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입 말고 눈, 금태섭의 말 말고 손
곽도원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다. 익명의 폭로자가 한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정리된 분위기고, 곽도원은 뜬금없이 찾아온 위기에서 벗어났다. 대처를 잘 했다는 평이다. 그런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은 가관이다. "메갈년들은 이게 문제야." "성범죄는 엄단해야 하지만 무고죄 '역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익명의 인터넷에서 무고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진짜면 경찰서로 가라." "분별력 없는 김치년들이 그렇지 뭐." 기다렸냐?
미투 운동의 불을 꺼뜨리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을까? 알바 몇이 등장한다. 유명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가짜 폭로를 한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대상이면 더욱 맞춤하겠다. 30분쯤 뒤에 글이 좀 퍼졌다 싶으면 삭제하고 계정을 폭파한다. 언론이 퍼 나른다. 폭로 대상자가 부인하며 폭로의 모순을 지적한다. 가짜 폭로자는 침묵하거나 시인과 반성의 글을 올린다. 결국 폭로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진다. 미투 운동을 욕하는 글이 몰아친다. 대중의 호응과 관심도가 감소한다.
이런 일을 수 차례 반복함으로써 진짜 폭로와 가짜 폭로의 경계를 흐려버린다. 나뭇가지는 숲에 숨기고 시체는 전쟁터에 숨기는 법이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다. 피해자들이 어렵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 가해자를 벌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거센 불길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조작으로도 가뿐히 꺼질 수 있다. 물론 김어준의 공작 발언은 미투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그 자체로 피해자의 입을 닫게끔 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공작은 미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미투의 불길도 꺼뜨릴 수 있다는 것. 김어준이 말하지 않은 것 가운데 우리가 뽑아 먹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피해자의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의 끝없는 지지 뿐이지만, 피해자의 입을 닫게 만드는 방법은 부지기수다.



천천히 모든 이의 인식이 바뀌어가고, 바뀐 인식을 지탱해줄 새로운 제도와 구조가 생겨나고, 인식과 관심이 없던 사람도 조금씩 새로운 구조의 영향을 받고, 더 많은 목소리가 존중받고... 그렇게 세계는 아주 느리게, 상처에 돋아나는 새살처럼 고독하게 바뀌어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내 삶이 다 끝나는 시점에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가 고독하게 바뀌어갈 동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할 것이며,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용기의 모양이나 성질은 촘촘하고 굵은 것이기보다는 다소 느슨하더라도 질긴 것이어야 한다.
_ 박소현 외,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일부러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여성혐오를 하며 살아갑니다. 개개인의 여성혐오는 사회 전반의 여성혐오를 공고히 하는 양분으로 쓰여, 이 공고한 여성혐오에서 폭력이 발현됩니다. 폭력은 경중에 관계없이 도처에 존재하며, 언제든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는 억울하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성혐오로 발현된 언어/신체/성폭력의 행위자였던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행위자가 폭력을 행하는 데 얼마간의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겪은 피해의 경험을 함부로 축소하는 것만으로 이미 그는 한 번의 실질적인 가해를 한 셈입니다. ....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의 토대를 키웠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인 양 가해에 일조해 살아왔거나, 적극적으로 가해했거나, 셋 중 하나입니다.
_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힌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_ 은유, 『쓰기의 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