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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소련 국기에 대한 맹세를 추억함 - 박노자


소련 국기에 대한 맹세를 추억함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을 신앙생활처럼 여기던 죽마고우
위대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충성을 다짐케 만든 상징 조작들
'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소련·중국·북한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적’ 사회들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사회’라 말한다. 추수가 ‘수확을 위한 전투’가 되고, 생산은 ‘속도전’과 같은 ‘돌격대’ 방식으로 이뤄지는 등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호명이 모든 분야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소련이 일상적 생활과 언어를 극단적으로 정치화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1980년대의 말기적인 소련 사회에서는 정치적 언어를 일상에서 잘 쓰지 않았다. ‘사상 학습’에서 ‘지도자의 말씀’들이 인용되고 ‘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미사여구가 남발돼도 일상적으로는 노망에 든 듯한 브레즈네프 공산당 총서기관과 같은 지도자들은 관심 밖이거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소련 사회가 낡은 체제를 아래로부터 전복시킬 힘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상당 부분 상실해가고 있었다.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

당시 브레즈네프는 누군가가 써준 연설문조차도 제대로 낭독해내지 못할 만큼 노쇠해 있었는데 그에게 국민은 냉소와 멸시를 보냈다. 이렇게 구체적인 ‘지도자’들이 권위를 잃었지만, 국가나 군사력에 대한 소련 국민의 태도는 마치 독실한 교회 신도들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지금도 1980년대 중반에 중학교 동급생들과 나누던 대화가 기억난다. 몇몇 동급생의 형이나 친척 등이 아프간을 침략하는 소련군의 일원으로 아프간에 파견돼 있었다. 한 동급생이 아프간 빨치산들의 ‘무자비함’을 이야기하자 다른 친구가 응수했다. “그 짐승들에게 포로로 잡히느니 수류탄 하나만 남아 있다면 남자답게 그냥 자폭하고 마는 게 낫지. 저 짐승들 죽이고 명예도 세우게 말이야.” 그것은 ‘사상적 건전성’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온 말로 평범한 소련 청소년의 의식 세계를 잘 반영한다. 브레즈네프가 아프간에 보낸 군대와 ‘나’는 동일시됐으며 ‘전우애, 담력, 희생정신, 조국 사랑’에 대해서는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국가와 군대가 도덕적 최고선이었기에 거기서 침략의 불법성이나 잔혹성은 논외로 치부됐다. 소련 군대가 철수되고 침략이 정치적 오류로 판명된 1989년 이후에도 많은 소련인들은 “잘못은 정치인에게, 명예는 우리 전사들에게 있다”는 식의 사고를 했다.


△ "조국과 공산당에 맹세한다!" 2002년 5월 소년 공산당원들이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EPA)

비판적 지식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한 죽마고우는 1980년대 말 병영에서의 구타나 자살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자, “조국을 지키는 것이 남자의 의무고 어차피 군대 갈 사람은 가야 하는데, 징병 대상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악질 고참을 막는 방법을 익히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침략과 같은 만행이 ‘조국을 지키는’ 일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대’ 같은 단어가 나오면 흥분된 말투로 변했다. 그에게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은 이성의 개입이 불가능한 성(性)이나 신앙생활과 같은 진리와 격정의 세계에 속했던 것이다.

서민을 총알받이로 만들고 고참의 주먹 앞에서 인격과 자존심을 상실케 하는 군대가 어떻게 해서 수많은 이들의 의식 속에서 이와 같은 ‘신성한’ 위치를 획득하게 됐는가? 사회경제적인 이유에서부터 성·정치 영역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컨대 남성의 ‘군인’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군 사랑’의 이유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시민사회를 압도한 ‘과대 성장 국가’의 상징 조작도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를 체계화하고 유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상징·의례들이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내밀한 ‘나만의 세계’에 속하기에 국가의 상징 조작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그 애국가 가사에 구토를 느끼다

