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syo가 응원했던 요즈음 좀 핫한 남자들의 흥망성쇠에 관하여



1. 수도권을 연고지로 하는 어느 야구팀 단장


syo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올해 초만 해도 대권을 노리느니 어쨌느니 깝치다가 이도저도 아닌 성적을 거두었다. 못한 건데, 못한 팀 중에서는 또 제일 잘한 거라. 못 생긴 애들 중에는 니가 제일 잘 생겼어, 우리 팬들은 이런 말을 도저히 칭찬으로 들을 수 없었고, 시즌 중 고집스런 전략을 구사하다 몇 경기를 말아먹은 감독의 경질 이야기가 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감독이 단장으로 영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우리 중 일부는 이미 뭔가 미쳐돌아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그러나 나름 명장으로 이름난 사람을 새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여차저차 봉합이 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십년이 넘게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공격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는 좀 공격적으로 돈을 부어 다른 팀에서 좀 친다 하는 선수들을 반드시 사 오리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팬들로 하여금 설레설레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 놓았다. 아, 이번엔 뭔가 제대로 되려나보다!


했는데, 의외의 폭탄이 터졌다. 이놈의 단장이, 저 어두컴컴한 시절, 우리 팀의 다른 타자 전원이 한 경기동안 치는 안타의 합이 다른 팀 4번타자 한 명이 치는 안타랑 비슷하던 때에도 저 혼자 꿋꿋이 3번 중 한 번은 때려내어, 저 팀은 쟤 혼자 야구하는구먼, 하는 찬사 아닌 찬사를 듣던 든든한 베테랑 선수를 팀에서 거의 쫓아내다시피 방출한 것이다. 그 선수 뿐 아니라, 가장 안정적으로 2루를 맡아주던 선수를 특별한 대안도 없이 바꿔먹자고 내놓질 않나, 심지어 본인이 감독이던 시절, 얘는 언젠가 반드시 빵빵 터질거라며 남들이 다 말려도 끝끝내 4번에 세워 팬들의 속이나 빵빵 터뜨리던 선수를 자기가 언제 아꼈냐는 듯 툭 털어내는 기이한 행보를 보이니, 마침내 팬들의 분노가 이미 하늘 끝에 닿았도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바로 다른 팀에서 사오기로 한 선수. 세 명이 물망에 올라 있었다. 우리는 치킨, 피자, 햄버거를 쥐었다 놨다 하며 뭘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행복한 여덟살 syo마냥 낭보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뿔싸,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치킨이 자신의 팀에 눌러 앉기로 하고, 심지어 햄버거가 우리 팀이 아니라 치킨이 있는 그 팀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피자는 미국에서 안 돌아오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돌아오더라도 어쩐지 베테랑을 헌신짝처럼 차 버리는 우리 팀에는 오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팬들 사이에 돌고 있다. 결국 우리는 특식은 커녕 꾸준히 식탁에서 역할을 다하던 밥도둑 밑반찬도 모두 내버리고 맨밥만 꾸역꾸역 퍼먹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밥그릇 아래에 우리도 몰랐던 달갈 후라이라도 숨겨져 있기를 기대하면서. 쓰다보니 훌륭한 선수들을 이렇게 음식에다 비유하여 아무리 치킨, 피자, 햄버거, 돈가스를 사대천왕으로 여기는 syo라 해도 죄송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본인의 별명은 그야말로 음식(정확히 말하면 식재료)이었던 우리의 전감독 현단장. syo는 한 때 누구보다 그를 믿고 사랑하였으나, 야구 팬들 가운데 끈기로 따지자면 누구의 반대도 없이 세 손가락 안에 안착하리라 단언할 수 있는 우리 팀 팬들조차 단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니, 조용히 그를 마음에서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몇 마디 전한다.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_ 황현산,『밤이 선생이다』


 구두처럼 내 몸 전부를 다 받아준 건 없었다
 구두처럼 막다른 어둠까지 질주해준 것도
 한사코 함께 되돌아와준 것도 없었다
 수술실로 들어간 늙은 애인,
 내가 돌아앉아 저리고 미안한 두 발을 주무르노라면
 구두는 새 굽을 신고 어딘가로 또 어질어질 가려 하겠지

 구두를 만류하여 가슴에 품고
_ 이영광,「구두」일부, 『아픈 천국』


모든 해결책들이 실은 서로 다를 바 없고 하나 같이 효과가 없는 것들일 때, 우리를 선택의 홍수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는 방법이 된다.

