 아직도 <국익>을 위해서 이라크에 부대를 파견하는 무지 몽매한 친미 정권이 지배한 어리버리 한국이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우린 베트남을 짓밟았고, 베트콩을 쏴죽였다는 '김상사들'의 새카만 얼굴만 보았지 그들의 몸 속에 묻어온 고엽제와 그들이 뿌리고 온 '2세들'의 슬픈 역사는 뒤켠에 감추어 두었던 역사를 배웠다.

푸에블루호 사건이라든지, 유신 시대의 삶을 접하다 보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한국 현대사라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했던 그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의 글로 읽지 못하고 몸이 불편해 져서 임헌영과 대화 형식으로 엮인 글이다 보니 좀 뻣뻣하긴 하지만, 740페이지에 달하는 인생 역정은 나의 피를 들끓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한다.

일제가 물러가고 난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은, 4.19의 호기를 군사 정권의 쿠데타로 놓치게 되고, 1980년의 서울의 봄마저 광주의 피를 부르고 무위로 돌려버렸으며, 6.29의 뜨거웠던 열기도 보수 반동들의 단일화 후보 실패로 식어져 버리고 말았다.

리영희 선생님은 자꾸, 우리 민족의 저열함이 아닌가, 너무 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자위하며 살지 않는가 걱정하시지만, 역사를 읽으시는 분이시니 다른 나라들의 좋은 기회에 비해서 우리 나라는 더 좋은 조건들을 더 악조건으로 만들어 버린 오욕의 역사가 더 안타까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냉전 지대, 21세기 유일한 분단 지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늘 저자세로 고개 수그리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존경할만한 지도자가 없었다기 보다도, 그런 지도자가 될 법한 사람들은 반드시 제거를 당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숨어서 읽었고, 경찰서 대공과에서는 <해전사> <전환시대의 논리> <민중과 지식인> 같은 책들을 의식화 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시절에 체계적으로 학습하지 못했던 분야를 이제라도 차근차근 읽고 싶은 욕망을 부른 책이다. 그런데, 촛불 시위에는 긍정적이지만 또한 축구판에서도 열정적인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책을 읽기나 하려는지... (요즘 젊은이 걱정하는 걸 보면 나도 늙은이 축으로 가고 있는 모양^^)

장차 외교 무대에 서고 싶다는 작년 우리 반 반장 녀석이 지금 재수하고 있는데, 올해 학교를 잘 가면 이 책 한 권 선물해 줘야겠다. 외교 무대에서 알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이 책엔 무진장 묻혀 있는 것 같으니깐.

숱한 필화를 겪으시고, 5년 전 쓰러지셔서 이제 더 이상의 저술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부지런히 강연도 하시고 다니실 때, 한 마디라도 더 배우고 싶은 분.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양심이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읽은 주말은 가슴 뿌듯하다.

선생님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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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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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얼룩진 폭력과 함께 이슬이 되어버린 선배들을 추모하던 그 자리에서 80년대 학번을 지닌 분들이 그 당시 구호라며 외쳤던 말들은 조금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었다. 시대는 흘렀지만 근본적인 모순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 끼 식사도 해결 못할 정도의절대적인 빈곤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한 지금이지만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커졌다. 여전히 국민의 대다수가 분배보다는 성장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며 언론은 연일 보도하지만, 정작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데는 인색하다. 어찌 보면 모순은 이전보다 더욱 극대화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구세력에 의존해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과거와 같이 가시적인 군부 독재가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누굴 위해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구호를 외쳐야 하는지, 우리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태는 오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난 리영희 선생에게 시대가 명확함을 안겨주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듯하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른 듯했다. 군대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은 인간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게임의 법칙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게임을 즐기는 듯, 강한 자 앞에서는 철저히 포복하고 약한 자는 무참히 짓밟았다. 정의는 어디에도 존재치 않았고 규율의 무너지고 난 빈자리엔 부패만이 채워졌다.
군대는 시대의 혼란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갖 분열도 마다하지 않는 지배 세력에게 한 개인의 지난 날 행적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식민 시절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독립군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은 자신의 잔인함을 소위 '좌익' 세력을 타파하는데 활용했다. 하지만 좌, 우도 어찌 보면 지배 세력의 입장에서 내린 자의적인 정의에 불과했을 뿐, 조작, 날조된 수많은 사건들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러한 시대였기에 학자에게 필요한 냉철함도, 모든 것이 금지된 극한 상황에서는 소용없었다. 오히려 냉철한 분석력이 선생에겐 화근이었다. 일반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공개된 진실에 선생은 항상 한 발 먼저 다가갔다. 기자로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면 침묵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 치의 오점도 용납지 않는 강직한 성품은 그 때마다 궁핍함을 선택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산당도 되었다가 80년대 광주의 주모자도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는 아무런 대화도 허락지 않았다. 닫힌 사회, 닫힌 마음 안에 모든 것을 담았으니 남은 것은 철저히 썩는 것 밖에 없음은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마비된 그의 손은 더 이상의 저술을 허락지 않고 있다. 답답함도 잠시, 오히려 선생은 이제 높은 인식을 지닌 우리 시대의 노동자, 청년, 지식인들이 있기에 자신의 필요성은 많이 감소했노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대학도 과거와 같은 진보의 성지이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흐름에 묻혀 자신의 출세를 위한 투자의 공간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성적은 좋지만 교양은 없는, 영어엔 능통하지만 우리말엔 인색한 우리 세대가 잠들어 있는 지식을 깨울 '의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듯하다.
여전히 대화가 허락되지 않는 오늘날이다.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척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오늘, 리영희 선생의 삶을 통해 나는 다시금 열린 사회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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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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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꽤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내 시간의 일부를 교회에서 보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확실함과 불완전함에 유난히도 일찍 눈을 뜬 덕(?)에, '혹시나 종교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었던 것 같다. 두터운 외투를 뚫고 매섭게 들이닥치는 겨울철의 찬바람도 내 존재의 영원함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때론 세상 사람들을 잠들게 만드는 어둠마저 헤칠 정도로, 무릎 꿇고 작은 두 손 모은 체 보내는 나의 시간은 끝이 없을 듯 싶었다. 하지만 기도는 나를 바꾸지 못했고, 세상 역시 변화를 몰랐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몹쓸 일 앞에서도 '강함을 위해 시련을 예비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면의 상처는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내 귓가를 맴돌던 웅장한 찬양도, 뜻은 몰라도 습관 마냥 읽어나가던 성경 구절도 어느 순간 헛된 것으로 돌변해 버렸다.
시간이 내 머리를 크게 만들면서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자꾸만 내게 들렸다. 이전엔 알지 못했던 남성 중심적인 목소리가 설교 중간중간 느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도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한 나의 회의적인 생각이 극대화되었던 가장 큰 일은 바로 세례를 앞두고 발생했다. 세례를 위한 어떠한 과정도 밟지 않았고 교회도 드문드문 나가던 내게 어머니는 세례를 권하셨다. 내가 과연 세례를 받을 만큼 진실된 믿음을 소유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나는 다음 기회에 제대로 된 준비과정을 거친 후 받겠노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때 나는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데, 왜 거절하는거니? 그렇게 지옥에 가고 싶어?"라는 어처구니없는 응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내겐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거부는 더더욱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세례는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다. 세례를 받았지만, 난 아직도 내 믿음에 대한 어떠한 확신성도 가지지 못했다. 여전히 교회는 어쩌다 한 번 나가고 있으며, 기도 한 번 안 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보편화되어버렸다. 세례는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