예컨대 남한만큼이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자주 울려퍼졌던 소련 애국가를 생각해보자. 1944년 스탈린의 지시로 제정된 소련 애국가는 ‘위대하고 강력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영원히 무조건 충성을 바칠 우리들’의 이미지를 합치게 한다. ‘나’의 존재를 영원히 기탁해도 될 위대한 조국의 힘…. 우리 무의식의 ‘아버지’ 원형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이 ‘조국의 힘’의 이미지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의 몸에 배게 된다. 1944년 이전까지만 해도 소련 애국가는 국제 노동운동의 노래 ‘인터내셔널’이었지만, 그 뒤 전세계의 3분의 1이나 장악하게 될 스탈린 제국에는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새로운 자본주의적 러시아는 과거 소련 시절의 애국가 음악은 그대로 놔두고 가사만을 ‘상황에 맞게’ 변형시켰다. ‘무조건적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신성한 우리 조국’이 됐으며, ‘조국에 대한 충성이 우리에게 영원히 힘을 줄 것’으로 돼 있다. 남한의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듯이 푸틴 정권의 새 애국가에는 ‘남쪽 바다부터 북극권까지 놓인 우리의 광활한 숲과 바다’에 대한 긍지가 강조된다. 필자는 이 애국가를 구토가 나는 심정으로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면 그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빈민까지도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오늘과 같은 참경에 내몬 상전님들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

애국가는 정교회 신앙이 지배했던 1917년 이전의 러시아의 주기도문을 ‘최고의 신성성 텍스트’로서 대체했지만 이외에도 젊은이들을 ‘선량한 국민’으로 만드는 의례들이 대단히 많았고 개인 생활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 예컨대 1917년 이전의 성탄절을 대체한 소련 국민 최대의 가족적 명절은 신년맞이였다. 가족끼리 신년을 맞이할 때 텔레비전을 켜놓고 밤 12시를 기다리는 것은 소련 체제의 ‘국민다운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송구영신의 12시가 되자마자 텔레비전에서 크렘린궁의 커다란 시계가 보이고 모스크바 중심의 붉은광장의 풍경이 보였다. 국가의 중심축이 개인적·가족적 시공간의 중심축까지 돼야 한다는 것은 이 ‘국민다운 습관’의 의미였다. 더군다나 정치적 색채가 지배적인 5월1일의 노동절이나 11월7일의 혁명기념일에는 시위대에 합류하고 군사의 사열대를 보고 애국가의 울려퍼지는 소리에 ‘차렷’ 하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것은 거의 계절 의례였다.


△ 빨간 깃발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소년 공산당 여름 캠프의 조회 모습(왼쪽). 군사주의적 색채가 짙은 소련 시대의 포스터(가운데)와 전승기념일 포스터.

군인들이 행진하고 탱크들이 굉음을 내면서 지나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그 정치적 명절의 광경은 대다수 소련 국민에게 결정적인 성장기 경험이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달에 한두 번씩 ‘행군과 군가 가창대회’란 이름으로 ‘군인답게’ 행진하고 군가를 부르고 군기를 방불케 하는 소년 공산당의 깃발 앞에서 충성의 맹세를 바치고, 고등학생이 되면 정식 교련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 수업 못지않게 중요한 ‘정신교육’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필자는 교련수업 때 자동총을 정해진 시간인 40초 내에 분리·조립하지 못해 교련 교사에게 “자동총도 제대로 분리·조립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할 여자가 어디 있겠냐”라는 질책을 들었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도 했다. ‘남자의 매력’과 자동총을 다루는 솜씨, ‘남자의 자존심’과 ‘빨간 깃발에 대한 충성 맹세’가 동일시됐기에, 아프간의 양민을 학살한 소련 군인들은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적 상징 세계의 존재가 ‘국민’의 의식을 결정짓는 슬픈 광경이었다.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 부활

대자본들이 그 국적과 무관하게 전세계로 문어발을 뻗치는 요즘 세계에, 미국 학교에서는 ‘국기에 대한 충성의 맹세’가 강조되고, 러시아에서는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이 부활되고, 대한민국에서 대형 스포츠 행사마다 ‘태극기의 바다’와 흥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황우석씨가 한 발언을 좀 바꿔보자면, 자본의 이윤 추구에 국경이 없지만 자본가들은 국민국가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필요로 하고 착취 대상자들을 국적별로 유순한 ‘국민’으로 묶어둘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저들의 ‘게임 룰’을 그대로 받아들여 ‘신성한 국기’ 앞에서 ‘우리’의 자본을 위해 ‘남’의 나라 노동자를 유사시에 살육할 것을 맹세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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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年200권 이상 도서 구입 ‘책벌레 4人’의 색다른 독서삼매경

