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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지난 2000년, 얼룩진 폭력과 함께 이슬이 되어버린 선배들을 추모하던 그 자리에서 80년대 학번을 지닌 분들이 그 당시 구호라며 외쳤던 말들은 조금의 어색함도 느낄 수 없었다. 시대는 흘렀지만 근본적인 모순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한 끼 식사도 해결 못할 정도의절대적인 빈곤이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한 지금이지만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커졌다. 여전히 국민의 대다수가 분배보다는 성장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며 언론은 연일 보도하지만, 정작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데는 인색하다. 어찌 보면 모순은 이전보다 더욱 극대화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구세력에 의존해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과거와 같이 가시적인 군부 독재가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누굴 위해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구호를 외쳐야 하는지, 우리는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태는 오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난 리영희 선생에게 시대가 명확함을 안겨주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듯하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른 듯했다. 군대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은 인간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게임의 법칙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게임을 즐기는 듯, 강한 자 앞에서는 철저히 포복하고 약한 자는 무참히 짓밟았다. 정의는 어디에도 존재치 않았고 규율의 무너지고 난 빈자리엔 부패만이 채워졌다.
군대는 시대의 혼란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온갖 분열도 마다하지 않는 지배 세력에게 한 개인의 지난 날 행적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식민 시절에는 일제를 찬양하고 독립군을 탄압하는데 앞장섰던 이들은 자신의 잔인함을 소위 '좌익' 세력을 타파하는데 활용했다. 하지만 좌, 우도 어찌 보면 지배 세력의 입장에서 내린 자의적인 정의에 불과했을 뿐, 조작, 날조된 수많은 사건들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러한 시대였기에 학자에게 필요한 냉철함도, 모든 것이 금지된 극한 상황에서는 소용없었다. 오히려 냉철한 분석력이 선생에겐 화근이었다. 일반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공개된 진실에 선생은 항상 한 발 먼저 다가갔다. 기자로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면 침묵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 치의 오점도 용납지 않는 강직한 성품은 그 때마다 궁핍함을 선택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산당도 되었다가 80년대 광주의 주모자도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는 아무런 대화도 허락지 않았다. 닫힌 사회, 닫힌 마음 안에 모든 것을 담았으니 남은 것은 철저히 썩는 것 밖에 없음은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마비된 그의 손은 더 이상의 저술을 허락지 않고 있다. 답답함도 잠시, 오히려 선생은 이제 높은 인식을 지닌 우리 시대의 노동자, 청년, 지식인들이 있기에 자신의 필요성은 많이 감소했노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대학도 과거와 같은 진보의 성지이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흐름에 묻혀 자신의 출세를 위한 투자의 공간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성적은 좋지만 교양은 없는, 영어엔 능통하지만 우리말엔 인색한 우리 세대가 잠들어 있는 지식을 깨울 '의식'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듯하다.
여전히 대화가 허락되지 않는 오늘날이다.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배척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오늘, 리영희 선생의 삶을 통해 나는 다시금 열린 사회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