_ 버텔 올먼,『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2. 어느 군소 정당의 군사 전문가 국회의원


그가 의원직에 있기 전부터, 이 사람이 정치판 근처에서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그 입으로 흥하다 언젠가는 한 번은 다시 그 입으로 화를 입겠구나 싶었다. 내용의 옳고 그름만큼이나 그 내용을 퍼나르는 말의 모양새가 정치인에겐 중요하다. 그 말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 syo는 이 풍파의 9할 가까이는 언론의 짓거리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인은, 특히 정당정치판에서의 정치인은 자기가 잘못하지 않은 일도 잘못되면 잘못한 것이다. 작은 당일수록, 급진적인 당일수록 더하다. 뭐라도 하나만 걸려라 하고 어금니를 갈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 방 맞으면 얕은 기반이 휘청휘청한다. 


센 말은 짭짤하다. 센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렇지만, 때론 상대방에게도 그렇다. 그는 조금 더 노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같은 당에 세상 든든한 멘토가 있다. 천천히, 배우면서, 다독이면서, 함께 가야한다. 또 다시 찾아올 좋은 날을 syo는 기다린다.



좋은 논쟁은 민주주의의 엔진이지만 그렇지 않은 논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해야 될 논쟁은 누가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논쟁은 선의를 독점하고자 윤리적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_ 박상훈,『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자신은 으뜸이 아니요,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기원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떠받치고, 자기 자신이나 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사물, 존재, 순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는 헛바람, 허깨비, 기만에 불과하고 타자는 폭군 혹은 환상일 뿐이니까.

_ 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역사의 순간마다 사람들은 이미 구축된 사고와 은유와 서사의 틀 안에서 행동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의 틀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고 보는지를 결정한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그 어떤 추상적인 사회적 현실은 없다. 매 시대, 매 순간마다 문화, 과학, 기술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들은 일부 진실은 인정하고 일부 진실은 왜곡하며 사회적 현실을 구성해 나간다. 이러한 틀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즉 개인적인 측면과 집단적인 측면에서의 사익을 어떻게 추구할지 규정짓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준다.

_ 에릭 리우 외,『민주주의의 정원』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외부의 평가에서 온다. 나는 '사람 스트레스는 없지만 일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일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도 결국 과도한 책임감과 압박, 인정 욕구, 경쟁 등 인간관계의 복잡함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_ 유소연,『차마 하지 못했던 말』 




3. 명예군필의 명예를 획득하신 장군님, 기계 혁명을 넘어 정신 혁명을 지도하시는 영도자


아파서 못갔다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병역 면탈자라고 그렇게 욕을 욕을 하더니, 페미니즘 까주니까 지들이 예비군 민방위지 무슨 국방부 장관이라도 된 것처럼 명예군필의 광영을 내려주시는 높으신 분들. 보고 있자니 정말로 군필을 페미니즘 공격하는데만 쓴다는 소리가 허튼 소리가 아니었음이 증명되고 있는 것 같은데,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우리 대다수 군필 제하들께서는 저런 일부 '폭도'들의 군필매매 행태에 열 받지 않으십니까? 아직 군복에 땟물도 안빠진 파릇파릇한 예비군 4년차 syo는 빡치는데요!


현재는 일베남신으로 추앙받고 계시다는 그분의 평소 언행을 syo는 좋아했다. 수상소감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선제적으로 촛불 혁명의 대열에 참가하기도 했다. 잘 나가는 사람을 아니꼬와하는 이들이 준동하여 저게 다 관심병이고, 주인공병이고, 허세라고 몰아붙였을 때, syo는 혀를 찼다. 세상 속고만 살았나. 군대 안가려고 수 쓴 거라는 말이 돌았을 때쯤에는 syo의 혀는 이제 하도 차여서 혀인지 축구공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저 사람은 달라. 뭔가 특별해.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좀 보라지. 달라.


그랬는데, 이번 판에서 그가 보여준 작태가, 내용의 옳고 그름도 문제지만, 그보다 그 형식이 너무나 전형적이었다는 데, 그러니까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반응을 보였다는 게, syo를 크게 실망시켰다. 아, 다른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교과서적이고 특색 없는 멘스플레인조차, 저 정도 권세를 지닌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파급력이 장난이 아니구나. 그는 한 발 한 발 어렵게 나아가던 운동의 한 가운데 빅똥을 쌌다. 그곳에 큰 똥이 있기 때문에, 작은 똥을 싸는 사람들도 무수히 모여, 아, 여기에 똥을 싸도 되는구나- 하며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syo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다. 중2병으로는 나도 어디서 절대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갖고 자아를 꾸준히 비대화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syo의 중2병이 쑥쑥 자라고 있었는데, 오늘 덜컥, 하늘에 머리를 찢었다. 아야, 이게 뭐지? 하고 올려다 보았는데, 세상에 syo가 텅 빈 하늘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바로 어마어마하게 비대화하여 이미 대류권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남자의 비대한 자아였다. 아. 이래서 손오공은 제깟놈이 암만 구름을 타 봐야 원숭이구나.