[동아일보]

《1인당 0.8권. 한국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 4분기 한국인의 서적, 인쇄물 구입비는 월평균 전체 소비 지출액의 0.5%에 불과했다. 이쯤 되면 책에 파묻혀 사는 독서광이 유별나 보일 수밖에 없다. 요즘 ‘책벌레’는 어떤 사람들일까. ‘예스24’ ‘인터넷 교보문고’ ‘알라딘’ 등 3개 인터넷 서점에서 지난해 업무용 책 구매자를 제외한 순수 구매자 중 상위에 드는 독서광들을 뽑아 봤다. 우연찮게도 20∼50대에서 세대별로 1명씩 4명이 뽑혔다. 만화광인 이근우(28·경기 안산시) 씨, 고교 교사 최혜리(38·여·서울 서초구) 씨, 기업가 노창준(48·바텍 대표이사) 씨, 회사원 이현수(52·SK케미칼 중앙연구소) 씨가 그들.》

이들은 모두 연간 200권 이상 책을 사 읽는다. 최 씨는 2000년 이후 인터넷 서점에서만 2200권의 책을 샀는데 거의 다 읽었다고 하니 6년간 하루 1권꼴로 읽은 셈이다. 이근우 씨도 1주일에 만화책 10권 이상, 일반 서적 2권 이상을 읽는다. 지난해 그가 예스24에 올린 리뷰는 모두 224건.

독서광들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최 씨는 “2004년 중반까지만 해도 어린이 책은 출판사별로, 어른 책은 추리 사회과학 인문 등으로 나눠 분류했는데 작년 여름에 포기하고 거실에 ‘책 산’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노 씨는 “책이 적당히 있을 땐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엑세스로 분류해 보관하려고 했는데 1500권을 넘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공기 맑은 곳에 펜션과 무료 도서관을 짓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독서광들이 책을 대하는 버릇도 갖가지다.

“메모하거나 밑줄 그을 때 꼭 연필을 써요. 적을 때나 나중에 다시 볼 때 연필의 아련한 느낌이 좋아서요.”(노창준)

“일반 서적엔 미국에서 사온 늑대 모양의 스탬프를 찍고 만화책은 마음에 드는 대사와 장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둡니다. 홈피에서 하고 싶은 말 대신 사용하죠.”(이근우)

“책을 사는 즉시 날짜와 구입처, 이름을 적어 두고요.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많이 붙입니다. 책에 흔적을 꽤 남기는 편이죠.”(이현수)

“책이 상처 입는 걸 못 봐요. 메모 절대 안 하고 책장을 접는 건 상상도 못 합니다. 펼친 책을 뒤집어 놓는 게 가장 싫은데 남편이 책을 그렇게 벌려 놓으면 반드시 두꺼운 책으로 눌러 원상복구합니다.”(최혜리)

책에 얽힌 기억을 묻자 이근우 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어릴 때 증조부가 그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 주던 책이다. “어린 시절의 일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증조부의 손때가 묻은 이 책의 1982년판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이현수 씨는 “베스트셀러를 피해 다니지만 내가 고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책이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다. 한 씨의 여행기를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던 이 씨는 이 책을 남보다 먼저 골라 읽은 뒤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발견의 기쁨’도 누렸다.

책을 읽는 이유도 각기 달랐다.

“살면서 생기는 의문을 풀기 위해”(노창준) 책을 읽는가 하면, “머릿속에 내 마음대로 책 장면을 그려보는 상상의 즐거움”(이근우)이 책 읽기를 부추겼다.

또 “모든 책이 나름대로 말을 걸어오는 게 있어”(이현수) 독서의 기쁨을 누렸고, “남들이 쇼핑, 스포츠를 재미있어 하듯 그저 ‘책 읽기’가 재미있다”(최혜리)는 ‘탐서가’도 있다.

