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6
제프리 애쉬 지음, 안규남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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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빈부의 격차, 소수에게만 독점되는 권력.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부터 평등치 않았던 인류의 지난날과 만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믿음이 존재치 않던 시절, 누군가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던 시절,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너무 멀리 떠나와서일까? 나에게 그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적인 부유함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형성된 것임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거침없이 흘러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는 불과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말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는 잠들어 있었다.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선진 계몽'이라는 탈을 쓰고 곳곳에 밀려들던 그 순간, 아시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시기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기였다.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강인함을 갖춘 인물, 모든 이들을 포용하되 때론 독불장군과도 같은 성미로 타협을 거부할 줄 알아야만 하는 인물, 지금의 우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 즉 시대가 낳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인도 역시 잠들어 있었다. 세포이 항쟁으로 인해 무굴제국이 붕괴한 이후 인도 전역은 철저히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869년 태어난 간디에게 이러한 식민 질서는 너무도 견고한 것이다 못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대대로 수상직을 맡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저항'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영국인에 대한,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복합적 감정에 시달렸다. 영국은 그에게 인도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 줄 구원자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인도를 억압하고 있는 지배자이기도 했다. 아니, 법률 공부를 위해 영국에 머물면서 최대한 런던 사람처럼 보이고자 노력했던 것 등을 본다면 그는 처음에는 오히려 후자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른다.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조금씩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개인적인 깨달음에 그치지 않았다. 직접 인도인들을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그는 희망을 읽었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의 잔잔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힘을...

비폭력,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신념이었다. 어찌 보면 이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폭력적이다 못해 무기로 무장을 했건만, 그런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걸어나가다 쓰러지는 것이 전부이다. 희생은 또 다른 희생을 낳았다. 첫 번째 대열이 쓰러지면 두 번째 대열이 밀고 나갔고, 두 번째 대열 역시 쓰러지면 그 다음 대열이... 하지만 그들의 피는, 그들의 죽음은 미움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두고 무력보다도 더욱 우월한 무기라 이야기하곤 했다.
스스로를 향한 강렬한 채찍질과도 같은 이러한 방식의 투쟁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지속했던 단식에서도 역시 엿볼 수 있다. 타인을 해하지 않는 그의 투쟁방식은 상대를 약하게 하진 못했지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편을 강하게 만듦으로써 승리하는 전술과도 같았다. 그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적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기에 그에겐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았고, 상대는 절대적으로 미워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었기에 상대와의 타협 역시 적정한 선에서는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필요로 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그가 종종 보인 독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는 카스트 제도 최하단에 위치하는 불가촉 천민들에 대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 받는 여성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은 자신의 종교에 의해 엄격하게 자신을 기속했지만,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포용할 줄 알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한 폭력을 없애고자 그는 노력했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은 실패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두교 신자로서 그는 무슬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무슬림 극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지방에서는 종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린 인도와 파키스탄의 깊은 갈등을 여전히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간디의 정신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다 못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라 재해석하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력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간디가 보여준 선례는 희망이요, 이상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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