"그들의 가난한 영혼을 차마 다 안을 재간이 없어 비통하다. 자연을 글로 옮기는데 가상세계에서 내 영혼이 다칠까 걱정되어 날선 방패를 먼저 세우는 일이 참으로 비참하다. 그럼에도 쓴다. 경향적 어휘와 자극적 이미지를 총알처럼 남발하며 전쟁을 치르는 세상에서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기에는 내 안의 문학소년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다. 싸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써왔다. 그래서 쓴다. 피눈물로 당신에게 나를 보낸다. 이것이 내 '글'이고, '나'다. 물리고 뜯기고 찢겨 조각난 채로 이 세계를 부유하는 것들은 글이 아니라 나다."


syo가 졌습니다. 당신이 왕이세요. 저도 한가닥 하는 중2병잔데, 그래도 차마 '내 안의 문학소년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라고는 못 쓰겠어요. 타인의 영혼을 '가난하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못하겠고, 그걸 다 안아주어야 할만큼 제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쓰지도 못하겠어요. '물리고 뜯기고 찢기고 조각난 채로 세계를 부유하는' 나라니, 대박. 누군가를 물고 뜯고 찢고 조각낸 나는 '내 안의 문학소년'이 슬프지만 않았어도 '승리의 기쁨'에 도취될 수 있었을텐데, 그쵸? 내가 찢어놓은 상처는 승리의 기쁨이고, 내 몸에 난 상처는 피눈물이라니, syo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못 쓰겠어요......




찬찬히 살펴보면, 타자는 아직 인간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영역, 인간적 지평 너머의 잉여 경험을 가리킨다. 이러한 타자는 로고스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나 거대한 힘을 지닌 괴물의 이미지로 세계에 등장한다. 유명한 신화들은 언제나 괴물을 목격하여 지혜를 얻은 자를 그린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 욥과 레비아탄의 만남이 그렇다. 그들은 괴물을 가두고 자신에 관한 지혜를 얻지만 이때 괴물은 설명되지 않은 채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_ 김은주,『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노동자의 심정을 자본가가, 장애인의 입장을 비장애인이,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성애자가 대신 말할 수 없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시킬 뿐이다. 

_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만약 당신의 그 권위 있는 비평이 우리가 모르는 것를 알려준다면, 왜 세상은 계속 침묵할까요? 왜 우리에게 진실과 돌이킬 수 없는 법을 말해주지 않을까요? 비평이 그것을 안다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주었을 테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았을 겁니다.

_ 피에로 브루넬로 엮음,『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나는 고급반에 등록하겠다고 말했다. 내 폴란드어 수준을 확인하려는 강사에게 대답해줬다.
"고생하실 거 없어요. 난 폴란드어를 한마디도 못해요."
"그러면 대체 왜 고급반을 들으려고 하세요?"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모를 때야말로 맹렬히 돌진할 수 있으니까요.
_ 롬브 커토,『언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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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11-2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재치 넘치는 글이라니!! 인용된 책과 글이 인상적입니다~

근데, 유소연이면...그 토익강사 말하는 건가요? 그녀라면....책을 좀 꾸준히 많이 내는 편이군요. 저는 별루라고 생각하고, 토익시장에서 곧 사라질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건재하다면, 정말 대단한 면은 있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욤~^^

syo 2017-11-29 19:04   좋아요 0 | URL
그 사람은 누군지 잘 모르겠으나, 저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라네요. ㅎㅎㅎ

cyrus 2017-11-3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구아재가 선수단 정리에 동의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양상추를 쉴드치려는 언플이라고 생각했어요. 삼팬인 제가 아는 살구아재는 그런 결정을 할 리가 없거든요.

syo 2017-11-30 21:38   좋아요 0 | URL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가 뭐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삼성은 내년에는 기대할 만 하겠던데요.

행복한책읽기 2021-01-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요님 또 걸렸당^^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보러 왔다, 글쓰기 최전선 평에 뿅 갔음요^˝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근데요, 저 스요님 스토커 아님요ㅋㅋㅋ

syo 2021-01-19 11:54   좋아요 1 | URL
왜 뿅 가신 건지 제가 알려드릴까요? 그건 제가 쓴 평이 아니라 인용이라서 그래요 ㅎㅎ 은유 작가님이 쓰신 거라서 뿅 가신거예요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1-19 12:15   좋아요 0 | URL
ㅋ 걍 스요님이 쓴걸로^^ 저 책 읽었으나, 기억을 못하고 있었으니, 스요님 글소리로 기억에 담겠음요^^