노 씨는 “사업을 하면서 1만 명가량 면접을 봤는데 창의적 인재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연한 정신과 학습능력이었고 이 능력은 결정적으로 책 읽기와 관련돼 있다”면서 “책 읽기를 통해 정보보다 더 중요한 사색의 능력과 반추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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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두 번째 읽었다.  처음은 이 책이 출판되자 마자 구입하여 읽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예상보다는 빠르게 읽힌다.  거의 한 세 시간만에 모두 읽은 것같다.

조선왕조의 역대의 왕(王) 가운데 연산군과 더불어 왕으로 대우받지 못한 임금인 광해군에 대한 일종의 평전이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 그분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중종실록과 연산군일기를 공동 번역하신 분이다 - 군(君)이라는 표현를 대신하여 주(主)라는 표현을 쓰신다. 이를테면, 광해주, 연산주라고 말이다. 글쎄 그것이 이 신하들에 의해 쫓겨단 왕들을 동정해서인지 아니면 존경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일국의 왕을 지낸 사람에 대한 막연한 대우에서 그렇게 부르시는 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정말로 이상하게도,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너무나 많이 사용되는데, 광해군에 대한 것은 기껏해야 교양 프로그램의 소재로 사용될 뿐이다.  왜 그럴까?

저자의 참신한 의견과 접근 방법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아울러 언뜻 언뜻 가미되는 현재의 대미관계와 비교한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가?'라고 자문하며 가슴 한켠에 알 수없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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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지마할님도 광해군에서 우리의 미국관을 보셨군요. 역사는 변함없죠.

타지마할 2006-05-12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무슨 '미국관'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시키는대로 말 잘듣고 비굴하게 눈치보고 가끔 쓰다듬어 주면 헤헤거리는 건 '관'이라는 글자가 아깝습니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종석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남영신 선생의 글이다.  그야말로 부담없이 볼 수 있으나 바른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꼭 일독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 주격조사 '가/이'와 특수조사(나는 이걸 보조사로 배웠다) '은/는' 에 대한 쓰임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았다. 그간은 모국어 사용자의 '감'으로 지배해 오던 부분을 '통밥'이 아닌 이론으로 정리하게 되어 기쁘다.

2. 연결어미 '고'와 '며' :  가끔씩 번역을 하게 되면 특히나 서술구의 나열이 2개 이상이 될 때 연결어미의 선택은 때로는 나를 순간적인 공황으로 이끈다.  이제는 조금은 나을 것같다. 

3. 호응 : 막연하게나마 영어의 Collocation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같다. 어휘적 호응, 논리적 호응 등...

4. 생략 : 문장의 주요성분인 주어, 목적어, 서술어마저 생략해 버리는 한국어의 대단한 생략.

연습문제가 많아 빨리 읽기는 불편했지만 곁에 두고 자주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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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 최종결과보고 -기자회견문

 황우석 교수 연구의혹 관련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 최종결과보고 -기자회견문

황우석 교수팀의 사이언스 논문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구성된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는 2005년 사이언스 논문뿐 아니라 2004년 논문의 진위문제도 조사하게 되었고, 복제개 스너피의 진위, 난자수급, 황교수팀 연구실의 기술현황 등에 관한 분석과 조사를 수행하였습니다.

조사위원회가 2005년 12월 15일부터 2006년 1월 9일까지 밝혀낸 사실들에 대한 최종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보충자료들을 제외한 결과보고서는 별도로 공개하겠습니다.

조사결과를 요약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2005년 사이언스 논문

2005년 논문은 환자맞춤형 인간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 11종을 만들었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2개의 줄기세포를 가지고 11개 줄기세포의 데이터를 만들어 냈고, 그 2개의 줄기세포도 체세포복제가 아닌 수정란 줄기세포였다는 것은 두 차례의 중간발표를 통해 이미 보고한 바와 같다.