임레 케르테스라는 헝가리 출신의 작가가 있다.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가져다 준 <운명>, <좌절>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자신의 나치 강제수용소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미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15살 때 자신을 덮친 그 기억들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했기에 오히려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갔던 이름 모를 사람들을 그리고 자신이 경험했던,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는 상처 가득 들어선 고름을 짜냈을 것이다. 그의 글은 고통스럽게 내뱉은 신음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를 떠올리는 까닭은 이 책의 작가 역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임레 케르테스는 작가는 지난 경험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이 책의 저자인 카렌 암스트롱 역시 끝없이 자신의 경험을 파헤침으로써 종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를 부정적으로만 평할 순 없을 것이다. 책의 제목에 걸맞게도, 그녀의 마음은 이 책을 써나가면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글쓰기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테니 말이다.

7년 동안의 수녀원 생활은 그녀 스스로 자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택한 것이라 하여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보다도 더 보수적이었을 1960년대, 평등을 갈망하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맴돌기 시작할 그 무렵 그녀의 눈과 귀는 완전히 닫힐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녀에겐 알 권리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처럼(?) 온 마음을 바쳐 기도를 해야만 했다. 정해진 규칙을 엄수해야만 했고, 그 틀을 벗어날 때마다 부족한 존재로 낙인 찍혔다. 신체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도 무시해야만 했고, 자신이 여성이라는 자각마저도 어쩌면 버려야 했다.
수녀원을 벗어나 대학에 진학했을 때, 세상 어느 곳에도 자신이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느꼈다. '전직수녀'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과대 포장되었고, 어느 누구와도 성관계를 하지 않은 '순결한 여성'이라는 마초적 시각에 의해 평가될 뿐이었다. 그 어떤 아름다운 시에도 반응할 줄 몰랐던 그녀의 마음은 정해진 원칙에 입각한 논리성은 보여줄 수 있었으나 창의적인 무언가를 창조해야만 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긴장했다.

그녀의 삶은 되돌릴 수 없이 파괴된 듯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았지만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렇게 끝났더라면 특정 종교에 자신을 바치려다 실패한 이의 무용담으로 이 책은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모든 종교를 포용할 수 있는 큰마음을 얻었다. 어이없이 박사학위를 상실하고 간질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그녀가 살기 위해 버둥거리면서 접한 또 다른 종교들이 그녀를 크게 만들었다. 의식에 얽매여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었던, 신앙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욕구를 붙들어 매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을 유대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통해 바라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폐와 간질, 자기 안에만 갇혀 지내는 제이콥이 보여준 믿음이야말로 진실된 믿음이 아닐까?

그녀의 글은 그녀의 삶을 담고 있다. 억지로 공감대를 이끌어내려 들지 않았기에 오히려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의 깨달음까지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순 없다. 마음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내 몫이니 말이다.
세상은 여느 때보다도 혼란스럽다.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일부는 종교의 이름을 빌어 폭력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담보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닐 것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짓밟아야 하는 것이 진리가 아닌 것처럼...
내가 믿는 신이 진정한 신이라면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이까지 구원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제대로 된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 종교로 타인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걷고 있고, 그 방향은 아마도 좋은 쪽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녀가 그렇게 믿고 지금도 걷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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