황교수팀이 논문 제출 후에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줄기세포들도 전부 체세포복제가 아닌 수정란 줄기세포들임이 확인되었다. 2005년 논문의 데이터들은 DNA지문분석, 테라토마 및 배아체 사진, 조직적합성, 핵형분석 등이 모두 조작되었고, 이 데이터들이 어떤 방식을 통해 조작되었는지는 보고서에 적시하였다. 결론적으로 황교수팀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주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것을 만들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2.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체세포복제를 통한 인간배아줄기세포주의 확립을 보고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속의 세포사진 및 DNA지문분석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어 조사를 시작하였다.

조사위는 확보된 1번 줄기세포(NT-1)와 테라토마조직, 난자 및 체세포 공여자(동일인)의 DNA지문을 분석하였다. 1번 줄기세포주는 황교수팀이 동결 또는 배양상태로 보관중인 세포주 20개, 특허출원을 위해 한국세포주은행에 기탁된 1개, 서울대학교 문신용교수 연구실과 미즈메디병원에 보관중인 것 각각 1개 등, 총 23개의 샘플을 각각 3개의 연구기관에 보내 분석을 의뢰하였다. 세 연구기관은 모두 같은 분석결과를 보내왔다.

분석결과 테라토마조직과 1번 줄기세포중 세포주은행과 문신용교수 연구실, 미즈메디병원이 보관중인 1번 세포주는 모두 동일한 지문을 보였다. 황교수팀이 보관중인 20개 세포주중 9개는 이들과 동일한 지문이었으나, 11개는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줄기세포 5번으로 확인되었다. 1번 줄기세포의 DNA지문은 논문에 보고된 지문과 전혀 달랐고, 황교수팀이 공여자라고 알려준 A씨의 혈액에서 얻은 DNA의 지문은 논문과는 일치하나, 1번 줄기세포와는 달랐다. 따라서 1번 줄기세포는 논문에 제시된 공여자의 체세포핵치환으로 만들어진 줄기세포주가 아니었다.

1번 줄기세포가 미즈메디병원이 가지고 있는 수정란 줄기세포들과도 달랐으므로, 그 출처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조사위원회는 논문에 제시된 공여자와 비슷한 시기에 난자를 제공한 두 사람의 혈액을 추가로 확보하여 조사하였다. 그 중 한사람(공여자 B)이 1번 줄기세포와 관련이 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B씨의 미토콘드리아와 1번 줄기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동일한 DNA 염기서열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B씨가 난자제공자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B씨의 체세포핵의 DNA지문은 사용한 48가지의 표시자중 40개가 줄기세포와 일치하고, 나머지 8개는 동일하지 않았다. 만약 1번 세포가 체세포복제에 의한 줄기세포라면 48개가 모두 정확히 일치하여야 하나, 8개가 다르다는 사실은 1번 세포가 체세포복제에 의한 줄기세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8개 표시자 모두 공여자 B의 체세포에서는 다른 대립인자이지만, 1번 세포주에서는 같은 대립인자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할 때, 1번 줄기세포는 공여자 B의 난자가 탈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세포(극체)와 융합하여 처녀생식(단성생식)이 되면서 만들어진 줄기세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논문에는 1번 줄기세포주의 DNA지문이 공여자 A와 일치한다고 보고하였고, 현재 보관중인 1번 세포주 어느 것도 공여자 A와 일치하는 것은 찾을 수 없으므로, 조사위는 2004년 사이언스에 보고되고 특허가 출원된 1번 세포주는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외에도 2004년 논문의 세포사진들이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 사진들이라는 지적들이 있었는데 조사결과 그러한 지적들이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2004년 사이언스논문도 줄기세포주의 DNA지문분석결과가 조작되고 세포사진들도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3. 복제개 스너피의 진위

2005년 네이처에 발표한 복제개 스너피에 대해서도 DNA 지문 분석을 수행하였다. 스너피와 스너피의 체세포 제공견인 타이, 그리고 대리모 개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난자제공견의 체세포조직을 얻어 각각 3개 기관에 분석을 의뢰하였다. 근친교배와 복제개 사이의 차이를 구분해 주는 27종의 표지자에 대한 분석과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분석 결과, 스너피는 타이의 체세포에서 복제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에 적시하였다.

4. 난자사용에 관한 문제

황교수팀의 컴퓨터 파일과 노트, 미즈메디병원외 3개 병원의 난자제공관련 기록, 관련자들의 면담 등을 통해 확인된 바, 2002년 1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3년간 4개 병원에서 129명으로부터 2,061개의 난자가 채취되어 황교수팀에 제공되었다. 2005년과 2004년 논문을 위한 연구의 개시일이 불명확하고 기록이 불충분하여 각 논문을 위해 각각 몇 개의 난자가 제공되었는지는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다.

그러나 2005년 논문이 185개의 난자를 사용하였다고 보고한데 반해, 실험노트에 따르면, 적어도 273개가 사용되었다 (2004년 9월 17일 - 2005년 2월 7일 사이 집계).

2004년 논문과 관련하여, 황교수는 연구원의 난자제공사실을 몰랐었다고 한데 반해, 난자공여 연구원의 진술에 의하면 난자공여는 본인이 원했고 황교수가 승인하였으며, 황교수가 동행한 상태에서 2003년 3월 10일 미즈메디병원에서 노성일 원장의 시술로 이루어졌다는 진술을 들었다. 2003년 5월에도 황교수팀은 당시의 여성연구원들에게 난자기증 의향을 묻는 서식을 나누어 주고 서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8명의 전현직 연구원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하였다.

5. 황교수팀의 기술에 대한 평가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는 크게 나누어 핵이식, 배반포형성, 줄기세포주 확립의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줄기세포주를 확립한 후 환자의 치료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조직세포로의 분화와 아울러 환자 체내에서의 기능발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암발생 등의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

5-1. 핵이식: 돼지와 소 등 동물난자를 이용한 핵이식은 국내외적으로 황교수팀이 가장 활발한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황교수팀을 비롯한 국내 축산관련 대학과 연구소에는 약 100여명의 숙달된 핵이식 전문인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핵이식된 난자를 이용해 동물을 복제하는 기술은 최근 개의 복제에 성공한 것 등을 감안하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람의 난자에 핵이식을 하는 기술 중 쥐어짜기에 의한 탈핵방법은 효율성은 높으나 이미 동물난자에는 오랫동안 사용된 기술로서 독창적 신규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5-2. 배반포 형성: 황교수팀의 기록에 의하면 핵이식에 의한 배반포형성의 성공률을 약 10%로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실험노트의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배반포들이었다. 기록 중에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배반포가 만들어진 경우가 일부 확인되고 있어, 황교수팀이 핵이식조건을 개선하여 사람난자의 배반포형성에 성공하였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이 기술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연구실들이 있어, 더 이상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5-3. 줄기세포주 확립: 배반포로부터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단계에 대한 황교수팀의 연구기록들을 보면, 줄기세포가 확립되었다는 것을 판정할 만한 과학적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줄기세포주가 확립되었다고 판정하기 위하여는 테라토마 형성, 배아체에서의 분화능력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황교수팀에서는 세포의 콜로니가 처음 육안으로 관찰된 시점에서 이를 줄기세포주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이후 이를 줄기세포라고 입증하는 실험을 수행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상의 결과들을 종합하면, 황교수팀은 2005년 논문에서 주장한 환자맞춤형줄기세포뿐 아니라, 2005년 논문의 기반이 되는 2004년 논문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주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주가 만들어졌다는 어떤 입증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DNA지문분석결과 공여자 A씨의 유전자와 1번 줄기세포가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치하는 것으로 데이터를 조작하여 2004년 논문을 쓴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과학계와 일반대중을 모두 기만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꿔치기를 주장한다 하더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처녀생식 1번 줄기세포주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고, 그 유전자분석결과를 조작한 사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논문조작과 그 은폐에 관여한 연구자들에 대한 학계의 처분은 이미 드러난 조작사실 만으로도 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미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여러 연구자들이 있고, 그들의 줄기세포연구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줄기세포연구의 성공을 담보할 생명과학분야의 연구력도 이미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여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이번의 불미스러운 사건은 우리나라 과학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번 일이, 잘못을 수정하고 더 견고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우리나라 생명과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류를 지적하여 본 조사를 촉발시킨 젊은 과학자들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그동안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격려해 주시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경청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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